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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란엘. 어른이날.

2016. 5. 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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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이었다.

초여름이라고 칭하기엔 다소 빠른 날이고 늦봄이라고 말 하는 편이 차라리 좋을지도 모를 그런 애매한 날이었다. 작은 새들은 제 세상이라고 된 것 마냥 지저귀고 있었고 언제 깨났는지 모를 매미들까지 우는 소리가 화음처럼 귓가에 맴돌았지만 모처럼 어둠 숲 정원에까지 당도한 따사로운 햇살은 숲의 왕에게만은 환영받지 못했다.

 

더워.”

지금 것 까지 합하면 모두 32번 말씀하셨습니다.”

그걸 셀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한 신하가 내 궁에 있었다니, 당장 잘라버려야겠군.”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 드디어 왔군요. 부디 빠르게 처리해주시길.”

 

갈리온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도 대꾸할 기력이 나지 않은 스란두일은 책상에 그냥 엎드려버렸다. 크게 흐트러진 머리칼을 타고 화관이 툭, 나뒹굴었지만 재빨리 낚아챈 손은 아무렇지도 않게 곁에 내려두고선 들고 온 차를 준비했다.

 

더워서 뜨거운 차 싫다.”

그러실 줄 알고 냉침 해두었습니다.”

쓴 차를 차게 먹는다고 맛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테고.”

달게 만들어 두었으니 더 이상 투정부리지 마십시오. 이거 원 어린 왕자님도 안 부리시는 투정을 부리시고. 제가 노망이 나지 않으면 끝나지도 않을 것 같군요. “

그걸 알면서 돌아온 건 자네잖아?”

이제와선 살짝 후회가 듭니다. 늙어서 그런가.”

늙은이 주제에 어린이에게 이렇게 일을 시켜도 되는 거야?”

맞는 말이지만 일을 못할 정도로 어려 보이진 않으십니다. 게다가 모를 일 아닙니까? 착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려고 이 늙은이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지도요.”

그놈의 늙은이라는 말, 우리 아버지에게나 해.”

저보다 나이 많으신 분께는 안합니다. 전하께나 하는 거죠.”

이것 봐. 날 아주 우습게보고 있다니까?”

기력이 쇠하신 전하의 열을 끌어올려 기력이 돌게 만드는 것도 집사의 할 일이지요. 잠은 다 깨셨겠지요?”

 

의자에 바짝 일어나 앉아 노려보던 스란두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언제 절 사랑하시기라도 하셨던 것처럼 말씀 하십니다?”

얼씨구. 더 해봐?”

사양하지요. 전하께선 놀 시간도 없이 바쁘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다행히 이게 마지막 서류입니다.”

안도의 한숨이라고 쉬길 바랐던 거야? 척 보기에도 50개가 넘어 보이는데.”

이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노련하게 맞추시는군요.”

 

툴툴거리면서도 손을 뻗는 자리에 갈리온은 잔을 올렸다. 단단한 손끝이 유리잔에 맺힌 기포를 걷어내며 감기면 곧 그 시원하게 뻗은 목울대가 움직일 것이다. 몇 번 크게 넘기고 나서야 내려놓은 잔은 반절도 넘게 비어있었다. 어쨌거나 오늘은 정말로 일이 많은 편이기도 했다. 그리고 매우 덥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열기를 식히려 머리칼을 거칠게 넘긴 스란두일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뒤로 물러서는 갈리온에게 건성으로 끄덕이며 잠시 등을 기대 늘어졌다.

더웠다. 그리고 바빴다. 뭐 이리 불만들이 많고 해결해야 할 상황이 많은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게으름을 부린 적도 없었고 술을 마시고 늘어진 적도 별로 없던 것 같은데 유달리 오늘이 그랬다. 불만을 말할 자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정말 억울했다. 모처럼 같이 놀자 청해준 레골라스에게도 가지 못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 평소에는 혼자 놀아도 괜찮다며 날 거부하던 내 새끼가 오늘만큼은 함께 물놀이를 가자고 조근 조근 부탁을 해왔는데! 나는! 여기에서! 이렇게! 일에 파묻혀 죽고 있다니!

거친 손놀림으로 스란두일은 다시 잔을 잡고 남은 물을 들이켰다. 하지만 그대로 다시 내뿜었다. 저 고얀 노인네. 일부러 뜨거운 찻잔이랑 같이 놨어!

다행히 서류가 저 멀리 있어 변을 당하지 않았지만 옷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 버렸다. 주섬주섬 닦고 치우다 보니 열이 더 올랐다. 아 정말 덥다 진짜로.

하지만 딴 짓을 하며 늘어져 있는 것도 잠깐이었다. 눈앞의 서류는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앞으로 더 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제 주인이 일하다 죽는 꼴을 보기 싫다면 오늘은 더 이상 서류를 싸들고 들어오지는 않겠지.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잠깐 고개를 들었으나 스란두일은 자만해서는 안 되는 자리였다. 다시 정신을 다잡고 손에 깃펜을 들었다. 이미 해가 서녘으로 기울기 시작했으니 레골라스가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오기 직전까지는 일을 마쳐야 했다.

 

 

 

 

 

죽겠다. 정말.

아예 빛이라곤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며 스란두일은 간만의 패배감에 젖어있었다. 문장을 읽는 속도가 느린 것도 아니었는데 좀체 진척이 나질 않는 서류더미들은 더군다나 무겁기까지 했다. 두서없이 흐트러진 문장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인데 누가 쓴 거야? 어둠숲에 이렇게 교육 못 받은 오크처럼 지지부진한 문장과 논리적이지 못한 주장을 펼치면서 내 휘하에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엘프가 있다니. 참으로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로다. 라는 긴 한숨을 쉬며 짜증스레 서류를 던져버렸다. 몇 번 말하지만 오늘은 정말로 일이 많았다. 얼마나 많았냐면 일의 경중이 흐트러져 되는대로 몽땅 자신에게 일을 몰아주기 위해 올린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누구에게든 미를 수도 없고 언젠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란 사실은 더더욱 짜증을 부채질했다. 언젠간 해야 할 일인데 순서대로 차근차근 올려도 되잖아! 어린이날이라며! 자라나는 새싹들을 보듬어주는 날이라며! 우리 집에도 어린이가 있는데! 왜 지들은 놀고! 나는 일을 해야 하는 거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스란두일은 잠시 잊고 있던 금발의 꼬맹이가 생각이 났다. 산책을 갔다고 해도 벌써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저녁 시간이 되면 의례히 들어와 인사를 하던 아들 녀석이 들어오질 않으니 이렇게 짜증이 나고도 남는 거라며 지끈거리는 미간을 짚은 스란두일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숨을 멈추자 주변의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수상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다급한 움직임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저녁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서둘러 일의 마무리를 짓고 일을 보라는 갈리온의 배려 일 수도 있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면 진작 보고가 올라왔겠지.

이제는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차를 넘기며 스란두일은 아이가 잠들기 전 까지 방 안으로 도착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한참을 몰두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다운 가벼운 발걸음이 아닌 신중한 걸음이었다. 간단한 다과를 가져오는 갈리온이겠거니 싶어 스란두일은 눈가를 짓누르며 입을 열었다.

 

차 좀 더 내와. 밥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킬 거라면 목이라도 마르지 않게 하던가.”

 

의례히 툭 튀어나올법한 답 대신 큼큼거리며 웃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 노인네가 드디어 말도 안하고 비웃기 시작했구나 싶었지만 곧 차를 우려내는 소리가 들리자 스란두일은 바로 서류를 넘기며 시선을 고정시켰다. 거의 다 끝났는데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곧이어 소리 없이 잔이 내밀어졌다. 더듬거리던 손끝에 잔이 스치자 그대로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입술과 혀에 닿는 감각이 순식간에 목으로 넘어가 온 몸을 일깨웠다. 이전과는 조금 다른 단 맛에 스란두일이 미소를 머금으며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아까보다 맛이 좋은...?”

그런가?”

 

스란두일은 놀라 손에서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눈앞에서 웃고 있는 엘프는 지금 이 어둠숲에 어울리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수건으로 젖은 손을 닦으며 간단한 다과를 끌어 앞에 내려놓은 엘론드는 스란두일에게서 잔을 건네받고 새로 찻물을 따랐다.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못 올 곳에 온 건 아닐 텐데.”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란 걸 알잖아.”

어린이 날 이라서? 말 잘 듣는 어린아이에게 선물이나 줄까했지.”

말 잘 듣는 어린아이?”

오늘 하루 종일 일을 열심히 했다면서?”

?”

자기를 늙은이라 부르는 자가 귀띔해주더군. 일도 잘하고 말도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있으니 선물을 주러 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갈리온 이놈이..”

그래서, 선물은 맘에 드나요? 스란두일 어린이?”

 

쌉싸름한 과자조각을 들고 얼굴 앞으로 불쑥 내민 손가락이 또렷하게 보였다. 망설임도 없이 받아먹는 순간 스란두일은 모든 걸 깨달았다.

 

망할 늙은이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했구만.”

이제야 들켜버렸네.”

언제부터 이 재미없는 장난에 끼어 든 거야?”

한 달 전? 휴가를 잘 주지 않는 왕에게 화가 난 가신들이 복수할 기회를 찾고 있다며 조언을 구해왔었지. 그들의 노고에 도움이 되었다니 기분이 좋군.”

덕분에 난 아침부터 서류더미에 파묻혀 지내야 했다고.”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오래전부터 내내 이를 악물고 준비한 모양이더군. 덕분에 리븐델에서도 일손이 줄었지. 묘하게 대외적인 정세 쪽 문제가 많지 않던가? 예를 들면..”

돌 굴두르도 그대의 작품이었어?”

맞았어! 수상한 냄새가 난다는 소식이 드문드문 들려왔으나 아직 명확하게 판단할 정도는 아니었지. 게다가 머크우드의 관할이니 우리 쪽에서 손 댈 수 없는 게 당연해. 공조를 요청하는 것이 먼저겠지만 독자적으로 이곳에서 손을 대 준다면 더 할 나위 없이 깔끔해지지.”

덕분에 아침부터 일에 시달려 죽어가는 건 나였단 말이겠고?”

그래서 모두가 행복해졌잖아?”

나와 내 아들은 행복하지 않은 것 같은데.”

레골라스라면 리븐델에서 신이나 뛰어놀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

 

품속에서 레골라스의 문장이 박힌 편지봉투를 꺼내 건네자 스란두일은 황급히 잔을 내려두고 편지를 받아 읽어 내렸다.

 

[제 휘하의 기사들과 함께 리븐델로 휴양을 갑니다. 물놀이는 다음에 같이 가요. 그린리프.]

 

완벽하게 당했어. 아주 천진하게 자신을 비웃는 아들 녀석의 샐쭉한 눈웃음이 그려지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질 좋은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에 엘론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종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이가 주변에 있을 줄이야.”

자네의 소중한 아르웬이 한 마디 말도 없이 같은 내용으로 어둠숲으로 향했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나?”

...기분이 나쁘겠지.”

동감이야.”

 

그래도 귀한 아들놈이 써준 편지를 구겨버릴수야 없지. 탁탁 소리를 내며 편지를 반듯하게 접은 스란두일은 책상 서랍 안으로 조심히 밀어 넣었다. 멀뚱하게 바라보고 있던 엘론드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감돌았다.

 

그래서 말이야. 아직 나머지 답은 못 들은 것 같은데.”

나머지 답?”

나 말이야. . 아들놈은 간만에 또래 녀석들 만나서 노느라 즐겁고 행복해졌다 치고. 나는 행복하지 않단 말이야.”

지금 불행한가?”

어때보여?”

 

잠자코 과자를 집어먹으며 차를 들이킨 스란두일은 무심한 눈으로 엘론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 시선이 닿은 곳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돌리자마자 입술이 보이는 건 반칙이지. 어휴.. 채 삼키지 못한 입안을 정리한 스란두일이 기꺼이 그 입술을 환대하며 달려들었다. 느릿하게 얽히는 혀끝에서 단 설탕과자 맛이 감돌았다.

 

좋아 보이는데?”

정답이야.”

 

내가졌다. 아주. 오늘 완벽히 졌어. 두 손을 들어 올린 스란두일이 그대로 엘론드를 끌어안았다. 일은 거의 다 마쳤으니 조금은 늑장 부려도 괜찮겠지. 그대로 다시 겹쳐진 입술이 달고 따듯했다. 더운 날이었는데 이젠 좀 미지근해 진 것 도 같았다. 하루 계획이 엉망진창이 되고 아들놈은 도망갔지만 더 없이 훌륭한 마무리였다. 어린이날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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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에 텁텁하게 놀아나는 액체를 혀끝으로 굴리며 펜골로드는 탁자의 끝을 톡 톡 쳐내려갔다. 톡, 한번 쳐 낼때 목에서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미량의 액체.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입안에선 묵직한 단 내음과 함께 씁쓸한 뒷맛이 남았다. 그러면 또 한번 손은 잔을 지척으로 밀어냈고 기다렸다는 듯, 다시 채워진 포도주의 향기가 주변을 맴돌았다.

"이 이상은 무리에요. 여기까지가 제 한계라서요."
"한계까지 스스로 기억하고 있는건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말이지요."
"조금 실수한다고 해서 책 잡을 이가 없을텐데."
"당신에게 책 잡히는 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조금은 불쾌한 표정으로 내밀어진 잔을 외면한 펜골로드가 의자에 늘어지듯 기대앉았다. 포도의 향과 질을 따져 세분화하고 우량품종을 골라내어 보다 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작업을 도와줄 수 있냐는 그럴듯한 둘러댐을 믿은 내가 바보였지. 한창 달콤한 말로 구슬려 입 안으로 사라진 수많은 포도주들을 떠올리며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슬슬 올라오는 취기에 눈 앞이 흔들리고 있었다.

"뭐가 그리 두려워서. 죄라도 지었나?"

사람좋게 웃어 보이며 장난을 거는 입술이 요요하게 빛났다. 취기가 돌고 있는 와중에서도 그것이 참으로 얄미워보여 펜골로드는 차라리 그 얼굴을 외면하며 탁자 위의 청포도로 손을 뻗었다. 포도주에 청포도라니, 대체 어디로 붙어먹은 센스야.
말없이 포도알을 집어먹는 펜골로드를 보며 엑셀리온은 밀쳐진 잔을 대신 감아쥐었다. 우아하게 꺾인 손목을 따라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펜골로드의 시선이 올라간다. 움직이는 목울대, 도도하게 올라간 턱선. 그 잔이 맞닿아 비틀린 입술. 홀리기라도 한 것 처럼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 살풋 감긴 눈가까지. 모른 척 하기에는 아주 도가 트신 분이라고 한 마디 내뱉어주고픈 욕망을 억누른 채, 펜골로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무릎이 속절없이 무너진 건 한 순간이었다

"당신 짐승같아요."
"뜬금없이 실례되는 말을 하는군."
"아니라고 말 할 건가요?"
"그런 건 아니지만."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지요?"
"그대는 모르고 있었나?"
"그건 아니지만."

싫은 듯 일그러진 눈썹과 답지않게 조금 늘어지는 말투. 그러나 단단히 붙잡은 손을 놓지는 않았다. 그의 말대로 이미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으니까.

"많이 취했어."
"그 말대로에요. 걷지도 못할 정도죠."
"침실까지 부축해줘야겠는데?"
"속 시커먼 짐승의 부축을 받아도 좋은지 헷갈리네요."
"친애하는 선생님의 안전을 위하는 순수한 마음을 오해하면 쓰나."

말과는 달리 이미 몸을 붙잡아 일으키던 손끝이 펜골로드의 가슴께에 닿았다. 낯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쿵쾅거리는 속삭임을 모두 듣고 있다는 것 처럼 엑셀리온은 그 요란한 대지를 쓰다듬어 달랬다. 입술은 여전히 솔직할 수 없어도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지. 슬핏 웃어보인 엑셀리온이 고개를 숙여 짧게 이마에 입을 맞췄다.

"선생님께서는 오늘 자신의 침실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부르짖는 중이군. 잘 들었어."
"당신은 늘 무언가를 곡해하는 버릇이 있어요. 어떻게 그리도 자기중심적인거죠?"
"칭찬은 언제 들어도 즐거운 법이지. 고마워?"
"저기요. 내 말 좀 들어줄래요. 귀머거리씨?"
"그 이상은 침실에서 듣는 편이 좋겠군. 밤 공기는 차고 당신은 취했으니까."

다시금 맥없이 고꾸라지는 다리마저 안아들어 그 어깨위로 올려둔 기사님은 성큼성큼 테라스를 나섰다. 뭐 하는 짓이냐며 분노를 내뿜는 몸뚱이를 진정시키느라 그 깡마르고 단단한 엉덩이를 몇번이고 도닥여주었다는 것. 그러자 거짓말같이 움직이던 몸이 얌전해졌었다는 것은 아마도 별빛만이 알고 있을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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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깃든 집무실에서 마악 떨어진 그림자가 달빛에 길게 늘어졌다. 한참 침실로 향하던 걸음걸음이 문득 멈추어졌고 그림자의 주인은 그대로 고개를 틀어 창가에 늘어진 또다른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난간에 걸터앉아 이 쪽을 주시하고 있는 금발의 사내는 여느때와 같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랫만이야."
"오랫만이라기엔 너무도 태평한 얼굴이군."
"그럼 감격해서 울기라도 할까봐서?"
"적어도 해가 떴을 때,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서 들어올 순 없어?"
"숲은 밤과 낮이 늘 다르지 않아. 같을 때도 있지. 내가 살고있는 곳에서 낮이라 생각했기에 말을 달린 것 뿐이야. 네가 있는 곳의 사정까지 돌아봐야 하나?"
"그만그만, 거기까지."

입씨름에서는 늘 지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있는 엘론드가 아무런 거리낌없이 허울뿐인 창을 열어제쳤다. 허락받지 않은 불청객이었으나 이러는 경우가 한 두번 이던가. 다음날이면 여지없이 임라드리스가 뒤집어지겠지만 어쨌거나 생경한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가 이런 시각에 찾아오는 이유는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엘론드는 알고 있었다. 가벼운 움직임으로 단숨에 복도 안쪽까지 들어온 침입자는 어깨를 나란히 하지도 않은 채 자연스럽게 앞장서 엘론드의 침실로 향했다.

그는 성급하게 구는 법이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먼저 침대 옆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양껏 품 안에 들고 온 서류를 차곡차곡 책상위에 올려두고 땋인 머리를 하나씩 풀어 몸 정리까지 마치고 나서야 침의로 갈아입은 엘론드는 사내가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왔다. 끌신을 벗어 가지런히 놓고 침대 위로 올라올때까지 금발의 사내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그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완전히 올라와 자리를 잡고나서야 매섭게 쫒아다니던 눈동자가 크게 확장되었다. 달빛이 훤하게 비추는 침실. 그 빛에 반사되어 투명하게 빛나는 머리칼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흐트러졌다. 어느순간 엘론드는 짓눌려있었고 뜨겁게 열기를 품은 손 끝이 어깨를 틀어쥐고 있는 것을 느꼈다.

"밤은 길어."
"길지 않아."
"스란두일."
"엘론드. 나를 사랑해?"

순간 말문이 막혀 답하질 못했다. 후두둑 쏟아져 빛을 차단한 머리카락이 귀와 목을 간질여댔다. 그보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강렬했다. 너를 사랑하냐고? 스란두일 너를?

"..사랑해."

조금 더듬거리긴 했어도 나는 분명하게 말 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이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면 뭐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나는 그를 사랑하기에 그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도 나와 어울렸던 거였을텐데...?

"아니, 넌 날 사랑하지 않아."

텅 비어버린 천장이 보였을 때, 제일 처음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 보다는 아픔이었다. 어깨를 틀어쥔 손끝이 갈고리처럼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고통에 비틀린 몸뚱이가 더듬거리며 올라와 어깨를 쥐어 뜯었다. 그러나 의외로 순순히 떼어진 손가락은 다시 그 안에서 도망쳐버렸다.

"증명해볼까?"
"스란두일!"

잔뜩 일그러져 굳은 얼굴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거야. 어째서.

스란두일은 천천히 자신의 옷을 흐트러뜨렸다. 다리 사이에 엘론드를 가둔 채 스스로 옷을 벗어 던지며 스스로 환한 빛이 된 몸뚱이가 눈 앞에 있었다. 그 빛무리가 늘어져 손 끝에 머물렀고 그 끝은 천천히 엘론드의 침의로 향했다. 손쉽게 풀어낸 허리끈에 엘론드의 옷 또한 흐트러졌다. 가만히 눈을 떠 스란두일을 바라보던 진갈색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가리워졌다.

흠칫, 놀라며 손을 뻗어보았으나 노련한 숲요정의 손놀림은 무방비상태의 시야를 차단하는데에 성공했다. 그다지 단단히 묶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엘론드는 함부로 그 위에 손을 올릴 수 없었다. 보이지 않아 허벅지에 닿은 무게가 한결 생생하게 느껴졌다. 더듬거리며 뭔가 말을 해보려 노력했지만 순식간에 닿아오는 타인의 입술에 엘론드는 그저 얌전히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느긋하던 입맞춤과는 다른, 조금은 급히 몰아붙이는 템포에 헐떡이며 몸을 틀었다. 익숙한 체향과 손길에 길들여진 몸은 이내 쉽게 풀어졌고 여즉 그래왔던 것 처럼 엘론드는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눈을 가리웠다고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늘 그랬듯, 스란두일은 입맞춤을 하고 난 뒤 버릇처럼 코나 턱 끝을 물 것이고 허리를 감아 끌어당길 것이라는 걸 엘론드는 알았다. 그러나 조금, 아주 조금 불안했다. 빛도 들지 않게 캄캄해진 앞. 고작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이토록 불안해질수도 있구나. 조급한 마음에 엘론드는 먼저 팔을 뻗어 그의 허리를 감아 올렸다.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한 입술이 급하게 떼어져 바깥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엘론드는 그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엘론드."

....이름이었다. 늘 자신을 부르던 이름. 이름 일 뿐이었다. 그런데...

"엘론드?"

굳어버린 몸을 알아차렸을 터였다. 그러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닿아오는 머리칼 한올한올이 온 몸을 자극했다. 소름이 돋았다. 덜덜 떨리는 손 끝이 부여잡은 허리를 옭아맸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얼굴. 그리고 입술. 귓가에 속삭여지는 평소보다 조금 낮은 목소리. 다시 한번.

"엘론드야."

황급히 그 품에서 빠져나왔다. 차마 눈 앞을 볼 자신도 없었다. 얼굴을 감싸올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던 몸이 그대로 끌어안겼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 이었다. 웅크린 채로 몸부림채며 엘론드는 그 품에서 벗어나길 희망했다. 그러나 안대는 벗길 수 없었다. 울컥울컥 젖어드는 눈가에 덩달아 얇은 허리띠도 얼룩졌다. 뒷머리에 닿아오는 뜨겁고 커다란 손이 너무도 서러웠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긴."

거짓말은 하면 못 써. 스란두일은 꽤 낮은 목소리로 엘론드를 힐난했다. 힐난. 그래 힐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정도로 엘론드는 비참해졌다. 그러나 그 비참함을 토로할 곳이 없었다. 느긋하게 닿아온 하체가 얽혀 부벼졌고 생리적인 감각에 엘론드는 신음했다. 품에 안겨 신음을 뱉고 어깨와 정수리에 닿은 입술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다리가 벌어지며 찬바람이 들고, 그 은밀한 곳에 닿는 손 끝이 너무도 생경하게 와 닿았다. 더더욱 무서워진 몸이 처음으로 진입을 막아섰다. 도리질치며 벌어진 입술에 스란두일은 되려 키스했다. 두터운 혀가 부드럽게 움직이는 놀림을 따라가지도 못할 정도로 엘론드는 겁에 질려 있었다.

"지금이라도 진실을 말해봐.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완전히 낮아진 목소리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엘론드는 도리질쳤다. 스란두일은 나를 사랑했고 나도 역시 스란두일을 사랑했다. 적어도.. 적어도 그 마음만은 진짜인데...

"스란두일..."
"....."
"스란두일. 제발."

침묵하는 몸. 스산한 바람소리가 귓가를 훑고 지나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엉거주춤하게 몸을 안아든 온기만이 자신을 향해 부르짖고 있었다. 보이지 않아서, 들리고 느낄수만 있어서 온전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대체 눈 앞에 있는 몸이 누구의 것이길 바라고 있는가.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띄엄띄엄 내뱉어진 말이 끝나자마자 안대가 벗겨졌다. 후둑 떨어진 고여있던 눈물이 툭 툭 흘러내렸다. 새파랗게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눈. 그리고 그 속에 가두어진 나. 엘론드는 반사적으로 그를 끌어 안고 얼굴을 묻었다. 마주칠 자신이 없었다. 무슨 낯으로 내가, 널. 그런 눈으로.

"고개 숙이지 마."
"....."
"네가 누군가를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는 건 상관없어. 그건 오로지 네 맘이야. 하지만 내 눈을 피하지는 마. 적어도 넌 내가 그 마음에 들어갈 수 있게 문은 열어두었으면 해. 그게 내가 네게 바라는 단 한가지야."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몰라."
"상관없어. 그 녀석도 단숨에 들어가지 못했다는거 알고 있어."

깊숙히 끌어안은 품 안에서 익숙한 살내음이 났다. 왈칵 눈물이 돌아 어깨 위를 적셨다. 그제서야 내가 그와 함께 밤을 보냈을 때, 어떤 눈으로 쳐다보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는데..

"당연히 오래 걸릴 일이야. 요정은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때로는 그 기억이 평생을 괴롭힐 수도 있어. 아직은 이 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걸."
"그게 전부는 아니야. 나는..!"
"알아. 알고 있어. 그렇지만 네가 노력하는 만큼 나는 더 조급해져. 하루라도 빨리 널 온전히 갖고 싶어. 네 시선에서 나와 다른 녀석이 번갈아 보이는 걸 더 이상은 보고싶지 않아."
"........"
"질투해서 미안해. 재촉해서 더 미안해. 그렇지만... 그만큼 널 더 사랑해."

슬쩍 밀쳐져 마주한 얼굴이 엉망이었다. 잔뜩 젖어버린 금빛 속눈썹이 몇 번 무겁게 깜빡였다.

"사랑해 엘론드."
".........ㄴ.."
"대답하지 않아도 돼. 지금은."

천천히 다가온 입술이 부드럽게 맞닿아 엘론드를 물었다 놓았다.

"나중에, 나중에 온전한 대답을 들려줘."

겹친 코끝을 부비며 감았다 뜬 눈의 푸른 호수가 파도치듯 흔들렸다. 그 파도에 슬쩍 밀려났던 것처럼 엘론드가 황급히 다가와 스란두일을 부여잡았다. 한숨처럼 뱉어진 신음. 다시금 엉킨 다리. 평소와는 다를게 없는 그 와의 밤이었지만 엘론드는 어쩐지 눈을 감지 못했다. 찰나의 순간에 눈을 덮은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별빛이 보일까봐서. 그래서 눈 앞에서 찬란히 빛나는 태양이 가리워질까봐서. 줄줄 눈물을 흘리면서도 차마 눈을 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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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대령하라!"

두터운 문이 열렸고 제 발로 바닥을 내딛어 걷기도 전에 병사들은 죄인의 목에 매인 줄을 잡아당겨 그들의 주군에게로 향했다. 넘어질 듯, 위태위태한 발걸음을 옮기며 겨우 중심을 잡던 남자는 안대가 풀어지는 감촉에 짧은 신음을 뱉었다. 갑자기 밝아진 시야가 익숙하지 않은지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던 남자는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미묘하게 변했다. 화려하고도 높이 솟아오른 단 위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물러가라, 직접 심문할 것이야."

목줄을 바닥에 연결해 고정시킨 병사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밖으로 향했고, 금침위에 비스듬히 누워 사내를 바라보던 이는 그 얼굴 위에 미소를 올렸다.

"좀 더 멀리 가셨어야지요."
"....."
"고작 백리도 벗어나지 못했으면서 다시는 나를 보지 않겠다 단언하신겁니까?"

아직 어린 태를 벗지 못한 목소리가 쟁쟁거리며 홀 안을 울렸다. 공작의 깃털로 만든 화려한 부채가 부드럽게 흔들리다 멈추었다. 왕의 분노를 알아챈 것일까. 시녀들도 하나 둘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작은 덧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왕의 몸이 일으켜졌다. 희고 고운 발이 비단 끌신 위에 내려앉았고 자연스레 흘러내린 겉옷이 왕의 걸음걸음마다 자취를 남겼다. 정복이 아닌 침실용의 가운을 걸친 왕이 조금씩 다가올 때 마다 사내는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바닥에 고정된 목줄이 팽팽해질 때 까지 물러난 사내의 코 앞에 오고나서야 왕은 그 걸음을 멈추었다. 이미 훌쩍 사내의 키를 넘어버린 왕은 그를 내려다보기에 충분했으나 부러 허리를 굽혀 눈을 맞추었고 드디어 왕은 그토록 염원했던 이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랫만입니다. 마글로르. 아니 카노."
".....엘로스."

쇠를 긁는 것 처럼 거칠고 지저분한 목소리가 입술을 거쳐 밖으로 새어나오는 순간, 사내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온 몸이 결박당하고 목줄마저 채워진 사내는 바닥에 웅크려 고통을 감내했다. 벌겋게 부풀어오른 뺨을 감싸지도 못해 차가운 바닥에 문질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왕은 가만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 나라에서 감히 짐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른 자. 누구도 나를 내려다볼 수는 없어요. 당신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니, 사실은 더 엄격해야만 하는 상대가 아닙니까 당신은."

오만하게도 일국의 왕자들을 납치했던 죄인 주제에. 피식 피식 웃으며 내뱉기에 적당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왕은 퍽 즐거워보였다. 이제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 그 몸뚱이를 밀쳐 그 흐트러진 얼굴을 드러냈다. 눈을 감지도 않은 채, 그 손에 이끌려 마주한 표정은 이미 조금 전보다 나빠져 있었다. 잡아먹히는 자와 잡아먹으려는 포식자의 관계. 독한 말을 내뱉은 이 치고는 상냥한 손끝이 그 얼굴을 가볍게 쓸어올렸고 그 손길을 피하려 노력하는 남자의 눈은 떨리고 있었다.

"너무 어리석었어요. 나를 보러 오지 않았더라면 그대는 영원히 발견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당신은 너무도 착해요. 주제를 모르고 착해 빠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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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엘쌍. 밤

톨킨버스 2015. 7. 2. 23:20

"엘론드야."

반요정이라고 해서 보통요정들보다 덜 들리는것이 아니라고 수십번 이야기했건만 길갈라드는 늘 엘론드의 창 밑에서 평소보다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곤 했다.

"네. 잘 들립니다. 대왕."

하도 고쳐지질 않는 터라 한번은 밖으로 나서지 않아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을 숨기랴. 낮보다 밤의 소리를 더 또렷히 듣는 요정.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덕에 더욱 더 예민해진 오감. 남들보다 배는 뛰어난 감각을 소유한 왕께서는 엘론드가 방 어느 곳에 숨어 있는지, 살금살금 소리를 죽이며 걷고 있는지, 따위를 즐거이 느끼며 더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댔었다.

"지친 이들의 휴식에 방해가 됩니다."
"허나 단잠에 취하기에는 아직 이른시간이란다. 그리고 별들이 쏟아지는 저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이 더 손해같은데?"

이렇게 들은척도 안하고 웃어보이는 왕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지. 엘론드는 의례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확인하고선 시선을 내리깔았다.

"내려갈까요?"

이불로 크게 몸을 감싼 엘론드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그의 주군을 바라보았다. 톡톡 끊어지는 목소리와 아직 졸음이 몰려와 어쩔줄을 모르는 눈꺼플. 깜빡이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써보고는 있지만 엘론드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표정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노곤함에 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손만 주렴."

익숙하다는 듯, 엘론드는 테라스에 몸을 기울여 손을 뻗었다. 제대로 갈무리되지 못한 이불뭉치가 바닥에 질질 끌려왔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듯, 쭉 뻗은 팔은 왕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 투박한 손이 그 팔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뭔가요?"
"토끼풀이란다."

간질간질한 감각이 손끝부터 타고 올라와 팔 전체에 퍼져나갔다. 이제는 익숙한 흔들거림에 엘론드는 제 손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얌전히 자리에 기대 앉았다. 밤은 깊었고 모두가 잠이 들었는데 왕께서는 여지없이 소꿉놀이중이시구나. 잠시 눈을 붙인다고 해서 혼을 내실것 같지는 않으니까. 흘끗 바라본 손목에선 부지런히 흰 꽃들이 엮어지고 있었고 한참 그것을 바라보다 잠이 든 엘론드의 머리칼이 넘실 불어온 밤바람에 부산스럽게 흩어졌다.

반쯤 엮어온 팔찌를 엘론드 손목에 맞추어 조절하고 매듭까지 끝낸 길갈라드는 고개를 들기도 전에 살랑이는 머리칼을 보고 또 잠이 들었다며 애석해 했다. 오늘은 좀 봐주지. 예쁘게 잘 되었는데.
퉁명스럽게 올려다보다가도 곱게 잠이 든 모습을 보면 또 기분이 좋았다. 잘 어울리는구나.

훌쩍, 난간을 받침 삼아 뛰어오른 몸이 가볍게 테라스에 안착했다. 얌전히 늘어진 아이를 들어 안으면 살풋 떠진 눈동자에는 푸른 별이 떠 있다 금새 사라지곤 했다. 잠결에 품을 파고드는 온기를 도닥이면서 방 안으로 들어서면 침대 한 구석에 오도카니 앉은 인영이 보였다.

"그러니까 아침에 주시면 되잖아요."
"새벽이슬이 닿으면 꽃이 더 예뻐지니까 꺾기 미안해지잖니."
"어자피 꺾일 꽃."
"인간은 언제든 죽겠지."
"꽃이랑은 다르게 인간은 생을 사니까요."
"꽃은 피어나는 것 자체가 생이란다."
"한 마디도 안 져주시네요."
"너도 그렇잖니?"

어느새 푹 잠이 든 엘론드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 이불을 도닥이던 길갈라드는 엘로스를 바라보았다.

"쓸데없이. 안 예뻐요."
"그러니까 좋아하는 꽃을 말해달라니까?"
"싫어요. 득달같이 만들어올거잖아요."
"둘이 하면 예쁠텐데..매정한 엘로스. 불러도 오지도 않고."
"소꿉놀이는 사절이에요. 어린애도 아니고."
"아직도 내 눈에는 어린아이들이란다."
"아 그러십니까?"

볼멘소리로 툭 던져놓고선 보란듯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간 엘로스가 엘론드를 끌어안고 혀를 낼름거렸다.

"그럼 어린아이들은 잠이나 자야겠으니 대왕도 술주정 그만 하시고 돌아가십시오. 저희 키 안큽니다."
"저런저런.. 키가 크지 않으면 안되지. 가뜩이나 지금도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특히 엘로스 너는 더 안보이잖니."
"..키만 큰 꼰대같으니라고."
"뭐라 하였느냐? 늙어서 귀가 잘 안들리는구나."
"안녕히 주무시라 인사올렸습니다."
"오냐. 잘자거라. 린돈의 애기들아."

웃음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길갈라드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다가 큰 손을 들어 엘로스와 엘론드 두 아이들의 머리를 잔뜩 헝클어 놓았다. 뒤척이는 엘론드. 싫다고 투덜대는 엘로스. 그 모습을 눈에 똑똑히 새겨 넣고서야 길갈라드는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달도 밝고 아이들은 잠을 자고. 나는 또 혼자로군."

키 큰 어른을 달래줄 것은 술 밖에 없지. 노래를 흥얼거리며 뚜벅뚜벅 걷는 발자국마다 포도향이 조금씩 묻어나왔다. 평화로운 린돈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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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란엘. 불청객.

톨킨버스 2015. 5. 20. 23:35

엘론드는 답지않게 눈을 깜빡이며 몇 번이나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창문을 바라보았다. 분명 아침에 제 손으로 닫고 커튼까지 꼭꼭 쳐낸 곳이었다. 따스한 기운이 감돌거라 예상하고 연 방문 안쪽에서 머리칼을 흐트러뜨린 바람의 존재는 꽤나 당황스러운 것이어서 엘론드는 문을 닫는 것도 잊은 채 테라스 쪽으로 달려와 침입의 흔적을 찾았다.

누군가 들어오진 않은것 같은데.. 방 안을 둘러보며 사라진 물건이라도 있는건지 세심히 바라보고 있을 그 때에 다시 한번 방 안을 스친 바람에 쾅, 하고 문이 닫혔다. 반사적으로 문 쪽을 바라보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할 때에 창문가에서 쑥 팔이 하나 올라왔다.

"너무 늦잖아."

말쑥한 얼굴과 흐트러진 머리의 대비가 엉망이라 지적하고 싶었지만 그보다 불쑥 나타난 존재의 놀라움이 더 컸다. 엉겁결에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바라보는 엘론드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는 태연하게 하품을 하며 옷매무새를 정리하곤 벌떡 일어나 가볍게 테라스의 난간을 넘었다.

"오랫만이야, 엘론드."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인사하려 가슴께에 얹었던 손을 내미는 스란두일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뜻밖의 방문이자 뜻밖의 침입. 그제서야 제정신을 차린 엘론드가 얼굴을 조금 굳힌 채 그 손을 맞잡고 일어섰다.

"이런식으로 갑작스레 개인적인 공간까지 방문하는 건 그린우드의 방식입니까?"
"분명 말을 놓기로 한 것 같은데도 딱딱하게 대하는건 린돈의 방식이고?"
"스란두일."
"얼굴 굳히지 마. 못난 얼굴 망가진다."

저벅저벅 걸어 엘론드의 곁을 지나친 스란두일은 보란 듯 테이블로 다가갔고, 매우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의자 위에 걸터앉았다. 상식과는 거리가 먼 행동들은 엘론드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일단 의중을 알아보는것이 먼저라는 생각에 엘론드 또한 맞은 편 의자로 향했다.

"이전보다 키가 꽤 컸네?"
"그런 말을 하려고 온 건 아닐텐데?"
"못 올데 온 것처럼 말하긴."
"한낮에, 정식으로 와도 어려운 사이야."
"너와 내 사이가?"

한 마디도 지지 않으며 바라보는 눈에 진지함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었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은 엘론드가 나직이 읊조렸다.

"솔직히 불편해."
"길갈라드가 눈치라도 주는거야?"
"주군의 이름을 함부로 언급하지 마."
"주군? 너의? 이봐 엘론드. 지금 뭐라고 말 하고 있는건지 알고는 있어?"
"알고있어."
"하...."

성년식은 내일이었고 아마도 그 때에 모두들 알게 될 사실이었다. 반요정 엘론드는 놀도르의 군주이자 상급왕인 길갈라드를 주군으로 모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껏 입 밖에 내지 않은 혼자만의 계획이었는데 어쩐지 불쑥 나와버린 말 한마디에 스란두일의 얼굴은 금새 굳어졌고 엘론드는 당혹스러워 했다. 자신의 선택과 거취여부에 많은 시선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한껏 조심하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볼 수는 없어?"
"...응."

자칫 심각해져버린 분위기에 엘론드는 늦은 밤 함부로 자신의 처소를 찾아온 스란두일의 힐난하는 것 조차 하질 못했다. 한참을 그렇게 말 없이 앉아있던 스란두일이 이윽고 고개를 들었고, 덩달아 긴장한 엘론드는 자세를 바로한 채 스란두일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맘에 안들어."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그린우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최전방이라? 신다르보다 놀도르가 더 유리하고 탄탄한 입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그런 건 아니야."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분하기까지 한 얼굴로 똑바로 바라보는 스란두일의 시선을 받으며 엘론드는 슬쩍 자세를 풀어내렸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스란두일은 납득하지 않을 기세였다. 계속 그린우드와 황금숲. 이곳저곳의 귀족들에게서 오는 서신들은 엘론드를 지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무시하거나 얕봐서가 아닌 스스로의 일생을 위해 가장 합리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내렸던 것 뿐이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묻는 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못한 엘론드는 무어라 말하면 좋을지 신중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답은 내려지지 않았고 눈 앞의 스란두일은 인내심이 길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이해해 주는거야?"
"아니."
"....."
"쓸데없는 일에 더 힘을 빼고 싶지 않은 것 뿐이야. 앞길은 스스로 개척하는 거랬고 나는 어자피 네게 이방인일 뿐이지. 선택을 했다면 막아설 명분은 없어. 그러나 조금 기분이 언짢은 건 어쩔 수 없네."
"미안."

저도 모르게 사과를 해버린 입술이 금새 굳게 닫혔다. 사과할 일 까지는 아니었는데.

"왜 사과를 해? 넌 잘못한 게 없어."
"그렇네.."
"어쨌건 내 기분이 나쁜게 네 잘못은 아니잖아. 혼자 기대하다 혼자 어그러진 거니까."
"어쨌든 내가 연관된 일이잖아."
"그건 부인할 수 없지. 아버지는 조금 슬퍼하시겠군."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정돈하던 몸이 주욱 늘어져 탁자위로 미끄러졌다. 엉거주춤하게 엎드린 자세에서 불쑥 얼굴만 들어 바라본 스란두일의 표정은 맨 처음과 같아졌다.

"중요하긴 하지만 별로 유쾌하지 않은 소식을 굳이 먼저 들으러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니까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
"그러고보니 왜 온거야? 그것도 이 밤중에."
"볼일이 있어서 왔지."
"아까도 말했지만 그럴거면 서신을 먼저 보내고.."
"벌써 잔소리쟁이인 놀도르인 척 하는거야?"
"..기본 예의를 말하는 거야."
"그런 딱딱한 예의는 별로 지키고 싶지 않아. 보고싶을 때 친우의 얼굴을 보러 오는 것이 뭐가 나빠? 엘론드는 내가 보고싶지 않았어?"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 같아."
"깐깐하긴."

미적대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는 스란두일을 보며 엘론드는 답답해졌다. 내일 있을 성년식을 대비해 일찍 잠들려는 계획이 허사가 되어버리기도 했고 목적을 달성한 뒤 스란두일의 거취를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하는 것은 꽤 머리가 아픈 일이기 때문이었다. 내 방에서 재워야 하나? 일국의 왕자를 그렇게 재워도 되나? 손님용 방을 멋대로 쓸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엘론드의 표정을 바라보던 스란두일이 히죽 웃어보였다. 뭘 믿고 저렇게 웃는거야.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린 엘론드가 뭐라고 이야기라도 한마디 하려는 찰나 벌떡 하고 스란두일이 일어나 앉았다.

"어른이 된 걸 축하해. 엘론드."
"...뭐?"
"지금 방금 에아렌딜의 배가 정점에 도달했어."

끄트머리로 보이는 테라스 너머의 밤하늘을 가리킨 스란두일이 엘론드에게 웃음지었다. 그 틈새로 희미하지만 밝게 빛나는 별빛. 아버지의 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손 끝과 밤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다 엘론드는 스란두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가장 먼저 어른이 된 걸 축하해 주고 싶었어."
"..고..마워."
"제일 먼저 축하해 준 것 맞지?"
"응.."
"다행이다. 몰래 온 보람이 있네. 아버지였으면 당장에 사절을 꾸려라 선물을 보낸다 난리를 쳤을거야. 그건 너도 싫을 거 아냐. 안 그래?"

얼떨떨한 표정으로 끄덕이는 엘론드를 앞에둔 채 스란두일은 푸하하 소리내어 웃었다. 차고온 주머니를 뒤적뒤적 하던 손 끝은 어느새 엘론드의 앞으로 작은 유리병 하나를 밀어냈다.

"원래 성년의 날에는 향수를 선물 받는거야. 이건 내가 직접 널 위해 조향했어."
"...이런 걸 받아도 돼?"
"왜 안돼? 놀도르가 되기로 한 이상 신다르의 선물은 받을수 조차 없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받아 둬. 귀한 거니까. 어딜가서 그린우드의 왕자 선물을 받아 보겠어."

투명하게 반짝이는 유리병은 고급스런 그린우드의 문양으로 감싸져 있었고 그 속에는 반투명한 붉은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두 손에 가볍게 들어오는 병을 쥔 채 엘론드가 한참 바라보고만 있자 스란두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병을 빼앗고 마개를 손수 열어주었다.

"어때?"
"..나쁘지 않아."
"선물을 받으면 고맙다. 한마디면 되는걸."
"고마워."
"어 그래."

시키는 대로 답하는 것이 우스운 지 스란두일은 여전히 혼자 웃으며 도로 엘론드의 손에 열린 유리병을 들려주었다.

"아껴써. 귀한 재료로만 만든 거니까."
"그럴게."
"성인식의 첫 축하도 내가했고 첫 선물도 내가 줬네. 어른이 된 기분은 어때?"
"...그런게 어딨어. 그냥 똑같지."
"하긴 넌 어린애일 때도 어른스러운 척 했지."
"어린애가 뭐야."
"방금 전까지 어린애였거든요."
"먼저 성인 되었다고 자랑하는거야?"
"당연하지. 원래 일년을 먼저 태어나더라도 먹은 밥 차이가 난다고 했어. 하물며 삼년인데 솔직히 너무한거 아니야?"
"고작 삼년 가지고. 티끌만한 차이로 어른인 척 하고있어."
"어라 이것봐라? 아직 성년식도 치루지 않은 어린애가 어른앞에서 말버릇 좀 봐."
"내쫒는다?"

푸흡 터진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뭐가 그리 우스운지 배까지 잡고 넘어간 모습을 보면서 엘론드는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의 거취를 정하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고작 어른이 된다며 선물을 준비하고 이렇게 몰래 찾아와 축하까지 해줄 이가 있을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순수하게 어른이 된다는걸 축하해주는 이가 있다니. 새삼 고맙고 부끄러웠다. 이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홀로 성인식을 맞을 동생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상해."
"뭐가?"
"축하를 받는다는게."
"당연한거야."
"그런거야?"
"응."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여. 그럴 자격 충분해. 라고 말해주는 스란두일이 정말로 이상했다. 어쩐지 시큰해지는 눈가를 빠르게 문지르며 엘론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밤중의 불청객은 감정도 휘두르는데 능하다고. 이상한 요정이라고. 계속 곱씹으면서 엘론드는 웃어보였다. 친우라 불러주는 이가 웃으라 했으니, 웃어도 되지 않을까 했다.

"웃으니 좀 낫네."
"너보단 좀 낫지."
"어어? 그건 아니지?"
"오로페르님이 그러셨는걸, 내 아들보다 낫다고."
"우리 아버지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흥분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스란두일을 보며 엘론드는 소리내어 웃었다. 웃냐? 이봐 반요정. 아무리 니가 루시엔의 후손이라도 이건 아니지! 거울 보고 이야기를 해볼까? 우다다다 쏘아대며 손가락질 하는 스란두일의 목소리가 점점 그 웃음소리와 섞였다. 밤은 깊어갔고 자기에는 이미 글렀고, 불청객과 밤새 투닥이는 수 밖엔 없겠다고 생각한 엘론드의 목소리가 도로 커졌다. 시끄럽고도 이상한,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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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주소는 http://tribul.elogin.co.kr/maefin.html 입니다! 존잘님들 아트가 반짝반짝합니다ㅠㅠㅠㅠ



서재로 향하던 마에드로스의 발길이 돌려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평소라면 절대 열릴 시간이 아닌 침실의 문이 열려 있었다. 황급히 들어선 방 안에는 물건이 움직인 흔적은 없었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석상같은 것이 하나 있던 것만 빼면 말이다.

"왕자전하를 뵙습니다."

급히 달려온 시녀 하나가 문 밖에서 고개를 조아렸고 마에드로스는 들고있던 책을 탁자 위에 던져놓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침실의 문이 열려있길래 놀라 확인하려 막 달려온 참입니다. 이리로 오신줄은 몰랐습니다."
"별일 아니다. 잠들기 전에 읽을 책을 두러 들른 참이니 신경쓸 것 없다."
"알겠습니다. 물러가겠습니다."

조심히 문을 닫고 사라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마에드로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창가로 다가섰다. 조금씩 미동하는 석상은 어느순간 위태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제 숨 쉬어도 돼."

휘유우우우 길고도 가는 숨소리가 들려왔고 마에드로스는 닫힌 커튼을 한번 더 확인한 뒤 근엄한 얼굴로 돌아섰다.

"작은 새앙쥐처럼 남몰래 담을 타고 넘어오라고 일층에 침실을 둔 건 아니었는데."
"오늘은 문으로 왔어요!"
"친애하는 사촌 동생이 당도했다는 보고는 듣지 못했는데?"
"그건..."

불안한 빛을 담은 청색의 눈동자가 빠르게 깜빡였다. 어찌됐든 답은 하나였다.

"이렇게 몰래 찾아오는 것을 숙부께서 용인하셨을 리는 없고."
"헤헤. 형님이 보고 싶어서요."
"보고싶다면 서신을 넣어 약속을 잡으면 될 일이었다."
"숙부님께서 허락해 주실 리 없잖아요. 잘 아시면서."

금세 삐죽 나온 입술이 종알거리기를 멈췄다. 오늘은 걸어다니는 조각상으로 변장을 할 요량이었던 건지 온 몸을 둘둘 감은 이불과 팔 안을 가득 채운 쿠션 덕에 핀곤의 꼴은 꽤나 우스웠다. 머리만 금빛이었다면 아마도 시종들은 작아진 켈레고름이 나타났다고 소란을 떨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터벅터벅 다가가 쿠션과 이불을 둘둘 헤쳐 들어올리자 몇 번 꾸물꾸물하던 소년은 고치에서 나비가 깨어나듯 털썩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조금씩 뻗기 시작하는 팔과 다리가 이전보다 제법 여물게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용건은?"
"말씀 드렸잖아요. 형님이 보고싶어서."
"날 좋아해 주는건 고맙지만 이렇게 자꾸 찾아오면 투르곤이 섭섭해하지 않겠니?
"걔가 왜요?"
"좋아하는 형님이 자꾸 없어져서겠지?"
"절요? 투르곤은 저 별로 안 좋아할텐데? 그리고 저도 별로에요."

툭툭 일어나 구겨진 옷을 털어내며 고개를 까닥이자 흔들리는 새카만 머리칼에 금빛이 반짝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들보단 형님이 더 좋아요."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보단 다 자란 동생들이 더 좋구나."
"정말 이러시기에요?"
"이러기다."

분한 듯 치켜뜬 눈으로 바라보다 금새 축 쳐진 아이의 모습은 정말 주기적으로 보는 광경 중 하나였다. 어쩜 이리 지치지도 않을까. 매번 훈계를 듣는데도 까먹었다는 듯 금세 쪼르르 달려오는 모습은 마치 잘 훈련된 애완동물 같았다. 꼬리를 흔들고 달려오는 강아지? 늑대? 늑대 새끼쯤 되겠군.
막무가내로 불만을 표시하며 움직이지 않는 아이를 향해 한숨을 쉬며 마에드로스는 살그머니 시선을 맞추고 손을 펼쳤다. 이 시간에 침실에 오래 있는 것은 꽤 부자연스러운 일이었기에 서재로 자리를 옮기기 위함이었다. 늘 그랬듯 쪼르르 달려와 안길 줄 알았던 핀곤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살금살금 눈치를 보며 움직이질 않았다.

"화가 난거니?"
"...그건 아니에요."
"그럼?"
"걸어서 갈거에요."

꼬맹이라 그래서 어지간히 삐졌나 보다 생각하며 마에드로스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막상 움직임을 보이자 어쩔줄 모르는 모습에 웃음이 났지만 근엄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달내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여 몇 걸음 걷던 마에드로스는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다.

"손은?"
"잡을래요!"

투다다다 뛰어와 폭싹 잡힌 손 끝이 따끈따끈했다. 애는 애지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일이니?"
"이전에 가르쳐 주신 동작 보여드리려구요!"
"벌써?"

한껏 우쭐해진 모습으로 과자를 한 입에 털어넣은 핀곤이 허리춤에 차인 나무목검을 빼 들었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향한 뒤 자세를 가다듬은 채 마에드로스를 바라보았다.
끄떡. 고개가 움직이자 얍! 하는 작은 기합소리와 함께 핀데카노가 움직였다.

어쩌다 몇 번 연무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짝이는 눈빛이 귀여워 장난삼아 이것 저것 알려주었을 뿐인데 생각보다 흡수력이 빨랐다. 그러나 전문 선생이 붙기도 전에 과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닌지라 이리저리 미적대고 있었는데 멋있는 걸 해보고 싶다는 말에 생각난 것이 검무였다. 활동 반경이 크고 단순하지만 움직임이 많아 성장기에 도움이 되겠지 싶어 가르쳐준 것을 핀곤은 빠른속도로 익히고 있었다.
한 발을 딛고 휘두른 목검이 크게 한바퀴 반을 돌다 날렵하게 섰다. 겨누어진 칼날과 눈빛이 매섭게 마에드로스를 향하고 있었다. 두번 반. 보폭을 크게 벌려 도움닫기 후 바닥으로 한번에 내리꽂은 칼과 몸이 중심을 아슬하게 잡으며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아이의 몸으로 실리는 힘이 조금은 부족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칼과 그 칼에 의지한 몸이 반응이 있기만을 기다리며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는 것을 눈치챈 마에드로스는 흐트러졌던 자세를 풀고 바르게 앉아 박수를 쳤다. 한껏 밝아진 얼굴이 마에드로스를 마주했다.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한 핀곤이 달려와 마에의 품에 안겼다.

"잘했어요?"
"꽤 많이 늘었구나."
"맨날 칭찬은 안해주시고."
"칭찬이잖니?"
"칭찬은 이렇게 하는거에요."

마에드로스의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둔 핀곤이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핀데카노 정말 놀랍구나. 어린애의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야. 정말 잘했다."
"어린애 솜씬데..?"
"형님!"
"농담이야 농담. 정말 잘했어. 어린아이치고 말이야?"

장난스레 넘겨보았지만 또 잘했다는 이야기만 쏙 빼 들은 모양인지 히죽거리며 웃는 모습에 마에드로스는 덩달아 웃어보였다. 주섬주섬 던져둔 목검을 챙겨온 핀곤이 자리에 앉아 남은 과자를 들었고 그런 핀곤을 위해 마에드로스는 다시 주전자에 찻물을 부었다.

"핀데카노는 검술이 좋니?"
"좋아요. 엄청."
"나중에 크면 숙부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멋진 전사가 되겠구나."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검 잡는걸 별로 안 좋아하세요."
"그래? 왜?"
"아직은 때가 아니래요. 조금 더 큰 후부터 시작해도 된다고요."

무슨 말인지 뜻을 모르는 것 처럼 핀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마에드로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숙부는 태어났을 때부터 완벽에 가까운 페아노르의 그늘에서 발버둥쳐야 했을 터였다. 아무리 어떤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 보아도 어린아이의 힘으로 다 큰 성인을 이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얼마나 빠져리게 깨달았을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나마 검술과 체력에 한해서 페아노르가 크게 흥미를 가지지 않았기에 숙부께서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임을 마에드로스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역시 자신의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숙부님 말이 맞아.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이야. 어린아이의 시절은 다신 돌아오지 않거든."
"그래도 싫어요. 하고 싶은 일이 있단 말이에요."
"하고 싶은 일?"
"네."

비어버린 찻잔을 두손으로 치켜든 핀곤의 손을 찰싹 내리친 마에드로스는 얌전히 잔을 받침 위에 올려 놓는것을 보고 나서야 주전자를 들어 찻물을 따라주었다. 목이 말랐는지 허겁지겁 마시는 모습을 보며 뜨겁지도 않냐며 한마디 툭 던지고 소파에 도로 앉은 마에드로스가 몸을 느슨하게 기울였다.

"뭔지 물어봐도 돼?"
"음... 좀 부끄러운데. 나중에 말씀드리면 안돼요?"
"그러니까 더 궁금해지는데."
"어른이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는걸요?"
"요 꼬맹이가 못하는 말이없네?"

손가락을 튕기려 달려들자 와악 하며 허겁지겁 잔을 놓고 도망치는 핀곤이 귀여워 마에드로스는 부득불 발목을 끌어잡고 한껏 간지럼을 태웠다. 항복! 항복! 외치는 소리가 지쳐 나오지 않을 정도로 괴롭힘 당한 핀곤의 눈꼬리에는 눈물까지 맺혀있었다.



"그러니까 아주 나중에 말이에요. 싸울 일이 있으면 형님과 등을 맞대고 싶어요."
"내 등을?"
"네!"

툴툴거리며 이야기 한 것 치고 놀라운 내용에 마에드로스는 차마 감정을 숨기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놀란 얼굴을 마주한 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시선이었다. 어쩐지 간지러운 느낌에 마에드로스는 곤란한듯 웃어보이며 되물었다.

"이런 말 하면 웃길지 모르지만 나는 충분히 강해."
"알아요."
"그런데?"

조금은 수줍은 얼굴로 망설이던 핀곤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언젠가 숙부께서 왕이 되실지도 모르고.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형님께서 상급왕의 자리에 오를지도 모르잖아요."
"과연 그런 날이 올까?"
"혹시 모르죠. 할아버님께서 왕이 귀찮아지셨다던지 하면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유모가 말했어요."
"매우 가능성이 적은 이야긴데?"
"어쨌든요."
"그래. 내가 왕이 된다고 치고. 그래서?"
"만약 그렇게 되면 그땐 저도 어른일거잖아요. 그래서 형님이 왕위에 오르셨을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형님을 지켜드리는 호위기사가 되고 싶어요."

희망과 신념이 가득한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가득 채웠다. 동그랗게 떠진 눈. 멍하니 확신에 찬 아이를 바라보며 마에드로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어. 아니.."
"...?"

갸웃거리며 바라보는 핀곤의 시선을 도무지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도 없는 꿈을 가진채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걸 발견해서일까. 마에드로스는 한대 맞은 것 처럼 멍해진 머리속을 정리하려 애쓰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왜 하필 나인지 물어도 되겠니?"
"그야.. 멋있으니까요."
"멋있다고?"
"힘도 세고 검술에도 능하시고 머리도 좋으시잖아요. 다른 형님들도 뛰어나시지만 그중에 가장 멋진걸요. 그리고 제일 용감하니까요. 저는 아직 어린애지만 자라서 꼭 형님처럼 되고 싶어요. 반짝반짝 빛나고 당당한 어른이요. 그리고 솔직히 형님한테만 말씀드리는거지만.. 아버지보다 형님이 더 강해보여요."

반짝반짝. 몇 번이고 곱씹으며 말 뜻을 이해한 마에드로스의 얼굴에 그제서야 핏기가 돌았다. 핀골핀님보다 강하다니. 큰일날 소리를. 진지하게 주의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기쁨이 커서 마에드로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아이는 나를 허투로 보고 있지 않았구나. 언제나 진심으로 봐주고 있었구나.

"..고맙다."
"네?"
"고맙다고."
"혹시 화가 나신건.."
"아니야. 정말로 고마워."

엉겁결에 덥썩 잡힌 작은 손 안에서 쿠키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자신을 선망하며 목표라 말해주는 이가 있었던가. 설사 빈말이어도 상관없었다. 크고 완벽한 페아노르의 그늘에서 조금씩 목표와 확신을 잃고 있던 자신에게는 가장 필요했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랐는지 당황한건지 핀곤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마에드로스는 그런 핀곤의 앞에서 더없이 진지한 모습으로 맹세했다.

"그럴 일이 일어나서도 안되지만, 혹시나 내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네가 꼭 내 등 뒤에 있었으면 좋겠다."
"저.. 저 열심히 할게요!"
"그리고 네 등 뒤에도 내가 있을거야. 네가 성장하는 만큼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될게. 이건 발라의 이름으로 맹세할거야."
"저두요! 저도 맹세할래요! 형님의 뒤에는 꼭 제가 있을거에요! 정말 열심히 할게요!"

부끄러움과 벅참이 공존하는 빛나는 얼굴이 마에드로스의 가슴에 박혔다. 한참동안이나 맞잡은 손을 사이에 둔 채 둘은 티없이 웃어보였다. 나이와 불편한 관계 따윈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생의 가장 든든한 아군이자 동반자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러려면 일단 실력을 키워야겠지?"
"그럼요! 저 연습 더 열심히 할거에요!"
"숙부님께 이야기를 해 두마. 내 부탁이라면 거절하지 못하실거야."
"저.. 정식으로 형님께 배울 수 있는거에요?"
"왜 겁나니?"
"아뇨! 아뇨! 정말이죠? 정말 배울 수 있는거죠?"

당장이라도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에 마에드로스의 얼굴에도 슬쩍 편안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러나 조심히 손을 놓아준 뒤에서야 짖궂은 얼굴로 핀곤을 바라보았다.

"내일부터는 각오해야 할거야."
"옙! 형님!"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한쪽 무릎을 번개같이 꿇은 핀곤이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마에드로스를 바라보았다. 다리를 반대로 올렸단다 핀데카노. 한마디를 듣고 부랴부랴 자세를 바꾸며 처음이라 그렇다 변명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마에드로스는 피식거렸고 덩달아 핀곤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이 행복에 가득차 서로를 바라보던 핀골핀의 아들 핀데카노와 페아노르의 아들 마에드로스의 운명을 묶은 첫 맹세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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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글

페아마에. 순종.

2015. 4. 5.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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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님, 저, 팥자님 연성 릴레이 글입니다.

아직 완결은 나지 않았지만 너무 혼파망으로 흘러가서 ㅎㅎㅎㅎ

언젠간 다시 쓰겠죠!

트랙백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ㅋㅋㅋㅋ

스란엘, 길갈라드, 엘로마글, 켈레브림보르 등등 등장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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