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란엘. 밤.

톨킨버스 2013. 10. 29. 00:30

막 씻고 안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이내 멈추었다. 고요해야 할 방 안에서 숨소리가 들려오자 절로 찌푸려지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엘론드는 안쪽으로 향했다. 곱게 개어진 이불이 있어야 할 자리엔 마치 주인이라도 되는 양 누군가가 잠들어 있었다.

"준비해드린 침실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응."
"그럼 다른 곳으로 바꾸어 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감겼다 떠진 눈에 촛점이 들어오자 새파란 눈동자가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또 무슨 변덕일까 싶어 한참 쳐다보면 굳게 닫혀있던 입술에 웃음이 서렸다. 고작 방이 춥다고 투정하며 소매를 잡아끄는 어린아이 같은 행동은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저녁때 무언갈 잘못 먹었나...

"그러니 이 방을 써야겠어."
"여긴 제 침실입니다만."
"알고 있어. 그러니 쓰겠다는 거야."
"....그럼 제가 다른 방으로 가죠."
"아니, 그대의 방인데 그런 폐를 끼칠 수는 없지."

손목을 붙잡아 끌어당기는 무게에 이끌려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조금씩 찌푸려지는 미간을 바라보며 웃는 모습은 여전히 얄미웠다. 왠일로 조용히 지나가는가 했더니만. 나오려는 한숨을 누른 엘론드는 조심히 잡힌 손묵을 빼내려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손님을 모시는데 불편함이 있다면 그것은 도리가 아니지요. 제가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손님이 원하는 것을 고려하는 편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원하는게 뭡니까."

개인적인 공간에서까지 입씨름을 하고 있자니 피곤해진 몸은 돌연 딱딱한 말을 내뱉었다. 반쯤은 진심이 섞여 기분이 상할 수도 있었지만 스란두일은 오히려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다 잡은 손목을 휙 당겨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무너진 몸이 그의 위로 기울어졌다.

"이게 무슨.."
"리븐델은 계곡이라 그런지 밤의 추위가 꽤나 견디기 힘들어."
"..어둠 숲의 날씨보다 배는 따듯할 것 같습니다만."
"그 곳의 추위는 이미 익숙해졌어. 춥고 어둡고 냉기가 흐르지. 하지만 이곳의 추위는 여간해선 익숙해지는 법이 없군."
"그냥 본론만 이야기하는게 어떨까요."
"같이 자자."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스란두일은 여전히 가늘게 뜬 눈으로 엘론드를 쳐다보았다. 어정쩡한 자세에 불편한 몸을 움직여 보았지만 이미 품안에 갇힌 몸은 빠져나올 곳을 찾지 못했다. 처음부터 이럴 거였으면 무슨 추위 핑계는..

"잠만 잘 겁니다."
"그럼 뭘 또 하게?"
".....놔 주십시오."
"정말 추운데 믿질 않으니 놓을수가 있나."
"알겠으니까 좀 놓으십시오. 불편합니다."
"진작 그렇게 말 하지."

웃으며 깍지 낀 손을 풀자 조심히 곁으로 돌아 눕는것을 확인한 스란두일이 이불을 끌어올렸다. 부러 등을 돌렸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다가와 허리를 껴안는 손길에 저도 모르게 엘론드는 파득 놀랐다. 목 뒤에 닿을 듯 말 퍼지는 숨소리에 긴장하면서도 좀 더 바짝 붙으려는 몸짓에 매섭게 손등을 내리쳤다. 작게 혀차는 소리와 함께 조금 떨어진 온기는 적당한 간격을 만들었다.

"내일 아침 일찍 방으로 돌아가세요. 쓸데없는 오해를 만드는 건 원치 않습니다."
"천하의 스란두일이 임라드리스의 현자와 밤새도록 술 한잔 하는것이 특이한 일은 아닐텐데 뭘 그리 신경을 써."
"제가 술을 먹지 않았으니까요."
"내일 아침 방을 나서기 전에 포도주라도 한잔 해야겠군. 완전범죄를 위해."
"....."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말고 어서 눈을 붙이도록 해. 정말 오늘은 잠만 잘거니까. 아 혹시 좀 아쉽다거나..."

저도 모르게 나가버린 팔꿈치가 정확히 목표물을 가격했는지 스란두일은 하던 말을 끝맺지 못한 채 몸을 웅크렸다. 한참을 낑낑거리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따스함이 등 뒤로 번졌다.

"하여간 성질은."
"돌아가기로 한 겁니다."
"알았어. 알았어."

아까보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스란두일이 엘론드의 목 뒤에 얼굴을 묻었다. 순식간에 닿았다 떨어진 입술은 작은 온기를 남겼지만 무어라 깨닫기도 전에 빠르게 사라지며 서늘한 기운을 남겼다.

"잘자. 엘론드."
"...안녕히 주무시길."

무어라 반응하지 못한 떨떠름한 답을 알아챈 작은 웃음이 닿은 곳을 통해 전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나눈 대화의 마지막이었다. 지그시 부여잡은 온기가 둘을 감쌌다. 가을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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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란엘. 잠.

톨킨버스 2013. 10. 28. 00:54

"그만 눈을 붙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방금 넘겼던 포도주의 뒤끝이 사라지기도 전에 친우라는 자는 저리도 무심한 이야기를 뱉어냈다. 픽 웃으며 늘어진 팔을 들어올린 채,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조곤조곤히 입을 열었다. 이 친구야. 난 아직 멀쩡해.
당치도 않는 말을 들었다는 듯, 엘론드의 입꼬리가 올라왔다. 어느새 또 가득 채워진 술이 잔 위에 넘실거렸다. 이 친구 오늘 아주 날 만도스의 전당으로 보내버릴 작정이군.
모른 척, 손을 가져다 대면 저도 모르게 눈썹이 희미하게 움직여댔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크게 웃었다. 스스로 주고도 못 미더워 하면 내가 어찌 마실까. 설핏설핏 이어지는 웃음소리가 조용히 방 안을 울렸다. 그러다 어깨를 부여잡는 손길에 고개가 들렸다.

"방으로 돌아가는게 좋을 것 같군. 스란두일."
"그럴까? 하긴 자네도 피곤할 때가 되었군."

비척비척 일어서 부축도 마다한 채, 발을 디뎠다. 어자피 조금만 가면 도착하는 곳이 이 몸의 목적지였다. 바깥으로 향하지 않는 발걸음에 엘론드는 선뜻 옆으로 다가왔지만 힘을 잃은 몸뚱이가 좀 더 빨랐다.

"왕이 누워 잠을 청한 곳은 예로부터 귀한 기운이 서린다는 소문이 있지."
"그 귀한 영광을 얻게되니 소신, 기쁨이 커서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전하."
"그렇겠지. 왕의 기운이란 본디 성스러우면서도 쉬이 얻을 수 없는 것이니까."
"부디 자리하신 그 곳 뿐만 아니라 다른 곳 여러군데에까지 영험한 기운을 내려주시면 좋겠습니다만."
"안타깝지만 오늘의 나는 이곳에서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내려놓았다. 눈을 붙이고 난 다음 이라면 모를까. 그대의 청은 조금 힘들지 싶구나."
"......."
"왜, 혹 내가 그대의 침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 불편한 것이냐?"

짐짓 근엄하게 물어오는 목소리에 엘론드는 한참을 곰곰히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모처럼의 하대에 장단맞추어 주기로 마음먹은 후 조심스레 대꾸했다. 생각해 보니 그다지 싫은 것은 없습니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라며 스란두일은 빙그레 웃었다.

"내가 그대에게 선물을 하나 하도록 하지."
"그리 무리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만."
"아니다. 무리하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내 그대에게 이 품을 허하겠다."
"예?"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엘론드의 표정을 생경하게 바라보던 스란두일은 그저 웃으며 팔을 벌렸다. 남의 침대 위에서 제자리마냥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며 엘론드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숲의 왕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몇번 자신의 곁을 톡톡 두드리고 난 뒤에 보란 듯 웃어보이는 모습은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몇 번을 진득하게 내려다보았지만 좀처럼 비킬 생각이 없어보이는 친우의 모습에 엘론드는 선선히 백기를 들고 말았다.

"은혜가 하해와 같사오나 소신, 그저 눈을 붙일 수 있는 공간만 필요할 뿐입니다."
"그대는 내가 특별히 아끼는 이인데 그리 홀대할 수는 없지. 개의치 말고 이리 오라니까."

몸을 일으켜 그저 우두커니 서있는 엘론드의 손을 잡아 채, 곁으로 이끌었다. 선선히 딸려오는 몸이 천천히 침대위로 무너져내렸다. 곁에 몸을 누이고 온기가 닿을 정도까지 가까워지고서야 스란두일은 뿌듯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좋은 꿈을 꿀거야. 분명."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입니다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요."
"내가 있는데 악몽을 꿀 리가 없어. 당연한 것을 믿지 못하는구나."
"그리 자신하십니까."
"물론."

자신만만한 눈빛 사이로 손가락이 다가와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가만히 지켜보는 시선이 간지럽다는 듯, 한번 움츠렸다 펴진 손끝은 슬금슬금 내려가 얌전하게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꾸욱 부여잡은 손가락 마디마디에 따스한 기운이 퍼졌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던 스란두일은 고개를 조금 올려 엘론드의 이마에 입술을 가볍게 눌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동그랗게 뜬 눈이 그에게로 향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그저 부여잡은 손아귀에 힘을 준 스란두일은 슬쩍 한쪽 눈을 찡긋 해 보였다. 되려 당당한 모습에 웃음이 터진 건 엘론드였다.

"그리도 좋아하니 내가 다 뿌듯하구나. 슬슬 노곤한 몸을 편히 쉬게 해도 좋을 듯 하니 먼저 잠드는 것을 허락하마. 눈을 감거라."

끝까지 가신을 일부러 재우는 왕의 모습으로 스란두일은 엘론드의 눈가를 덮었다. 순식간에 새카매진 시야에 웃음이 멈춘 엘론드는 잠시 망설이다 슬그머니 미소를 띄웠다.

"안녕히 주무십시요. 숲의 왕이시여."
"그대도 좋은 밤이 되길."

다정한 말들이 오가고 한참 후에야 어린아이들 처럼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란히 누운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단단하게 얽힌 손깍지에만 조금 힘이 들어갔을 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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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 합작 모집

끄적끄적 2013. 10. 22. 10:58

 
<<<톨킨 합작 모집>>>


작가 J.R.R. 톨킨의 세계관 그림 합작을 모집합니다.


**


[실마릴리온] [호빗]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에 대한 합작으로
톨킨 세계관의 정, 난쟁이, 인간, 용, 마이아, 발라, 오크까지 종족을 불문한 모든 캐릭터를 받습니다.



톨킨 합작이라고 했지만 대부분 영화상의 이미지이기 때문에
피터 잭슨의 영화 [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이미지 또한 포함됩니다!

그렇기에 이번 [호빗2]에 나오는 영화 오리지널 타우리엘 캐릭터에 대해서까지 신청 받도록 하겠습니다.




**


톨킨 세계관의 캐릭터가 무수히 많은 관계로 1인 2캐까지 가능합니다만
반드시 마감을 지켜주시겠다는 분들만 해주세요!


동일 캐릭터는 불가능!
모든 캐릭터에 대한 합작인만큼 중복 없이 신청가능합니다.


(더러 소설과 영화의 묘사가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예로 영화상 보로미르는 금발이지만 소설에서는 흑발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 대해서는 신청하시는 분의 선택으로, 어느쪽이든 상관 없지만
[영화 보로미르]와 [소설 보로미르]같이 따로 신청받지 않습니다. 무조건 캐릭터 중복 없이 진행됩니다. )



신청은 선착순입니다.



**



실마릴리온과 같이 소설로만 이루어져있는 이미지에 대한 경우는 주관적인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예를들어 A캐릭터에 대해 머리색이 불분명하게 나와있는 경우 어떤 색으로 칠하시는지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머리색 등이 나와있는 경우에는 공식 설정을 따라가주시길 바랍니다.)






***


신청 기간 : 10월 21일~31일

마감일은 미정이나 2~3달쯤으로 잡고있습니다.






<조건>

- 나이 중학생 3학년 이상

- 전신 컬러 CG(컴퓨터 그림) * 완성된 그림

- 포즈는 자유지만 과도한 하이,로우앵글은 받지 않습니다.

- 가로 800 세로 자유

- 확장자는 반드시 png나 psd로 해주시되 배경은 투명이어야 합니다.

- TS와 SD는 불가능합니다.

- 중복이 불가능한만큼 그리시는 옷과 시대는 자유입니다.
(만일 소린을 신청하실경우 과거 전쟁 때의 옷과 현재 여정에 입고 있는 옷은 자유 선택으로 합니다.)





원활한 편집을 위해 조건은 반드시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신청 양식>


[닉네임/신청 캐릭터명]


중복 신청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공개 덧글로 해주시길 바랍니다.

다른 질문사항에 대해선 안부글로 남겨주세요.

 



http://blog.naver.com/dmlqh1925/50181604403

 

 

그림이랑은 담 쌓은지 오래라 이런 좋은 기회가 생겼는데도 조마조마하게 손가락만 빨고 있네요!

위쪽 블로그로 들어가시면 신청 가능합니다! 존잘님들이 많이 와주시면 좋겠어요 ㅠㅠㅠㅠ
드디어 이쪽도 합작을 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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