스란두일은 밤을 지새운 뒤에 아침에서야 정신을 차렸음. 엘론드는 항상 느지막히 일어나는 터라 집안은 고요했음. 글을 배운적이 없어서 무어라 적어놓고 나가진 않았지만 스란두일은 자신이 그동안 받은 것 중에 가장 기본적인 옷이나 구두 빼고는 모두 모아 침대위에 놓고 집을 나섰음. 더이상 곁에 있기 두려워서. 돈주고 날 샀는데 가만히 있는것조차 무서웠음. 어자피 나는 그분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으니 착각을 하는것도 자유였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축시켰음. 더이상 곁에 있어봤자 득없이 실만 될거라는것을 스란두일은 알고 있었음. 근본도 없는 천한 남창을 데리고 있다는것이 나름의 귀족급인 엘론드에게 좋지 않을거라는 것은 뻔한 거였음. 게다가. 자신이 더 이상 그의 곁에 있을 수가 없었음. 어젯밤은 분명 악에 받친 채로 덤빈거였지만 다른 마음도 있었음. 우아함. 깨끗함. 모든것들이 자신과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고귀함. 자신까지 받아줄 수 있는 인품. 재력. 모든것이 부러웠음. 부럽고도 탐이나고 개인적으로 연민을 느꼈음. 곁에 있으면 언젠가는 한번쯤 바라봐주지 않을까. 언젠가는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꿈꿨음. 남창답게 처절하고 주제에 맞는 꿈을 꿨음. 그러나 어젯밤 엘론드는 스란두일에게 절망만을 안겼음. 부끄러움. 그것 뿐이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한번도 보지 못한 그 연민의 표정. 숱하게 자신의 위를 지나간 그 표정을 엘론드가 지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음. 그제서야 스란두일은 모든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음. 난 이분처럼 변할 순 없구나. 뼛속까지 나는 쓰레기구나.

안개를 헤치며 걷던 거리는 어느덧 햇살이 가득했음. 모든것을 버려두고 나온 터라 주머니엔 한 푼도 남아있질 않았음. 스란두일이 있을 무렵 엘론드는 집안의 모든것을 그에게 맡겼음. 실수하는대로. 잘하는대로. 돈도 맡기고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맡겨왔지만 그것들을 가져오지 않은 건 마지막 자존심이었음. 그렇게 거리를 걷고 하염없이 걸어 예전의 동네로 돌아왔음. 갈곳이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했음. 분수대에 앉아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는데 예전에 엘론드와 만났던 구석진 거리가 눈에 들어왔음. 벌써 몇달 전 이었지만 아직도 생생했음. 새벽에 가까울 시간이었지. 하며 상념에 젖어있을 때, 누군가가 어깨를 툭툭 쳤음. 고개를 들자 험상궂은 모습의 사내 둘이 스란두일을 내려다봤음. 어이 형씨. 생각하는데 방해해서 미안한데 여긴 우리자리거든. 흔히 있어왔던 건달들의 알력다툼이었음. 스란두일은 말없이 일어나려했지만 강한 힘이 어깨를 짓눌렀음. 에이. 뭘 또 일어나기까지 하려구. 그냥 자릿세만 내면 돼지 안그래? 건들건들 웃어보이는 모습에 조금 위축된 스란두일이 덤덤하게 입을열었어. 저 돈 없어요. 그건 내가 봐야 아는거고 니 말을 믿을수가 있나. 솔직히 덩치보고 만만찮다 여기려고 했는데 존대말에 눈치보는 모양새를 보고 건달들은 꺠달았어. 좀더 위협적으로 나오며 스란두일을 가운데에 둔 채 껴 앉았지. 대놓고 몸을 더듬으며 동전을 찾았어.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험상궂은 건달 하나가 다른 이에게 눈짓을 했어. 형씨 저기로 좀 갈까? 스란두일은 일어서는 순간 도망치려 했지만 멀리가지 못했어. 노련한 손놀림에 제압당하고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밀착해 뒷골목으로 끌려갔어. 이미 그쪽에는 건달 패거리들이 모여있었어. 눈짓을 하고 스란두일이 들어서자마자 무릎을 꿇리고 있는 옷들을 뒤졌어. 조끼의 안쪽 주머니까지 뒤진 건달들은 정말 한푼도 없음을 알게되고 건달 두목은 거지새끼 데려오지 말라며 건달들에게 소리쳤지. 가만히 몸을 옹송그리고 있던 스란두일은 그저 참았어. 어자피 건달들은 돈이 없단걸 알게되면 놔줄거야. 그런데 그날따라 두목의 심기가 편하질 않았어. 억지로 스란두일을 일으켜선 빙글빙글 웃으며 복부에 주먹을 꽂았어. 그러길래 돈이 없으면서 분수대에 앉으면 쓰나~ 스란두일을 향해 폭력을 휘둘렀지만 건달들 모두가 긴장했어. 반항할 새도 없이 몇대 맞고 코피흘린 채로 헐떡거리던 스란두일이 바닥으로 무너지자 건달들이 그를 중심으로 원을 그렸어. 똑바로 못하냐는 잔소리를 듣고 잘하겠다며 맹세하는 그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어. 나랑 별반 다를것 없는 놈들이 다른 척 하고 있어. 하지만 가만히 있었지. 더이상 분란을 만들고 싶진 않았어. 엘론드에게서 도망쳤지만 막 살겠다고 나온건 아니야.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을 그 때에 어떤 건달녀석 하나가 조그맣게 두목에게 고했어. 근데 두목. 저새끼 저거 남창같아요. 뭐? 따가운 시선들이 스란두일에게 내리꽂혔어. 중간쯤 되어보이는 어린 놈이 더듬거리며 멀쩡할때는 긴가민가했는데 저 꼴 보고 생각났다고. 저아랫쪽 창녀굴에서 남자들한테 다리벌리던 놈이었다고 그제서야 스란두일의 눈이 그자에게 향했어. 하지만 건달두목은 그 눈빛에서 두려움을 보았지. 천천히 다가서며 스란두일앞에 쪼그려앉았어. 너. 남창이냐? 스란두일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어. 그나마 자존심으로 눈을 부릅뜬 채, 바라보고 있었어. 하지만 그 짧은 눈싸움으로 이미 승패는 결정나있었어. 더러운 손으로 스란두일의 볼을 쓰다듬으며 두목은 말했어. 어쩐지 꼴리게 하는 냄새가 나더라니. 닳고닳은 년이었구만?

근데 썰인데 그냥 건너뛰면 안되나. 하여튼 그렇게 신나게 굴려지고 오랫만에 느껴보는 굴욕감에 눈물이 줄줄나는데 한번에 두개세개 막 들어오고 비명지르면 조여댄다고 엉덩이 철썩철썩 쳐대고 몇시간을 굴려지고 해가 뉘엇뉘엿 지고서야 끝이나고 두목이 옷입혀줘야한다고 엘론드네서 입고온 옷을 다 갈기갈기 찢어서 그위에 뿌려두면 좋겠다. 넋나가서 눈물도 안나온 채로 움직일 여력도 없이 그렇게 뒷골목에 방치된 스란두일. 솔직히 아예 힘다 빠진건 아닌데 자기가 넘 비참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분의 곁에서 뛰쳐나와 고작 하는게 몸 굴리는것밖에 안된다며 자조적인 웃음반 울음반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한밤중이 되고 슬슬 쑤신 몸을 일으켜 어덯게든 이자리를 벗어나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발소리가 들리는거지. 너무나도 익숙한 발소리. 저도모르게 숨죽인 채, 죽은듯 누워있는데 발걸음이 골목 끝에서 멈췄고. 똑바로 자신에게 걸어왔고. 여전히 똑같은 차가운 표정으로 엘론드는 자신을 보며 입을 열었음. 일어설 수 있어요? 정신을 잃은 척 하고 싶었는데 미동도 않는 모습에 스란두일은 눈을 뜰 수밖에 없었음. 옷이 찢어진 것을 살피고 자신의 망토를 빼네어 스란두일을 감싸고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지켜보았음. 그러나 쉽진않지. 비틀거리자마자 곁으로 가서 그를 부축 하고 큰길가에 서있는 마차로 데려갔음. 처음과 같이 스란두일은 그의 마차에 올랏고 처음과 달리 아무런 말도 하지않은 채 둘은 다시 엘론드의 집으로 돌아왔음. 마차에서 내려서 집으로 들어서려는데 스란두일이 움직이지 않아. 엘론드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자신은 이곳에 들어갈 염치가 없대. 그제서야 엘론드는 스란두일의 눈을 보며 입을 열어. 염치가 필요한 곳이 아니니 자네가 원한다면 들어와도 좋네. 어쩐지 명령같은 그 말투에 스란두일은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음. 예전과 같이 목욕을 하고 부엌에 가서 먹을것을 먹은 뒤 엘론드는 스란두일을 재웠음. 침대에 올라가 눈을 뜬 채로 대체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자신을 질책하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음.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이 쳐진 창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는데 엘론드가 밖으로 향하고 있었음. 조용히 홀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평소 느지막히 외출을 하던 모습과 동일했음. 발걸음은 어느샌가 엘론드의 뒤를 좆고있었음. 평소보다 조금 빠른 엘론드의 걸음에 스란두일은 불편한 몸으로 그를 미행했고 당도한 곳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음. 아까 자신이 있었던 곳임. 엘론드는 잠시 앞을 바라보다가 골목 안쪽으로 숨어들었음. 이곳 저곳 길을 안다는 듯이 돌아다니며 은밀한 곳을 휘젓고 어떤 작은 헛간같은 곳에 멈추었음. 심호흡을 한 뒤 노크도 없이 들어간 곳에서 스란두일의 발걸음이 멈추었음. 더이상 들어갔다간 들켜버릴 지도 몰랐음. 헐거운 문 틈 사이로 안쪽을 보려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음. 그때 희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음. 스란두일은 이런 류의 비명을 잘 알고 있었음. 사창가에서 흔히 들리는 소리였음. 그런데 엘론드가 들어간 곳에서 들려왔음. 엘론드가 위험한거..? 머리보다 몸이 빨랐음. 흔들거리는 문을 조심히 제치고 들어가 안쪽으로 향했음.

더러운 잡동사니들이 쌓여있는 와중에 희미힌 불빛이 어룽댔음. 스란두일은 소리를 죽이고 그곳으로 향했음. 안쪽의 침실이었나본데 조심히 머리를 들이민 스란두일은 숨을 쉴 틈 없이 그자리에서 멈춰버렸음. 상상도 하지 못할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져있었음. 가녀려 보이진 않았지만 유약해 보이기만 하던 엘론드의 손 끝이 건달두목의 목줄기를 한 손으로 조르고 있었음. 허공에 둥둥 떠서는 신음을 내뱉으며 살려달라고 비는 꼴이 우스웠음. 그러나 엘론드의 손아귀가 좀더 조여들었고 눈이 튀어나올정도로 열오른 두목은 발버둥치며 밀어내려 애썼음. 이미 곁에 있던 창녀 하나는 숨이 끊어진 듯,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음. 조금씩 조여가던 손아귀에서 어느순간 뚝 하는 소리가 들렸음. 천천히 옆으로 기울어진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꺾였음.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은 엘론드는 그의 벌어진 목덜미를 파헤치고 속삭였음. 네 죄를 사하러 온 것이다. 죽은줄로만 알았던 몸뚱이가 부들부들 떨렸음. 그릉그릉한 목소리가 살려달라 빌었음. 하지만 부러진 목뼈로 사는것은 사는게 아니라는걸 스란두일은 알고있었음. 천천히 고개를 숙인 엘론드는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두목은 비명을 질러댔음. 아주 오랜 시간동안 엘론드는 미동하지 않았음.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스란두일은 곧 그 생각을 후회했음. 엘론드가 일어났고 곁으로 비켰을 무렵 제법 덩치가 있던 건달두목은 마치 굶주려 죽은 시체처럼 바싹 말라있었음. 천천히 죽은 창녀에게 다가간 엘론드는 채 감기지 못한 눈을 감긴 채, 성호를 그었음. 늘 보아왔던 얼굴에 입가가 부자연스럽게 다가왔음. 엘론드가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을 때, 스란두일은 안쪽에서 반짝이는 송곳니와 입가에 묻은 피를 발견했음. 마른침이 목안쪽을 넘어갔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음. 엘론드가 시체를 수습하는 사이 스란두일은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킨 채, 밖으로 나왔음.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침대위에 누운 스란두일은 엘론드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소리를 들었음.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숨을 크게 쉬려고 노력했음. 거짓말처럼 방문이 열렸고 다가오는 엘론드의 발소리가 들렸음. 그는 한참동안이나 스란두일을 쳐다보았고 이마를 짚어 열이 있는지 확인하고 방을 다시 나섰음. 그렇게 스란두일은 뜬눈으로 밤을 새웟음.

아침이되고 새들이 지져귀는소리가 들리자 스란두일은 자리에서 일어났음. 꿈일거야. 오랫만에..더러운 일을 당해서 꿈을 꾼 걸테지. 암. 무슨 그런 소설같은 일이 일어나. 하하. 억지로 웃은 스란두일은 씻으려 욕실로 향했음. 하루 가출을 했지만 평소와 다를바가 없었음. 욕실로 가서 물을 긷고 세수를 하려 막 고개를 숙인 그 때에, 스란두일은 실내화를 신은 자신의 발을 보았음. 새하얀 실내화가 새까맣게 변해있었음. 어제 신발조차 잃어버린 스란두일은 꿈속에서 실내화를 신고 나갔었는데....

등골이 오싹해지는것을 느끼며 스란두일은 흐릿한 거울을 쳐다보았음. 초췌한 자신의 모습이 보이고 그 등 뒤로 어느새 열린 문 틈으로 엘론드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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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잠깐 풀었던 네임버스로 스란엘 보고싶다

이세계의 사람들은 손목 안쪽에 이름을 갖고 태어남. 그건 연결된 정인의 이름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을 노출하고 거리낌없이 부르며 소통함. 대신 짝을 만나거나 결혼한 경우엔 그 이름을 가림. 서로에 대한 예의랄까. 그리고 짝이 있다는 증거가 되지.
굳이 그사람과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지만 짝을 찾는게 되게 당연시 되는 분위기 ㅇㅇ.

현실 AU로 엘론드의 손목은 항상 시계로 가리워져 있어서 확인할 수 없었지만 길갈라드는 꾸준히 대쉬하고 곁에서 보살펴 주고 있었고 엘론드는 은근슬쩍 정인을 찾으면 좋겠다. 스란두일 또한 바로 곁에서 정인을 찾고 있는데 바람둥이면 좋겠다. 굳이 정인과 이어지기만 하면되지 애인사귀라곤 안했자나? 이러면서 아무나 만나서 자고 그러면서 은근슬쩍 손목 확인하고 아니면 ㅃㅃ 하는 스란두일 보고싶다.
어느날 엘론드가 일하는 바에 스란두일이 왔는데 오자마자 주위가 술렁술렁. 소문의 그 사람이잖아? 하고 엄청 수군거림. 스란두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의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데 엘론드가 그날의 전담 바텐더인거. 길갈라드는 솔까 스란두일이 난잡하다는걸 알아서 별로 가까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여기서 불리는건 대부분 이름이 아닌 성이라 이름도 모르고. 하여튼 둘이 만남.

처음엔 잘 모르고 껄떡대다가 엘론드가 말없이 가려진 손목을 가리키자마자 임자가 있는 줄 알고 다른사람을 찾아보려 했는데 분위기도 그렇고 단골들 수군거리는 걸 들어보니 엘론드는 그냥 바에서 하도 귀찮게 구는 사람들이 많길래 가리고 있는거라고 이야기를 들었음. 그걸 알고 스란이 엘론드 꼬시려고했는데 전 원나잇 안합니다 라고 딱 거절하는 엘론드보고 호기심이 동해서 뭐야 그럼 원나잇 아니면 괜찮아? 하고 추근추근 거리는걸 길갈이 바텐더에게 찝적대려면 나가 ㅇㅇ 해서 못하고. 거절당한적 없었던 스란두일이 거절당하고 나니까 자존심이 쎄서 이거 좀 먹음직스러운데? 하고 엘론드를 노리는거 좋다. 장난식으로 가려진 이름이 뭔데? 라고 물어도 안알려주고 ㅇㅇ. 하여튼 그날부터 매일같이 가게로 찾아오는 스란두일. 매일매일 데쉬하고 집갈때까지 데려다주고 하니까 소문 다남. 이목도 쏠리고 부담스러워 죽겠는데 스란두일은 거절할 생각이 없어보임. 근데 바람둥이라고 소문난것 치곤 생각보다 매너도 좋고 일단 잘생겼기떄문에(...) 엘론드는 좀 두근두근 함. 누가 자기 공주취급해주고 떠받들어주는데 싫어하겠어. 하여튼 좀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길갈라드가 그거보고 속터지는거지.

길갈라드는 사별남이면 좋겠다. 일찍이 정인을 만나 결혼했는데 사고로 부인이 죽어버렸음. 그 뒤에 어릴적 같은 학교를 나왔던 엘론드를 만남. 솔직히 그전부터 맘에 있었는데 다시만나고나니까 이건 운명인거같아. 엘론드 손목에 새겨진 이름이 자신이 아니라는 걸 분명 알아. 그렇지만 자신은 이미 정인이 죽어버렸으니 굳이 그런거 안믿어. 자신의 눈과 가슴을 오히려 믿는거지. 근데 그걸 엘론드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왔어. 비록 오랫동안 곁에서 엘론드를 도와주고 이런저런 편의를 봐주고 있지만 말야. 치기어린 감정을 가졌을 때는 엘론드에게 울면서 고백도 해봤어. 하지만 엘론드는 쓸쓸한 눈으로 그저 안아줬을 뿐이야. 그 이후로 성적인 접촉은 ㄴㄴ. 되게 그냥 애틋한 선후배사이로 남아있었어.
근데 스란두일이 나타나서 겁나 공주대접하고 챙겨주고 그러는걸 보니까 좀 화가나는거. 더 웃기는건 가소롭다 생각했는데 엘론드가 흔들리고 있다는거야. 정인을 만날 때 까지 애인도 사귀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하던 모습과는 좀 다르잖아. 왜 자신은 안되는건지 좀 화가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하여튼 그렇게 하고 있던 어느날.

엘론드는 피곤해졌어. 좋아하는건 아니지만 애정이 안느껴졌다면 거짓말이야. 매일같이 부담스럽게 나오는 스란두일에 휘말려 어느순간 계약연애같은 기간을 갖기로 해버렸어. 기간은 백일. 그 짧은 시간내에도 꿈쩍하지 않으면 스란두일이 포기하기로. 솔직히 마지막 단어만 들려서 불현듯 끄덕여버린게 사실이지만 어쨌든 스란두일은 애인사이가 되었다며 번호를 귀신같이 따갔음. 오히려 그러니 오는 시간이 줄었어. 띄엄띄엄 문자하는 시간만 늘어갔지. 사람이 매일보이다가 안보이기 시작하면 주변 관심도 꺼지기 마련이지. 포기했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시간은 고스란히 엘론드 마음속에 쌓이고 있었지.

주말에 한두번 만나서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고. 늦게끝나는 엘론드를 배려해서 집까지 데려다주고. 솔직히 들리는 소문과는 많이 달랐어. 보자마자 벗겨서 따먹고 버린다더만 그건 아니었나보네? 하면서 이야기를 어느샌가 두런두런 하고 있자니 생각보다 사람이 나쁘지는 않아. 연애란게 혼자만 하는건 아니다보니 어느덧 눈치채는 사람들이 늘어났어. 핸드폰은 그저 전화를 걸기위해 있는것이다 를 표방하던 엘론드가 문자를 보내고 가끔 웃기도 웃는걸보며 바 단골들은 입맛을 다셨지. 생겼구나. 생겼어. 길갈라드도 눈치챘음. 자기에겐 말 안했지만 운명의 상대를 찾은건가 싶었어. 가까운 사이어도 그런이야기는 또 안할수도 있으니 애써 모른척했어. 하지만 봐버리고 만거지. 저녁에 집까지 데려다 주려고 바 앞에서 기다리던 스란두일을.
엘론드는 늘 끝까지 정리를 하고 갔는데 요즘은 일찍일찍 마무리를 하고 나섰어. 집이 먼 편은 아니라 길갈라드와 두런두런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게 확 줄어든거지. 그냥 기분탓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먼저 나가겠다는 엘론드를 배웅하고 조용히 뒤를 밟았어. 너무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열어주는 차에타는 엘론드를 보았지. 그순간 정말이지 길갈라드는 화가났어.

그날 저녁은 사귄지 두 달 된 날이었어. 새벽까지 여는 레스토랑은 없어서 스란두일은 자신의 집으로 엘론드를 초대했어. 부담스럽게 하지 않을테니 와달라는 말에 엘론드는 거절할 수가 없었어. 생각보다 크지 않은 자기 오피스텔로 데려와 스란두일은 요리를 시작했어. 근사하게 와인도 한잔 따르고 고기를 세팅하고 진짜 좋아하는 사이였다면 두근두근 할 정도로 기분이 좋은 시간들을 보냈어. 식사도 다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엘론드는 방심한 사이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상을 치워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음. 덩달아 일어서면서 제지하려는 스란두일이 엘론드의 손목을 잡았는데 앗 하는순간 와인병이 쓰러졌음. 그리고 스란두일에게로 술이 튀어버렸지...!
으아 일쳤다;; 괜찮아요? 하면서 냅킨으로 닦는데 옷이 흠뻑 젖어버린거. 젖은 소매를 걷어올리고 괜찮다고. 튀지 않았죠? 앉아있어요. 하며 스란두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무리를 했어. 걷어진 손목엔 가죽 팔찌가 얇게 여러줄 있었는데 그것까지 다 젖어버렸는지 싱크대로 그릇을 가져간 스란두일은 팔찌들을 풀어 물에 담그고 손을 씻었지. 식탁까지 다 정리하고나서야 옷을 갈아입었어. 편안한 니트티로 바꾸어입은 스란두일은 올려둔 물이 끓어오르자 커피를 타왔어.
놀랬죠? 괜찮아요. 하면서 둘은 커피를 마셨지. 그런데 문득 손목이 허전한 스란두일이 멍하니 테이블 위에 올려둔 자신의 손목을 내려봤어. 스란두일의 시선이 향하자 자연스럽게 엘론드의 시선도 그곳으로 향했어. 그리고 숨을 쉴 수가 없었지. 거기엔 엘론드의 이름이 있었어.
엘론드는 당황스러워서 시선을 돌리고 커피를 마셨어. 잠시만요. 스란두일은 황급히 일어나 방으로 향했고 손목시계를 차고 돌아왔어. 보진 않았겠지. 하면서 눈치를 살피는데 엘론드는 순간적으로 모른척 했어. 이제껏 스란두일과 이야기하면서 한번도 이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어. 그래서 스란두일도 그런거 신경쓰지 않는 줄 알았거든. 머릿속이 복잡해진 엘론드는 이만 가보겠다고 일어섰어. 데려다주겠다며 겉옷을 챙기려는 스란두일에게 괜찮다며 재빨리 밖으로 나와버렸지.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엘론드는 슬그머니 손목시계를 풀었어. 그 속에는 스란두일 네글자가 또렷하게 박혀있었어. 이제껏 그의 이름을 물어본 적이 없었어. 하지만 스쳐지나간 그의 손목에는 분명 엘론드 라는 글자가 있었어. 갑자기 심장이 두근두근 했어. 이름에 얽매여있긴 했지만 자신도 스란두일이 좋아진 건 사실이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좋은 사람이었고 멋진 사람이었어. 저 사람이 정인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잠깐 생각해보기도 했었어. 내일은 이름을 물어봐야지. 자신도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어. 혹 그가 아니라면... 어쩔수 없겠지만 그냥 남은 한달동안은 편안하게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음.

다음날이 되고 바에 나와 준비를 하고 있는 엘론드의 뒤로 종소리가 들렸음. 형 벌써 나왔...  고개를 돌린 엘론드가 멈칫거렸음. 침착하지만 조금은 무서운 얼굴의 길갈라드가 서있었음. 평정을 가장하며 이야기를 했지만 목소리가 떨렸음. 너 혹시 걔랑 사귀니..?
어쩐지 몸이 떨렸지만 엘론드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긍정했어. 어쩌다 보니까..사귀게 됐어요. 뭘 그런걸 물어보느냔 식으로 웃어보였지만 길갈라드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캐비넷이 우그러들었어. 놀란 시선이 마주쳤고 타오를것 같은 분노의 얼굴로 길갈라드는 짓씹었어. 그 바람둥이는 되고 나는 안되는거야? 가까워진 거리에 엘론드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지만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어. 형.. 좀 진정하고. 흥분한거 같은데...그../그래 흥분했어. 화도 났지. 아닌줄알았어. 차라리 다른사람이었으면 이해했을지도 몰라. 니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정인을 만났구나 했을수도 있어. 근데 그 바람둥이랑 사귄다고? 걘 되면서 왜 난 안되는데? 걔랑 나랑 다른게 뭐야..? 분노로 타오르던 얼굴이 무너졌어. 슬픔이 가득 담긴 눈으로 쳐다보던 길갈라드가 웃었어. 엘론드. 나도 널 사랑해.. 몇 년 전의 고백과 같았어. 그때도 길갈라드는 울듯한 얼굴로 고백을 했었지. 최대한 가까워진 입술에 엘론드는 질끈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어. 닿지도 못한 입술이 부르르 떨렸고 길갈라드는 한참을 그곳에 멈추어 있었어. 시간이 멈추어 버린 것만 같았어.

작게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어. 감았던 눈이 절로 떠졌어. 잘 보이지 않는 입구 쪽에 누군가가 서 있다가 황급히 자리를 피했어. 길갈라드도 뒤돌아보는 틈을 타 엘론드는 그의 품 안에서 빠져나왔어. 입구쪽에 떨어져 있던 건, 엘론드의 장갑이었어. 어제...스란두일네 집에 놓고 왔던 건..ㄷ...

엘론드가 계단쪽을 쳐다보았지만 이미 그곳엔 아무도 없었어. 정신이 아득해져옴을 느끼며 엘론드 역시 밖으로 뛰쳐나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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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과 같은 밤이 지난 후의 시간은 아득하니 빛나기 마련이었다. 서로의 품에 안겨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에 겨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두 엘프의 눈이 좀처럼 떠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보이지 않아도 입을 맞추고 속삭이며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둘은 서로의 온기를 맞대고 있었다.

"이제 일어나야 해."
"싫어. 더 있다가 가."
"조금 있으면 갈리온이 올텐데?"
"그놈의 영감. 내가 소리 한번 지르면 그만이야."
"그러지마. 스란두일. 좀 더 아랫사람에게 친절히 대해줘."
"내 집사에게 관심 꺼줘. 더이상 관심을 가진다면 네가 그를 좋아하는 걸로 오해할테니까."
"하여간에 억지는."

살포시 눈뜬 청회색의 눈동자가 여전히 감은 채로 자신을 껴안은 이를 바라보았다. 별빛 아래에서 산산히 부서지는 금색의 머리칼은 언제 보아도 찬란하고 눈이 부셨다. 흐트러진것을 곱게 손끝으로 내려빗으며 정리하고 있자니 반짝 떠지는 푸른색의 바다가 엘론드를 주시했다.

"머리 만지는게 그렇게 좋아?"
"그럼 싫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만 유독 좋아하는 것 같아서."
"사실 좋아해. 땋는것도 좋아하고 고운 머릿결을 빗는것도 좋아하지."
"괴상한 취미를 지녔군."
"자꾸 그러면 자네것만 만져주지 않을거야."
"그럼 내 머리는 항상 흐트러져 있겠군."
"그 꼴을 못보는 건 나일테고?"
"잘 아네."

웃음을 지으며 와락 끌어안는 스란두일의 팔이 단단했다. 덩달아 미소를 띄운 얼굴이 금빛 정원에 파묻혔다. 목덜미에서 배어나오는 살냄새를 가득 맡으며 엘론드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움직이고 싶지 않아."
"가지마."
"곁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
"떨어지지 마."
"혼자 있기 싫어."
"내가 계속 안아줄께."
"돌려말하는 청혼같아."
"청혼해줄게."
"할게도 아니고 해줄게?"
"네가 원한다면 나는 언제든지 해줄 수 있어."
"거짓말."
"진심인데."
"해봐 그럼."
"나랑 결혼해줄래?"
"......."

살갑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굳어진 몸이 미동없이 그대로 안겼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어찌할 줄 모르는 눈동자가 조용히 감겼다. 어깨 위로 따스함이 밀려들었다.

"대답도 못할 거면서 조르긴."
"....미안."
"괜찮아."
"미안해...미안해."
"뭘 이런걸 가지고. 정말 괜찮아."
"...좋아해."
"...다시 한번 말해줘."
"좋아해. 스란두일."

밀쳐져 새로운 공간이 생기고 비어버린 품안에 놀라 눈뜬 엘론드의 앞엔 발그랗게 열오른 스란두일이 있었다. 세상 모든 온기를 모아둔 것 같이 붉어진 얼굴에 엘론드마저 달아올랐다.

"다시 한 번만 더."
".... 좋아해. 스란두일."
"나도 좋아해. 엘론드."

두 눈을 바라본 채로 또박또박 내뱉어진 말이 가슴에 닿았다. 새삼스럽게 두근거리는 가슴에 기분이 좋아졌다. 누구랄 것 없이 둘은 웃어버렸다. 좋아서 울어버리기엔 너무나도 나이를 먹었으니까. 세월을 지나 이겨낸 둘은 그저 소리내어 웃었다.

"기분이다. 내가 씻겨줄게."
"됐거든."
"신혼 첫날밤이라고 생각해."
"누구맘대로?"
"당연히 내 맘대로지."

자리에서 일어난 스란두일이 엘론드를 안아들었다. 맨몸의 엘프 둘이 스스럼 없이 엉겼다. 어깨에 팔을 두르다 흠칫 놀란 엘론드를 바라보다가 무언가 깨달았는지 스란두일은 몸을 굽혀 침대 저 멀리 널부러진 자신의 로브를 끌어올려 엘론드를 감쌌다. 둘둘 감아 얼굴만 빼꼼하게 나온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같았다. 그렇게 소중하게 감싼 연인을 껴안고 맨몸의 왕은 걸음을 옮겼다. 둘이 함께 걸어야 할 길을 별들이 찬란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벌써 이른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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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란엘. 귀족과 남창.

2014. 1. 30. 01:25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엘프합작 => http://blog.naver.com/ghkepf

길갈라드,엘론드합작 => http://blog.naver.com/mahamayuri

스란두일,엘론드합작 => http://blog.naver.com/wiipit/

 

으아니 ㅠㅠㅠ존잘님들이 ㅠㅠ 절 말려죽이시려고 ㅠㅠㅠ

글,그림 합작 모집하신대요 ㅠㅠ 으어 ㅠㅠ 넘 좋다 ㅠㅠ

존잘님들 얼른얼른 신청해주세요 8ㅅ8!!

 

 

 

..마지막 스란엘 합작은 제가 진행하는게 개그..
존잘님들 많이 와주세요 어흐흑 ㅠㅠ 스란엘 보고싶어요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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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게 창가를 두드리는 빗소리에 온통 정신이 멍해졌다. 촛점을 잃은 눈은 들고있는 서류를 그저 검은 글씨와 흰 종이로 구분하고 있었다. 몇번 눈을 깜박여 보였지만 도무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눈가를 문지르며 엘론드는 들고 있던 서류를 놓고 그대로 책상위에 엎드렸다. 어지럽게 쌓인 책더미 사이로 열려있는 창문과 들이치는 비에 젖고있는 카펫이 저 멀리 보였다. 문을 닫아야 할 텐데. 하지만 도무지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들질 않았다. 며칠 내내 내리는 겨울비의 한기가 온몸에 스며들기라도 한 듯, 온몸의 감각이 둔해지고 무뎌졌다. 게으름을 부리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라고 되뇌이면서도 침실까지 누가 옮겨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있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쳐졌다. 어자피 급한 일들은 모두 마무리 지어놓은 상태였으니 하릴없이 이어지는 생각들을 멀리한 채 엘론드는 눈을 감았다. 눅눅해진 비에 젖은 머릿속을 조금 쉬게하고 침실로 돌아가야 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귓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싶었더니 어깨위로 풀썩 무언가가 덮였다. 조용히 다가오던 추위에 가늘게 떨리던 몸이 한순간에 포근해졌다. 엉겁결에 눈뜬 엘론드의 시선이 앞에서 어룽대던 금발에 고정됐다. 글로르핀델과는 다른 투명한 빛을 내뿜는 금빛.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는 스란두일이었다.

"자네가 이곳엔 어쩐 일인가?"
"내가 무슨 일이 있어야만 오던가?"
"그도 그렇지만."

평소였다면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며 금세 일어나 옷매무새를 만졌겠지만 오늘은 그다지 기운이 나질 않았다. 엎드린 채, 눈만 껌뻑이자 못볼 꼴을 본다는 듯 찡그려진 미간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어디 아픈가?"

제멋대로 이마에 손을 얹고 이리저리 자신을 휘두르는 손짓에 엘론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만두게. 밀치고 일어서려는 순간 강한 힘이 그를 막았다.

"뭐 하는겐가?"
"피곤해 보이니 그냥 그대로 있게. 뭘 또 일어나. 대단한 손님 온 것도 아닌데."

버둥거리는 엘론드를 그대로 책상위로 눌러놓고는 근처의 의자를 당겨 가까이 앉았다. 턱을 괴고 바라보는 시선이 그제서야 또렷하게 잡혔다.

"천하의 엘론드가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도 보이고. 임라드리스도 이제 갈 데 까지 간 모양이군."
"매번 그렇게 내 속을 긁으면 재미있지?"
"어떻게 알았지?"

볼멘 소리로 대답했지만 혼자서 웃는 스란두일의 행동을 막을 수는 없었다. 길다란 손가락이 다가와 흐트러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얼굴을 바라보다 일어선 스란두일은 제멋대로 진열장으로 향했다. - 그 전에 불어오는 바람을 살피고 투덜거리며 열린 창문을 닫는것을 그는 잊지 않았다.- 잔을 들고 다가와 엘론드의 코앞에 내려놓고는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뭔가?"
"오랫만의 귀한 술이지."
"오랫만이라는 단어와 술이라는 단어를 함께 듣자니 기분이 이상한걸."
"토달지 마. 어렵게 구한거니까."
"그래서 그거 자랑하러 이곳까지 뛰어온겐가?"
"당연한 일을 묻는군."

씨익 웃는 모습으로 마개를 따내고 두어번 빙그르르 병을 돌리는 스란두일의 손에선 달디단 내음이 났다. 멍하니 코앞의 와인잔이 차오르는것을 지켜보던 엘론드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그에 맞추어 앞쪽으로 밀쳐진 잔에서 술이 요동치며 출렁였다.

"기포가 차올라."
"그렇군."
"처음 맡는 향인데?"
"귀한거니까."
"품종은?"
"언제부터 이렇게 말이 많으셨나? 잔말 말고 맛이나 보시지."
"......"
"싫으면 먹지 말던가."

늘 있어왔던 도발이었지만 소모전을 하기엔 엘론드는 너무 피곤했다. 군말없이 집어든 잔은 부딧혀 소리를 냈다. 코끝과 목을 타고 넘어가는 향이 달큰하게 피어올랐고 곧 안을 후끈하게 덥혔다. 어디선가 느껴본 익숙한 향과 맛이었지만 그것을 떠올리기도 전에 엘론드는 이미 마지막 한 모금을 삼켜버렸다.

"목마른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급하게 마셔?"
"...글쎄. 귀한 술이라고 들어서 그런지 착착 붙는군."
"별 일이야. 정말로."
"왜. 아깝나?"
"그럴리가."

연거푸 두 잔을 청해 마시고 난 엘론드가 겨우 일으켰던 몸을 의자에 기대었다. 아직 한 잔도 마시지 않은 채, 그저 바라보고 있던 스란두일이 홀로 웃어보였다. 정말로 오늘은 자네 답지 않아. 빙글빙글 잔을 돌리며 바라보기만 하는 모습에 엘론드는 못마땅한 모습으로 쳐다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어쩐지 피곤해졌어."
"그럼 자면 되지."
"벌써..?"
"벌써라고 하기에는 밤이 이리 깊었는데."
"흐음..."

가늘게 뜬 눈으로 스란두일을 훝어보던 엘론드가 한숨을 쉬었다. 그 깊은 밤중에 연락도 없이 쳐들어온 손님은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술에 뭐 탄거 아니지? 진심으로 피곤해졌어."
"에루께 맹세코 나는 결백해. 아무리 내가 자넬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났어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고."
"누가 들으면 내가 음식인 줄 알겠네."
"먼저 의심한 게 누군데."
"그래 내가 잘못했어. 미안."

순순히 사과하며 작게 하품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스란두일은 입에 대지도 못하고 만지작대던 잔을 내려놓았다. 방까지 데려다줄까? 자네 정말 피곤해 보여. 하지만 늘상 그렇듯 호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거워진 몸을 일으킨 엘론드는 술기운이 올라 발그레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오늘은 그냥 아무곳에나 들어가서 눈을 붙이게. 엘크는 제발 안뜰까지 데려오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럼 안녕. 좋은 밤 되길.
제멋대로 던진 인사를 끝으로 불안정한 걸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소리죽여 뒤를 밟으며 스란두일은 미소지었다. 점점 휘청이던 걸음은 불안해졌고 방문에 당도하기도 전에 느릿해졌다.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문이 먼저 열렸다.

"아버님."

중심을 잃어 앞으로 기울어진 몸을 안아든 엘프가 놀란 목소리로 엘론드를 불렀다. 엉거주춤 일어선 채, 고개를 들어 눈앞의 엘프를 확인한 엘론드의 얼굴이 밝아졌다.

"네가 이시간에 어쩐 일이냐."
"너무 늦게까지 서재에 계시길래 걱정이 되서 와봤습니다만.. 손님이 계셨습니다."
"손님은 무슨.. 아무튼 고맙구나. 이제 들어가려던 참이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제가 기척도 없이 다가와서.."
"그래. 잠깐 중심을 잃은것이니 괜찮다."
"다행입니다."

꼭 껴안은 손이 떨어지려 하질 않았다. 가만히 아비의 애정을 받는 아들의 눈이 뒤에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있는 스란두일을 도발하듯 웃어보였다. 하지만 스란두일은 그저 코웃음을 보인 채,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고 있었다. 얄밉다는 표정으로 변한 엘라단이 이내 엘론드를 일으켰다.

"침실로 가시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나는 혼자 갈 수 있으니 너는 손님을 모셔야겠다."
"그래도.."
"엘라단."
"..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하께도 양해를 구하지요. 아버님 먼저 침실로 모시겠습니다."
"나는 괜찮으니 상관하지 말아. 먼저 안으로 모시도록 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눈을 가늘게 뜬 스란두일을 쳐다보던 엘론드는 한숨을 쉬곤 엘라단을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미소짓는 얼굴이 손을 내밀었고 엘론드는 망설임없이 그 손을 잡았다.

"먼저 들어가겠네."
"좋은 꿈 꾸길."

짧은 인사와 함께 움직인 두개의 몸은 천천히 복도를 나아갔다. 하지만 그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엘론드의 발걸음이 불안해졌고 부축하고 있던 엘라단은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아비를 지탱하기에 바빴다. 몇 번이고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려던 몸짓은 곧 부질없어졌다. 툭, 하고 엘라단의 어깨위에 떨어진 엘론드의 얼굴은 편안히 잠든 모습 그 자체였다.

"말은 바로하셨어야지요. 에루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맹세가 너무나도 가볍지 않습니까."
"틀린말을 했더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술에 약을 탄 것은 너이지 내가 아니니까."
"...어쩐지 도와드리고도 손해를 보는 느낌입니다."
"기분탓이니 안심해도 좋아."
"아 그러십니까."

한숨을 쉬며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엘론드를 바라보던 엘라단은 금새 다가온 스란두일의 품으로 엘론드를 넘겨주었다. 장신의 엘프는 참으로 간단하게 자신의 아비를 들쳐 업고는 좋은 꿈 꾸라는 한 마디 인사도 없이 걷기 시작했다. 어처구니 없이 바라보던 시선이 황급히 그를 불러세웠다. 

"침실은 그 방향이 아닌데.."
"아, 나도 알아. 하지만 엘론드가 오늘은 그냥 아무곳에나 들어가라고 했으니 그의 말대로 아무곳에나 가보려고."
"...정말 싫은성격이네요."
"뭐 자네에게까지 좋을 성격일 필요는 없으니까?"

하하 웃으면서 제 갈길을 가는 스란두일을 어이없이 쳐다보던 엘라단은 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 부디 밤새 숙면하시길 빌게요. 절대 깨지 마시길.
그런 자식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다시한번 거세진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엘론드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끌어안은 팔에 힘을 줄 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길고 긴 복도에 짖궂은 금빛의 미소만을 남기고 숲의 왕은 은밀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따스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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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센티넬/가이드 소개 -> http://www.twitlonger.com/show/n_1ruc16f  취향탐 주의

 

 

센티널 엘론드랑 가이드 스란두일. 각성하기 시작하면서 엘론드는 굉장히 자기관리에 철저해지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감각 조절용 약도 잘 챙겨먹음. 어느정도 착실하기만 한다면 센티널은 예민해지지 않고 일정 주기를 버틸수가 있는데 그것도 사실 주기적인 가이드와의 교류가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 물론 아직 엘론드는 센티널로 자각한지 얼마 안되었으니 히트싸이클이라 불리우는 주기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은 상태여서 솔직히 스스로를 자만함. 어느정도 이겨낼 수 있을거라 여겼음.

가이드 스란두일. 스란두일은 일찍이 가이드로서 각성을 끝냈음. 각성해봤자 달라지는건 없음. 어딘가에 짝이 있다는것만 어렴풋이 느껴질 뿐. 그리고 그냥 볼멘소리를 늘어놓는거지. 어휴 좋은 시절은 다 갔구나. 스란두일은 여전히 양옆의 이쁜언니들을 껴안고 우는소리를 함. 그리고 서로가 짝인줄 모르는 두 엘프가 대 회의장에서 만나는거지.

먼저 눈치챈건 엘론드였음. 대회의장에 들어섰는데 묘하게 기분이 고양되면서 심장이 두근거림. 강렬하게 다가오는 기분좋음에 순간 비틀거렸는데 글로르핀델이 뒤에서 받쳐줌. 몸이 좋지 않으십니까? 묻는데 대답을 할 수가 없음. 아니. 아닐세. 기분탓이라고 여겼지만 기분탓이 아니야. 회의장 의석에 앉으면서 함께 한 이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기분이 좋아지다 못해 식은땀이 흐르는거. 왜이러지 왜이러지 싶은데 스란두일이 자신을 딱딱한 모습으로 바라보는걸 눈치챔. 억지로 미소지으면서 무슨 일 있느냐고 엘론드는 물었지만 스란두일은 답하지 않았음. 묘하게 싸늘해진 분위기에 갈라드리엘이 두 엘프를 쳐다보다가 켈레보른에게 속닥거림. 켈레보른 역시 두 엘프를 바라보곤 헛기침을 했지. 회합은 조금 뒤로 미루어도 좋을 듯 합니다. 놀란 엘론드가 무슨일이냐며 켈레보른을 바라보았지만 켈레보른은 그저 인자한 미소만 남기고 있었지. 그제서야 어렴풋 깨달았어. 설마.. 놀란 모습으로 앉아있던 이들의 얼굴을 훝어가던 엘론드의 눈에 스란두일이 들어왔어. 맙소사.

여하튼 이 세계에서 스란엘은 절친임. 굉장한 절친. 엘프들에게서는 배우자 이외에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명분이 얼마든지 있음. 물론 동성이나 이성 가리지 않음. 어자피 이들에게는 하나의 객체에 불과할 뿐이었으니까 ㅇㅇ. 여하튼 그만큼 스스럼없는 관계인데도 엘론드와 스란두일은 친우였음. 그걸 알기에 둘은 놀랄 수 밖에 없었음. 스란두일은 친우가 자신의 짝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음. 엘론드 또한 그랬음. 하지만 둘의 사고방식은 굉장히 달랐음. 스란두일은 어자피 가이드와 센티넬의 관계로 얽혔다면 응당 그 관계에 합당하게 서로를 보듬어야한다고 생각했음. 하지만 엘론드는 달랐음. 스란두일은 나의 사랑하는 친우일 뿐, 내밀한 관계는 켈레브리안 하나로 족했음. 그만큼 보수적이었는데.. 사실 센티넬이라고 각성한것도 정말 원망스러웠음. 그래서 약으로 꾸준히 관리하려고 했음. 가이드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하기도 했음. 하지만 그 계획이 다 허사가 되어버렸지. 그리고 센티넬과 가이드의 첫 만남에는 고통스러운 히트사이클이 기다리고 있었음. 그걸 엘론드도 알고있지. 아니 모두가 알고있지.  그래서 눈치챈 갈라드리엘이 자리를 피해준거고. 여하튼 스란두일은 아직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얼어있는 엘론드를 향해 다가갔음. 네가 내 센티넬일줄은 몰랐어. 하지만 엘론드는 말이 없음. 엘론드? 하고 이름을 부르며 어깨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는데 엘론드가 그걸쳐냄. 화들짝 놀라며 서로를 바라보는데 엘론드가 먼저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지만 그 자리에서 어쩔줄 모르다 먼저 일어나겠다고 자리를 피해버렸음. 남은 스란두일만 황망해짐. 뭐하는거야 대체...
어자피 만나게 된 이상 서로를 피할 순 없음. 그리고 현재 일정상 스란두일은 단기간이지만 리븐델에 머물게 되어있었음. 가까이 있으면 호르몬의 반응으로 신경이 예민해지고 약이 듣질 않아. 안절부절하게 자기방 서재를 돌아다니던 엘론드의 발걸음을 멈춘건 노크소리였음. 엘론드? 여기있어요? 켈레브리안의 목소리야. 한걸음에 달려가 문을 열어제쳐. 이미 이야기를 들었는지 걱정스러운 모습의 켈레브리안이 다가와 품에 안김. 한참을 그렇게 부둥켜안고있던 둘은 천천히 소파로 가 자리에 앉았어. 정신적 충격에 덜덜 떨고있는 엘론드의 손을 잡으며 켈레브리안이 시선을 맞춰보았지만 엘론드는 쉬이 진정하질 못하지. 스스로도 알고 있었어. 자신에게 안정을 가져다 주는 상대였어. 심장소리를 듣고 체온을 나누면 금세 마음이 평화로워졌지. 하지만 이젠 아니야. 그리고 정말 잔인하게도 예지의 능력은 발현되고 말았어. 켈레브리안의 공포에 질린 얼굴이 겹쳐보여. 저게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으니 더더욱 패닉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엘론드를 진정시켜준건 다시 끌어안는 온기와 낮게 읖조린 자장가였음. 엘론드를 끌어당겨 가슴에 안고 천천히 쓰다듬었어. 착하다. 잘자라. 나의 아이. 계속계속 울리는 노랫소리에 정신은 겨우겨우 현실을 찾았음. 한편 스란두일은 정말 당황했음. 물론 자신의 친우가 가이드라니/센티넬이라니 라는거 충격일 수 있음. 그런데 그정도로 내가 싫은가싶기도 하고 좀 어이없기도 했음. 세상은 여러가지의 교류를 허용하지만 엘론드는 꽤나 담백해서 단 한번도 스란두일을 정욕의 상대로 보질 않았음. 물론 자기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친우이상의 선을 넘는것은 전혀 이상할게 없었는데 방금의 그 벌레보듯하는 그 표정을 보곤 솔직히 화가났음. 막말로 내가 가이드인데 친우로는 좋고 그걸로는 싫단거냐고. 처음엔 화가나서 식식거리다가도 그래 나도 각성할때는 좀 충격이었으니 그거일수도 있겠지. 어자피 엘론드가 센티넬이었다는건 나도 몰랐던 사실이니 각성한지 좀 안됬나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음. 그래. 하룻밤자면 진정하겠지 하면서 다음날을 기다렸지. 그리고 다음날 스란두일은 우회적으로 돌아가라는 서신을 받게됩니다 두둥.

엘론드는 생각했지. 자신이 센티넬이긴 하지만 켈레브리안도 곁에 있고 꾸준하고 착실하게 관리하면 발현하지 않을거야. 지금도 좀 고통스럽고 예민해지긴 하지만 어자피 주기적인 히트사이클만 세심히 유념하면 평소에는 괜찮으니까.. 도저히 스란두일을 그렇게 보고 싶지도 않으니 차라리 당분간 익숙해질 때까지 만나지 않는 편이 좋겠어. 라고. 하여튼 그랬으니 우회적으로 당분간 우리 보지말아요 빠잉 하고 서신을 보내고 침실에 틀어박혔어. 공식적으론 가벼운 감기몸살로. 하지만 다 알죠 'ㅅ'. 스란두일은 굉장히 화가났음. 친하고 허물없이 대하는 사이라 생각했는데 이런식으로 불쾌하게 내칠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거든. 그래 니가 얼마나 버티나 보자. 라는 심정으로 스란두일은 씩씩대며 머크우드로 돌아갔음. 그렇게 사이가 틀어짐.

그리고 절망적인 히트사이클 기간이 돌아왔음. 엘론드는 평소의 몇배가 되는 약들을 입안에 털어넣고 진정하려 애씀. 하지만 평소보다 활성화 된 감각들은 정말 죽을만치 괴로웠음. 문 밖에 돌아다니는 엘프들의 심장소리까지 들릴정도로 예민해진 청력과 참을수 없는 감각들이 몸을 들끓게 했음. 켈레브리안도 이젠 소용이 없었음. 사이클은 이미 만나버린 가이드를 찾아 헤맸지만 가이드는 이미 자리에 없지. 억지로 정신을 차리려 애써보았지만 엘론드는 몇번이고 혼절했음. 아무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어둔 방에 스스로 감금되어 목줄기를 쥐어뜯고 고통스레 신음했음. 그렇게 나흘을 버티고 나서야 히트사이클이 가라앉았음.
결과적으로 엘론드의 주기는 두달마다 돌아왔음. 완벽하게 정상인처럼 행동하기까지는 일주일이 걸렸음. 엘론드는 정말 꾸준히 자기관리를 했음. 이정도 고통이라면 참을만하다고 생각했음. 그러나 켈레브리안의 표정은 좀체 나아지질 않았음. 한번 히트사이클이 오면 엘론드의 몸에는 자해흔적들이 늘었음. 모를수가 없지.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음. 엘론드의 마음속엔 자신이 있다는걸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음. 부부는 그렇게 좀더 다정해지고 사랑은 깊어졌음. 한 명만 빼고말이지.

스란두일은 내심 초조해졌음. 보통의 센티넬과 가이드였다면 연락이 진즉 오고도 남아야했음. 하지만 스란두일은 자신이 먼저 연락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음. 몇번이고 불같은 화를 내고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과 대화를 했음. 그저 자신과 친우로 남고싶은 엘론드를 백번이고 이해하려 했지만 덩달아 걱정되는 마음을 버릴순 없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갈등했음. 그렇지만 역시 상처받긴 이쪽도 매한가지라 자존심에 서로 연락을 못한 케이스였음. 리븐델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없고 저 마녀같은 황금숲에는 넌지시 찔러보기조차 싫으니 스란두일은 스란두일대로 끙끙 앓고 있었음. 그렇게 일년 가량 시간이 지났음. 점점 스란두일은 포기하기 시작했음. 애초에 엘론드라는 엘프를 몰랏던 체 하며 잊어가고 있었음. 연락도 오지 않는 이에게 달려가기엔 내 자존심이 너무 높다. 친우의 사이였지만 사실은 국가 대 국가로 통용될만한 사이였으니..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음.
그러다 사건이 터집니다 두둥. 켈레브리안의 납치사건이 일어났음. 대담하게도 오크들이 벌인 짓이었음. 그들은 멀찍이 산책을 나온 켈레브리안을 납치해 욕을 보였음. 그 고통의 비명에 깊은골의 골짜기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고 소문이 났음. 스란두일은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애써 티내지 않았음. 자신의 짝이라던 엘론드에게 해가 갈까 두려웠음. 아직 각인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둘은 운명의 상태였음. 엘론드에게 해가가면 자신에게도 위협이 닥쳐올 게 당연했음. 하지만 먼저 연락이 없는 이상 달려가는것은 우스웠음. 불상사가 생긴 곳에 함부로 들이닥칠 정도로 자신이 격 없는 사이가 아니니까. 스란두일이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좋지 못한곳으로 흘렀음. 시름시름 앓던 켈레브리안은 더이상 엘론드에게 힘이 되어주질 못했음. 때마침 겹쳐진 히트사이클로 고통스러워하는 엘론드를 바라보른 켈레브리안의 눈엔 절망이 가득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엘론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몸과 마음의 고통에 울부짖었음. 히트싸이클만 되면 억지로 자신의 로드를 연행해 독방으로 모셔가던 글로르핀델도 이번만은 엘론드에게 손을 대지 못했음. 상처받은 영혼이 위로안되는 서로를 보듬고 있었음.

그렇게 켈레브리안은 결심했음. 이곳은 내게 너무나도 무서운 세계이고 나는 내 사랑하는 이에게 도움조차 줄 수 없는 존재였음. 나를 위해서 이사람을 위해서 해야 할일은 서쪽으로 가는 방법 밖에는 없었음. 그래서 켈레브리안은 스스로의 입으로 이별선언을 했음. 피곤해 쉬고싶다는 말과 함께. 아직도 고개를 숙인채 고통을 참으며 울부짖고 있는 엘론드의 머리를 간신히 쓰다듬으며 속삭였음. 사랑하는 나의 엘론드. 안녕.

켈레브리안을 태운 말이 서쪽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들은 스란두일은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갔음. 더이상 버틸수가 없었음. 그래도 엘론드가 버틸수 있었던 버팀목조차 사라진 상황에 보듬어줄 이는 자신밖에 없었음. 혈혈단신으로 말을 달려 미친듯이 리븐델로 향했음. 경비조차 없는 모습에 근위대들은 그를 저지했지만 뒤늦게 따라온 글로르핀델이 쏜살같이 스란두일을 낚아채 엘론드의 방으로 데려갔음. 이전에는 당황스러워 쉽게 느낄 수 없었던 흥분감이 스란두일을 감쌌음. 나의 센티넬. 나의 짝. 거짓말같지만 이전의 미움이나 원망은 사라진 상태였음. 순수한 의미의 소울메이트. 반쪽을 보듬는 일은 가이드에게도 흥분감을 주었음. 하지만 그 희망은 마주한순간 산산히 깨져버렸지.
엘론드는 이번에 보았을 떄보다 피폐해져있었음. 많이 말랐고 많이 히스테릭해졌음. 생채기가 여기저기 늘어났고 촉각이 활성화 된 탓으로 옷조차 제대로 입고있지 못했음. 이미 다가오는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이불로 가린 채 나오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조차 쉽지 않은듯했음. 평소의 엘론드라면 상상할 수 없을정도로 반항하며 우는 모습을 본 스란두일은 적잖은 충격을 먹었음. 글로르핀델은 조용히 바닥으로 시선을 향한 후 쳐다보지않고 문을 닫았음. 그로썬 주군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를 차린거였지. 천천히 다가가 손을 뻗어보지만 엘론드는 피했어. 입으로는 켈레브리안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돌아가라고 내뱉었어. 그 모습에 스란두일이 화가났어. 대체 날 왜 피하는거지? 왜 거부해? 너는 고작해야 내 센티넬이란 말이다. 한번 몸을 섞는것이 죄가되는것도 아니거늘. 네 까짓게 나를 거부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데.. 왜..어째서.
엘론드는 여전히 고통스러워했음. 가이드가 곁에 있는것 만으로도 좋아 어쩔줄을 몰랐음. 이전에는 히트사이클때가 아니었으니까 그냥 넘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온몸의 힘이 풀려 몸을 주체할수가 없었음. 하지만 안간힘을 다해 뒤로 물러섰고 멀리하려 애썼음.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돌아다니는것 같아서 정말이지 괴로웠음. 켈레브리안의 고통. 공포에 질린 눈동자. 잊을수가 없었음. 다 자신때문에. 나때문에. 켈레브리안. 내 사랑. 나의 아내. 나의 태양. 그녀가...

한껏 거부하던 엘론드의 앞에 그림자가 질 정도로 스란두일이 다가온 건 그때였음. 공포에 질린 눈을 사납게 바라보며 스란두일은 엘론드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음. 흐느적거리며 밀치려는 팔을 잡아채고 키스했음. 버둥거리며 벗어나려 애써보았지만 저도 모르게 열린 입술은 거부의사를 상실했음. 단숨에 쭉 풀려버린 힘에 주저앉으려 했지만 스란두일이 놔주지 않았음. 본능적으로 얽히는 혀와 입술로부터 짜릿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발 끝까지 내려갔음. 얼마나 지났을까. 숨이 모자람을 느끼고 겨우 입술을 떼고 스란두일은 엘론드를 바라보았어.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며 반항한번 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잡혀있는 엘론드가 앞에 있었어. 아무런 말도 잇지 못하고, 자신이 벌려놓은 입조차 닫지 못한 채 그저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스란두일이 픽 웃었어. 뭐야. 고작 입맞춤하나로 이렇게 쉽게 허물어진거야? 앞에서 빈정거리는 모습에 엘론드는 고개를 저으려했지만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어. 고통은 순식간에 반으로 줄었고 몸에는 여전히 힘이 안들어갔어. 그걸 눈치챈 스란두일은 엘론드를 번쩍 안아들었어.
무..무슨.! / 지금부터 네 입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는 더해달라는 소리로 듣겠어./ 스..ㄹ...란두일../ 키스 더 해달라고? 조르기는. 알았어 좀만 기다려.  얼토당토않는 이야기를 하며 스란두일은 엘론드를 침대위로 눞혔어. 그리고 거침없이 옷을 벗기기 시작했어. 다시 공포에 물들어가는 시선을 마주하곤 잠깐 움찔했지만 이전의 싸늘한 눈빛에는 변함이 없었어. 그렇게 반항한번 하지 못하는 엘론드의 모든것을 스란두일은 집어삼켰음.

언어를 모르는 짐승들같이 둘은 사흘 밤낮을 함께했어. 엘론드가 기절해도 스란두일은 멈추지 않았어. 그동안 아주 희미하게만 느껴졌던 서로의 기운이 완벽하게 융합되어 차오르는 기쁨을 스란두일은 외면할 수 없었지. 엘론드 또한 마찬가지야. 처음에만 극도로 거부반응을 모였지만 점점 줄어드는 고통과 고조되는 오르가즘에 어느순간 넋을 놓았다해도 좋을 정도로 매달렸어. 텅 비어버린 눈동자를 보며 스란두일은 씁쓸했지만 멈출수가 없었어. 첫 각인은 꽤나 오랜시간을 공들여야했고 또한 서로에게 미쳐야했으니까.
나흘이 되던날부터 엘론드는 제정신을 찾기 시작했어. 자신의 안에 들어와있는 스란두일을 오롯이 인지했고 다시 공포감에 질렸어. 하지만 밀어날 수가 없었어. 이미 적응되어버린 몸은 스란두일을 거부하지 못했으니까.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는 몸에 호르몬작용이 일어났고 그렇게 각인 후 첫 히트싸이클까지 함께 보냈음.

쾌락과 환희가 가득한 일주일이 지나고 스란두일의 품 안에서 엘론드는 눈을 떴음. 이제 몸의 열기도 가라앉았고 더 이상 두근거림도 느껴지질 않았음. 물론 가이드가 곁에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치료사라는 능력이 헛된것은 아니었으니 놀랄만큼 차분하게 엘론드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음. 조심스럽게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몸을 씻었어. 차가운 물을 끼얹어가며 남은 열기를 없애고 평소의 엘론드로 돌아왔음. 무표정함으로 머리를 말리며 나오는데 그제서야 눈을 뜬 스란두일과 마주쳤음.
쓸데없는짓을 했습니다./ 내가 그대와 함께 잔것이 쓸데없는 짓인가?/ ....시간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대가 속한 곳으로 한시바삐 돌아가면 좋겠군요. / 센티넬이 가이드를 거부하면 죽음에 이른다는걸 알고 있을텐데./ 그대가 생각하는것 만큼 저는 연약하지 않습니다./ 이봐 엘론드.
화가 난 스란두일이 이불을 박차고 나와 엘론드의 앞으로 다가왔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그것을 보는것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엘론드는 절망을 느끼면서도 스란두일을 올곧게 쳐다봤음. 내 친우. 하지만 나는 더이상 그대를 친우로 볼 수 없겠지. 속마음과는 달리 겉으론 싸늘한 대화들이 오갔음. 방해가 됩니다. 돌아가주십시오 스란두일. / 나를 거부한다고 해서 네가 득 될 것이 없어. 왜 마음을 편하게 가지질 못하지?/ 제게 명령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숲의 왕이듯 저는 리븐델의 로드입니다. 명령을 하고 받을 사이가 아닙니다./ 엘론드!!!/ 스란두일!!!!!
멱살이라도 잡을 것 같은 형형함으로 스란두일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봤음. 며칠 전의 온기한점 돌지않던 차가운 눈빛이었음. 그렇지만 그 속에서조차 희미하게 다정함을 느끼는 자신을 혐오하던 엘론드는 그 역시 사납게 눈을 뜨고 스란두일을 마주봤음. 리븐델은 몸과 마음이 지친이들에겐 쉼터가 되기도하지만 반갑지 않은 손님은 환영하지 않는다네. 더 이상 고집을 부린다면 머크우드와의 화친은 없었던 일이 되겠지. 그럼 먼저 실례하겠네. 제 할말만 다 뱉어낸 엘론드가 뒤로 돌아 썡 하니 문쪽으로 향했음. 어처구니가 없던 스란두일은 대답도 하지 못했음. 문 근처에서 조금 주춤대던 엘론드는 무언가 할말이 있는듯 했지만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음. 그렇게 두 엘프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이 틀어져버렸지.

 

그렇다고 히트사이클이 무너진건 아니야. 오히려 좀더 당겨졌어. 엘론드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더 철저히 자신을 관리했기 때문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어. 가장 큰 이유는 스란두일이 싫은게 아니라 켈레브리안을 배신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었지만 어떤것도 자신과 스란두일의 관계를 합당하게 설득시키질 못했어. 스란두일은 여전히 화가난 채로 돌아갔기에 리븐델과 머크우드의 사이는 굉장히 서먹해졌어. 그렇지만 둘 사이의 인연이 끊어지는 법은 없었지. 그 다음 히트싸이클때 엘론드는 좀더 괴로워했고 그 다음 히트싸이클때는 그보다 더 괴로워했어. 자해가 도를 넘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스란두일은 차마 친우(였던 이)를 모른척할 수 없어 방치플하던 달관모드를 내팽개치고 쏜살같이 달려왔고 엘론드는 스스로를 혐오하면서도 기쁘게 그를 받아들였어. 두달에 한 번. 그렇게 인정하지 않은 채 둘은 서로에 대한 의무를 이행했고 정신이 들기전 헤어지는 굉장히 이상한 관계를 유지했지.

세월이 지나고 백년. 이백년이 지났을까. 스스로의 행동에 조금씩 타협해갈 무렵, 여전히 고통스러움에 울부짖을때 잊지않고 달려와 준 스란두일의 품에 안기던 엘론드의 행동이 조금씩 무뎌질 무렵부터 둘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지만 여전히 아직은 어려운 엘론드와 스란두일의 느리고도 아득한 감정선이 굉장히 보고싶었다는 열린 결말 'ㅂ'!!!!

 

끝..끝은...좀...원래 ..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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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란엘. 입맞춤.

톨킨버스 2013. 11. 16. 01:00

"엘론드!"

멀리서부터 빠르게 다가오는 친우의 모습을 확인한 엘론드는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 정식으로 머크우드에 발을 들인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정식방문이 아닌 소수의 인원이었지만 팔벌려 자신을 맞이하는 숲의 왕은 그런 소소한 것은 신경쓰지 않을것이 분명했다. 지척으로 다가온 왕에게 엘론드는 친근함을 버리고 예를 갖추며 인사했다. 우리들의 만남에 별이 빛납..

인사는 쉬이 이어지지 못했다. 가볍게 올린 가슴의 손이 채 내려가기도 전에 스란두일은 덥석 엘론드를 안아버렸다. 미동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강한 힘으로 껴안고 톡톡 울리는 심장소리만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엘론드는 무어라 한마디 말 조차 꺼내질 못했다. 그저 작게 한숨을 내쉬곤 말간 눈으로 스란두일을 바라볼 뿐 이었다.

"보고싶었어. 엘론드."
"나도 보고싶었어. 스란두일."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질 않아. 자네를 잊어버릴뻔 했다고."
"그럴리가. 자네가 나를 잊는다니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날 리 없어."
"그런 부분에선 묘하게 자신감이 넘치는 게 조금 기분이 나쁜데."
"나쁘면 이것 좀 놓아줘. 가신들이 놀라잖...?"

흘낏,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의 가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바라보던 엘론드는 당황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도 남아있질 않았다. 분명 함께 들어왔는데.. 크게 뜬 눈으로 깜빡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 엘론드를 바라보던 스란두일의 입가에 미소가 스몄다.

"섭섭한걸. 이곳까지 와선 가신들 걱정인가?"
"그게 아니라.."
"쉴 곳을 안내했을 뿐이야.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네. 머크우드의 엘프들은 손님을 맞는것이 익숙치 않아도 실례를 저지르진 않아. 내가 장담하지."
"....그다지 신뢰가 가는 이야기는 아니로군."
"믿지 않아도 어쩔 수 없어. 여긴 내 성이고 나의 왕국이다.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누구든 이곳의 법을 따라야 하네. 하지만 손님이기 이전에 그대는 각별한 나의 친우지. 그대와 함께 걸음한 손님들에게는 편안한 쉴 곳을 제공할거야. 그러니 지금은 내게만 집중해줬으면 좋겠어."
"매번 말하지만 자네의 방식은 꽤나 급하고 저돌적이야. 알고 있나?"
"물론. 알고 있다네. 하지만 그것이 나 스란두일이야. 이제와서 내 방식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굳이 바꾸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네."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알고 있으니 걱정마. 그래도 조금은 섭섭한걸. 나는 오래된 친우를 만난 기쁨에 두근거리고 있는데 자네는 고작 가신들 걱정과 나에 대한 불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버렸군."

시릴정도로 새파란 바다가 펼쳐진 눈동자가 자신의 모습을 담는것을 보자마자 그가 원하는 답이 어떤것인지 강하게 와 닿았지만 막상 원하는 대로 말해주려니 조금은 쑥스러워졌다. 더군다나 스란두일은 아직 자신을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숨결이 닿을듯한 거리에서의 시선은 꽤나 노골적으로 엘론드를 훝었다. 묘한 긴장감이 둘을 감싸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결국 한참을 바라보던 시선을 피한 채, 엘론드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 떴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은 자네가 더 잘 알텐데."
"말 하지 않으면 모른다네. 나는 누구처럼 미래를 보는 능력 같은건 없으니 말이야."
"나이를 먹을수록 성격이 더 안좋아지는 것 같은데..."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참으로 궁금하군. 안그런가?"

시치미를 떼고 되물어오는 모습에 엘론드는 풋, 웃음을 터트렸다.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모습은 그가 기억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며 엘론드는 빠져나갈 수 없음을 인정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쓸데없는 소모전을 할 시간보다 함께 할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엘론드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 내가 잘못했네. 하지만 자네 때문에 일부러 일정을 조정한 성의를 봐주면 좋겠는데."
"그 점은 높이 사지. 하지만 너무도 오랫만이었어. 정말로.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인정해. 그래서 이곳까지 왔잖나."
"자네가 바빠서 벌어진 일이니 책임을 지게."
"책임?"
"키스해줘."
"뭐?"
"잘못했다며. 그럼 벌을 받아야지."

꽉 껴안았던 팔을 들어 허리를 끌어당기고 밀착했다. 이마가 닿고 코가 부벼질만큼 가까운 공간에서 스란두일은 들릴 듯 말듯 조용하게 속삭였다. 키스해주지 않으면 놔주지 않을거야. 답지 않은 투정과 오랫만에 닿은 온기가 합쳐져 달콤하게 물 흐르듯 귓가를 스쳤다. 확 달아오른 낯빛을 눈치채기라도 했다는 듯 그저 웃고만 있는 모습이 얄미웠다. 하지만 이미 녹아버린 마음의 견고함으론 어떤 공격도 막아낼 힘이 남아있질 않았다. 작게 한숨을 내쉰 입술이 단단하게 닫혔고 겹쳐진 속눈썹이 몇번 닿아 깜박일 즈음, 엘론드의 입술은 가볍게 스란두일의 볼에 스쳐 지나갔다.

"했으니 놔줘."
"이건 반칙인데."
"입에다 라고 전제가 붙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럼 지금 붙이면 되겠군. 내가 만족할 때까지 입에다 키스해줘."
"이미 한 건 어쩌고."
"없던 일로 하지 뭐."
"굉장한 손해를 보는 기분인데.."
"어쩔 수 없어. 이건 벌이니까."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그래서 안해줄거야?"
"그런 말은 한 적 없어."
"그럼 얼른 해줘. 아까부터 기다리는 중이야."

웃던 눈이 곱게 감겼다. 당당하게 요구하며 입술을 들이미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 제멋대로인 뻔뻔함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고민하면 재촉하듯 허리에 감긴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 덕에 반항하려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처음 발들인 어둠숲에는 마음을 현혹시키는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엘론드 역시 눈을 감았다. 수줍게 닿은 말캉한 입술 사이로 느껴지는것은 그토록 그리워했던 다정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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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님과 기린님과 두런두런~

리븐델와서 헤어지기 싫어서 매일 밤 술을 청하는 엘론드도 좀 좋다. 둘다 술은 쎄서 밤늦게까지 마시면 꼭 일찍 못일어나서 느지막히 눈뜨는 길갈라드라던지. 한참을 그러다가 길갈라드가 밤중에 술잔을 기울이며 그리도 헤어지기 싫으냐. 운을 띄우면 화들짝 놀라다가 덤덤하게 웃으며 예. 싫습니다. 하는 엘론드 좋다. 그러면 술잔을 다 받고 내려놓은 후 머리를 쓰다듬어주실까. 아직도 내보기엔 어린아이와도 같은데. 어찌 이리도 빨리 컸는지 모르겠다. 하하. 하며 웃는걸 보며 엘론드는 그저 눈을 감겠지. 세월이 대왕께만 흐르는 것은 아니겠지요. 허나 이상합니다. 제 눈에도 대왕이 보이질 않습니다. 젋고 당찬 에레이니온만 보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하면서 둘이서 서로를 토닥토닥.

 

스란엘.

한창 바쁠 시기에 리븐델에는 서찰 한 통이 도착하는데 갈리온이 보낸 거였으면 좋겠다. 왕께서 몸이 안좋으시니 한번 방문해주십사 하는 편지였는데 스란두일도 아닌 갈리온이 보낸 편지는 필체 한 획 한획을 꾹꾹 눌러 쓴 티가 역력해 긴장하고 있음을 보였다. 엘론드는 그 길로 짐을 꾸려 머크우드로 향했다. 바쁜 일처리를 맡게된 글로리는 한숨을 쉬어냈지만 이내 다녀오시라며 웃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밤낮을 움직여 일주일 후에서야 도착한 어둠숲은 어둠고 캄캄해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겠지. 마치 맹수의 입처럼.
과연 숲의 왕은 갈리온의 말대로 앓아누워 있었고 엘론드는 로브도 벗지 않은 채, 그에게로 향했다. 눈을 감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며 맥을 짚으려 소매를 걷어 막 닿으려는데 스란두일이 눈을 뜨는거지. 그리고 빙긋 웃겠지. 이젠 꿈을 다 꾸는군. 엘론드는 그 모습을 무심히 지켜보다가 침대위에 앉으며 다시 소매를 걷어올려서 맥을 짚으며 눈을 맞추겠지. 그래 꿈일세. 그대는 지금 꿈을 꾸고있어. 좀 더 자고 일어나야지. 다정하게 말하며 눈맞추는 이에게 스란두일은 가볍게 웃으며 툭툭거리면 좋겠다.
이렇게 다정한 걸 보니 정말 꿈인가보군. 그렇지만 좋아. 그대의 말을 들어서 안좋은 적이 없었으니 이만 다시 자야겠어. 꿈속의 이여. 안녕. 좋은 꿈이었네. 감은 눈을 몇번 가늘게 떨던 이는 금새 곤히 잠이 들었어. 잡았던 손목을 정리하고 이불을 덮어주고 온전히 잠에 빠질때까지 엘론드가 그저 가만히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다음날 여전히 아픈 스란두일이 제정신으로 눈을 뜨면 그제서야 엘론드는 인사를 하겠지. 좋은 낮일세. 숲의 왕이여.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는 표정으로 평소의 삐딱한 눈으로 엘론드를 훑으면 그제서야 왕의 손님맞이가 시작되면 좋겠다. 속으로는 그저 어젯밤의 꿈이 예지몽이었던 것 같다 웃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엘론드를 대하는 그 모습에 그저 임라드리스의 현자는 미소짓겠지. 여전하군. 그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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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란엘. 밤.

톨킨버스 2013. 10. 29. 00:30

막 씻고 안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이내 멈추었다. 고요해야 할 방 안에서 숨소리가 들려오자 절로 찌푸려지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엘론드는 안쪽으로 향했다. 곱게 개어진 이불이 있어야 할 자리엔 마치 주인이라도 되는 양 누군가가 잠들어 있었다.

"준비해드린 침실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응."
"그럼 다른 곳으로 바꾸어 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감겼다 떠진 눈에 촛점이 들어오자 새파란 눈동자가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또 무슨 변덕일까 싶어 한참 쳐다보면 굳게 닫혀있던 입술에 웃음이 서렸다. 고작 방이 춥다고 투정하며 소매를 잡아끄는 어린아이 같은 행동은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저녁때 무언갈 잘못 먹었나...

"그러니 이 방을 써야겠어."
"여긴 제 침실입니다만."
"알고 있어. 그러니 쓰겠다는 거야."
"....그럼 제가 다른 방으로 가죠."
"아니, 그대의 방인데 그런 폐를 끼칠 수는 없지."

손목을 붙잡아 끌어당기는 무게에 이끌려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조금씩 찌푸려지는 미간을 바라보며 웃는 모습은 여전히 얄미웠다. 왠일로 조용히 지나가는가 했더니만. 나오려는 한숨을 누른 엘론드는 조심히 잡힌 손묵을 빼내려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손님을 모시는데 불편함이 있다면 그것은 도리가 아니지요. 제가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손님이 원하는 것을 고려하는 편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원하는게 뭡니까."

개인적인 공간에서까지 입씨름을 하고 있자니 피곤해진 몸은 돌연 딱딱한 말을 내뱉었다. 반쯤은 진심이 섞여 기분이 상할 수도 있었지만 스란두일은 오히려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다 잡은 손목을 휙 당겨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무너진 몸이 그의 위로 기울어졌다.

"이게 무슨.."
"리븐델은 계곡이라 그런지 밤의 추위가 꽤나 견디기 힘들어."
"..어둠 숲의 날씨보다 배는 따듯할 것 같습니다만."
"그 곳의 추위는 이미 익숙해졌어. 춥고 어둡고 냉기가 흐르지. 하지만 이곳의 추위는 여간해선 익숙해지는 법이 없군."
"그냥 본론만 이야기하는게 어떨까요."
"같이 자자."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스란두일은 여전히 가늘게 뜬 눈으로 엘론드를 쳐다보았다. 어정쩡한 자세에 불편한 몸을 움직여 보았지만 이미 품안에 갇힌 몸은 빠져나올 곳을 찾지 못했다. 처음부터 이럴 거였으면 무슨 추위 핑계는..

"잠만 잘 겁니다."
"그럼 뭘 또 하게?"
".....놔 주십시오."
"정말 추운데 믿질 않으니 놓을수가 있나."
"알겠으니까 좀 놓으십시오. 불편합니다."
"진작 그렇게 말 하지."

웃으며 깍지 낀 손을 풀자 조심히 곁으로 돌아 눕는것을 확인한 스란두일이 이불을 끌어올렸다. 부러 등을 돌렸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다가와 허리를 껴안는 손길에 저도 모르게 엘론드는 파득 놀랐다. 목 뒤에 닿을 듯 말 퍼지는 숨소리에 긴장하면서도 좀 더 바짝 붙으려는 몸짓에 매섭게 손등을 내리쳤다. 작게 혀차는 소리와 함께 조금 떨어진 온기는 적당한 간격을 만들었다.

"내일 아침 일찍 방으로 돌아가세요. 쓸데없는 오해를 만드는 건 원치 않습니다."
"천하의 스란두일이 임라드리스의 현자와 밤새도록 술 한잔 하는것이 특이한 일은 아닐텐데 뭘 그리 신경을 써."
"제가 술을 먹지 않았으니까요."
"내일 아침 방을 나서기 전에 포도주라도 한잔 해야겠군. 완전범죄를 위해."
"....."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말고 어서 눈을 붙이도록 해. 정말 오늘은 잠만 잘거니까. 아 혹시 좀 아쉽다거나..."

저도 모르게 나가버린 팔꿈치가 정확히 목표물을 가격했는지 스란두일은 하던 말을 끝맺지 못한 채 몸을 웅크렸다. 한참을 낑낑거리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따스함이 등 뒤로 번졌다.

"하여간 성질은."
"돌아가기로 한 겁니다."
"알았어. 알았어."

아까보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스란두일이 엘론드의 목 뒤에 얼굴을 묻었다. 순식간에 닿았다 떨어진 입술은 작은 온기를 남겼지만 무어라 깨닫기도 전에 빠르게 사라지며 서늘한 기운을 남겼다.

"잘자. 엘론드."
"...안녕히 주무시길."

무어라 반응하지 못한 떨떠름한 답을 알아챈 작은 웃음이 닿은 곳을 통해 전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나눈 대화의 마지막이었다. 지그시 부여잡은 온기가 둘을 감쌌다. 가을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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