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란엘. 입맞춤.

톨킨버스 2013. 11. 16. 01:00

"엘론드!"

멀리서부터 빠르게 다가오는 친우의 모습을 확인한 엘론드는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 정식으로 머크우드에 발을 들인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정식방문이 아닌 소수의 인원이었지만 팔벌려 자신을 맞이하는 숲의 왕은 그런 소소한 것은 신경쓰지 않을것이 분명했다. 지척으로 다가온 왕에게 엘론드는 친근함을 버리고 예를 갖추며 인사했다. 우리들의 만남에 별이 빛납..

인사는 쉬이 이어지지 못했다. 가볍게 올린 가슴의 손이 채 내려가기도 전에 스란두일은 덥석 엘론드를 안아버렸다. 미동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강한 힘으로 껴안고 톡톡 울리는 심장소리만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엘론드는 무어라 한마디 말 조차 꺼내질 못했다. 그저 작게 한숨을 내쉬곤 말간 눈으로 스란두일을 바라볼 뿐 이었다.

"보고싶었어. 엘론드."
"나도 보고싶었어. 스란두일."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질 않아. 자네를 잊어버릴뻔 했다고."
"그럴리가. 자네가 나를 잊는다니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날 리 없어."
"그런 부분에선 묘하게 자신감이 넘치는 게 조금 기분이 나쁜데."
"나쁘면 이것 좀 놓아줘. 가신들이 놀라잖...?"

흘낏,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의 가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바라보던 엘론드는 당황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도 남아있질 않았다. 분명 함께 들어왔는데.. 크게 뜬 눈으로 깜빡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 엘론드를 바라보던 스란두일의 입가에 미소가 스몄다.

"섭섭한걸. 이곳까지 와선 가신들 걱정인가?"
"그게 아니라.."
"쉴 곳을 안내했을 뿐이야.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네. 머크우드의 엘프들은 손님을 맞는것이 익숙치 않아도 실례를 저지르진 않아. 내가 장담하지."
"....그다지 신뢰가 가는 이야기는 아니로군."
"믿지 않아도 어쩔 수 없어. 여긴 내 성이고 나의 왕국이다.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누구든 이곳의 법을 따라야 하네. 하지만 손님이기 이전에 그대는 각별한 나의 친우지. 그대와 함께 걸음한 손님들에게는 편안한 쉴 곳을 제공할거야. 그러니 지금은 내게만 집중해줬으면 좋겠어."
"매번 말하지만 자네의 방식은 꽤나 급하고 저돌적이야. 알고 있나?"
"물론. 알고 있다네. 하지만 그것이 나 스란두일이야. 이제와서 내 방식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굳이 바꾸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네."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알고 있으니 걱정마. 그래도 조금은 섭섭한걸. 나는 오래된 친우를 만난 기쁨에 두근거리고 있는데 자네는 고작 가신들 걱정과 나에 대한 불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버렸군."

시릴정도로 새파란 바다가 펼쳐진 눈동자가 자신의 모습을 담는것을 보자마자 그가 원하는 답이 어떤것인지 강하게 와 닿았지만 막상 원하는 대로 말해주려니 조금은 쑥스러워졌다. 더군다나 스란두일은 아직 자신을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숨결이 닿을듯한 거리에서의 시선은 꽤나 노골적으로 엘론드를 훝었다. 묘한 긴장감이 둘을 감싸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결국 한참을 바라보던 시선을 피한 채, 엘론드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 떴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은 자네가 더 잘 알텐데."
"말 하지 않으면 모른다네. 나는 누구처럼 미래를 보는 능력 같은건 없으니 말이야."
"나이를 먹을수록 성격이 더 안좋아지는 것 같은데..."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참으로 궁금하군. 안그런가?"

시치미를 떼고 되물어오는 모습에 엘론드는 풋, 웃음을 터트렸다.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모습은 그가 기억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며 엘론드는 빠져나갈 수 없음을 인정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쓸데없는 소모전을 할 시간보다 함께 할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엘론드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 내가 잘못했네. 하지만 자네 때문에 일부러 일정을 조정한 성의를 봐주면 좋겠는데."
"그 점은 높이 사지. 하지만 너무도 오랫만이었어. 정말로.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인정해. 그래서 이곳까지 왔잖나."
"자네가 바빠서 벌어진 일이니 책임을 지게."
"책임?"
"키스해줘."
"뭐?"
"잘못했다며. 그럼 벌을 받아야지."

꽉 껴안았던 팔을 들어 허리를 끌어당기고 밀착했다. 이마가 닿고 코가 부벼질만큼 가까운 공간에서 스란두일은 들릴 듯 말듯 조용하게 속삭였다. 키스해주지 않으면 놔주지 않을거야. 답지 않은 투정과 오랫만에 닿은 온기가 합쳐져 달콤하게 물 흐르듯 귓가를 스쳤다. 확 달아오른 낯빛을 눈치채기라도 했다는 듯 그저 웃고만 있는 모습이 얄미웠다. 하지만 이미 녹아버린 마음의 견고함으론 어떤 공격도 막아낼 힘이 남아있질 않았다. 작게 한숨을 내쉰 입술이 단단하게 닫혔고 겹쳐진 속눈썹이 몇번 닿아 깜박일 즈음, 엘론드의 입술은 가볍게 스란두일의 볼에 스쳐 지나갔다.

"했으니 놔줘."
"이건 반칙인데."
"입에다 라고 전제가 붙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럼 지금 붙이면 되겠군. 내가 만족할 때까지 입에다 키스해줘."
"이미 한 건 어쩌고."
"없던 일로 하지 뭐."
"굉장한 손해를 보는 기분인데.."
"어쩔 수 없어. 이건 벌이니까."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그래서 안해줄거야?"
"그런 말은 한 적 없어."
"그럼 얼른 해줘. 아까부터 기다리는 중이야."

웃던 눈이 곱게 감겼다. 당당하게 요구하며 입술을 들이미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 제멋대로인 뻔뻔함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고민하면 재촉하듯 허리에 감긴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 덕에 반항하려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처음 발들인 어둠숲에는 마음을 현혹시키는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엘론드 역시 눈을 감았다. 수줍게 닿은 말캉한 입술 사이로 느껴지는것은 그토록 그리워했던 다정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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