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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로 향하던 마에드로스의 발길이 돌려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평소라면 절대 열릴 시간이 아닌 침실의 문이 열려 있었다. 황급히 들어선 방 안에는 물건이 움직인 흔적은 없었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석상같은 것이 하나 있던 것만 빼면 말이다.

"왕자전하를 뵙습니다."

급히 달려온 시녀 하나가 문 밖에서 고개를 조아렸고 마에드로스는 들고있던 책을 탁자 위에 던져놓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침실의 문이 열려있길래 놀라 확인하려 막 달려온 참입니다. 이리로 오신줄은 몰랐습니다."
"별일 아니다. 잠들기 전에 읽을 책을 두러 들른 참이니 신경쓸 것 없다."
"알겠습니다. 물러가겠습니다."

조심히 문을 닫고 사라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마에드로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창가로 다가섰다. 조금씩 미동하는 석상은 어느순간 위태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제 숨 쉬어도 돼."

휘유우우우 길고도 가는 숨소리가 들려왔고 마에드로스는 닫힌 커튼을 한번 더 확인한 뒤 근엄한 얼굴로 돌아섰다.

"작은 새앙쥐처럼 남몰래 담을 타고 넘어오라고 일층에 침실을 둔 건 아니었는데."
"오늘은 문으로 왔어요!"
"친애하는 사촌 동생이 당도했다는 보고는 듣지 못했는데?"
"그건..."

불안한 빛을 담은 청색의 눈동자가 빠르게 깜빡였다. 어찌됐든 답은 하나였다.

"이렇게 몰래 찾아오는 것을 숙부께서 용인하셨을 리는 없고."
"헤헤. 형님이 보고 싶어서요."
"보고싶다면 서신을 넣어 약속을 잡으면 될 일이었다."
"숙부님께서 허락해 주실 리 없잖아요. 잘 아시면서."

금세 삐죽 나온 입술이 종알거리기를 멈췄다. 오늘은 걸어다니는 조각상으로 변장을 할 요량이었던 건지 온 몸을 둘둘 감은 이불과 팔 안을 가득 채운 쿠션 덕에 핀곤의 꼴은 꽤나 우스웠다. 머리만 금빛이었다면 아마도 시종들은 작아진 켈레고름이 나타났다고 소란을 떨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터벅터벅 다가가 쿠션과 이불을 둘둘 헤쳐 들어올리자 몇 번 꾸물꾸물하던 소년은 고치에서 나비가 깨어나듯 털썩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조금씩 뻗기 시작하는 팔과 다리가 이전보다 제법 여물게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용건은?"
"말씀 드렸잖아요. 형님이 보고싶어서."
"날 좋아해 주는건 고맙지만 이렇게 자꾸 찾아오면 투르곤이 섭섭해하지 않겠니?
"걔가 왜요?"
"좋아하는 형님이 자꾸 없어져서겠지?"
"절요? 투르곤은 저 별로 안 좋아할텐데? 그리고 저도 별로에요."

툭툭 일어나 구겨진 옷을 털어내며 고개를 까닥이자 흔들리는 새카만 머리칼에 금빛이 반짝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들보단 형님이 더 좋아요."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보단 다 자란 동생들이 더 좋구나."
"정말 이러시기에요?"
"이러기다."

분한 듯 치켜뜬 눈으로 바라보다 금새 축 쳐진 아이의 모습은 정말 주기적으로 보는 광경 중 하나였다. 어쩜 이리 지치지도 않을까. 매번 훈계를 듣는데도 까먹었다는 듯 금세 쪼르르 달려오는 모습은 마치 잘 훈련된 애완동물 같았다. 꼬리를 흔들고 달려오는 강아지? 늑대? 늑대 새끼쯤 되겠군.
막무가내로 불만을 표시하며 움직이지 않는 아이를 향해 한숨을 쉬며 마에드로스는 살그머니 시선을 맞추고 손을 펼쳤다. 이 시간에 침실에 오래 있는 것은 꽤 부자연스러운 일이었기에 서재로 자리를 옮기기 위함이었다. 늘 그랬듯 쪼르르 달려와 안길 줄 알았던 핀곤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살금살금 눈치를 보며 움직이질 않았다.

"화가 난거니?"
"...그건 아니에요."
"그럼?"
"걸어서 갈거에요."

꼬맹이라 그래서 어지간히 삐졌나 보다 생각하며 마에드로스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막상 움직임을 보이자 어쩔줄 모르는 모습에 웃음이 났지만 근엄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달내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여 몇 걸음 걷던 마에드로스는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다.

"손은?"
"잡을래요!"

투다다다 뛰어와 폭싹 잡힌 손 끝이 따끈따끈했다. 애는 애지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일이니?"
"이전에 가르쳐 주신 동작 보여드리려구요!"
"벌써?"

한껏 우쭐해진 모습으로 과자를 한 입에 털어넣은 핀곤이 허리춤에 차인 나무목검을 빼 들었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향한 뒤 자세를 가다듬은 채 마에드로스를 바라보았다.
끄떡. 고개가 움직이자 얍! 하는 작은 기합소리와 함께 핀데카노가 움직였다.

어쩌다 몇 번 연무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짝이는 눈빛이 귀여워 장난삼아 이것 저것 알려주었을 뿐인데 생각보다 흡수력이 빨랐다. 그러나 전문 선생이 붙기도 전에 과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닌지라 이리저리 미적대고 있었는데 멋있는 걸 해보고 싶다는 말에 생각난 것이 검무였다. 활동 반경이 크고 단순하지만 움직임이 많아 성장기에 도움이 되겠지 싶어 가르쳐준 것을 핀곤은 빠른속도로 익히고 있었다.
한 발을 딛고 휘두른 목검이 크게 한바퀴 반을 돌다 날렵하게 섰다. 겨누어진 칼날과 눈빛이 매섭게 마에드로스를 향하고 있었다. 두번 반. 보폭을 크게 벌려 도움닫기 후 바닥으로 한번에 내리꽂은 칼과 몸이 중심을 아슬하게 잡으며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아이의 몸으로 실리는 힘이 조금은 부족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칼과 그 칼에 의지한 몸이 반응이 있기만을 기다리며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는 것을 눈치챈 마에드로스는 흐트러졌던 자세를 풀고 바르게 앉아 박수를 쳤다. 한껏 밝아진 얼굴이 마에드로스를 마주했다.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한 핀곤이 달려와 마에의 품에 안겼다.

"잘했어요?"
"꽤 많이 늘었구나."
"맨날 칭찬은 안해주시고."
"칭찬이잖니?"
"칭찬은 이렇게 하는거에요."

마에드로스의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둔 핀곤이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핀데카노 정말 놀랍구나. 어린애의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야. 정말 잘했다."
"어린애 솜씬데..?"
"형님!"
"농담이야 농담. 정말 잘했어. 어린아이치고 말이야?"

장난스레 넘겨보았지만 또 잘했다는 이야기만 쏙 빼 들은 모양인지 히죽거리며 웃는 모습에 마에드로스는 덩달아 웃어보였다. 주섬주섬 던져둔 목검을 챙겨온 핀곤이 자리에 앉아 남은 과자를 들었고 그런 핀곤을 위해 마에드로스는 다시 주전자에 찻물을 부었다.

"핀데카노는 검술이 좋니?"
"좋아요. 엄청."
"나중에 크면 숙부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멋진 전사가 되겠구나."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검 잡는걸 별로 안 좋아하세요."
"그래? 왜?"
"아직은 때가 아니래요. 조금 더 큰 후부터 시작해도 된다고요."

무슨 말인지 뜻을 모르는 것 처럼 핀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마에드로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숙부는 태어났을 때부터 완벽에 가까운 페아노르의 그늘에서 발버둥쳐야 했을 터였다. 아무리 어떤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 보아도 어린아이의 힘으로 다 큰 성인을 이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얼마나 빠져리게 깨달았을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나마 검술과 체력에 한해서 페아노르가 크게 흥미를 가지지 않았기에 숙부께서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임을 마에드로스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역시 자신의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숙부님 말이 맞아.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이야. 어린아이의 시절은 다신 돌아오지 않거든."
"그래도 싫어요. 하고 싶은 일이 있단 말이에요."
"하고 싶은 일?"
"네."

비어버린 찻잔을 두손으로 치켜든 핀곤의 손을 찰싹 내리친 마에드로스는 얌전히 잔을 받침 위에 올려 놓는것을 보고 나서야 주전자를 들어 찻물을 따라주었다. 목이 말랐는지 허겁지겁 마시는 모습을 보며 뜨겁지도 않냐며 한마디 툭 던지고 소파에 도로 앉은 마에드로스가 몸을 느슨하게 기울였다.

"뭔지 물어봐도 돼?"
"음... 좀 부끄러운데. 나중에 말씀드리면 안돼요?"
"그러니까 더 궁금해지는데."
"어른이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는걸요?"
"요 꼬맹이가 못하는 말이없네?"

손가락을 튕기려 달려들자 와악 하며 허겁지겁 잔을 놓고 도망치는 핀곤이 귀여워 마에드로스는 부득불 발목을 끌어잡고 한껏 간지럼을 태웠다. 항복! 항복! 외치는 소리가 지쳐 나오지 않을 정도로 괴롭힘 당한 핀곤의 눈꼬리에는 눈물까지 맺혀있었다.



"그러니까 아주 나중에 말이에요. 싸울 일이 있으면 형님과 등을 맞대고 싶어요."
"내 등을?"
"네!"

툴툴거리며 이야기 한 것 치고 놀라운 내용에 마에드로스는 차마 감정을 숨기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놀란 얼굴을 마주한 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시선이었다. 어쩐지 간지러운 느낌에 마에드로스는 곤란한듯 웃어보이며 되물었다.

"이런 말 하면 웃길지 모르지만 나는 충분히 강해."
"알아요."
"그런데?"

조금은 수줍은 얼굴로 망설이던 핀곤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언젠가 숙부께서 왕이 되실지도 모르고.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형님께서 상급왕의 자리에 오를지도 모르잖아요."
"과연 그런 날이 올까?"
"혹시 모르죠. 할아버님께서 왕이 귀찮아지셨다던지 하면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유모가 말했어요."
"매우 가능성이 적은 이야긴데?"
"어쨌든요."
"그래. 내가 왕이 된다고 치고. 그래서?"
"만약 그렇게 되면 그땐 저도 어른일거잖아요. 그래서 형님이 왕위에 오르셨을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형님을 지켜드리는 호위기사가 되고 싶어요."

희망과 신념이 가득한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가득 채웠다. 동그랗게 떠진 눈. 멍하니 확신에 찬 아이를 바라보며 마에드로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어. 아니.."
"...?"

갸웃거리며 바라보는 핀곤의 시선을 도무지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도 없는 꿈을 가진채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걸 발견해서일까. 마에드로스는 한대 맞은 것 처럼 멍해진 머리속을 정리하려 애쓰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왜 하필 나인지 물어도 되겠니?"
"그야.. 멋있으니까요."
"멋있다고?"
"힘도 세고 검술에도 능하시고 머리도 좋으시잖아요. 다른 형님들도 뛰어나시지만 그중에 가장 멋진걸요. 그리고 제일 용감하니까요. 저는 아직 어린애지만 자라서 꼭 형님처럼 되고 싶어요. 반짝반짝 빛나고 당당한 어른이요. 그리고 솔직히 형님한테만 말씀드리는거지만.. 아버지보다 형님이 더 강해보여요."

반짝반짝. 몇 번이고 곱씹으며 말 뜻을 이해한 마에드로스의 얼굴에 그제서야 핏기가 돌았다. 핀골핀님보다 강하다니. 큰일날 소리를. 진지하게 주의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기쁨이 커서 마에드로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아이는 나를 허투로 보고 있지 않았구나. 언제나 진심으로 봐주고 있었구나.

"..고맙다."
"네?"
"고맙다고."
"혹시 화가 나신건.."
"아니야. 정말로 고마워."

엉겁결에 덥썩 잡힌 작은 손 안에서 쿠키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자신을 선망하며 목표라 말해주는 이가 있었던가. 설사 빈말이어도 상관없었다. 크고 완벽한 페아노르의 그늘에서 조금씩 목표와 확신을 잃고 있던 자신에게는 가장 필요했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랐는지 당황한건지 핀곤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마에드로스는 그런 핀곤의 앞에서 더없이 진지한 모습으로 맹세했다.

"그럴 일이 일어나서도 안되지만, 혹시나 내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네가 꼭 내 등 뒤에 있었으면 좋겠다."
"저.. 저 열심히 할게요!"
"그리고 네 등 뒤에도 내가 있을거야. 네가 성장하는 만큼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될게. 이건 발라의 이름으로 맹세할거야."
"저두요! 저도 맹세할래요! 형님의 뒤에는 꼭 제가 있을거에요! 정말 열심히 할게요!"

부끄러움과 벅참이 공존하는 빛나는 얼굴이 마에드로스의 가슴에 박혔다. 한참동안이나 맞잡은 손을 사이에 둔 채 둘은 티없이 웃어보였다. 나이와 불편한 관계 따윈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생의 가장 든든한 아군이자 동반자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러려면 일단 실력을 키워야겠지?"
"그럼요! 저 연습 더 열심히 할거에요!"
"숙부님께 이야기를 해 두마. 내 부탁이라면 거절하지 못하실거야."
"저.. 정식으로 형님께 배울 수 있는거에요?"
"왜 겁나니?"
"아뇨! 아뇨! 정말이죠? 정말 배울 수 있는거죠?"

당장이라도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에 마에드로스의 얼굴에도 슬쩍 편안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러나 조심히 손을 놓아준 뒤에서야 짖궂은 얼굴로 핀곤을 바라보았다.

"내일부터는 각오해야 할거야."
"옙! 형님!"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한쪽 무릎을 번개같이 꿇은 핀곤이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마에드로스를 바라보았다. 다리를 반대로 올렸단다 핀데카노. 한마디를 듣고 부랴부랴 자세를 바꾸며 처음이라 그렇다 변명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마에드로스는 피식거렸고 덩달아 핀곤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이 행복에 가득차 서로를 바라보던 핀골핀의 아들 핀데카노와 페아노르의 아들 마에드로스의 운명을 묶은 첫 맹세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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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잠식된 몸은 소리조차 지르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몇번이고 내리 찍은 단검에 솟구친 핏줄기는 핀데카노의 얼굴, 몸 할것 없이 모두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미끄러진 검을 고쳐잡는 손에 흔들림은 없었다. 퍽, 제대로 박혀들어간 칼날의 반동에 새된 신음을 흘리며 마에드로스가 축 늘어지자 핀곤은 치켜들던 검을 허리춤에 아무렇게나 꽂아 둔 채, 너덜거리는 마에드로스의 손목을 눌러 잡았다. 사냥 중이다. 핀데카노. 튼실한 숫사슴이 이미 화살에 맞은 터라 고통스럽지 않게 목숨을 미리 끊어 주려는 것 뿐이다.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되뇌이고서야 움켜쥔 손에 힘을 실었다. 아슬아슬하게 소론도르의 등에서 흔들리면서도 한쪽 팔로 늘어진 마에드로스를 끌어안아 고정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나, 둘, 셋. 전사의 손에서 무력하게 부러져 덜렁거리며 절벽 밑으로 떨어진 것은 숫사슴의 목뼈가 아닌 마에드로스의 손목뼈였다.

기절한 상태에서조차 쇼크가 몰려왔는지 이미 혼절한 마에드로스의 몸이 크게 튕겨졌다. 덕분에 중심을 잃고 무너진 핀곤이 주저앉으며 소론도르의 어깨죽지를 움켜쥐었다. 몇 번 크게 날개짓을 해 보았지만 무게를 견디지 못한 소론도르가 빠른 속도로 급하강 했고 핀곤은 그저 품에 가득 찬 마에드로스를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모두가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마에드로스가 눈을 뜬 것은 한 달도 더 지난 시기였다. 깨끗하고 푹신한 침대. 훈훈한 온기가 도는 공기.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절로 떠진 눈보다 입술이 먼저 깊게 숨을 들이마셨고 매캐한 냄새가 아닌 고소한 장작이 타는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 굳어있던 머릿속이 삐걱거리며 상황을 판단하려 애썼다. 꿈은 아니었다.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꿈이라면 이렇게 온기까지 와닿을 순 없었다. 상고로드림의 혹독한 추위를 버텨왔던 그 아득한 시간동안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났다. 매번 누군가에게 구해지는 환상. 따듯한 곳에 들어와 있는 환상. 착각. 그리고 나타나는 환영.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듯 나타난 것들에 처음에는 분노하고, 슬퍼하고, 힘들어했지만 나중에 가선 그저 부질없는 시간 속에서 버팀목이 되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면 정신을 놓아버려야 했을테니까. 상고로드림은 그런 곳이었기에 마에드로스는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연하게 구별할 수 있었다. 온 몸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꿈이 아니야. 어쩔 줄 모르는 불안한 얼굴이 재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부질 없었다. 너무도 오랫만에 온 몸으로 동일하게 퍼진 고통의 크기는 이전보다 줄어들었지만 마에드로스를 눈물나게 만들었다. 똑같이 느껴지는 고통. 한쪽 어깨로 쏠리지 않은 감각. 아주 오랜 시간동안 잊고 지낸 균형감각이 몸 전체에 아픔과 함께 퍼져나갔다. 이곳은 상고로드림이 아니었다. 어디인지, 무슨 연유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그 곳에서 벗어났다는 건 확실했다.
저도 모르게 흐른 눈물에 시야가 일그러졌다. 무심코 올라간 손이 얼굴을 문질렀다. 하지만 이상하게 닿질 않았다. 붕대로 감겨버린 손목이 유달리 이질적으로 보였다. 머릿속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손가락이 눈에 보이질 않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놀라기도 전에 벌컥 열린 문으로 그리운 얼굴이 들이닥쳤다. 당황해서 어쩔줄을 모르는 핀곤의 얼굴. 급히 소리를 질러 치료사를 부르고 어쩔줄을 몰라하며 강하게 어깨를 부여잡는 손길에 미간을 찌푸리면 황급히 떨어져나갔다. 그제서야 그 깎아지른듯한 절벽의 끝에서 핀곤의 얼굴을 보았던 것이 기억났다. 네가 나를 구했구나. 수많은 궁금증보다 살아있는 존재 자체가 유독 반가웠던 '핀데카노'이기에 마에드로스는 서글픔과 안도, 그리고 기쁨을 담아 웃으며 그를 맞았다.

"핀데카노."
"마이티모.."

어쩔줄을 모르며 숫제 울먹이기까지 하는 핀곤을 어색하게 바라보며 마에드로스는 손을 뻗어 사촌의 눈물을 훔치려 얼굴을 어루만졌다. 상처투성이의 손. 그리고 여전히 반대쪽은 보이지 않는 이상한 시야. 한참을 주저하던 마에드로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핀데카노. 이상해. 나 눈을 다쳤나봐."

한쪽 손이 보이질 않아. 이렇게 움직여지는데. 하도 매달려 혹사당하다보니 아예 눈앞에서 사라진걸까?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이야기하는 마에드로스의 물음에 차마 답하지 못한 핀곤이 기어이 참아내던 눈물을 떨구고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어쩔줄을 몰라하던 마에드로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핀곤에게 손을 뻗었지만 그 손은 여전히 닿질 않았다. 몇 번을 허우적거린 손목을 핀곤이 잡아채고 나서야 잊혀진 기억들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핀곤의 울것같은 얼굴. 끊어져버리기라도 한 듯 아파오는 손목. 쿵쿵소리를 내며 온 몸을 고통으로 몰아가던 쇠붙이의 날카로움. 머릿속이 순식간에 뒤엉켜 혼미해졌다. 깨질듯 아파오는 머리를 움켜쥔 채 신음을 내지르던 마에드로스의 몸이 어느순간 픽 쓰러졌다. 멀리서 들려오는 핀곤의 고함소리에도 몸은 일어날 수 없었다.






겨우 추스리고서야 혼자서 움직일 수 있게 된 마에드로스는 핀곤의 수발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너무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 목숨을 부지한 것 조차 기적이었기에 정신이 또렷해지는 순간 이후 더더욱 낯을 들 수가 없었다. 원죄. 그렇게 이름붙여도 과하지 않는 페아노리안의 죗값.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지금 그 죄는 모두 장자인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게로 돌아왔다는것을 마에드로스는 잘 알고 있었다. 치료를 받으러 숙소 밖으로 한 걸음만 떼어도 날카롭게 쏟아지는 살기는 그로서도 견디기 힘든 것들이었다. 상고로드림의 그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서 온갖 모욕과 절망을 느꼈지만 가장 크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세상에게서 소외된 것 같은 고독함이었다. 그 절망적인 고독함에서 해방된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이제는 너무 많은 시선들이 마에드로스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입을 다무는 법을 택했다. 귀머거리가 되고 장님인 척 살았다. 이미 죽은 목숨.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은 잊혀진 몸뚱아리를 억지로 끌어내 살려놓은 건 직계혈육도 아닌 핀데카노였다.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많은 이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제멋대로 떠들어 댈 것이라는 건 보지않아도 알수있었다. 둔해진 머리였지만 그 정도도 추론해내지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도 서슬퍼런 욕과 폭력이 난무하던 상고로드림의 절벽에서 눈을 뜨는 꿈에 시달리는 자신이 욕 한마디 더 듣는것은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그의 사촌에게까지 욕 보여서는 안됐다. 그건 마에드로스가 핀곤에게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몇번이고 말을 붙이려 노력해보았지만 좀체 입을 열지 않는 마에드로스덕분에 핀곤은 역시 침묵으로 그를 대했다. 때론 급변하는 상황에 익숙해질 시간도 필요한 법이라는 치료사의 조언 덕이기도 했지만 도통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사촌 형님의 모습은 그로서도 충격적인 모습이었기에 그 생활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십여년 동안 온갖 풍파를 겪고 기어이 살아남은 몸은 한없이 약해져있었고 그의 이름대신 불리던 붉은머리의 전사의 뜻은 퇴색된 지 오래였다. 전에없이 비쩍마른 몸뚱이에는 온기라곤 들지 않았고 그보다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건 온 몸에 가득한 상처들이었다. 핀곤은 이런 류의 상처들이 어떻게 생기는지 알고 있었다. 오히려 정식으로 대련을 하거나 전투를 벌였다면 절대 생기지 않았을 그저 일방적인 구타와 심심풀이로 이루어지는 폭력의 증거. 빼곡히 앞뒤로 채우고 있는 자상, 화상. 아물지 못해 곪아 썩고 부러졌던 뼈 마저도 제대로 맞물리지 못한 채 아물어버렸다. 오히려 그가 손목을 잘린 쇼크에 기절했을 때에 서둘러 돌아와 수술을 진행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깨어나자마자 소리를 지르고 경련을 하는 몸뚱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진땀흘렸던 날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했다.
소리를 지르고 분노하며 어쩔 줄을 모르던 시기를 지나 입을 다물고 있으니 차라리 조용하고 편하다면 편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에드로스는 그를 챙겨주던 손길 전부를 거절했다. 무언가를 물어도 답하지 않았고 그저 침묵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알고있는 소수의 얼굴이 아닌 '타인'의 존재에 흠칫흠칫 놀라며 겁에 질린 아이처럼 당황했다. 말도 없이 그저 홀로 두려움에 떠는 사촌을 위해 핀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그의 곁에서 놀라지 않게 진정시켜주는 것 뿐이었다.

날짜를 헤아리는 것은 무의미할 정도로 수많은 시간들이 그대로 흘렀다. 겨우 요정꼴로 만들어 놓은 몸이 이제는 스스로 일어서고 조금씩 움직여댔다. 여전히 방문 밖을 나서는 것을 꺼려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다른 이들과 섞여있어도 크게 이질적이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게 됐다. 이제는 핀곤이 잠깐씩 자리를 비웠다 돌아와도 크게 놀라지 않는 마에드로스의 모습에 그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조금 있으면 제 자리로 돌아오겠지. 원래의 마에드로스로 돌아올거야. 가벼웠던 마음에 방심의 틈이 생긴거였을까. 바빴던 오전의 일 처리를 끝내고선 손목의 붕대와 화상자국을 보살피러 들어온 핀곤이 마에드로스가 있는 방문을 열자마자 무언가가 얼굴로 날아와 반사적으로 얼굴을 감쌌다. 침입자..? 당황한 얼굴로 재빨리 마에드로스부터 찾는데 이상하게 방 안은 깔끔했다. 자신의 얼굴로 날아온 것은 얇은 웃옷. 고개를 들자마자 벗은 마에드로스의 나신이 보였다. 단단히 화가 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마에드로스의 모습은 과거 핀곤의 기억속에 자리한 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마이티모?"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핀데카노."

사나운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마이티모야. 내가 알고 있는 마에드로스. 나의 사촌 형님. 핀곤은 평정을 가장하고는 허리를 굽혀 떨어뜨린 붕대와 약을 주웠다. 두근대는 가슴 속의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다. 너무도 오랫만에 듣는 목소리. 나의 마에드로스. 얼굴근육을 간신히 긴장시키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사촌 동생으로서, 유순하고 착한 핀데카노의 얼굴로.

"무슨 일이야. 옷은 왜.."
"너, 일부러 그랬지."
"응?"

주어가 없는 물음에 답을 할 수는 없었다.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도 핀곤은 다가오는걸 멈추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빠른 눈으로 벗은 마에드로스의 몸을 훑었다. 씻을때조차 부득부득 우겨서 몇 번 같이 들어가긴 했지만 움직이기 시작하고 난 뒤의 마에드로스는 늘 스스로 씻겠다며 문을 닫아걸었기에 다 나은 뒤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순 없었다. 거진 아물어 흉터만 남은 상처들을 꼼꼼히 눈으로 확인한 뒤 핀곤은 침대 위에 던져진 로브를 들어올려 넓게 펼쳤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들어봐야겠지만 우선 몸에 간신히 자리잡은 체온 유지가 더 급했다. 그러나 상황은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날카로운 손끝이 핀곤이 펼쳐쥔 로브를 후려쳤고 그 반동에 우습게도 마에드로스 자신이 휘청거리며 무너졌다. 몸뚱이가 주저 앉기 전 낚아챈 핀곤덕에 엉거주춤 매달리게된 마에드로스가 몇 번 반항하다가 그대로 축 늘어졌다. 결국 바닥에 그대로 웅크린 마에드로스 덕에 핀곤도 함께 그 곁에 무릎을 꿇었다. 가늘게 경련하는 몸뚱이가 품 안에 바싹 들어왔다. 벗은 등을 쓰다듬고 고개를 숙여 보여주지 않으려는 마에드로스의 머리칼을 한쪽으로 모아 넘겨주며 다독거렸다. 무슨일인데. 말을 해야 알지. 응? 형님. 왜그러는데.

"스스로를 괴롭히던 기억은 지워지기도 한다더군."

흠칫, 등을 쓰다듬던 핀곤의 손끝이 떨려왔다. 그 반응이 우습다는 듯, 작게 웃어보인 마에드로스가 고개를 바짝 들었다. 한층 가까워진 얼굴에 시선이 바로 겹쳤다. 서슬퍼렇게 쳐다보는 그 위압에 저도 모르게 물러선 핀곤이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그 입술이 열렸다.

"내 등에 낙인이 찍혀있다고 왜 말하지 않았지?"

크게 떠진 눈동자는 이제 자신을 힐난하고 있었다. 손목에 칼을 댈 때도 구하러 온 자신을 향해 다가오지 말라고 잔인한 말들을 내뱉을 때도 마에드로스는 이런 눈을 한 적이 없었다. 아니 핀곤의 기억 속에 자리한 마에드로스는 타인에게 결코 이런 눈을 한 적이 없었다. 쏟아지는 무언의 비난. 슬픔. 바닥까지 내쳐진 절망. 모든 감정들이 화살로 변해 오롯이 자신에게 꽂혔다. 그의 등에 올린 손이 심하게 떨려왔다. 낙인은 바로 그 손바닥 밑에 펼쳐져 있었다.

모를수가 없었다. 온 힘을 다해 펄떡이며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손목을 꺾고 핀곤의 품으로 떨어진 마에드로스의 몸을 끌어안고 추락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마주한 현실에 그는 눈을 몇번이고 감았다 뜨며 현실을 부정했다. 다 삭아 없어지다시피 한 옷감들 사이로 매끈한 등은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상처는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그가 상상했던 정도가 아니었다. 꽃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일그러지고 비틀린 문양들. 어둠의 힘을 양분삼아 피어난 수 많은 악마의 열매. 보기만 해도 소름돋을 정도로 징그러운 낙인들이 하나하나 밖으로 드러났다. 빼곡하게 빈 곳이 없을 정도로 새겨진 등을 수놓은 꽃들은 그동안 마에드로스가 견뎌온 일들을 자연스레 깨닫게 했다. 울컥울컥 나오는 구역질을 참을 수 없어 핀곤은 몇 번이고 토악질을 해댔었다. 그러니 그가 말하는 뜻을 모를 수가 없었다. 언젠간 말하겠지 싶다가도 침묵하는 마에드로스의 모습에 안일하게 마음을 놓은 채 대비하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설마 기억하지 못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나만 묻자. 날 동정했니?"

벼락같이 떨어진 물음에 핀곤의 얼굴이 번개같이 들렸다. 아니라고 거세게 도리질치며 변명했지만 싸늘한 눈동자는 자신을 오래도록 주시했다. 그가 원하는 만큼 시선을 마주한 채 핀곤이 끊임없이 속삭여 주었지만 먼저 고개를 돌린 것은 마에드로스 쪽이었다. 가만히 허공을 향하는 텅 빈 눈동자를 걱정하면서도 핀곤은 그를 부여잡은 손을 떼지 않았다.




"부탁 하나만 하자."

적막한 공간을 울리는 목소리에 숙여진 핀곤의 고개가 다시 들렸다. 불안한 눈으로 올려다보면 마에드로스는 평소같이 텅 비어버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면서도 스스로 일어선 후에 그는 천천히 벽난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편의 숙소는 조용했지만 외풍이 심해 겨울에는 빛이 드는 낮에도 벽난로에 불을 지펴야했기에 일찌감치 넣어두었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타닥타닥 빨갛게 익어가는 난로 앞에 멈춘 마에드로스를 따라 핀곤 역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등 뒤에 바짝 다가서자마자 마에드로스는 몸을 돌려 핀곤을 쳐다보았다. 결연한 의지. 살짝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은 더이상 떨리고 있지 않았다.

"내 기억을 지울거야. 그러려면 증거도 없어야 돼."
"마에드로스."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야. 내가 몰랐던 때로."
"...."
"상처 한두개 쯤 더 늘어난다고 해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테지. 이미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데."
"잠깐, 잠깐만 마에드로스."
"한번에 없애려면 자상보다는 화상이 더 빠르겠지?"

마에드로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곁에 놓인 부지깽이를 들고 이미 숯이 되어버린 벽난로의 안쪽을 뒤적였다. 두꺼운 쇳조각이 금새 빨갛게 달구어졌다. 그가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은 핀데카노가 황급히 그를 벽난로에서 떨어뜨리려 당겼으나 마에드로스는 손에 들린 부지깽이를 놓지 않았다. 뜨거운 것을 들고 휘청이는 그가 다칠까 두려워 금세 행동을 멈춘 핀곤이 천천히 마에드로스의 하나남은 손을 부여잡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하지만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응? 네 몸이 온전히 회복되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아. 지금 몸상태로는 그 상처들을 이겨낼 수 없어!"
"그 때는 정신적으로조차 이겨낼 수 없을지도 몰라."
"마에드로스!"
"네가 도와주지 않으면 나 혼자서라도 할거야. 엉망이 되더라도 상관 없어. 오히려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강경하게 나오는 마에드로스의 서슬퍼런 태도에 부지깽이를 빼앗으려던 핀곤의 움직임이 멈췄다. 놀랄만큼 냉정한 목소리. 그건 우발적으로 나온 말들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피스틸이고 스테먼이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그날 밤 까지는."
"...."
"너무도 생생해. 역겨운 기억들. 억지로 몸을 비틀어 나조차 생경한 곳을 제멋대로 헤집더군."
"..나도 그 끔찍한 기억을 네게 심어줬어."
"그래서 네게 부탁하는거야."

입술을 깨물며 그를 놓친 손끝을 바라보았다. 결국 자신도 같은 부류였다. 싫다던 마에드로스를 끌어안고 욕심껏 그를 안았다. 결국 마에드로스는 나와 나누었던 그 밤의 시간을 인정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거다. 이따위 입에 발린말들은 필요 없었다. 시작은 그들과 같았을 것이다. 나처럼 싫다는 그를 끌어안았을테고 입을 맞췄겠지. 등을 가득 메우다시피 한 꽃들을 발견한 당시에는 끓어오른 스테먼으로서의 살기가 사방으로 뻗치며 그를 향한 독점욕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분노는 점점 자취를 감췄고 죄책감은 커져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다. 그의 등 한쪽에 자리한 그의 꽃을 발견한 직후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꽃들과 엉켜 마에드로스의 등에 찍혀있는 핀곤의 낙인. 마에드로스의 깨끗했던 등에 피워진 최초의 꽃. 결국 너도 그들과 똑같다며 자신을 혐오하는 눈으로 보는 마에드로스의 환영이 매일밤 나타났다. 아니라고, 나는 결코 마에드로스를 '그런 식으로' 본 적이 없다 몇 번을 부인하고 싶었으나 입은 열리지 않았다. 마에드로스의 등에 피워진 꽃은 그에 대한 동경과 사랑과 애정의 증표이자 그를 억지로 취한 자신의 추악한 죄의 낙인이란걸 스스로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핀데카노."

부지깽이를 천천히 내려놓은 마에드로스가 핀곤의 손을 잡아올렸다. 힘없이 끌려올라온 손끝을 감아 억지로 깍지를 낀 마에드로스는 한걸음 다가가 붕대로 감긴 손목 끝으로 그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울 것 같은 모습으로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는 핀데카노에게서 마에드로스는 그와 처음으로 함께 했던 아침의 핀곤을 떠올렸다. 어른이 됐건만 속은 전혀 변하질 않는구나. 가만히 핀곤이 자신과 눈을 맞춰줄때까지 기다리던 마에드로스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를 탓하려는게 아니야."
"..."
"정말이야 카노."
"미안해."

처음의 사과였다. 그날의 핀곤은 미안하다는 말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먼저 올렸었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면서도 아득바득 고집을 부렸다. 절대로 후회하거나 미안해하지 않을거라고 이야기 했었다. 어린날의 치기로 밀치고 들어온 사촌은 앞뒤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사랑한다며 이해받지 못해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런 당돌했던 모습에 휩쓸린 건 마에드로스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사촌은 그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았지만.

"나는 그 사과를 받을 수 없어."
"....."
"그 말은 나를 우습게 봤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으니까."
"그게 아니고..!"
"이 내가!"

내지른 소리에 변명하려던 입술이 닫혔다. 순식간에 날카로워진 공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까보단 조금 누그러진 태도였지만 마에드로스는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아노르의 장자 마에드로스가 고작 사촌 꼬맹이 완력 하나 이기지 못했을거라 생각하는건가?"
"....."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나를 무시하는 방법이야. 잘 알고 있을텐데?"
"그러니까.."
"네게 하는 말이 아니라고 했잖아."

평소의 나긋한 말투로 돌아온 마에드로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핀곤의 손을 놓았다. 이제는 한 손으로 가려지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그동안 용케 익숙해졌는지 마에드로스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벽에 몸을 기대어 둔 채 가만히 허공을 주시하던 시선이 다시 핀곤에게로 돌아와 꽂혔다.

"시작이 혼자였지만 끝은 함께였어."
"...마에드로스."
"그리고 그 문제는 지금 중요하지 않아. 나는 네게 부탁을 했고 너는 대답을 해주면 돼."

단호하게 끊는 마에드로스 덕분에 핀곤은 몇 번이나 입술을 우물거렸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조차 핀곤은 그를 상처입혀야 하는 괴로운 마음과 그 상처를 낼 수 있는 것은 나뿐이라는 성취감을 동시에 맛봤다. 결국 마에드로스의 부탁은 거절할 수 없을 터였다. 그리고 마에드로스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핀곤을 이용했다.

"일주일만 더.."
"오늘 당장. 더 이상 질질 끌고싶지 않아."

짓씹듯 내뱉었지만 그 얼굴은 너무도 지쳐보였다. 오랜시간 서 있었던 데다 갑자기 활동량도 늘었고 날카로운 신경을 유지하기엔 아직은 체력이 부족했다. 힘빠진 시선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눈에 핀곤은 허리를 굽혀 떨어진 로브를 주워들어 마에드로스를 감쌌다.

"잠시만.. 이러고 있자."

데리고 올 때만 해도 품 안에 쏙 들어올 정도로 말라있던 몸이 많이 단단해졌다. 꽉 차 넘치는 몸을 바스러지게 끌어안은 핀곤은 한참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마에드로스를 보듬었다. 닿은 온기가 너무도 따듯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치익-

끔찍한 냄새와 소리들이 뒤엉켜 예민한 요정의 오감을 고문했다. 고문. 말그대로 고문의 현장이었다. 베겟잇을 짓씹으며 고통을 감내하던 마에드로스는 계속 혼절과 각성을 반복했지만 핀곤은 애써 모른 척 상처 위로 수건을 가져다 대 핏자국을 지웠다. 깊고도 진하게 새겨진 꽃들의 흔적은 검으로 얕게 베어내서도 자잘히 지져내서도 안됐다. 오랜 시간동안 화로에 무쇠로 만들어진 인두가 들락거렸다. 붉게 달아오른 쇳덩이가 목 뒤에서부터 천천히 피부를 엉겨붙이고 그 껍질을 벗겨냈다. 아직도 너무 많은 부분이 남아 있었다.
화상에 효능이 있는 약초와 필요한 물품들. 최대한 많은 수의 치유사. 단시간에 빠르게 끝내려 부산스럽게 준비하던 핀곤을 막아선 이는 마에드로스 본인이었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그저 혼자서 천천히 해달라 이야기하는 텅빈 눈동자는 모든 치료를 거부했다. 언성이 높아지고 팽팽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핀곤은 마에드로스에게 질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원하는 방법이었으니까. 다른 방법은 필요 없었다.
등 전체를 인두로 지져내는 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흉터가 드세게 남을수도 있어 핀곤은 마에드로스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몰래 들여온 약초가루를 짓이겨 넓게 펴바른 뒤 힘껏 수건으로 감싸 지혈을 했다. 그리고 다시금 인두가 달궈지면 다음 부위에 대고 힘주어 눌렀다. 열린 창문으로 추위가 몰아쳐 찬 바람이 그대로 들어오는 곳에서 핀곤은 더운 땀방울을 흘렸다. 어자피 이곳에는 추위를 느낄만한 요정은 남아있지 않았다.


한참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면적이 점점 줄어 많은 부분이 피투성이로 변했다. 기계적으로 다음 부분에 인두를 대어 힘을 주려던 손끝이 움찔, 하고 떨렸다. 자신의 문양이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작게 피어난 꽃. 바로 곁에 엉겨붙은 누군가의 꽃이 크게 피어나 자신의 꽃을 위협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움직여 그 위협적인 꽃을 먼저 짓눌렀다. 흐윽, 흡. 짓눌린 어금니 사이로 다시 비명소리가 새어나왔고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핀곤은 그 부분을 반복해서 몇 번이고 지졌다. 연기가 나지 않을 무렵까지 무게를 싣던 손이 화들짝 떨어졌고 벌겋게 익은 상처 곁에 남은 자신의 꽃이 눈에 들어왔다. 핀곤은 입술을 깨물며 인두를 화로에 던졌고 모른척 그 꽃이 있었던 부분에 겹쳐 수건을 대고 눌렀다. 화끈화끈하게 열오른 상처. 그 짓누른 손가락 사이로 피어난 꽃. 자신이 저지른 죄의 증거.

"욕심내는 건 이번 한 번 뿐이야. 용서해줘 마이티모."

이미 혼절한 마에드로스의 등 뒤에서 핀곤은 조용히 내뱉었고 대답을 바라지는 않았다는 듯, 굳은 얼굴로 화로안의 숯을 뒤적였다. 곧 빨갛게 달아오른 인두에서 열기가 피어올라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고 그는 지체없이 지혈하던 수건을 떼어놓은 채 손잡이를 들어올렸다. 피범벅이 된 등을 가만히 바라보던 핀곤은 손아귀에 힘을 실어 또 한 송이의 꽃을 뭉그러뜨렸다. 땀인지 눈물일지 모를 액체가 후두둑 떨어져 계속 시야를 방해했다. 지독히도 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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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마에. 밤.

2014. 4. 15.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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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드로스가 핀곤에게 구출되고 몇년동안 핀곤의 휘하에 있었는데 사실 고분고분하게 있던게 아니면 좋겠다. 오만가지 능욕과 조교와 고통을 모르고스에게 당하고 살았나 싶었더니 핀곤이 기다리고 있었음. 근데 마에드로스에겐 반항할 여지도 없었음. 목숨을 거두지않고 살려준 것은 핀곤이 맞았으니. 더군다나 아비의 원죄로 고개조차 들 수 없어서 그냥 마에드로스는 핀곤이 하자는 대로 다 함. 서라면 서고 먹으라면 먹고 자자그러면 자고. 근데 그 내려놓음이 가학심이 될줄은 몰랐음.
핀곤은 핀곤대로 잘 지내보려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음. 히슬룸의 군사들도 그러했음. 점차 마에드로스는 고립됬음. 핀곤조차 막대하고 형님에겐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고 더이상 불명예스러운 페아노르의핏줄이 살아나선 안된다며 세뇌교육부터 다시 하면 좋겠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빛과 같이 다가온 핀곤의 말이 그대로 귀에 박히고 결국 내 밑에서 다리나 벌리고 살라는 모욕적인 언사도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것에 한없이 안주하고 길들여지는 마에드로스 보고싶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오직 핀곤만 곁에서 자신을 돌봐주고 있으니 듣고 볼 수 있는건 핀곤 뿐이었고 7여년동안 온통 차가운 곳에서 지내온 자신의 몸을 데우고 뜨겁게 만들어줄 이 또한 핀곤이었다는걸 스스로 스톡홀름신드롬처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좋겠다. 다리에 힘이 돌아오고 숙소 바깥을 걸어 다닐수있을정도가 되었을 땐, 그 잘난 페아노르의 아들께서 이젠 정부노릇을 하시려드는군. 같은 수군수군함을 들어도 어자피 나는 어린 사촌에게 매인 목숨이니 그런말 듣는것에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그 모습을 보는 핀곤도 더더욱 화가나서 잔혹하게 마에드로스를 다루는거. 상황은 되게 싱겁게 끝나는데 핀곤이 나간 틈을 타 핀골핀이 직접 마에드로스를 찾아왔음. 전날도 잔인한 밤을 보낸 뒤에 뒷처리도 하지 못하고 나간 핀곤덕에 마에드로스는 침대기둥에 손이 묶인 채 알몸으로 천정만 멍하니 바라보고있음. 되도록 보지 않은 채 손을 끌러주면 그제서야 조금 놀란 얼굴로 마에드로스는 가볍게 가운이라도 걸쳐입음. 그 모습을 보며 핀골핀은 경멸의 눈빛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음. 네 꼴을 형님께서 보셨으면 굉장히 좋아하셨겠구나. 형님. 그 한마디에 텅 비어버린 눈동자에 빛이 서림. 잘난 페아노르가 원수처럼 생각하는 이복형제의 아들에게 다리를 벌리는 꼴이라니. 눈 뜨고는 못봐줄 광경이구나. 아무리 비웃어도 마에는 침묵을 지켰음. 대놓고 조롱하지는 못했다면 이런이야기를 듣는것이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핀골핀은 아랑곳하지 않았음. 품 속에서 주머니를 꺼내 마에드로스의 앞에 던졌음. 어릴적의 정을 생각해 마지막 자비를 베풀겠다. 말과 간단한 식량 정도는 챙겨주지.당장 이곳에서 나가라. 더이상 더러운 핏줄에 내 아들이 농락당하는것을 보고 싶지 않구나. 조금 당황한 것은 사실이었음 하지만 마에드로스는 아무런 말도 못했음. 더러운 핏줄. 아들을 위한 길. 자신이 물러나는것이 맞는 경우였음. 하지만 어디로? 몸을 의탁할 곳이 아직 있었던가. 그 생각을 하니 아득해져 옴. 그때 핀골핀 역시 생각해둔걸 말함.
적범한 승계권을 내놓거라. 그것을 내놓고 돌아간다면 너는 아마도 네 핏줄에게로 갈 수 있겠지. 사촌 형님을 위한 마음씀씀이가 드넓은 용맹한 핀곤에게 구출당한 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고 몸을 추스린 후에 지극히 감동을 받고 왕위계승권을 넘겨주었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대부분의 놀도르들은 수긍할테지. 거기엔 물론 네 핏줄도 포함되어 있을테고. 마칼라우레에게 서신을 넣어두마. 그 아이도 양심이 있다면 널 그냥 내버려두진 않을테니 말이다. 내 용건은 끝났다. 핀데카노가 돌아오기 전까지 반나절이 남았구나. 그 전에 작별인사를 들었으면 좋겠군. 아, 그 더러운 몸뚱이 씻을 시간은 허하지. 그럼 이만.

그렇게 마에드로스는 정말 가벼운 손으로 쫒겨나는거. 연락을 받은 마칼라우레가 쏜살같이 달려와 형님을 마중했지만 이미 예전의 형님이 아닌거지. 대강 아버지가 계실 때 주기적으로 폭력과 같은 관계를 지속해왔던 형님의 눈동자를 또다시 마주하면서 깨닫는거지. 이미 늦었구나. 아무말도 하지않고 일단 쉬라고 보살피는데 다른 동생들은 왕권이 넘어갔다는 말에 울분을 토하고 마칼라우레는 일단 형님이 몸조리 하실때까지 기다리자고 하고. 핀곤은 핀곤대로 아버지 명따라 잠깐 나갔다왔는데 마에드로스가 사라져서 성질내는데 핀골핀이 싸대기 날리면서 작은거에 연연해히지 말고 숲을 보라고. 상급왕이 된 뒤에 공적으로 마주칠 궁리를 하는게 더 효과적일거라 소리치지. 분하게도 맞는말인지리 꿍하고 있음. 그러나 핀골핀도 생각이 있었음. 마칼라우레나 다른이들이 쉽게 마에드로스을 내주지 않을거란걸 ㅇㅇ 그리고 마에 본인도 보는 눈들이 달라지고 현실을 깨달을 수 밖에 없는 곳이라면 여태 해왔던 일들이 잘못된 것이란 걸 깨닫겠지 ㅇㅇ 하여튼 핀골핀의 꿍꿍이대로 시간은 흘러감.
어찌되었든 마에도 점차 기운을 차렸고 핀곤도 제 페이스로 돌아왔음 하지만 겉으로 우호적 관계를 만들어 뒀던 두 집안은 종종 사절을 보내고 서로의 진영에 오감. 그때마다 핀곤은 본인이 나서서 갔음. 그러니 저쪽에서도 마에드로스를 보낼 수 밖에 없었음. 얼마나 우애깊은 사이냐고 미담삼아 이야기 하는데 겉으로 웃던 핀곤은 주변이 어스름해지기도전에 여독을 풀어야겠다며 방으로 향했고 은밀히 마에드로스도 발걸음을 옮겼음.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레 문을 여는데 열자마자 강한 힘이 마에드로스의 머리칼을 잡아당겼음.

악소리가 날정도로 세게 움켜쥔 손은 가차없이 그를 침대 위로 던졌음. 바로 공포에 질린 얼굴이 핀곤과 마주했음. 많이 좋아보여 마이티모. 살도 적당히 오르고. 이젠 나 없이도 살겠나봐?  솔직히 핀곤이 상냥하게 대해준것은 아니었음 죽도록 자신을 괴롭혔던 모르고스보다 약했을 뿐이었지 게다가 마에드로스는 꼬박꼬박 마이티모라 부르는 어절에 약했음.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느낌. 바들바들 떠는 마에의 옷을 난폭하게 벗기며 밀어붙인 핀곤은 으르렁댔음. 서방님을 오랫만에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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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마에. 걱정.

2014. 1. 21.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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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드로스 손이 컸으면 좋겠다. 키가 제일 커 장신인 것 처럼 손도 크고 손가락도 길고. 핀곤은 그걸 버릇처럼 만졌으면 좋겠다. 핀곤의 손은 아담해서 사실 칼도 맞추어 제작해야 할 정도였는데 늘 호기있게 웃으며 손이 작은데신 다른데가 크다고 자랑하면 좋겠다. 언제나 마에드로스 손가락을 가지고 장난치다가 마에드로스가 귀찮아서 그만하라고 손을 덥석 잡으면 꼭 한손안에 샥 들어오는게 단단하게 잡히면 좋겠다. 잡아놓고도 어쩐지 민망해 놓지 못하는 마에드로스나 그런 사촌을 보고도 귀엽다며 귀끝까지 빨갛게 될 정도로 웃는 핀곤이 보고싶다. 손가락을 얽으면서 또 장난을 치겠다. 그런 꿈을 꾸고나서 눈을 뜨면 자신의 앞에는 상처투성이의 마에드로스가 잠들어있고 불규칙한 호흡으로 겨우 숨을 내쉬고 있는게 보이면 좋겠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넘기고 천천히 손을 맞잡으려 밑으로 내려갔는데 당도한 곳에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빈 자리만 있었고 떨리는 그 손은 그 빈자리를 향해 나아가겠지. 이제는 자신의 손에 들어올 정도로 얇아진 손목을 조심스레 만지작대면서 멍하니 있으면 어느샌가 눈을 뜬 마에드로스는 반대편 손으로 핀곤의 손을 잡아채면 좋겠다. "간지러워 핀곤. 하지말랬지." 여전히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던 핀곤이 울어버렸으면 좋겠다.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핀곤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일어나 등을 두드려보았지만 좀처럼 그치지 않는 핀곤을 보며 마에드로스는 속으로 한숨 쉬면 좋겠다. 울고싶은것은 난데 네가 대체 왜 우는거냐 라며 속으로 중얼거리는 때에 핀곤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하는거지. "네가 울고싶으니까 내가 울게."

너무나 섧게 우는 핀곤과 그 앞에서 참고있는 마에드로스. 꼭 겹쳐진 손은 단단했지만 이전과 분명히 달랐다는걸 둘은 알고 있었겠지.

 

 

 

영화판과 완전 다르게 수다수다한 스란두일도 보고싶다 'ㅠ' 제왕의 면모를 가졌으면서 복흑으로 ㅇㅇ 사실 영화판은 대놓고 나 복흑이지렁 하고 광고하는 느낌이라서 ㅋㅋㅋ
맨몸으로 침대에 엎드려 엘프들에게 마사지를 받으면서 바로 코앞에 묶여 앉아있는 소린을 가지고 노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_? 근데 이건 되게 오른쪽도 괜찮네. 스란두일 내게 무슨짓을한거야 ㅜㅜ
앞에서 기분좋다는 신음소리내면서 눈 똑바로 뜨고 소린 주시하는거 참 좋네요. 소린도 지지않는다는 식으로 쳐다보는데 아무리 목석이래도 엘프가 앞에서 미간 찌푸리며 신음소리 비슷한 앓는소리가 입술새로 나오는데 ~_~ 다행히 옷은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묶인상태라 움직이지도 못하고 스스로도 곤혹스러워서 저도모르게 시선을 피하는데 예민한 엘프의 귀는 숨소리가 변한걸 눈치채지 못할리 없고. 픽, 웃으면서 손을 까딱하면 마사지하던 엘프들이 붉은 침의를 걸쳐주고 스란두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나 천천히 소린의 뒤로 가는거죠. 가려나보다 하고 안심한 순간 오른쪽 귓가에 아주 조용한 목소리가 스미는거죠. 산밑의 왕도 산 위의 쾌락을 즐길 줄 아시나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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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마에. 온기.

톨킨버스 2013. 11. 21. 00:53

사촌의 몸은 언제나 서늘했지만 나는 그 서늘함에도 어쩐지 온기를 느꼈다. 무심코 감겨오는 팔과 다리에 가만히 몸을 맡긴 채, 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밀어내도 밀릴 힘이 아니었고 지금은 몸을 비틀 힘조차 남아있질 않았다. 새까맣게 내려앉은 속눈썹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절로 숨이 막혔다. 평온했다. 조용했다. 여느때처럼 조용했지만 지금은 많이 달랐다. 나는 매달려있지 않았고, 혼자가 아니었다.
이제는 없어져 버린 오른손이 있던 자리가 아파왔다. 흠칫, 놀라며 무심코 맞잡은 곳에 비어버린 공간이 어색했다. 하나 둘 무뎌지면서 감정이 메마르고 신경마저 감각을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그것은 또 아닌 듯 했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적응하려 애썼다. 미미하게 이어지는 신경의 저림은 지금껏 겪어왔던 아픔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작았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는 꼴이 우스웠다. 살아남은 자신은 결국 패배자에 불과했다.

꿈속의 나는 여전히 그 곳에 있었다. 한쪽 팔이 끊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추위와 더위를 견뎠다. 타는듯한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 구차한 목숨이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끊없이 이어지는 산능선. 가파르게 깎아지른 절벽들. 에루께서 창조한 광활한 자연만이 주위에 있었다. 간혹 지나는 것은 어둠의 기운을 담고 주변을 정찰하던 새들. 매달려있던 나를 조롱이라도 하듯 한번씩 휘감고 지나가던 바람. 그 뿐이었다. 오로지 인내와 정신력으로 버텨야 하는 곳. 눈을 감아도 그려질 정도로 지긋지긋한 풍경. 철의 봉우리라는 이름에 걸맞는 무섭고도 두려운 곳에서 나는 나 자신을 비워야 했다. 한참을 그렇게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보면 어느샌가 커다란 손이 내게 다가왔다. 손목을 부러트릴 정도로 힘주어 잡아당기던 손이 사라지고 꽉 죄인 아픔에 헐떡이고 있으면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통증에 온몸이 잠식당했다. 잠긴 목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나오고 부르튼 입술이 하얗게 질리도록 이를 악물면 후둑 떨어지는 핏방울은 사촌의 얼굴에 비처럼 흩뿌려졌다. 오랜 시간동안 움직이지 못했던 몸이 무섭게 삐그덕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더듬거리며 맞잡은 곳에서 샘솟는 피는 나의 머리색보다 짙었다. 흔들리는 시야에는 늘 보던 풍경이 서서히 이그러졌다. 귓가에선 여전히 나를 비웃는 모르고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스며든 어둠의 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정신을 다잡고 나서야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겨우 귀에 들렸다. 마이티모 괜찮아. 울지마. 울지마.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주문이라도 되는 듯 나는 서서히 눈을 떴다. 억눌린 슬픔을 전하던 목소리가 귀에서 떠나질 않았다.

갑자기 커다란 손이 꿈에서처럼 비어버린 팔목을 매만졌다. 천천히 둥글리듯 상처부위를 다독이던 손은 그대로 나를 끌어당겨 품 안으로 가뒀다. 소스라치게 놀란 내가 잡힌곳을 비틀며 떨어지려고 했지만 몸은 주인의 의지를 거부했다. 파묻힌 꼴이 되어서야 끌어당기는 것을 멈춘 커다란 손이 다시금 팔목으로 향했고 나는 어금니를 악물어야 했다.

"...아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힘주어 고통을 참아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노곤함이 묻은 목소리. 잠결이라 낮게 깔린 저음의 목소리를 듣고나선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여전히 눈뜨지 않은 채로 상처부위를 매만지던 손은 눈물이 날 정도로 다정했다.

"금방 나을거야. 얼른 기운을 차려야지. 이제 정말 자자."

들릴 듯 말 듯 스며든 목소리.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는 손길. 맞닿은 이마의 열기까지. 마치 어릴적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잠을 청할 때 처럼 따스한 온기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이젠 진정으로 혼자가 아니란 것을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았다. 꿈보다는 잠이, 과거보다는 미래가 필요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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