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잠깐 풀었던 네임버스로 스란엘 보고싶다

이세계의 사람들은 손목 안쪽에 이름을 갖고 태어남. 그건 연결된 정인의 이름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을 노출하고 거리낌없이 부르며 소통함. 대신 짝을 만나거나 결혼한 경우엔 그 이름을 가림. 서로에 대한 예의랄까. 그리고 짝이 있다는 증거가 되지.
굳이 그사람과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지만 짝을 찾는게 되게 당연시 되는 분위기 ㅇㅇ.

현실 AU로 엘론드의 손목은 항상 시계로 가리워져 있어서 확인할 수 없었지만 길갈라드는 꾸준히 대쉬하고 곁에서 보살펴 주고 있었고 엘론드는 은근슬쩍 정인을 찾으면 좋겠다. 스란두일 또한 바로 곁에서 정인을 찾고 있는데 바람둥이면 좋겠다. 굳이 정인과 이어지기만 하면되지 애인사귀라곤 안했자나? 이러면서 아무나 만나서 자고 그러면서 은근슬쩍 손목 확인하고 아니면 ㅃㅃ 하는 스란두일 보고싶다.
어느날 엘론드가 일하는 바에 스란두일이 왔는데 오자마자 주위가 술렁술렁. 소문의 그 사람이잖아? 하고 엄청 수군거림. 스란두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의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데 엘론드가 그날의 전담 바텐더인거. 길갈라드는 솔까 스란두일이 난잡하다는걸 알아서 별로 가까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여기서 불리는건 대부분 이름이 아닌 성이라 이름도 모르고. 하여튼 둘이 만남.

처음엔 잘 모르고 껄떡대다가 엘론드가 말없이 가려진 손목을 가리키자마자 임자가 있는 줄 알고 다른사람을 찾아보려 했는데 분위기도 그렇고 단골들 수군거리는 걸 들어보니 엘론드는 그냥 바에서 하도 귀찮게 구는 사람들이 많길래 가리고 있는거라고 이야기를 들었음. 그걸 알고 스란이 엘론드 꼬시려고했는데 전 원나잇 안합니다 라고 딱 거절하는 엘론드보고 호기심이 동해서 뭐야 그럼 원나잇 아니면 괜찮아? 하고 추근추근 거리는걸 길갈이 바텐더에게 찝적대려면 나가 ㅇㅇ 해서 못하고. 거절당한적 없었던 스란두일이 거절당하고 나니까 자존심이 쎄서 이거 좀 먹음직스러운데? 하고 엘론드를 노리는거 좋다. 장난식으로 가려진 이름이 뭔데? 라고 물어도 안알려주고 ㅇㅇ. 하여튼 그날부터 매일같이 가게로 찾아오는 스란두일. 매일매일 데쉬하고 집갈때까지 데려다주고 하니까 소문 다남. 이목도 쏠리고 부담스러워 죽겠는데 스란두일은 거절할 생각이 없어보임. 근데 바람둥이라고 소문난것 치곤 생각보다 매너도 좋고 일단 잘생겼기떄문에(...) 엘론드는 좀 두근두근 함. 누가 자기 공주취급해주고 떠받들어주는데 싫어하겠어. 하여튼 좀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길갈라드가 그거보고 속터지는거지.

길갈라드는 사별남이면 좋겠다. 일찍이 정인을 만나 결혼했는데 사고로 부인이 죽어버렸음. 그 뒤에 어릴적 같은 학교를 나왔던 엘론드를 만남. 솔직히 그전부터 맘에 있었는데 다시만나고나니까 이건 운명인거같아. 엘론드 손목에 새겨진 이름이 자신이 아니라는 걸 분명 알아. 그렇지만 자신은 이미 정인이 죽어버렸으니 굳이 그런거 안믿어. 자신의 눈과 가슴을 오히려 믿는거지. 근데 그걸 엘론드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왔어. 비록 오랫동안 곁에서 엘론드를 도와주고 이런저런 편의를 봐주고 있지만 말야. 치기어린 감정을 가졌을 때는 엘론드에게 울면서 고백도 해봤어. 하지만 엘론드는 쓸쓸한 눈으로 그저 안아줬을 뿐이야. 그 이후로 성적인 접촉은 ㄴㄴ. 되게 그냥 애틋한 선후배사이로 남아있었어.
근데 스란두일이 나타나서 겁나 공주대접하고 챙겨주고 그러는걸 보니까 좀 화가나는거. 더 웃기는건 가소롭다 생각했는데 엘론드가 흔들리고 있다는거야. 정인을 만날 때 까지 애인도 사귀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하던 모습과는 좀 다르잖아. 왜 자신은 안되는건지 좀 화가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하여튼 그렇게 하고 있던 어느날.

엘론드는 피곤해졌어. 좋아하는건 아니지만 애정이 안느껴졌다면 거짓말이야. 매일같이 부담스럽게 나오는 스란두일에 휘말려 어느순간 계약연애같은 기간을 갖기로 해버렸어. 기간은 백일. 그 짧은 시간내에도 꿈쩍하지 않으면 스란두일이 포기하기로. 솔직히 마지막 단어만 들려서 불현듯 끄덕여버린게 사실이지만 어쨌든 스란두일은 애인사이가 되었다며 번호를 귀신같이 따갔음. 오히려 그러니 오는 시간이 줄었어. 띄엄띄엄 문자하는 시간만 늘어갔지. 사람이 매일보이다가 안보이기 시작하면 주변 관심도 꺼지기 마련이지. 포기했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시간은 고스란히 엘론드 마음속에 쌓이고 있었지.

주말에 한두번 만나서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고. 늦게끝나는 엘론드를 배려해서 집까지 데려다주고. 솔직히 들리는 소문과는 많이 달랐어. 보자마자 벗겨서 따먹고 버린다더만 그건 아니었나보네? 하면서 이야기를 어느샌가 두런두런 하고 있자니 생각보다 사람이 나쁘지는 않아. 연애란게 혼자만 하는건 아니다보니 어느덧 눈치채는 사람들이 늘어났어. 핸드폰은 그저 전화를 걸기위해 있는것이다 를 표방하던 엘론드가 문자를 보내고 가끔 웃기도 웃는걸보며 바 단골들은 입맛을 다셨지. 생겼구나. 생겼어. 길갈라드도 눈치챘음. 자기에겐 말 안했지만 운명의 상대를 찾은건가 싶었어. 가까운 사이어도 그런이야기는 또 안할수도 있으니 애써 모른척했어. 하지만 봐버리고 만거지. 저녁에 집까지 데려다 주려고 바 앞에서 기다리던 스란두일을.
엘론드는 늘 끝까지 정리를 하고 갔는데 요즘은 일찍일찍 마무리를 하고 나섰어. 집이 먼 편은 아니라 길갈라드와 두런두런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게 확 줄어든거지. 그냥 기분탓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먼저 나가겠다는 엘론드를 배웅하고 조용히 뒤를 밟았어. 너무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열어주는 차에타는 엘론드를 보았지. 그순간 정말이지 길갈라드는 화가났어.

그날 저녁은 사귄지 두 달 된 날이었어. 새벽까지 여는 레스토랑은 없어서 스란두일은 자신의 집으로 엘론드를 초대했어. 부담스럽게 하지 않을테니 와달라는 말에 엘론드는 거절할 수가 없었어. 생각보다 크지 않은 자기 오피스텔로 데려와 스란두일은 요리를 시작했어. 근사하게 와인도 한잔 따르고 고기를 세팅하고 진짜 좋아하는 사이였다면 두근두근 할 정도로 기분이 좋은 시간들을 보냈어. 식사도 다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엘론드는 방심한 사이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상을 치워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음. 덩달아 일어서면서 제지하려는 스란두일이 엘론드의 손목을 잡았는데 앗 하는순간 와인병이 쓰러졌음. 그리고 스란두일에게로 술이 튀어버렸지...!
으아 일쳤다;; 괜찮아요? 하면서 냅킨으로 닦는데 옷이 흠뻑 젖어버린거. 젖은 소매를 걷어올리고 괜찮다고. 튀지 않았죠? 앉아있어요. 하며 스란두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무리를 했어. 걷어진 손목엔 가죽 팔찌가 얇게 여러줄 있었는데 그것까지 다 젖어버렸는지 싱크대로 그릇을 가져간 스란두일은 팔찌들을 풀어 물에 담그고 손을 씻었지. 식탁까지 다 정리하고나서야 옷을 갈아입었어. 편안한 니트티로 바꾸어입은 스란두일은 올려둔 물이 끓어오르자 커피를 타왔어.
놀랬죠? 괜찮아요. 하면서 둘은 커피를 마셨지. 그런데 문득 손목이 허전한 스란두일이 멍하니 테이블 위에 올려둔 자신의 손목을 내려봤어. 스란두일의 시선이 향하자 자연스럽게 엘론드의 시선도 그곳으로 향했어. 그리고 숨을 쉴 수가 없었지. 거기엔 엘론드의 이름이 있었어.
엘론드는 당황스러워서 시선을 돌리고 커피를 마셨어. 잠시만요. 스란두일은 황급히 일어나 방으로 향했고 손목시계를 차고 돌아왔어. 보진 않았겠지. 하면서 눈치를 살피는데 엘론드는 순간적으로 모른척 했어. 이제껏 스란두일과 이야기하면서 한번도 이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어. 그래서 스란두일도 그런거 신경쓰지 않는 줄 알았거든. 머릿속이 복잡해진 엘론드는 이만 가보겠다고 일어섰어. 데려다주겠다며 겉옷을 챙기려는 스란두일에게 괜찮다며 재빨리 밖으로 나와버렸지.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엘론드는 슬그머니 손목시계를 풀었어. 그 속에는 스란두일 네글자가 또렷하게 박혀있었어. 이제껏 그의 이름을 물어본 적이 없었어. 하지만 스쳐지나간 그의 손목에는 분명 엘론드 라는 글자가 있었어. 갑자기 심장이 두근두근 했어. 이름에 얽매여있긴 했지만 자신도 스란두일이 좋아진 건 사실이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좋은 사람이었고 멋진 사람이었어. 저 사람이 정인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잠깐 생각해보기도 했었어. 내일은 이름을 물어봐야지. 자신도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어. 혹 그가 아니라면... 어쩔수 없겠지만 그냥 남은 한달동안은 편안하게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음.

다음날이 되고 바에 나와 준비를 하고 있는 엘론드의 뒤로 종소리가 들렸음. 형 벌써 나왔...  고개를 돌린 엘론드가 멈칫거렸음. 침착하지만 조금은 무서운 얼굴의 길갈라드가 서있었음. 평정을 가장하며 이야기를 했지만 목소리가 떨렸음. 너 혹시 걔랑 사귀니..?
어쩐지 몸이 떨렸지만 엘론드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긍정했어. 어쩌다 보니까..사귀게 됐어요. 뭘 그런걸 물어보느냔 식으로 웃어보였지만 길갈라드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캐비넷이 우그러들었어. 놀란 시선이 마주쳤고 타오를것 같은 분노의 얼굴로 길갈라드는 짓씹었어. 그 바람둥이는 되고 나는 안되는거야? 가까워진 거리에 엘론드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지만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어. 형.. 좀 진정하고. 흥분한거 같은데...그../그래 흥분했어. 화도 났지. 아닌줄알았어. 차라리 다른사람이었으면 이해했을지도 몰라. 니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정인을 만났구나 했을수도 있어. 근데 그 바람둥이랑 사귄다고? 걘 되면서 왜 난 안되는데? 걔랑 나랑 다른게 뭐야..? 분노로 타오르던 얼굴이 무너졌어. 슬픔이 가득 담긴 눈으로 쳐다보던 길갈라드가 웃었어. 엘론드. 나도 널 사랑해.. 몇 년 전의 고백과 같았어. 그때도 길갈라드는 울듯한 얼굴로 고백을 했었지. 최대한 가까워진 입술에 엘론드는 질끈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어. 닿지도 못한 입술이 부르르 떨렸고 길갈라드는 한참을 그곳에 멈추어 있었어. 시간이 멈추어 버린 것만 같았어.

작게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어. 감았던 눈이 절로 떠졌어. 잘 보이지 않는 입구 쪽에 누군가가 서 있다가 황급히 자리를 피했어. 길갈라드도 뒤돌아보는 틈을 타 엘론드는 그의 품 안에서 빠져나왔어. 입구쪽에 떨어져 있던 건, 엘론드의 장갑이었어. 어제...스란두일네 집에 놓고 왔던 건..ㄷ...

엘론드가 계단쪽을 쳐다보았지만 이미 그곳엔 아무도 없었어. 정신이 아득해져옴을 느끼며 엘론드 역시 밖으로 뛰쳐나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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