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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란엘스란. 썰. 처음.

2013. 5. 17.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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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게 와닿은 맨살의 감촉에 안나타르는 황홀한 듯 웃어댔다. 하지만 웃음이 오래가진 못했다. 왈칵 올라오는 비릿한 체액이 바닥으로 뿌려졌다. 제 입에서 떨어지는 피웅덩이를 보고도 그는 웃었다. 아니 즐거워했다.

"미친새끼."
"큭...큭크큭..흣.."
"말해. 엘론드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하아..왜. 왜 그분을..크큭.. 입에 담으십니까?"

참으로 이상하다는 듯 안나타르는 고개를 올려 스란두일을 쳐다보았다. 웃으며. 입가에는 피범벅이 된 채로. 그저 웃었다. 정말 말로 해서는 안될것 같다는 생각에 스란두일의 표정이 한껏 험해졌다. 거칠게 다뤄 찢어진 상의덕에 잡을 곳이 없어진 스란두일은 두 손에 온전히 힘을 넣어 안나타르의 목을 감싸쥐었다. 한껏 가늘어진 눈가. 벌벌 떨리는 입술. 울컥울컥 나오는 피가 주위에 지저분하게 퍼졌다. 숨이 가빠 헐떡이는 순간에서도 안나타르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진정 제멋대로 굴며 끝까지 하고픈 말을 지껄였다.

"정인..큭..이..라도. 되십니까? 크큭. 흑..흡..그는 단지..길 갈..라드..의. 가솔..일 뿐..히익!!!"
"닥쳐라. 네 입에 담을만한 이가 아니다."

목을 강하게 조여오는 압박감에 안나타르의 눈이 크게 떠지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가의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이런 미친 놈은 내버려두고 엘론드부터 찾아야 했다. 해명해야 했다. 팔에 온 힘을 실어 안나타르를 내팽개쳤다. 바닥에 고꾸라진 채 밭은 기침을 내뱉는 안나타르를 내버려 둔 채, 스란두일은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미친듯이 뛰던 심장이 겨우 진정됐다. 강하게도 묶여있지도 않은 손목의 끈을 흔들어 빼낸 뒤, 안나타르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입가를 문질러 닦았다. 손 끝에 피가 가득 묻어났다. 즐거웠다. 그래, 찾아낼 수 있을까. 너 따위가. 이 안나타르를 모욕한 대가는 작지 않을텐데 말이지.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울렸다. 미친놈처럼 보여도 상관없었다. 기쁘고 통쾌하고 속이 다 후련했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소원을 깨뜨렸다. 사랑? 정인? 다 소용없는 말이었다. 한낯 감정에 호소하고 밀어를 속삭인다 해서 굳건한 것은 아니었다. 작은 말의 불씨로 갈라놓을 수 있었고 혼란에 빠뜨릴수도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용맹스럽고 위엄있는 어둠숲의 왕자의 하룻밤 정을 받았던 이는 그가 그리도 원했던 엘론드가 아닌 안나타르. 바로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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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사흘째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설원이 바깥으로 펼쳐졌다. 멍하니 창가에 기대 밖을 내다보았다. 그새 온도는 더욱 내려가 창문에 김이 하얗게 서렸다. 가볍게 양쪽으로 목을 두어번 꺾어 소리를 낸 뒤 엘론드는 부엌으로 돌아갔다. 아까 내린 커피가 딱 좋은 향을 내뿜고 있었다. 머그에 가득 따른 후 침실로 돌아가 흐트러진 침대위에 가만히 앉아 홀짝이며 헛웃음을 지었다. 웃기지도 않은 신혼놀이였다. 학교에서 도망치듯 회피했던 자신을 따라와 가둔격이 아닌가. 어쩌면 납치라고 해도 좋을만큼 이 상황은 기묘했다. 그러나 더욱 이해가 안가는 것은 자신이었다. 능히 잡히지 않을수도, 이 상황에서 도망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조용히. 이곳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탁자에 컵을 올려두고 드러누워버렸다. 눈을 감자 소리들이 세상을 지배했다. 포슬하게 눈이 내리는 소리. 거실의 시계초침이 톡 톡 움직이는 소리. 나뭇결이 추위에 수축하며 다각다각 마르는 소리. 그리고 저 먼 곳 건너편의 욕실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세계가 닫히는 듯한 무겁고도 고요한 적막. 그 모든것들이 세상을 지배했다.

- 너무 무방비하게 자고 있는 거 아닌가?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눈꺼플이 떠졌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막 사워하고 나온 지긋지긋한 친우의 얼굴이었다. 젖어 앞으로 내려온 머리칼이 자꾸 흘러내리는지 손으로 연신 넘겨댄다. 살짝 찌푸리며 가볍게 밀어제쳤지만 외려 그는 나를 끌어당겨 품속으로 깊게 묻어버렸다.


- 머리라도 말리고 와. 젖는거 싫어.
- 그 김에 샤워라도 하는게 어때. 씻겨줄 용의도 있어.
- 사양하지. 오전에 했거든.


기어코 밀어낸 뒤 다시 일어났다. 그렇다고 갈곳도 할일도 없었다. 멍하니 그렇게 앉아있자 스란두일이 따라 일어나 목덜미에 가볍게 키스했다. 움찔 하며 몸을 떨어내자 뒤에서 웃는소리가 귓가로 울린다. 어색하다. 어색하면서 안심이 됐다. 우리가 이렇게 가까이 있어본 적이 있었던가. 생경하면서도 싫지않은 감각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은 이미 사흘을 그와 함께 보내지 않았는가. 이제와서 생각하기는 너무 늦은 주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엘론드는 슬그머니 다시 눈을 감았다. 못된손이 올라와 드문드문 잠긴 셔츠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따라올라와 손을 제지하려고 잡았지만 어느샌가 양손 모두 그의 손아귀에 잡혀있었다. 눈을 뜨고 그를 노려봤지만 그것을 무시하기라도 하는 듯, 평소 볼수없는 웃고있는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조여오는 손목과는 다른 맥이빠지게 선한 얼굴로 미소지으며 이마에 눈에 코에 키스한다. 부자연스럽게 꺽인 목과 잡힌 손목이 슬슬 아파와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에서 힘을 빼고 그에게 완연히 기대자 다시금 웃는소리가 들리며 몸이 뒤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옆으로 비껴누워 고개를 돌리면 짙은 호수같은 두 눈이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 도망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가는걸 추천할텐데.
-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 흠. 진심일까 아닐까. 자네는 어떤가. 진심인가 아닌가?
- 진심이라..


잠시 멍하니 시선 옆을 비껴 허공을 응시하자 귀신같이 알아챈 스란두일이 손을 올려 얼굴을 고정 시킨 뒤 입술을 마주댔다. 부드럽게 노크하듯 톡 톡 두들기고 입안쪽을 조심스럽게 침범했다.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진득하고 느릿하게 안을 헤집고 다니다 겨우 떨어져서는 다시 시선을 마주쳤다. 두개의 호수속에 누군가 들어오기라도 한 듯 고요한 파문이 일고있었다. 파문의 주인공이기라도 한 듯, 그 속에 내가 비춰졌다. 그를 멍하니 응시하자 스란두일은 관자놀이와 귓바퀴를 부드럽게 쓸어내며 다시한번 이마에 가볍게 입맞췄다.


- 상관없어. 진심이든 아니든 네가 지금 여기에 있는것이 더 중요해. 그걸로 됐어.
- 스란두일, 그러니까...
- 아무말도 하지마. 함께 있을 때는 그걸로 된거야. 엘론드 페레딜.


수학공식이라도 되는 양 제멋대로 정의내리는 스란두일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함께 있을 때는 그걸로 된거야. 마치 마법같다고 생각했다. 고작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놓였다. 평안해졌다. 손을 올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스란두일의 머리를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호수같은 눈이 감기고 입술이 열렸다. 세계는 고요했고 그곳에는 스란두일과 나. 두 사람밖에 없었다. 그걸로 이유는 충분했다. 나역시 눈을 감았고 그 순간 세계는 움직임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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