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비님이 문득 그리신 스란두일과 린디르 인어버젼 그림을 보고 확 와닿는 썰이 생각나서<<
허락을 받고 살짝 풀어봅니다!
원래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지지부진하게 길어질 것 같아서 흐음..썰과 연성을 반반 섞어서 풀어보는걸로!

 

배경은 바닷속 인어들의 이야기. 스란두일은 북쪽 숲의 왕이고 린디르는 아직 각성도 하지 않은 어린 인어라는 설정. 인어라는 종족은 알에서 깨어나는데 태어날 때는 모두 무성으로 태어남. 성인식 이후에나 각성을 하면서 남녀 성별이 정해지는 그런 생물임.

린디르는 본래 이곳에 살던 인어가 아니었음. 그가 살던 곳은 엘론드가 다스리는 영지였고 아직 발현조차 하지 않은 어린 인어는 본디 각성할 때까지는 영지를 나오지 못하도록 되어있으나 어쩌다보니 엘론드의 행렬에 끼어들어옴. 엘론드는 차례차례 각 왕들의 영지를 순방하며 의견을 모으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린 린디르의 눈에는 그저 이곳 저곳을 구경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음. 그렇게 여러군데를 거쳤고 가장 마지막으로 북쪽의 숲이라 불리우는 산호 군락의 영지만이 남은 여정이었음.
무사히 북쪽숲의 영지에 당도했지만 왕은 없었어. 스란두일은 늘 변방을 돌며 영지를 수호했음. 최근 영지를 노리는 적들이 여기저기서 출몰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궁 내 분위기도 흉흉했음.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엘론드는 왕이 환궁할때까지 북쪽 숲에 머무르기로 했음. 그 덕에 린디르도 궁 안에 머물게 됨.

 

스란두일이 궁에 당도한 것은 아주 늦은 밤이었다. 언제나 갑작스레 사라지고 나타났던 왕의 귀환에 깨어있던 이들은 그리 놀라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움직였다. 그 덕에 손님들에게는 소식조차 전해지지 않았다. 혹여라도 전해졌었다면 지금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몰랐다.

린디르는 자신이 왜 이곳에 끌려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밤의 고요함을 즐기러 산책을 나왔을 뿐 이었다. 한참을 조용히 노닐고 있었는데 근래에 보지 못한 키가 큰 인어가 자신을 불렀다. 부름에 돌아서고 눈이 마주쳤다. 그것이 다였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인어는 그대로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어디론가 향했고, 당도한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누구...세요..?"
"....."

정말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인어의 미간이 크게 찌푸려졌다. 한참이나 린디르를 바라보던 인어는 그대로 성큼 다가왔다. 얼결에 뒤로 물러선 린디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는 무표정한 얼굴에 슬쩍 비릿한 미소를 띄웠다.

"관심을 끌려고 의도했다면 성공한 것 같군. 적어도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방법이야."

날카로운 눈매가 조금 가늘어졌다. 라고 생각이 들자마자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살짝 술기운이 배인 입술. 조금 차갑지만 말랑한 그것이 제 입술에 닿은 것을 끝으로 린디르의 기억이 하얗게 날아갔다.

 

 

결과적으로 린디르는 그날 밤 스란두일에게 반 강제적으로 당했음. 막연하게 튕기는 줄 알고 있었던 스란두일은 종내엔 짜증을 내며 거칠게 다뤘음. 스란두일이 매번 이랬던 것은 아님. 하지만 스란두일이 궁으로 돌아온 이상 왕을 위해 지켜져야 할 법도가 있었음. 린디르가 몰랐던 것 뿐이었지만 사실 린디르가 산책하고 있던 공간은 왕의 여인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곳이었음. 매우 안타깝게도 손님이 머물던 장소와 인접한 곳이고, 또한 알고 있는 모두가 의식하며 피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그 흔한 푯말 하나도 세워져 있지 않았음. 그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왕의 승은을 입은 자들이었고 또한 입을 자들이었음. 언제든지 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이었으니 스란두일이 착각한 것도 당연했음. 게다가 스란두일은 손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오는 길이었고 새벽부터 일어나기 위해 당장 피로를 풀고 숙면을 취하려 부러 술을 마신 상태였음. 그것이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다가와버렸음. 평소라면 꼬리색과 모습을 보고 각성조차 하지 않은 어린 아이라는 걸 알아챌 일이었는데 초반의 너무 멍뎅한 대처 + 술취함의 시너지로 깨닫지도 못하고 넘어갔음. 물론 하던 중간에 무언가 평소와는 다르다 라는것을 깨달았지만 그것을 따져보기엔 너무나도 피곤 + 일단 급함. 이라는 느낌. 어쨌거나 둘은 밤을 함께 보냈음.

제 욕망만 채우고 잠들어버린 스란두일의 곁에서 죽은 듯 떨고있던 린디르가 멍뎅한 정신을 겨우 다잡았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 뭔가.. 당한 것 같은데 이게 정확히 뭔지 설명조차 힘들어. 일단 몸이 너무 아팠음. 기절도 몇번 했던것 같은데 고통스런 몸부림에 얼마 가지 않아 정신이 들었음. 모든것을 끝내고 난 뒤에 잠든 스란두일의 품 안에서 겨우겨우 용기를 내 빠져나왔어. 아래가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아. 눈물도 나고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어. 일단 이 곳에서 도망쳐야 할 것 같다는 일념 하나로 린디르는 천천히 움직였어. 누구와 마주칠까 흠칫흠칫 놀라며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음. 그리고 기절했음.

날이 밝고 아침이 찾아왔어. 스란두일은 일찍 잠에서 깼지.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까 혼자야. 침대시트도 피바다가 되어있고 분명 어젯밤에 누군가와 동침한 것 같은데 아무도 없어. 이상한 일이네. 라고 생각하며 어젯밤 자신이 안은 인어의 얼굴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그저 조금 슬픈 눈매? 그것밖에 기억이 나질 않아. 어자피 자신의 궁 안에 있던 여인 중 하나였겠지. 가볍게 생각하며 몸을 추슬러.
린디르는 아침이 와도 일어나질 못했어. 린디르를 보살피던 인어는 그저 아이가 환경이 바뀌어 앓는가보다 싶어 이불을 덮어주며 쉬게 놔뒀지. 그래서 엘론드에게도 그렇게 보고를 올렸어. 엘론드는 가장 나이어린 린디르가 아프다는 이야기에 걱정을 하긴 했지만 일단 왕을 만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어. 회의 이후에 들려보기로 하고 그는 일단 왕에게로 향했어.

회담은 지지부진하게 길어졌어. 간혹 닫힌 문 속에서 큰 고성이 오가기도 했어. 쉽게 모아지지 않을 의견의 충돌에 두 인어는 매우 피곤해 했어. 진득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취합하려 했지만 정말이지 대립되는 입장에서의 합의는 요원해 보였지. 그러는 동안 린디르는 종종 정신을 놓을 정도로 크게 앓았어. 엘론드도 너무나 바빴고 상황이 좋질 못했어.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지났고 겨우 큰 틀에서의 합의점을 찾은 엘론드와 스란두일은 이곳에서 일단 만족하기로 했어. 스란두일이 수호하는 영지 변방에서 또 마찰이 일어났기 때문에 더 설득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지. 스란두일은 배웅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그날 밤 다시 변방으로 향했어.
엘론드는 자신의 영지로 돌아갈 준비를 했어. 좀더 쉬고 가라는 신하들의 권유에도 그만 되었다며 일찍 돌아가길 원했어. 자신도 피곤했으니 긴 여정을 어서 마치고 싶었던거지. 그제서야 한숨 돌린 엘론드의 머릿속에 린디르가 생각났어. 아직 어린 인어인데 여정이 고되기라도 했던가 싶어 짠해졌어. 그래서 시간이 조금 늦었지만 린디르의 방으로 향했지.

린디르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상태였어. 불완전한 어린 몸에 가해진 충격이 너무나도 컸기에 몸은 때 이른 각성을 시작해버렸어. 계속 보살폈던 인어조차 그 미세한 변화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무관심 속에서 린디르는 알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쳤어. 엘론드가 와서 진맥하기 전까진 아무도 어린 인어의 각성 사실을 알지 못했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와 미묘하게 달라진 모습에 엘론드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어. 가까스로 잠이 들었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늘어진 린디르의 손을 잡고 맥을 짚었어. 그리고 놀란 눈을 크게 떴지. 덮인 이불을 들추어 꼬리색을 확인했어. 투명한 은빛이 감돌고 있어야 할 꼬리가 새파랗게 물들어 있었어.
엘론드는 린디르를 흔들어 깨웠어. 가늘게 떠진 눈에 엘론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었어. 하지만 린디르는 대답할 수가 없었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엘론드는 한숨을 쉬며 이곳 저곳을 진찰했어. 종종 빠르게 각성하는 인어들이 있었어. 백에 한둘은 그럴 법한 일이었고 엘론드는 그것이 단순히 어린 몸에 누적된 여독이 영향을 끼쳤나 보다. 라고 편안하게 생각했어. 그러다 이상한 점을 깨달았어. 분명 때 이른 변화이기는 하나 꼬리색과 각성 발현들을 보면 린디르는 남성체로 각성하고 있었어. 그런데 잡히는 맥은 여성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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