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글로르. 밤.

톨킨버스 2013. 10. 20. 02:23

어미의 손길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먼지투성이가 되어버렸다. 추운 날씨를 따라 이동하는 군대 안에서 철저한 이방인 취급당하는 어린아이들에게 닿을 따스한 손길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나마 마글로르만이 바쁜 와중에 먼 눈으로 그들을 챙겼다. 마에드로스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모양새로 그들을 잊은 듯 했다. 순식간에 메말라버린 환경은 쌍둥이들을 체념하게 만들었고 적응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도리아스의 일원이 아닌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은 채 광야를 헤치는 떠돌이 일족이 되어버린 듯 보였다.

해가 저물 즈음.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야 마글로르는 자신의 막사로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손장난을 하다 들킨 모양으로 굳어버린 그들에게 모처럼 더운 물에 목욕도 하고 조금은 풍족한 저녁을 챙겨줄 수 있겠다며 유쾌하게 웃어보였지만 아이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법은 없었다. 어느샌가 익숙해진 조용함에 그는 크게 신경쓰는 내색 없이 먹을 것을 늘어놓고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작은 옷을 찾느라 등을 돌려 부산스레 몸을 움직였다. 그의 말대로 평소의 먹던 것보다는 조금은 나아진 형태의 음식을 마주한 아이들의 입가에 그제서야 약간의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들의 표정이 없어진 것은 환경 덕분이었지 성격 탓이 아니라는 걸 마글로르는 잘 알고 있었다. 여전히 떠들거나 서투르게 식기가 부딧히거나 하는 아이다운 행동은 없었지만 부드러워진 분위기를 감지한 그는 어린 쌍둥이가 맘 편하게 배를 채울 수 있도록 이미 찾은 옷들을 주물거리며 오랜시간 짐을 뒤적였다.

꽁꽁 싸매진 옷을 벗기고 나면 가느다랗고 통통한 몸 두개가 뽀얗게 피어났다. 광야의 먼지도 안쪽까지는 들어오지 않았을 테니 어찌보면 당연했다. 처음 보았을 때 보다 마른 몸들은 내심 안쓰러웠지만 그런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쓰기에는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엉성하게 땋여있던 머리를 풀어헤치고 조금은 뜨거운 물을 끼얹으며 거칠고 투박한 손바닥이 이곳 저곳을 문지르면 줄줄 땟국물이 빠졌다. 그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목욕통 안에서 좀체 나오려 하지않던 아이들은 결국 손발이 쪼글쪼글해지고 발갛게 열이 오르고 나서야 마글로르 손에 번쩍 들려 밖으로 꺼내졌다.
열오른 양 뺨이 사과처럼 붉었다. 수건으로 채 닦지 못한 물기를 닦고 잠옷을 입혀 나란히 앉히면 그제서야 제법 처음의 생기 넘쳤던 그 모습이 보였다. 나란히 등 돌려 앉은 아이들의 작은 어깨를 보며 마글로르는 머리를 말렸고 그새 나른해진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얼기설기 움켜잡고 조심스럽게 발장난을 했다.

느슨하게 머리를 땋고 이제는 완전히 식어버린 몸 위로 겉옷을 하나씩 덧입히며 마글로르는 잘 자라고 인사했다. 언젠가서부터 늘 그래왔듯 머리 위를 한번씩 쓰다듬고는 아이들이 잠자리로 들어가 모포를 덮는 것 까지 지켜보고 훅 입김을 불어 아른대는 촛불을 집어삼켰다. 겨우 반짝이던 모습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새까맣게 내려앉은 어둠이 사방을 채웠다. 막사가 비좁고 모자른 덕분에 아이들은 따로 머물 곳이 없었고 돌봐줄 만한 이도 없었기에 마글로르는 늘 자신의 막사로 아이들을 데려왔다. 자신 또한 모든 것이 서툴었지만 누군가를 위한 최소한의 속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사방이 고요해지면 다시 조심스레 부싯돌을 부딧혀 불을 피워올렸다. 아까보다는 조금 어두워진 불빛이 날름날름 혓바닥을 내밀며 사방을 밝혔다. 자연스럽게 향한 시선이 보이기라도 한 듯, 조금 짧게 덮인 모포의 틈새로 도톰한 발 두 쌍이 꼬물거리다 사라졌다. 내일이면 다시 자취를 감출 반짝임을 끈질기게 주시하던 마글로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괜시리 아이들의 모포를 추켜올려 주었다. 미세하게 달라진 숨소리가 귓가를 울렸지만 역시 못 들은 척, 제 자리로 돌아왔다. 내일은 조금 더 넉넉한 크기의 모포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피곤한 눈가를 문질렀다. 아이들은 잠을 자고 어른은 일을 해야지. 저 멀리 국경에서 들어온 보고서를 펼치며 나무 의자에 몸을 묻었다. 자신의 밤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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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www.youtube.com/watch?v=CouHTzy2sqE

2. http://www.youtube.com/watch?v=I2z-MbHENlg

3. http://www.youtube.com/watch?v=K969f8cABjY

 

9까지 있는데 걍 옆에 추천동영상 보시길... 귀..귀찮아...

 

와 근데 벌써 이렇게 ㅠㅠ 메이킹도 뜨고 ㅠㅠ 두근두근 ㅠㅠㅠㅠ
배우 코멘터리를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이렇게 소개해주는것 만으로도 엄청 흥미진진하네요 ㅎㅎ 세트장모습도 볼수있고 특히 엘론드느님이랑 갈라마님이랑 ㅠㅠㅠ 막 인간처럼 말하고 계셔 ㅠㅠㅠㅠㅠㅠㅠㅠ
싱기싱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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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입구에서 가까운 SF&판타지 도서관에서 반지의제왕 3부작 확장판 상영회를 개최하네요~

전 시간이 촉박해서 신청도 못할거 같지만 ㅠㅠㅠ 혹 관심 있으신분들은 신청해보시는게 좋을것 같아요: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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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SF&판타지 도서관입니다.


11월 02일(토) 반지의 제왕 확장판 블루레이 상영회를 진행합니다.

Lord of the Rings Motion Picture Trilogy.jpg

이번 상영회는 아침 9시부터 시작하여 1편마다 50분 정도의 휴식 시간을 두고 밤 10시까지 진행합니다.

식사는 컵라면, 컵스프, 빵 등을 준비할 예정이며, 휴식 시간이 넉넉하니 따로 나가서 드셔도 괜찮습니다.

반지의 제왕 확장판은 다 합쳐서 11시간 23분에 이르는 대작입니다. 그만큼 한번에 보는게 쉽지 않겠지만, 한번이라도 모아 보신 분은 압니다. "보길 잘했다."라고... 시리즈물. 특히나 처음부터 하나로 묶어서 만들어진 이런 작품은 한번에 보았을때 만족감이 몇 배가 되니까요.

휴식 중에는 반지의 제왕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실 수도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하는 중간계로의 여정...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상영 예정

반지 원정대 오전 09시 00분 ~ 오후 12시 28분 (3시간 28분)
휴식 약 50분
두개의 탑 오후 01시 20분 ~ 오후 05시 03분 (3시간 43분)
휴식 약 50분
왕의 귀환 오후 05시 50분 ~ 오후 10시 01분 (4시간 11분)


(* 상영 시간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참가자는 20분으로 제한합니다. 선착순으로 아래의 방법에 따라 신청해 주십시오.

참가하실 분들께서는 사전에 입금을 해 주셔야 합니다. 하루 전까지는 취소하실 때 환불해 드립니다.

* 참가 신청 방법

0. 아래의 계좌로 참가비를 입금해 주세요.

국민은행 401301 - 04 - 025487
예금주 : SF&판타지 도서관 (전홍식)

1. 여기에 비밀 댓글로 참가 신청서를 적어 주세요. 성함과 연락처, 입금자 이름이 필요합니다.
(댓글이 안 되면, 도서관 이메일, 전화로 연락주셔도 좋습니다.)
한번에 한분씩 신청하실 수 있으며, 2분 이상 신청하실 때는 2분 각각의 연락처를 남겨주셔야 합니다.

2. 도서관 연락처( 070-8102-5010 )나 도서관 이메일( sflib2008@gmail.com )로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3. 참가비 : 15,000 원 (간식, 음료, 요기거리 포함. )

4. 식비 : 따로 모을 예정입니다만, 도서관에서 같이 드실 분은 미리 알려주세요.


* 정기 회원, 이번 기수의 강좌 신청자는 3000원 할인됩니다.
* 12월에 생일이 있는 분들은 3,000원 할인됩니다.
* 반지의 제왕과 관련한 무언가를 가져오시거나 코스츔플레이를 하시면 할인될 수 있습니다. 가져오신 상품은 휴식 시간에 함께 돌려보며 이야기를 나누실 수 있습니다.
* 할인은 당일에 오셔서 확인해 주시면 현장에서 환불받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flib.com/27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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