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엘, 뻘 조금.

썰/뻘설정 2013. 11. 30. 11:06

그날도 일을 하던 중인 엘론드는 어스름한 저녁 즈음에 방문한 꼬마 공주님 덕에 서류에서 눈을 떼는거지. 우리 공주님 잠이 오질 않니? 다정하게 웃어주는 아버지에게 투정부리듯 안긴 아르웬이 입술을 비쭉 내밀고 불평을 늘어놔. 아다. 춤 선생님이 너무 엄해요. 아르웬한테 막 재능이 없다고 했어요. 이러면서 투덜투덜. 아마도 왈츠의 첫수업을 받은 모양인데 춤을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아르웬에게는 조금 어려웠던 모양이야. 한참 투정을 듣고만 있던 엘론드가 새까만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인자하게 웃어. 아다랑 같이 해볼까?/ 정말?/ 그러엄. 하면서 엘론드가 자리에서 아르웬을 안아들고 일어나.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으면서 엉거주춤하게 맞지않는 키높이로 마주서. 아름다운 공주님과 춤출수 있는 기회를. 전통의 방식으로 예의를 차리는 모습에 아르웬의 얼굴엔 흥분이 가득했어. 서툴지만 배운대로 답하고 맞잡은 고사리같은 손이 엘론드의 손을 꽉 부여잡아. 천천히 스텝을 밟으며 입으론 박자를 맞춰주는 엘론드. 자꾸 꼬여 발을 밟혔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부드럽게 리드해나가는 그런게 보고싶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둘, 둘. 셋. 천천히 박자에 맞추어 빙글빙글도는 아버지와 딸. 조금씩 자신감을 찾는 아르웬의 모습을 보며 뿌듯한 엘론드의 마음 한구석에 어릴적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을 맞잡고 엘로스와 자신에게 보여주셨던 춤사위를 떠올릴것 같다.

 

 

 

예지의 능력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왔을 것 같다. 소년은 청년이 되고 청년이 갓 성인이 될 무렵. 어두운 하늘에 핏빛 안개가 깔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엘론드는 아무것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저 불운의 전조일 뿐 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몇번이고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우연이라기에 현실은 너무도 잔혹하게 들어맞았다.  '그대의 시선이 먼 곳을 향하는군요.' 얼음과 같이 싸늘한 시선이 내리꽂히는 순간 엘론드는 부정했다. 고개를 가로저은 채,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것이 부질없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엘론드는 두고두고 그것을 후회했다.

시체가 쌓인 언덕. 갈기갈기 찢겨진 깃발. 푸른색의 망토. 익숙한 뒷모습. 확인하지 못한 얼굴에 실낱같은 희망을 건 채, 엘론드는 침묵했다. 가만히 입을 닫고 지옥과 같은 시간을 견뎠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해. 대왕께선 나와 함께 승리를 거머쥘 것이다.

'그대의 탓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벌하지 마세요.'

아닙니다 레이디. 그것은 제 탓 입니다.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띄며 엘론드는 답했다. 숲의 숙녀는 그저 조용히 바라보았다. 어리게만 보였던 반요정은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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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마에. 온기.

톨킨버스 2013. 11. 21. 00:53

사촌의 몸은 언제나 서늘했지만 나는 그 서늘함에도 어쩐지 온기를 느꼈다. 무심코 감겨오는 팔과 다리에 가만히 몸을 맡긴 채, 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밀어내도 밀릴 힘이 아니었고 지금은 몸을 비틀 힘조차 남아있질 않았다. 새까맣게 내려앉은 속눈썹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절로 숨이 막혔다. 평온했다. 조용했다. 여느때처럼 조용했지만 지금은 많이 달랐다. 나는 매달려있지 않았고, 혼자가 아니었다.
이제는 없어져 버린 오른손이 있던 자리가 아파왔다. 흠칫, 놀라며 무심코 맞잡은 곳에 비어버린 공간이 어색했다. 하나 둘 무뎌지면서 감정이 메마르고 신경마저 감각을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그것은 또 아닌 듯 했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적응하려 애썼다. 미미하게 이어지는 신경의 저림은 지금껏 겪어왔던 아픔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작았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는 꼴이 우스웠다. 살아남은 자신은 결국 패배자에 불과했다.

꿈속의 나는 여전히 그 곳에 있었다. 한쪽 팔이 끊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추위와 더위를 견뎠다. 타는듯한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 구차한 목숨이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끊없이 이어지는 산능선. 가파르게 깎아지른 절벽들. 에루께서 창조한 광활한 자연만이 주위에 있었다. 간혹 지나는 것은 어둠의 기운을 담고 주변을 정찰하던 새들. 매달려있던 나를 조롱이라도 하듯 한번씩 휘감고 지나가던 바람. 그 뿐이었다. 오로지 인내와 정신력으로 버텨야 하는 곳. 눈을 감아도 그려질 정도로 지긋지긋한 풍경. 철의 봉우리라는 이름에 걸맞는 무섭고도 두려운 곳에서 나는 나 자신을 비워야 했다. 한참을 그렇게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보면 어느샌가 커다란 손이 내게 다가왔다. 손목을 부러트릴 정도로 힘주어 잡아당기던 손이 사라지고 꽉 죄인 아픔에 헐떡이고 있으면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통증에 온몸이 잠식당했다. 잠긴 목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나오고 부르튼 입술이 하얗게 질리도록 이를 악물면 후둑 떨어지는 핏방울은 사촌의 얼굴에 비처럼 흩뿌려졌다. 오랜 시간동안 움직이지 못했던 몸이 무섭게 삐그덕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더듬거리며 맞잡은 곳에서 샘솟는 피는 나의 머리색보다 짙었다. 흔들리는 시야에는 늘 보던 풍경이 서서히 이그러졌다. 귓가에선 여전히 나를 비웃는 모르고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스며든 어둠의 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정신을 다잡고 나서야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겨우 귀에 들렸다. 마이티모 괜찮아. 울지마. 울지마.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주문이라도 되는 듯 나는 서서히 눈을 떴다. 억눌린 슬픔을 전하던 목소리가 귀에서 떠나질 않았다.

갑자기 커다란 손이 꿈에서처럼 비어버린 팔목을 매만졌다. 천천히 둥글리듯 상처부위를 다독이던 손은 그대로 나를 끌어당겨 품 안으로 가뒀다. 소스라치게 놀란 내가 잡힌곳을 비틀며 떨어지려고 했지만 몸은 주인의 의지를 거부했다. 파묻힌 꼴이 되어서야 끌어당기는 것을 멈춘 커다란 손이 다시금 팔목으로 향했고 나는 어금니를 악물어야 했다.

"...아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힘주어 고통을 참아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노곤함이 묻은 목소리. 잠결이라 낮게 깔린 저음의 목소리를 듣고나선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여전히 눈뜨지 않은 채로 상처부위를 매만지던 손은 눈물이 날 정도로 다정했다.

"금방 나을거야. 얼른 기운을 차려야지. 이제 정말 자자."

들릴 듯 말 듯 스며든 목소리.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는 손길. 맞닿은 이마의 열기까지. 마치 어릴적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잠을 청할 때 처럼 따스한 온기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이젠 진정으로 혼자가 아니란 것을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았다. 꿈보다는 잠이, 과거보다는 미래가 필요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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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백업. 길엘.

썰/뻘설정 2013. 11. 19. 01:27

기린님 말씀들으니까 트라우마 있는 엘론드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어르고 예뻐해주고 길러주고 입혀주고 사랑해줘서 겨우겨우 엘프(?) 만들어놨더니 나중에 전쟁나가서 한번 다친 길갈라드를 보며 트라우마 발동해서 되려 덜덜떨며 패닉에 빠지는 엘론드.
대왕은 아픈 티도 못내고 안쓰러운 마음에 괜찮아 하면서 엘론드 안아주는데 거짓말 하지말라고. 그렇게 말하고 떠날거잖아! 이러면서 되게 유아적인 언어구사력으로 돌아가서 부들부들 떠는데 거기서 충격먹는 대왕님도 좋을거 같다. 필사적이되서 서로를 부둥켜안으면서 진정하시키겠지. 엘론드 가까스로 재워서 진정하게 만들고 대왕님 쓰러져라 'ㅅ'... 담날 깨어나서 정신돌아온 엘론드가 헉 하고 깨서 그제서야 길갈라드한테 달려가는데 밤새 크게 앓다가 막 깬 대왕에게 눈물로 달려와서 발치에 엎드리는거 좋다.

한없이 울면서 소리도 못내고 쳐다보는 엘론드 머리를 겨우 쓰다듬으며 웃어보이는것도 참 좋아. 이제 정신이 들었느냐. 하는데 차마 말도 못하고 계속 울기만하고. 한참 그러다 진정한 모습에 농담처럼 이런 널 두고 내가 어딜 가느냐. 하는데 엘론드는 정말 정색하는 모습으로 어디 갈 생각 하지 마십시오. 제 곁에 계시란말입니다. 이러는데 길갈라드도 놀라고 엘론드 스스로도 놀랐으면 좋겠다. 엘론드가 되게 아이답지않게 제 의견표명도 안하고 일만하고 뭉뜽그리는 성격이라 그동안 좀 답답했는데 저리 말하고나서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흐르겠지. 한참을 서로 시선을 피하다가 겨우 길갈라드가 아무데도 가지 않으마. 라고 한마디 하고서야 엘론드도 농담처럼 다치지도 마십시오. 남은 일이 태산같이 많은데 다치면 그 일 제가 다 해야 하잖습니까. 하면서 두런두런 원상태로 돌아오는 관계 참 좋다. 그 뒤로도 특별한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고 그저 평소와 같을 뿐이지만 둘 사이에는 아주 조금의 진척이 있었겠지.

그리고 쥬금...ㅇ<-<

만약 저러고나서 길갈라드 사망후 정말 패닉에 빠져버린 엘론드는 밤새 울부짖으면 좋겠다. 물론 소리나지도 않게. 있는 물건 다 던지고 한없이 울어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이 되면 군사들을 소집하고 전략짜면 좋겠다. 정말 뭣에 홀린 것 처럼 넋이 나가서 유령처럼 군대를 제어하고 밤에는 절망에 몸부림치고 며칠내내 그러면 좋겠다. 그러다가 깨닫는거지. 이제 운다고 누군가 달려와 껴안아 주지 않는다는 걸. 그제서야 찢어진 깃발을 보면서 소리내서 울면 좋겠다. 정말 다들 들을만큼. 그치만 아무도 다가오지 않겠지. 그게 길갈라드를 추모하는 엘론드의 슬픔이라는것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다음날부터 평소의 눈빛으로 돌아오지만 이제는 길갈라드의 품에 있던 가신이 아닌 제법 군주의 태가나는 엘프로 보일 것 같다. 풍기는 분위기 또한 달라지겠지. 그토록 벗고싶어 노력했었지만 벗을 수 없었던 어린아이의 면은 그제서야 완전히 사라져버렸어. 에아렌딜과 엘윙의 아들. 반요정. 길갈라드의 가신. 린돈의 엘프. 모든 칭호들은 사라지고 그저 임라드리스의 엘론드. 리븐델의 현자. 엘론드 페레딜. 온전히 그 이름만이 남겠지.

 

길엘은 바운더리에 들어오는 커플이라고 생각해본적은 없는데 이쪽도 앵슷하기는 매한가지라서.. 또 괜찮나보다?
스란엘은 워낙 취향직격이고 파고 있는 노선 자체가 친우라는 말이 어울릴정도로 브로맨스 기믹으로 파고는 있는데 길엘은 조금 다른 노선으로 가족? 이라는 바운더리로 묶여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근친이란 이야기는 아니곸ㅋㅋㅋㅋ
지금은 둘다 어른이고 성인이지만 아직도 아이로만 보이는 엘론드와 여전히 멋진 대왕, 멋진 어른으로 생각되는 길갈라드가 서로를 보는 시선은 굉장히 따스했을 것 같다. 그것이 기믹이 섞이든 섞이지 않았든.

사실 마에드로스와 마글로르. 엘로스와 엘론드 이야기도 느지막히 풀어보고싶은데 진짜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몇번이고 짐덩이 취급을 받고 엄마와 헤어져서 갖은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온 엘론드랑 엘로스를 생각보다 애어른 취급하고 있었나보다. ㅍㄹ님과 ㄱㄹ님이 하시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또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았고 ㅎㅎ 애어른이라고 정의내리면 그아이가 어른이 되는게 아니었어. 그냥 애 일 뿐이지.

어쨌거나 보호자를 잃은 아이들. 적의 손을 빌릴 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 그 이후로도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시간은 꽤 오랜시간이 걸렸을 것이 분명한데 그나마 마음편하게 생각하려면 아이들이 그때는 철이없어서 길갈라드 휘하에서 때묻지않게 적응하고 그 안에서 어른으로 변모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단정지어버리는게 편할것 같다. 물론 애어른이라는 전제하에서는 마에드로스의 앞에서 스스로 몸을 던진 엘윙을 보는 순간 버림받고 상처받을까봐 불안함을 느끼고 그것을 숨기고 눈치빠르게 행동하는 영악함을 보였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랬던지 안그랬던지 길갈라드의 죽음 자체는 엘론드의 일생에 꽤나 큰 전환점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방향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옛날 마에드로스의 손을 잡아야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혼란을 느끼지 않았을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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