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란두일은 밤을 지새운 뒤에 아침에서야 정신을 차렸음. 엘론드는 항상 느지막히 일어나는 터라 집안은 고요했음. 글을 배운적이 없어서 무어라 적어놓고 나가진 않았지만 스란두일은 자신이 그동안 받은 것 중에 가장 기본적인 옷이나 구두 빼고는 모두 모아 침대위에 놓고 집을 나섰음. 더이상 곁에 있기 두려워서. 돈주고 날 샀는데 가만히 있는것조차 무서웠음. 어자피 나는 그분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으니 착각을 하는것도 자유였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축시켰음. 더이상 곁에 있어봤자 득없이 실만 될거라는것을 스란두일은 알고 있었음. 근본도 없는 천한 남창을 데리고 있다는것이 나름의 귀족급인 엘론드에게 좋지 않을거라는 것은 뻔한 거였음. 게다가. 자신이 더 이상 그의 곁에 있을 수가 없었음. 어젯밤은 분명 악에 받친 채로 덤빈거였지만 다른 마음도 있었음. 우아함. 깨끗함. 모든것들이 자신과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고귀함. 자신까지 받아줄 수 있는 인품. 재력. 모든것이 부러웠음. 부럽고도 탐이나고 개인적으로 연민을 느꼈음. 곁에 있으면 언젠가는 한번쯤 바라봐주지 않을까. 언젠가는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꿈꿨음. 남창답게 처절하고 주제에 맞는 꿈을 꿨음. 그러나 어젯밤 엘론드는 스란두일에게 절망만을 안겼음. 부끄러움. 그것 뿐이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한번도 보지 못한 그 연민의 표정. 숱하게 자신의 위를 지나간 그 표정을 엘론드가 지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음. 그제서야 스란두일은 모든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음. 난 이분처럼 변할 순 없구나. 뼛속까지 나는 쓰레기구나.

안개를 헤치며 걷던 거리는 어느덧 햇살이 가득했음. 모든것을 버려두고 나온 터라 주머니엔 한 푼도 남아있질 않았음. 스란두일이 있을 무렵 엘론드는 집안의 모든것을 그에게 맡겼음. 실수하는대로. 잘하는대로. 돈도 맡기고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맡겨왔지만 그것들을 가져오지 않은 건 마지막 자존심이었음. 그렇게 거리를 걷고 하염없이 걸어 예전의 동네로 돌아왔음. 갈곳이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했음. 분수대에 앉아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는데 예전에 엘론드와 만났던 구석진 거리가 눈에 들어왔음. 벌써 몇달 전 이었지만 아직도 생생했음. 새벽에 가까울 시간이었지. 하며 상념에 젖어있을 때, 누군가가 어깨를 툭툭 쳤음. 고개를 들자 험상궂은 모습의 사내 둘이 스란두일을 내려다봤음. 어이 형씨. 생각하는데 방해해서 미안한데 여긴 우리자리거든. 흔히 있어왔던 건달들의 알력다툼이었음. 스란두일은 말없이 일어나려했지만 강한 힘이 어깨를 짓눌렀음. 에이. 뭘 또 일어나기까지 하려구. 그냥 자릿세만 내면 돼지 안그래? 건들건들 웃어보이는 모습에 조금 위축된 스란두일이 덤덤하게 입을열었어. 저 돈 없어요. 그건 내가 봐야 아는거고 니 말을 믿을수가 있나. 솔직히 덩치보고 만만찮다 여기려고 했는데 존대말에 눈치보는 모양새를 보고 건달들은 꺠달았어. 좀더 위협적으로 나오며 스란두일을 가운데에 둔 채 껴 앉았지. 대놓고 몸을 더듬으며 동전을 찾았어.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험상궂은 건달 하나가 다른 이에게 눈짓을 했어. 형씨 저기로 좀 갈까? 스란두일은 일어서는 순간 도망치려 했지만 멀리가지 못했어. 노련한 손놀림에 제압당하고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밀착해 뒷골목으로 끌려갔어. 이미 그쪽에는 건달 패거리들이 모여있었어. 눈짓을 하고 스란두일이 들어서자마자 무릎을 꿇리고 있는 옷들을 뒤졌어. 조끼의 안쪽 주머니까지 뒤진 건달들은 정말 한푼도 없음을 알게되고 건달 두목은 거지새끼 데려오지 말라며 건달들에게 소리쳤지. 가만히 몸을 옹송그리고 있던 스란두일은 그저 참았어. 어자피 건달들은 돈이 없단걸 알게되면 놔줄거야. 그런데 그날따라 두목의 심기가 편하질 않았어. 억지로 스란두일을 일으켜선 빙글빙글 웃으며 복부에 주먹을 꽂았어. 그러길래 돈이 없으면서 분수대에 앉으면 쓰나~ 스란두일을 향해 폭력을 휘둘렀지만 건달들 모두가 긴장했어. 반항할 새도 없이 몇대 맞고 코피흘린 채로 헐떡거리던 스란두일이 바닥으로 무너지자 건달들이 그를 중심으로 원을 그렸어. 똑바로 못하냐는 잔소리를 듣고 잘하겠다며 맹세하는 그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어. 나랑 별반 다를것 없는 놈들이 다른 척 하고 있어. 하지만 가만히 있었지. 더이상 분란을 만들고 싶진 않았어. 엘론드에게서 도망쳤지만 막 살겠다고 나온건 아니야.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을 그 때에 어떤 건달녀석 하나가 조그맣게 두목에게 고했어. 근데 두목. 저새끼 저거 남창같아요. 뭐? 따가운 시선들이 스란두일에게 내리꽂혔어. 중간쯤 되어보이는 어린 놈이 더듬거리며 멀쩡할때는 긴가민가했는데 저 꼴 보고 생각났다고. 저아랫쪽 창녀굴에서 남자들한테 다리벌리던 놈이었다고 그제서야 스란두일의 눈이 그자에게 향했어. 하지만 건달두목은 그 눈빛에서 두려움을 보았지. 천천히 다가서며 스란두일앞에 쪼그려앉았어. 너. 남창이냐? 스란두일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어. 그나마 자존심으로 눈을 부릅뜬 채, 바라보고 있었어. 하지만 그 짧은 눈싸움으로 이미 승패는 결정나있었어. 더러운 손으로 스란두일의 볼을 쓰다듬으며 두목은 말했어. 어쩐지 꼴리게 하는 냄새가 나더라니. 닳고닳은 년이었구만?

근데 썰인데 그냥 건너뛰면 안되나. 하여튼 그렇게 신나게 굴려지고 오랫만에 느껴보는 굴욕감에 눈물이 줄줄나는데 한번에 두개세개 막 들어오고 비명지르면 조여댄다고 엉덩이 철썩철썩 쳐대고 몇시간을 굴려지고 해가 뉘엇뉘엿 지고서야 끝이나고 두목이 옷입혀줘야한다고 엘론드네서 입고온 옷을 다 갈기갈기 찢어서 그위에 뿌려두면 좋겠다. 넋나가서 눈물도 안나온 채로 움직일 여력도 없이 그렇게 뒷골목에 방치된 스란두일. 솔직히 아예 힘다 빠진건 아닌데 자기가 넘 비참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분의 곁에서 뛰쳐나와 고작 하는게 몸 굴리는것밖에 안된다며 자조적인 웃음반 울음반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한밤중이 되고 슬슬 쑤신 몸을 일으켜 어덯게든 이자리를 벗어나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발소리가 들리는거지. 너무나도 익숙한 발소리. 저도모르게 숨죽인 채, 죽은듯 누워있는데 발걸음이 골목 끝에서 멈췄고. 똑바로 자신에게 걸어왔고. 여전히 똑같은 차가운 표정으로 엘론드는 자신을 보며 입을 열었음. 일어설 수 있어요? 정신을 잃은 척 하고 싶었는데 미동도 않는 모습에 스란두일은 눈을 뜰 수밖에 없었음. 옷이 찢어진 것을 살피고 자신의 망토를 빼네어 스란두일을 감싸고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지켜보았음. 그러나 쉽진않지. 비틀거리자마자 곁으로 가서 그를 부축 하고 큰길가에 서있는 마차로 데려갔음. 처음과 같이 스란두일은 그의 마차에 올랏고 처음과 달리 아무런 말도 하지않은 채 둘은 다시 엘론드의 집으로 돌아왔음. 마차에서 내려서 집으로 들어서려는데 스란두일이 움직이지 않아. 엘론드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자신은 이곳에 들어갈 염치가 없대. 그제서야 엘론드는 스란두일의 눈을 보며 입을 열어. 염치가 필요한 곳이 아니니 자네가 원한다면 들어와도 좋네. 어쩐지 명령같은 그 말투에 스란두일은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음. 예전과 같이 목욕을 하고 부엌에 가서 먹을것을 먹은 뒤 엘론드는 스란두일을 재웠음. 침대에 올라가 눈을 뜬 채로 대체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자신을 질책하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음.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이 쳐진 창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는데 엘론드가 밖으로 향하고 있었음. 조용히 홀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평소 느지막히 외출을 하던 모습과 동일했음. 발걸음은 어느샌가 엘론드의 뒤를 좆고있었음. 평소보다 조금 빠른 엘론드의 걸음에 스란두일은 불편한 몸으로 그를 미행했고 당도한 곳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음. 아까 자신이 있었던 곳임. 엘론드는 잠시 앞을 바라보다가 골목 안쪽으로 숨어들었음. 이곳 저곳 길을 안다는 듯이 돌아다니며 은밀한 곳을 휘젓고 어떤 작은 헛간같은 곳에 멈추었음. 심호흡을 한 뒤 노크도 없이 들어간 곳에서 스란두일의 발걸음이 멈추었음. 더이상 들어갔다간 들켜버릴 지도 몰랐음. 헐거운 문 틈 사이로 안쪽을 보려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음. 그때 희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음. 스란두일은 이런 류의 비명을 잘 알고 있었음. 사창가에서 흔히 들리는 소리였음. 그런데 엘론드가 들어간 곳에서 들려왔음. 엘론드가 위험한거..? 머리보다 몸이 빨랐음. 흔들거리는 문을 조심히 제치고 들어가 안쪽으로 향했음.

더러운 잡동사니들이 쌓여있는 와중에 희미힌 불빛이 어룽댔음. 스란두일은 소리를 죽이고 그곳으로 향했음. 안쪽의 침실이었나본데 조심히 머리를 들이민 스란두일은 숨을 쉴 틈 없이 그자리에서 멈춰버렸음. 상상도 하지 못할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져있었음. 가녀려 보이진 않았지만 유약해 보이기만 하던 엘론드의 손 끝이 건달두목의 목줄기를 한 손으로 조르고 있었음. 허공에 둥둥 떠서는 신음을 내뱉으며 살려달라고 비는 꼴이 우스웠음. 그러나 엘론드의 손아귀가 좀더 조여들었고 눈이 튀어나올정도로 열오른 두목은 발버둥치며 밀어내려 애썼음. 이미 곁에 있던 창녀 하나는 숨이 끊어진 듯,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음. 조금씩 조여가던 손아귀에서 어느순간 뚝 하는 소리가 들렸음. 천천히 옆으로 기울어진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꺾였음.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은 엘론드는 그의 벌어진 목덜미를 파헤치고 속삭였음. 네 죄를 사하러 온 것이다. 죽은줄로만 알았던 몸뚱이가 부들부들 떨렸음. 그릉그릉한 목소리가 살려달라 빌었음. 하지만 부러진 목뼈로 사는것은 사는게 아니라는걸 스란두일은 알고있었음. 천천히 고개를 숙인 엘론드는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두목은 비명을 질러댔음. 아주 오랜 시간동안 엘론드는 미동하지 않았음.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스란두일은 곧 그 생각을 후회했음. 엘론드가 일어났고 곁으로 비켰을 무렵 제법 덩치가 있던 건달두목은 마치 굶주려 죽은 시체처럼 바싹 말라있었음. 천천히 죽은 창녀에게 다가간 엘론드는 채 감기지 못한 눈을 감긴 채, 성호를 그었음. 늘 보아왔던 얼굴에 입가가 부자연스럽게 다가왔음. 엘론드가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을 때, 스란두일은 안쪽에서 반짝이는 송곳니와 입가에 묻은 피를 발견했음. 마른침이 목안쪽을 넘어갔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음. 엘론드가 시체를 수습하는 사이 스란두일은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킨 채, 밖으로 나왔음.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침대위에 누운 스란두일은 엘론드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소리를 들었음.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숨을 크게 쉬려고 노력했음. 거짓말처럼 방문이 열렸고 다가오는 엘론드의 발소리가 들렸음. 그는 한참동안이나 스란두일을 쳐다보았고 이마를 짚어 열이 있는지 확인하고 방을 다시 나섰음. 그렇게 스란두일은 뜬눈으로 밤을 새웟음.

아침이되고 새들이 지져귀는소리가 들리자 스란두일은 자리에서 일어났음. 꿈일거야. 오랫만에..더러운 일을 당해서 꿈을 꾼 걸테지. 암. 무슨 그런 소설같은 일이 일어나. 하하. 억지로 웃은 스란두일은 씻으려 욕실로 향했음. 하루 가출을 했지만 평소와 다를바가 없었음. 욕실로 가서 물을 긷고 세수를 하려 막 고개를 숙인 그 때에, 스란두일은 실내화를 신은 자신의 발을 보았음. 새하얀 실내화가 새까맣게 변해있었음. 어제 신발조차 잃어버린 스란두일은 꿈속에서 실내화를 신고 나갔었는데....

등골이 오싹해지는것을 느끼며 스란두일은 흐릿한 거울을 쳐다보았음. 초췌한 자신의 모습이 보이고 그 등 뒤로 어느새 열린 문 틈으로 엘론드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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