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ple]

마치 내일은 날씨가 좋으니 사냥을 나가겠다는 가벼운 말투로 스란두일은 무서운 말들을 내뱉었다. 선연히 떨리는 눈동자를 감출 생각도 하지 않는 채 자신을 바라보는 엘론드를 가벼운 미소 하나로 받아내며 응수했다. 믿어지지 않는 눈으로 스란두일의 푸른색 눈동자를 바라보았지만, 엘론드에게 보이는 것은 .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그저 푸른색의 바다. 아니 하늘. 아무것도 없이 그저 끝없이 이어진 광활한 허무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의 미래는..

얼결에 뒤로 물러난 엘론드가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스란두일은 그저 침묵하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봤을 테지. 미래를. 확인했겠지. 나의 결심을. 가늘게 떨리는 어깨를 끈질기게 주시하던 눈동자는 탁자 위에 남겨진 잔으로 향했다. 스란두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서 반쯤 남아있던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말을 고르느라 메마른 목 안을 독한 술이 적시며 넘어가는 소리가 경쾌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넣은 후 그는 잔을 바꾸어 물을 채웠다. 마음의 무게라도 담긴 양, 무거워진 잔을 들고 스란두일은 아까의 자리로 돌아와 엘론드에게 조심스레 건넸다. 그의 손끝이 닿은 곳마다 얼음같이 차가운 냉기가 서렸다. 창문 틈 사이로 그러모았던 희미한 온기가 다시 사라지고 손끝이 시려왔다. 그 서슬에 눈을 뜬 엘론드는 마주하고 있는 얼굴에서 따스한 미소가 흘러나오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추위를 느꼈다.

"이제야 자아를 찾은 걸 축하해 주지 않을 텐가?"

"....당신은 끝까지 멋대로군요."

"알아. 하지만 어쩌겠나. 이것이 나 스란두일의 방식이다."

"같이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내가 그대와?"

갑작스러운 반문에 엘론드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럴 줄 알았다며 스란두일은 소리 내어 웃었다. 들고 있던 잔이 넘칠 정도로 침대가 움직이자 스란두일이 겨우 진정하고 잔을 빼앗아 테이블 위에 놓은 채, 엘론드의 곁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가 되어서야 스란두일은 사뭇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엘론드를 바라봤다.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입술이 아주 잠깐 멈추었다가 열렸다.

"아니 그럴 리 없어."

"......스란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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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초여름의 하늘은 푸르렀지만 그 밑에 펼쳐진 대지에서는 끔찍한 학살이 벌어졌다. 미친듯이 오크들을 베어나가는 칼날에 빛이 반사되어 무지개가 보였다. 서늘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저 멀리 올리폰트와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모르고스의 군사들이 보였다. 그들을 맞서려 선두에 선 군대는 놀랍게도 임라드리스의 군주와 머크우드의 군주였다.

창-챙!

화살이 두 엘프를 갈랐다. 적시에 떨어진 등이 다시 철컥 소리를 내며 맞붙었다. 마치 맞춘 것 처럼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갑옷은 튼튼하고 가벼운 듯 보였다. 미친듯이 베어나가며 경계하는 두 로드의 주변으로 정예병들이 오크들을 몰아세웠다. 피와 오물들이 튀었지만 엘프들의 머리칼에는 한점의 먼지도 묻어나지 않았다. 긴 흑발과 금발의 머리칼이 휘날리고 은색의 칼이 춤을 추며 적들을 베어나가는 그 순간, 머크우드의 군주 스란두일은 그의 하나뿐인 왕자를 소리높여 불렀다.

"레골라스---!"
"아다!"

저 멀리 어린 왕자가 고개를 들었다. 푸른 잎이라 불린 청년은 막 화살로 오크의 머리통을 쑤셨다가 빼낸 뒤였다. 왕의 부름을 받고 새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달렸다. 전통적인 놀도르와 신다르의 의식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경황이 없는 전투중이었지만 두 군주들의 주변에 놀도르와 신다르의 갑옷을 입은 엘프 둘이 각각의 군주들을 지켜보며 무언가를 적어내려가고 있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수의 오크를 처단했는지 그것이 기록의 쟁점이었다. 빠르게 숫자를 적어가며 서로의 군주에게 눈짓을 했다. 신다르의 왕자가 도달해 붉은색의 화살을 높이 올리는 그 순간까지 촉박하게 움직이던 펜은 작은 새소리가 들리자 동시에 멈추어버렸다. 고개를 들고 왕자에게 양피지를 건넨 엘프들은 소임을 마쳤다는 듯, 동시에 칼을 빼어들었고 빈틈을 노리던 오크들을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들아, 결과는?"

막 오크 두마리를 베어넘긴 스란두일이 고개를 돌려 레골라스를 쳐다보았다. 빠르게 눈으로 숫자를 세는 레골라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찰나의 시간 끝에 왕자의 입이 열렸다.

"신다르의 승입니다!"
"그럴 줄 알았다!"
"이건 음모야!"

활을 쏘다가 가까워진 오크를 넘어뜨리고 칼을 꽂은 엘론드가 억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금세 엘론드의 근처로 손을 내민 스란두일이 그를 일으켜세웠다. 가까워져 온 표정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억울하면 백년 뒤에 다시 와."
"칫."

뒤쪽에서 레골라스가 소리를 질렀다.

"의식 얼른 끝내야 할 것 같은데요! 저쪽에서 트롤이 옵니다!!"
"젠장, 약혼식도 못하게 하다니 매너가 없군."
"그런거 하고 싶지 않거든?"
"억울하면 백년 뒤에 다시보자니까?"

킬킬 웃으며 다시 칼을 휘둘렀다. 떨어진 등 뒤가 허전했다. 아들을 보며 눈짓을 하자 가까이에 퍼져있던 신다르의 군사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신다르의!!!!!!!!!!!!!!!!!!"
"나 스란두일은!!"

그러자 놀도르의 군사들이 화답했다.

"놀도르의!!!!!!!!!!!!!!!!!!"
"나 엘론드와."

볼멘소리로 엘론드가 대답하며 칼을 휘두르자 레골라스가 킥킥대며 웃었다. 빨리 진행하라는 무엇의 압박을 동시에 받고 금세 진지해진 레골라스가 소리를 높였다.

"혼인했음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붉은색의 화살을 허공으로 쏘아올렸다. 그것은 평범한 화살이 아니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살. 엘프의 활을 떠나자마자 점점 커지며 용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정확히 삼 초가 지난 뒤 큰 날개를 편 채 적들을 향해 위협적인 날개짓으로 향했다. 우왕좌왕한 적들이 삽시간에 허물어졌다. 근거리의 적들을 여전히 베어 넘기는 군주 둘을 보며 레골라스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부부의 증표요!!!!!!!!!!"
"젠장. 왜이렇게 근거리에 많아!!"

투덜거리면서도 떨어져 있던 스란두일과 엘론드가 성큼성큼 서로를 향해 다가섰다. 피에 젖을 것 같은 왼손을 허공에 털어낸 스란두일은 다가온 엘론드의 뒷머리를 부여잡은 채 진하게 키스했다. 강하지만 짧게 맞추었던 입술에서 피맛이 났다. 금세 떨어진 시선에서 많은 것들이 오갔다.

"다음에는 절대로. 내가 이길거야."
"기대하지요. 엘론드 부인."

큭큭대던 둘의 등이 다시 마주닿았다. 전투는 거진 마무리가 되었고 적들은 거의 허물어진 상태였. 하늘이 맑고 피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닿은 온기와 엄숙히 맺어진 혼인의 동맹. 신다르와 놀도르의 존속은 향후 백년간 굳건하게 이어질 터였기에 좋은 날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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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다 바뀌는 왕의 관은 늘 주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좋은가지를 골라 크고작은 열매들로 장식한 관이 머리위에 얹어질때면, 똑같은 관 하나는 그의 손에 들려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주인을 기다리며 소중하게 만들어진 왕관은 오늘로 꼭 일천개가 되었다.

 

 

-----------------------------------------------------------------------------------

 

 

"언제까지 방 안을 채우실 작정이십니까?"
"그대가 쓸데없는 질문을 할 때도 있군."

방금 막 완성한 관을 벽에 고정시킨 걸쇠에 걸어둔 채, 중심을 맞추려 이리저리 기울여보던 스란두일은 이내 손을 털고 물러섰다. 이전의 것과는 다르게 상큼한 붉은 색의 열매가 돋보였다. 따스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왕은 그제서야 곁에 있던 집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던 모습 사이로 아주 조금의 부드러움이 새어나오는 것을 눈치챈 갈리온이 못볼 것을 보았다는 눈으로 혀를 끌끌 차올렸다.

"그런 바보같은 표정을 하실 거라면 절 쳐다보지 마십시오."
"그래도 명색이 이나라의 왕인데 언사가 너무 심한것 아닌가?"
"이정도면 괜찮지요. 선왕이셨다면 좀더 거칠게 말씀하셨을 겁니다."
"내가 뭘 했다고.."
"그렇게 늙은 집사를 잡아먹을 것 처럼 바라보시는 분이 하시는 행동 치고는 참으로 소심하지 않습니까?"
"사내의 연정은 집사를 보는 것보다 훨씬 다정한 것이니까 말일세."
"쓸데없는 변명일랑은 집어 치우시고요. 차라리 자빠뜨리지 그러십니까."
"자네의 그 발언은 수많은 놀도르를 순식간에 적으로 만들 수도 있는 발언이야. 알고있나?"
"그 놀도르의 수장을 신다르로 만들면 해결 될 문제이지요."

늙은이의 말장난엔 못 당한다니까.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스란두일은 공들여 문양을 넣은 찬장의 문을 닫았다. 진심을 말해버린 입술에 혹하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자면 참으로 수많은 난관이 뒤따르는 법이었다. 제멋대로 손목을 잡아 끌어당겨 입을 맞추고 반항하는 몸을 묶어 강제로 취하면 이 열기가 사그러들 것이라고 되뇌었던 적이 과연 한번도 없었을까.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과 현실의 간극에서 고민하는것은 고작 몇 년으로 충분했다. 치기어린 감정에 충실한 인생을 보내기에 엘프의 인생은 너무나도 길었으니까.

"영양가 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방에 숨겨놓은 술이나 가져와봐."
"좋은 술은 왕의 창고에 그득이 쌓여있건만 어찌하여 불쌍한 늙은이의 조그마한 기쁨을 탈탈 털어가려 안달이십니까?"
"나의 창고에는 쓰레기만 가득하고 좋은 술은 그대의 방으로 따로 들어간다지. 그걸 모르는 머크우드의 엘프도 있던가?"
"하여간 말도 되지않는 누명을 씌우신다니까 .. 정말 서러워서 못살겠습니다. 늙으면 어서 서역으로 떠나버려야지.."
"떠나게 되면 이별의 선물로 큰 오크통으로 한개 실어주지. 그러니까 어서 가져와봐."
"두 통으로 해주십시오. 가는길이 너무 지루해서 그 전에 술이 떨어지면 곤란하니 말입니다."
"생각해보지."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를 보이는 스란두일을 쳐다보던 갈리온은 못마땅한 얼굴로 잔뜩 굽힌 허리를 두드려댔다. 날씨가 궂으려는지 허리가 아프다는 둥, 엊그제 좋은 토끼고기가 들어온 것 같은데 이 놈팽이들이 어디다 밖아두었을지 찾으러 가봐야겠다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방을 나서는 집사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왕은 문이 닫히고서야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닫아둔 찬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머리위에 얹은 관은 한없이 가벼웠지만 찬장 안에 걸려있는 관은 한없이 무거워보였다. 똑같은 한 쌍의 관이었음에도 그래보였다. 지고있는 의미가 달라서였을까.. 뭐 아무래도 괜찮았다. 당분간 관의 주인은 오지 못할 것 같으니 이곳에 잠시 놓아두면 된다 생각했다. 먼 훗날 주인이 도착해 무겁다 투정하면 새털같이 가벼운 관으로 새로 만들면 되는 터였다.

물끄럼히 바라보던 시선을 거둔 채, 스란두일은 방을 나섰다. 불러놓고 저보다 늦게 도착하면 늙은 집사는 또 중얼중얼 잔소리를 늘어놓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늘 밤은 그 잔소리를 벗삼아 술에 취하고 싶은 기분이라고 생각하며 답지않게 노랫소리를 흥얼거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노랫소리가 끊겼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 적막이 감돌았다. 모든것이 죽어 곱게 말라있는 공간에서 방금 걸어둔 화관만이 싱그럽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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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사흘째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설원이 바깥으로 펼쳐졌다. 멍하니 창가에 기대 밖을 내다보았다. 그새 온도는 더욱 내려가 창문에 김이 하얗게 서렸다. 가볍게 양쪽으로 목을 두어번 꺾어 소리를 낸 뒤 엘론드는 부엌으로 돌아갔다. 아까 내린 커피가 딱 좋은 향을 내뿜고 있었다. 머그에 가득 따른 후 침실로 돌아가 흐트러진 침대위에 가만히 앉아 홀짝이며 헛웃음을 지었다. 웃기지도 않은 신혼놀이였다. 학교에서 도망치듯 회피했던 자신을 따라와 가둔격이 아닌가. 어쩌면 납치라고 해도 좋을만큼 이 상황은 기묘했다. 그러나 더욱 이해가 안가는 것은 자신이었다. 능히 잡히지 않을수도, 이 상황에서 도망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조용히. 이곳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탁자에 컵을 올려두고 드러누워버렸다. 눈을 감자 소리들이 세상을 지배했다. 포슬하게 눈이 내리는 소리. 거실의 시계초침이 톡 톡 움직이는 소리. 나뭇결이 추위에 수축하며 다각다각 마르는 소리. 그리고 저 먼 곳 건너편의 욕실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세계가 닫히는 듯한 무겁고도 고요한 적막. 그 모든것들이 세상을 지배했다.

- 너무 무방비하게 자고 있는 거 아닌가?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눈꺼플이 떠졌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막 사워하고 나온 지긋지긋한 친우의 얼굴이었다. 젖어 앞으로 내려온 머리칼이 자꾸 흘러내리는지 손으로 연신 넘겨댄다. 살짝 찌푸리며 가볍게 밀어제쳤지만 외려 그는 나를 끌어당겨 품속으로 깊게 묻어버렸다.


- 머리라도 말리고 와. 젖는거 싫어.
- 그 김에 샤워라도 하는게 어때. 씻겨줄 용의도 있어.
- 사양하지. 오전에 했거든.


기어코 밀어낸 뒤 다시 일어났다. 그렇다고 갈곳도 할일도 없었다. 멍하니 그렇게 앉아있자 스란두일이 따라 일어나 목덜미에 가볍게 키스했다. 움찔 하며 몸을 떨어내자 뒤에서 웃는소리가 귓가로 울린다. 어색하다. 어색하면서 안심이 됐다. 우리가 이렇게 가까이 있어본 적이 있었던가. 생경하면서도 싫지않은 감각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은 이미 사흘을 그와 함께 보내지 않았는가. 이제와서 생각하기는 너무 늦은 주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엘론드는 슬그머니 다시 눈을 감았다. 못된손이 올라와 드문드문 잠긴 셔츠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따라올라와 손을 제지하려고 잡았지만 어느샌가 양손 모두 그의 손아귀에 잡혀있었다. 눈을 뜨고 그를 노려봤지만 그것을 무시하기라도 하는 듯, 평소 볼수없는 웃고있는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조여오는 손목과는 다른 맥이빠지게 선한 얼굴로 미소지으며 이마에 눈에 코에 키스한다. 부자연스럽게 꺽인 목과 잡힌 손목이 슬슬 아파와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에서 힘을 빼고 그에게 완연히 기대자 다시금 웃는소리가 들리며 몸이 뒤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옆으로 비껴누워 고개를 돌리면 짙은 호수같은 두 눈이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 도망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가는걸 추천할텐데.
-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 흠. 진심일까 아닐까. 자네는 어떤가. 진심인가 아닌가?
- 진심이라..


잠시 멍하니 시선 옆을 비껴 허공을 응시하자 귀신같이 알아챈 스란두일이 손을 올려 얼굴을 고정 시킨 뒤 입술을 마주댔다. 부드럽게 노크하듯 톡 톡 두들기고 입안쪽을 조심스럽게 침범했다.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진득하고 느릿하게 안을 헤집고 다니다 겨우 떨어져서는 다시 시선을 마주쳤다. 두개의 호수속에 누군가 들어오기라도 한 듯 고요한 파문이 일고있었다. 파문의 주인공이기라도 한 듯, 그 속에 내가 비춰졌다. 그를 멍하니 응시하자 스란두일은 관자놀이와 귓바퀴를 부드럽게 쓸어내며 다시한번 이마에 가볍게 입맞췄다.


- 상관없어. 진심이든 아니든 네가 지금 여기에 있는것이 더 중요해. 그걸로 됐어.
- 스란두일, 그러니까...
- 아무말도 하지마. 함께 있을 때는 그걸로 된거야. 엘론드 페레딜.


수학공식이라도 되는 양 제멋대로 정의내리는 스란두일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함께 있을 때는 그걸로 된거야. 마치 마법같다고 생각했다. 고작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놓였다. 평안해졌다. 손을 올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스란두일의 머리를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호수같은 눈이 감기고 입술이 열렸다. 세계는 고요했고 그곳에는 스란두일과 나. 두 사람밖에 없었다. 그걸로 이유는 충분했다. 나역시 눈을 감았고 그 순간 세계는 움직임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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