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삼님이 보여주신 할디르 X레골라스 의사의사버젼이 넘 멋져서 1년차 레지던트 라는 설정으로 쏘삭쏘삭 u////u

 

평소에도 멋대로 건강체크한다며 이마맞대고 껴안고 추근덕대던 할디르가 오늘따라 심각하게 챠트도 간호사에게 넘겨버리고 레기를 끌고가는곳은 레지던트실. 무슨일이냐며 짜증내는데 척척 약 꺼내서 주는게 감기몸살약. 먹어/..안먹어도 돼/ 얼른 먹어. 심해진다./요즘 피곤해서 그래. 별거 아냐. 왜이렇게 유난이야? 성질내면서 일어서려는데 사람이 걱정하면 좀 들어라 하고 되려 화를내는 할디르. 그게 정말 짜증나는 레골라스. 작작좀 하라며 소리지르고 나와버리는데 평소같으면 다시 새초롬하게 다가와서 미안하다고 굴려줄 할디르가 그날따라 나오지도 않고 눈코뜰새없이 바빠서 얼굴도 못보는 새에 레기 얼굴은 점점 질려가고.. 선생님 괜찮으세요? 간호사 하나가 물어오는데 좀 피곤하다고 괜찬다고 하는순간 레기가 정신을 잃고. 놀라 비명을 지르는 간호사들 틈으로 퇴근하려던 복장의 할디르가 뛰어와서 레기를 업고 휴게실로 데려옵니다~_~

수액맞고 한참 푹 잔 뒤에 눈을 뜬 레기가 휴게실인거 알고 더듬더듬 일어서려는데 누가 끌어내려서 고대로 침대위에 누워버린 레기가 할디르를 발견하고. 아직 풀리지 않은 두사람이 아무런 말도 못할 때, 간호사가 들어와서 열재주고 할디르쌤 아녔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열이 39도까지 올라가서 호흡곤란오고 그런거 미리 체크하고 그러셨다고 이야기해주고 싹 나가버림. 되게 무안해진 레기가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할디르를 쳐다보다 미안하다며 한마디 하는데 ...됐다. 쉬어라. 그러고 나가버리는거. 그뒤로 레골라스는 할디르를 잘 볼 수 없게 됩니다 ~_~ 나중에 보니까 시간도 완전 정반대라서 원래 만나기 힘든데 할디르가 계속 찾아온거였고. 간호사들도 쌤 요즘 할디르쌤이랑 잘 안노시네요? 싸웠어요? 소아과 요즘 박터진다는데 할디르쌤이바쁘신갑다~ 하고 그래서 요즈음 굉장히 바쁜 시기에 계속 자기한테 왔다는걸 깨달음. 아 뭔데;; 그동안 솔직히 동기간에 우정같은게 좀 유난하다 싶었는데 이건 아닌거 같음. 기분이 찝찝함. 그래서 레기는 할디르를 찾아가보기로 함. 오후 근무를 마치고 할디르가 있는 소아병동에 들어서는데 진짜 정신이 한개도 없음. 자기네도 바쁜데 여긴 더 박터져. 레지들 막 뛰어다니고 할디르는 보이지도 않고. 오늘 야근 없이 정상 퇴근이랬는데 이래서야 퇴근도 못하고 일하고 있을거 같음. 근데 저 멀리서 할디르가 보여. 부를까 말까 망설이는데 분위기가 평소랑 달라. 굉장히 날서있고 서늘해서 쉽게 다가가기 힘들 정도야. 그러고보면 간호사들이 이야기하는게 그랬어. 평소에는 웃지도 않는데 유난히 레골라스쌤이랑 있으면 많이 살가워진다고. 진짜 친하신가봐요. 한게 생각났어. 할디르는 뭐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지 성질을 내다 밖으로 나가버렸고 한참을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머리를 식히러 간것 같아서 레골라스는 급하게 뒤를 따랐지.

해가 다 진 옥상 한켠에서 할디르가 담배를 입에 문 채,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어. 몇번이나 씹다만 필터는 헤지기 직전이었어. 레기는 할디르가 담배를 피운다는것도 몰랐는데. 주춤대며 다가서니 인기척에 놀란 할디르가 뒤돌았다가 멈칫했어. 놀란 모습. 몇번 눈을 깜빡이던 할디르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담배를 빼내 케이스에 넣었어. 오랫만이네./그러게. 바쁜가봐/요즘 그렇지/그래서 요즘 안오는거야? 얼굴을 보자마자 돌직구를 넣었어. 궁금한건 못 참았으니까.
나 궁금한거 있어 할디르./..뭔데/소아과 평소에도 이렇게 바쁘다며/...?/그런데 왜 그 시간을 쪼개서 나한테 오는거야?   당황스러운 모습으로 할디르는 새삼 레골라스를 바라보았지. 그런 눈빛은 몇번 본 적 있었어. 가끔 할디르는 레골라스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었으니까. 솔직히 이제와서 감이 안왔다고는 못하겠어. 근데 남자잖아. 친구고. 동기고. 오랜기간 보지 못했던 시간들은 혼란스러웠어. 그래서 이곳으로 왔던 거고. 근데 아까 할디르의 얼굴을 설핏 마주한 순간 깨달았어. 그렇게도 틱틱댔었는데 그렇게도 귀찮아하고 그랬었는데 보이지 않으니 찾고있었어. 결연한 표정으로 레골라스는 다시한번 물었어. 왜 나를 찾아 5층까지 올라온거야? 초연한 눈동자를 마주한 할디르가 피식 웃었어. 왜냐니. 널 좋아했으니까지. 자신감 없는 목소리가 낮게 울렸어. 옥상에 기대어 넣었던 담배를 다시 물고 양해를 잠시 구한 할디르는 라이터로 불을 켰지. 느지막히 빨아올리는 목울대에 레기는 저도모르게 숨을 삼켰어. 그런데. 혼자하는 사랑은 할게 못되더라. 너에게도 부담만 지우고. 그래서 그만 뒀어. 이제 궁금한게 풀렸어? 여느때처럼 활짝 웃어보이는 할디르였는데 되게 슬퍼보였어.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레골라스를 한참 바라보며 필터끝까지 타버린 담배를 비벼끈 할디르는 손을 탁탁 털어버린 채로 레골라스를 보고 슬쩍 인사했어. 날 추운데 집에 어서 들어가라. 감기걸릴라. 평소라면 뒤에서 껴안은 채, 얼굴을 부볐을 할디르가 그저 어깨에 손을 올린 채 툭툭 두어번 치고 떨어져나갔어. 그대로 지나쳐 안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레기가 멈춰세웠어. 이젠 내게 흥미 없어?/..흥미같은걸로 치부할가벼운 마음은 아니었어/..그럼 아직도 날 좋아해?/그래 좋아해./그런데 왜 날 안봐? 넌 네 감정을 앞세웠으면서 내 의견은 들어보려하지도 않잖아. 그 말 한마디에 돌아선 할디르의 얼굴은 굳어있었어. 한숨을 쉬며 머리를 흐트린 채, 한참동안 말을 고르던 할디르는 슬픈 모습으로 레기를 쳐다봤어. 나도 눈치란게 있어. 레골라스. 내가 고백을 했다면 넌 거리낌없이 날 받아줬을까? 그런거 아니잖아. 너 나 그런 눈으로 안보고 있잖아. 그래서 말 안한거야. 그냥 친한 친구로 있는걸로 만족하려고 그랬어.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되는 일이야? 이렇게까지 날 비참하게 만들면서? 미간을 찌푸리며 고통스럽게 말하는 할디르를 레골라스는 그저 멍청히 쳐다보았어. 무의식중에 자리잡은 상냥하고 친절한 할디르의 모습은 날 위해 배려한 모습이었구나. 저렇게 아파하고 있는데 그저 호기심에 상처입혀버렸어.. 아무말도 못한 채로 바라보자 할디르가 씁쓸히 미소 짓고 입을 열였지.

 미안. 조금 격했지.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그냥.. 잊어버려. 오늘 일은. 갈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찹아떼며 할디르는 걸었어. 평소의 나로 돌아가자. 아무렇지 않게 대하기로 마음 먹었잖아. 움직이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들렸어.
막 문을 열려는 순간 뒤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어. 멈칫, 하는 사이에 할디르의 가운이 레골라스의 손에 잡혔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레골라스가 말했지. 너 지금 이렇게 보내면 안 될거 같아. 할디르의 몸이 천천히 돌아 레골라스를 쳐다봤지. 고개조차 들지 못한 레기가 눈에띄게 떨고 있었어. 얼마나 용기를 냈을지 알아. 하지만 니감정은 동정이잖아. 천천히 손을 들어서 레기손에 들려있는 자신의 가운을 빼내려 했어. 그런데 레골라스가 먼저 할디르를 껴안았어. 폭삭 안겨버린 품에선 싸한 비누향이 흘렀어. 놔야지. 레골라스./..싫어/동정하지 않아도 돼. 나 그런거..싫다./..솔직히 모르겠어. 근데 이건 진심이야. 나 너 못보내. 그렇게 귀찮아하고 신경질 부렸어도 진심으로 싫어한 적 한번도 없어./...../그리고 치사하게 너 혼자 고백하고 그렇게 가면.. 나만 나쁜놈 되는거잖아/..아니야..아니야 레골라스. 그런거 아니야./..내게도 기회를 줘./.../널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을 달라고./오 레골라스. 이건 아니야. 너 지금 동정과 연민에 휩싸인거야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잖아/ 그럼 뭐가 정상적인 반응인건데? 그런게 정해져 있어? 이게 수학공식이야? 넌 왜 그런식으로 반응하는데? 니가 어렵게 내뱉은 진심만 진실이고 내 말은 그냥 동정이냐? 왜 사람말을 안믿어? 내가 너 좋아할 지도 모른다잖아! 똑바로 쳐다보던 눈동자가 무섭게 빛났어. 미친듯이 뛰는 심장소리가 입밖으로 나올 것 같이 할디르는 긴장했어. 뭐..라고한거야..지금?

그러니까...너를..좋아..에이씨. 몰라. 후다닥 떨어진 공간에 찬바람이 불었어. 옥상끝으로 도망친 레골라스가 아까전 할디르가 담배를 놔둔 곳으로 척척 걸어가서 담배를 끄집어냈어. 저 미친 담배연기도 못맡는게.. 철컥철컷 불을 붙이더니 한모금 빨려고 하기 직전에 할디르는 쏜살같이 그의 손에서 담배를 빼냈어. 아뭔데!/..무슨 말이야. 너./알거 없거든요. 저리가시지요./...레골라스. 진지하게 쳐다보는 할디르의 눈빛에 다시 레기가 위축됐어. 남은..진지하게 말하는데 무시나 하고../..진심이야?/그럼 진심이지. 내가 미쳤다고 너 놀리자고 이 꿀같은 퇴근시간에 여기까지 쫒아와서 이럴거 같냐?/...아니./근데 왜 안믿는데?/...너 같으면 믿겠냐?/...모르지 뭐.. 다시 눈이 마주친 둘이서 피식 웃었어. 담배를 빼앗긴 채, 어정쩡하게 올라가 있던 손을 내린 레기가 조용히 이야기하지. 솔직히 아직까진 잘 모르겠어. 나 게이아니거든. 근데 니가 나 좋아한다고 하고 이제 그만둔다고 하니까 왠지 억울해. 그렇게 쉽게 정리 될 감정은 아닌거 같아./좋아해야하는건지 모르겠어./좋아해도 될걸? 적어도 니 짝사랑에 한줄기 빛은 비춰진거 아냐?/당사자한테 들으니까 기분은 좋네./당연히 그래야지. 다시한번 피식 웃은 레골라스가 난간에 팔을 걸치고 밖을 바라봤어. 진짜 모르겠어. 그치만 너도 날 지켜봐 온 시간이 있을거 아냐. 내게도 그만큼의 시간을 줘야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공평한 거 아냐?/....보장이 없어./그렇다고 포기할거야?/...너 진짜 악질이야/알면서 좋아했으면서./이용해먹기까지./억울하면 노력해. 노력해서 날 네게 반하게 만들어봐. 그럼 되는거 아냐?/..넌 진짜 쉽게 생각하는거같아. 레골라스./이 이상 내게 어렵게 생각할 문제는 없어보이거든? 남의 속도 모르고 그런 말 하지마./키스해도 돼?/뭐!?/내가 널 좋아한단 의미는 그런거야. 키스하고싶고 껴안고싶고 그 뒤의 진도도 나가고 싶단거야. 넌 지금 진짜 착각하는 거라고./..../그러니 이제 그만해. 나 이제 괜찮아. 네가 이렇게까지 생각해줬단게 기뻐. 진심이야. 더 이상 노력 안해도 돼.
...할 수 있다면 어쩔껀데?/...레골라스./진짜 평소에는 찰떡같이 알아먹더니 묘한데서 머저리같은 구석이 있네. 할디르씨? 나 지금 댁이랑 키스할까? 응?/...레골라스..?

그리고 레골라스가 무턱대고 입맞춤. 당황한 할디르가 뒤로 물러서려고하자 레골라스가 밀어붙임. 입을 열지 않는 할디르덕에 그저 입술만 맞닿은채로 둘은 시선을마주했음. 한참동안 붙어있던 입술이 조금 떨어지고 레골라스가 반걸음 뒤로 물러섬. 그래 씨발. 니 멋대로 해라. 알았다. 찡그린 레골라스가 뒤돌아 그대로 문으로 가자 당황한 할디르가 뒤를 따라나섬. 아까와 반대로 할디르가 레기 손을 잡으려 하는데 레기가 뿌리침. 뒤돌아서 화난 표정으로 씨발 내가 어디까지해야돼냐? 고백도 받아줘. 시간들여서 생각도 해보겠다고 해줘. 긍정적으로 보고있다고 말도해줘. 먼저 키스도 해줘. 씨발 뭔데? 너야말로 사람 가지고 장난하냐? 니 감정만 소중하고 내 감정은 이해 할 필요도 없단거잖아? 둘이 해야 사랑 아냐? 왜 넌 니감정만 들이대고 지레겁먹고 그래? 날 밀쳐내는게 목표야? 그럼 성공한거야? 축하해? 내가 축하를 해줘야 하는거지?/..../왜 말이없는데?/...레골라스./입이 있으면 변명이란걸 좀 해봐/..진짜야?/...젠장.
이해안되는 모습으로 멍하니 서있는 할디르에게 다가가 레골라스가 단호하게 말했어. 나 바보 아니고 어린애 아냐. 내 감정 정도는 알아.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도는 안다고. 그래서 이해해 보겠대잖아. 내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다고 니가 날 믿어줘야 이 과정들이 소용 있는건데../...미안. 아니 아니 미안.. 내가 지금.. 꿈인...미안..   횡설수설하는 할디르를 보며 레골라스는 방금 전 화냈던게 무색해질 정도로 미안해졌음. 적어도 자길 좋아하는게 진심이었다는게 한눈에 보였음. 그동안 얼마나 고민한거야 진짜..어휴.. 아직도 횡설수설 말을 고르지 못해 불안하게 쳐다보는 모습을 보며 레골라스는 허리를 쭉 폈음. 할디르를 바라보며 덤덤한 얼굴로 이야기했음. 진짜야. 꿈도 아니야. 그니까 죽상 그만해./...레골라스./나도 너무 성급했던 것 같다. 이런이야기 이렇게 풀만한거 아니었는데.. 미안./..아니../그러니까. 일단 진정하고 시간을 갖자. 아까 말했잖아. 서로를 알 시간이 필요해. 무슨 생각인지 어떻게 서로를 보는지 말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조심히 끄덕이는 할디르를 보며 레골라스는 팔을 뻗어 할디르를 품에 안았어. 너무 가볍게 안겨드는 체온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어. 일찍 알아채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너무 둔했어. 이렇게 따듯한 온기가 곁에 있었는데도 말이야./..레골라스./너는 나에대해 많은걸 아는데 나는 널 몰라. 그러니까 이제부터 알아갈거야. 네가 도와줘. 알고싶으니까./나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까지도 안믿겨./또 그 소리네/미안. 근데..진짜..
헛웃음으로 계속 웃으며 안겨있던 할디르가 팔을 빼 되려 레골라스를 안았어.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꽉 끌어안은 힘에 레기는 놀라 숨을 멈췄지. 고마워..고마워. 레골라스. 낮은 저음으로 몇번이고 속삭여진 목소리에 온몸이 울렸어.

한참동안이나 듣고있던 레기가 슬쩍 팔을 올려서 할디르의 등을 감싸안았지. 나도 고마워 할디르. 날 좋아해줘서. 아무말도 없이 그저 껴안은 팔 안쪽이 좀더 조여들었어. 그렇게 한참 옥상에서 껴안고 있던 두 레지던트는 나란히 감기에 걸렸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 인데! 왜이렇게! 길어졌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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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레골. 무제.

톨킨버스 2013. 11. 13. 00:57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거에요?"

막 솜씨좋게 꽃관을 엮어내던 손가락이 멈췄다. 청회색의 눈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면 어린 왕자는 입을 뾰로통하게 내민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터져버린것을 애써 수습한 할디르는 그대로 관을 내려놓은 채 왕자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제가 떠나길 원하십니까?"
"아니요."

도리질치며 더욱 더 내밀어진 입술이 붉게 빛났다. 분명 자신의 동생 뻘인 나이의 엘프는 어둠숲에서조차 귀히 보살펴진 연유에서였는지 순진함이 빛을 발했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것인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것을 되묻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이번 한번 뿐이랴. 정해진 답을 내어놓을때 까지 왕자는 같은 질문을 계속 할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겁니까?"
"갑자기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왕께서요?"
"귀한 인연은 눈 깜짝 할 새에 사라진다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어요. 그렇기에 기회가 오면 꼭 잡아두어야 한다고 했는데 아직 나는 그 방법을 모르겠어요. 할디르를 잡고 싶은데 할디르는 내가 한눈 판 사이에 가버릴 것 같은걸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거죠?"
"할디르는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제 입으로 말하면서도 시무룩 해진 얼굴은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비쭉비쭉 눈치를 보면서도 풀죽은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지만 오해한 채로 놔두는 것은 곤란했다. 할디르는 관을 마저 엮은 후, 왕자의 머리 위에 얹고는 화들짝 떠오른 시선을 향해 웃어주었다.

"저는 싫어하는 이에게 꽃을 선물할 만큼 착하지 않은데."
"이거.. 내거에요?"
"싫으시면 가져가구요."
"아니. 아니에요!"

더듬더듬 꽃잎 하나라도 상할까 조심스레 움직이던 손이 불현듯 멈추었고 새파란 시선이 할디르를 향했다. 일렁이는 눈빛 속에서는 조금전까지 보지 못했던 기쁨이 춤추고 있었다.

"정말 날 주는 거에요..?"
"네. 왕자전하거에요."
"...좋아하는 분에게 선물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저번에.. 그.. 이야기했잖아요. 되게.. 좋아하는 분이..계시다고."

아이 앞에서는 행동 하나도 허투루 하지 말라 내려오던 도리아스의 격언이 눈앞을 스치는것을 느끼며 할디르는 한숨을 쉬어냈다. 하도 귀엽고 깜찍하게 굴길래 에둘러 조금 장난을 친 것 뿐인데 진심으로 가슴 속에 새기고 있었을 줄이야. 이래서야 이제껏 노력한 것이 다 허사가 되어버린 격이었다.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한숨을 쉰 할디르는 불쑥 레골라스의 머리 위로 손을 뻗어 조금 비뚤어진 모양새를 바로잡고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분은 아직 어리세요. 제대로 말도 못꺼냈는걸요."
"어려...요?"
"아직 성년조차 되지 않았어요."
"....제 또래네요."
"그렇죠?"
"예뻐요?"
"예뻐요. 엄청."
"...좋겠네요."

금새 시무룩해진 얼굴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왕자의 자존심은 생각보다 높아서 지금 쓰다듬으면 성질을 낼지도 몰랐다. 안타까움에 입술을 축이며 할디르는 잡은 손에 꾸욱 힘을 주었다.

"왕자전하는 약혼자가 있나요?"
"없어요. 그런거." 
"그래요? 의외네요."
"뭐가요?"
"그냥요."

그저 웃으며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다가도 금새 다시 시무룩해진 모습은 쉬이 풀리질 않았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디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분이 성인이 되는 날에 정식으로 청혼하려고 생각중이에요."
"얼마 안 남았네요."
"받아줄까요?"
"...할디르는 멋있으니까 받아줄거에요."
"저는 가디언 일 뿐인데요."
"아니에요! 멋있으니까! 음.....좋아할거에요."
"정말요?"
"네! 정말로 멋있어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끄덕이는 모습에 반짝임이 가득했다. 아이의 맹목적인 믿음인가. 아니라면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어 한 대답일까.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그저 어린 왕자님이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 하나가 중요했다.

"고마워요. 레골라스. 나를 좋아해줘서."
"할디르도 나를 좋아하잖아요. 그러니 당연해요. 우린 친구잖아요?"
"맞아요. 친구."

혀끝에 번지는 친구 라는 발음이 간지러운 듯, 왕자는 쑥쓰러이 웃어보였다. 조금 눈치를 보다가 일어서 옷에 붙은 풀들을 떼기 시작한 레골라스는 숲으로 들어가 엊그제 발견한 아기새를 보러 가자며 할디르를 졸랐다. 못 이긴 척,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를 확인한 레골라스는 앞서 달려나가 재촉했다. 쏟아지는 햇살이 왕자의 머리칼 위에서 꽃과 함께 춤추며 날아올랐다. 홀린 것 같은 시선으로 할디르는 나풀거리는 몸짓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새겼다. 몇 십년의 짧은 순간이 지났을 때, 왕자의 머리 위에 얹은 것과 같은 꽃들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니 조금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확신할 수 없는 미래지만 혹여나 꿈꾸던 소원이 이루어져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자신이 이제껏 보았던 모습들 중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이의 모습일거라고 할디르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간절히 꿈꾸는 자에게 소망하던 미래가 온다고 했던가. 머릿속으로 계속 원하는 것을 되뇌이는 할디르의 얼굴에도 왕자와 똑같은 금빛의 미소가 어렸다. 아직은 쉬이 내뱉지 못한 수줍고도 상냥한 소망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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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완전 ㅋㅋㅋㅋ문법 다틀림 주읰ㅋㅋㅋㅋ

 

사실 할디르는 끓어오르는 S의 끼를 숨기지 못하고 어둠의 비밀 클럽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머크우드로 파견나온 김에 이쪽 클럽 물좀 보려고 다녔던거죠. 비밀스럽게 클럽에서 자기끼를 펼치던 할디르는 의외의 인물을 발견해요. 그게바로 레골라스! 머크우드의 왕자! 쉬이 볼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타난 그의 모습을 보며 할디르는 마음먹죠. 나의 노예로 만들어주지. 이러면서 천천히 유혹해나가기 시작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백지같은 레골라스는 천천히 그의 조교에 빠져들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된 둘의 관계에서 레골라스는 갈증을 느끼는데...!
마스터.. 저..얼굴..아니 이름이라도../...그건 묻지 않기로 했잖아./ 죄송...해요..   차마 조르지도 못한 채 벌해달라는 레골라스를 평소처럼 조교해주지 못한 할디르.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는것을 꺠닫고 클럽에 발길을 끊는데.   매일같이 나오던 어둠의 제왕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다들 웅성웅성. 레골라스는 할디르가 처음이었는데...배신감에 시무룩. 우연히 궁에서 마주쳐도 시무룩하니까 마음먹고 이별의 말을 전해야겠다며 그날밤 늘 쓰던 가면을 착용후 클럽으로..

마스터..! 기다렷../쉿./ 은밀하게 자신에게 다가오던 모습을 보며 레골라스는 울먹거리지만 팬텀은 냉정하게 자신을 쳐다볼 뿐이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몸과 마음을 열어준 팬텀을보며 레골라스는 울부짖는데...그순간 비뚤어진 가면이..
앗 하는사이에 벗겨지려는걸 광속의 스피드로 움켜쥐었지만 레골라스는 알아버렸죠. 자신의 궁에 사절로 온 엘프중 그와 같은 눈매를 가진 자가 있다는 걸.. 황급히 돌아서버린 팬텀은 자신을 부르는 레골라스를 무시한채 궁으로 돌아옵니다.
방안에 틀어박혀서 자신의 처분을 기다리던 할디르는 생각외로 아무런 변화가 없자 놀람. 다른 문제가 생김. 레골라스가 울면서 돌아와서 집사에게 발각되는 통에 몸의 채찍자국이 그대로..노출이되서..난리가났는데..레골라스가 입을 다물고..  꼬박 일주일을 앓고나서야 겨우 정신이 들었는데 밤이었음. 목이 말라 고개를 돌렸는데 팬텀이 예의 그 복장으로 자신을 바라봄. 늘 시릴듯한 눈빛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어쩐지 혼란스러워보임. 천천히 다가와 고압적으로 평소처럼 내려보다가 그답지 않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함. 왜 말하지 않았지? 레골라스가 망설이다가 말을 돌렸지. 마스터../나는 왕자의 마스터가 아니야. 나는../그만..말하지 마세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팬텀에게로 손을 뻗음.
늘 같이 밤을 지냈지만 레골라스 쪽에서 팬텀에게 손을 댄 것은 이번이 처음임. 천천히 뻗은 손이 차마 손은 만지지 못한 채, 소매를 잡음. 조금 당기는 모습에 팬텀이 천천히 쳐다봤지만 레골라스는 그저 웃었음. 전 그냥. 마스터의 도움을 받았을 뿐이에요. 나의 팬텀.

그말 한마디에 할디르의 고개가 툭 떨궈짐. 그가 해왔던 일들은 취미이기도 하고 부업이기도 해서 쉬이 놓을 수 없는 것들이었음. 그저 취미생활. 불사의 몸은 쉬이 질리기 마련이라 이러한 것들이 향락이되고 음지의 소통이 되었음. 어쨌거나 동생들을 건사하고 계획을 세우려면 자신은 돈을 벌어야 했음. 장남이니까. 그래서 더더욱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고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근데 이 왕자는 달랐음. 대체 나에게 뭘 원하는거지? 협박? 처음엔 그렇게도 생각했음. 하지만 아니야. 이건..이건..팬텀은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졌음. 나는 이렇게 순수하게 누군가를 동경이나 연모의 감정으로 바라본 적이 있던가. 떨리는 손끝을 레골라스가 알아챔. 마스터. 마스터.. 마스터.. 잔잔한 목소리로 팬텀을 불러. 팬텀이 정말 몸에서 힘이 빠진듯 주저앉아. 놀란 레골라스가 몸을 일으키려했지만 등의 상처가 아직 낫질 않아 움찔거렸어. 놓쳐버린 소맷자락대신 팬텀이 손을 뻗어 레골라스를 지지했어. 늘 장갑을 끼고 있던 손이 아니야. 맨손이야. 레골라스가 가까스로 중심을 잡자 할디르는 천천히 손을 올려서 자신의 가면을 떼어내. 공포로 물드는 레골라스의 눈빛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어. 툭 떨어진 가면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은발의 엘프야. 레골라스는 눈을 감아버려.

  레골라스가 가까스로 중심을 잡자 할디르는 천천히 손을 올려서 자신의 가면을 떼어내. 공포로 물드는 레골라스의 눈빛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어. 툭 떨어진 가면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은발의 엘프야. 레골라스는 눈을 감아버려. 제가 마스터께..너무 큰 부담을 드렸던 것 같아요.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차라리 벌을 받을께요 마스터.. 나긋나긋하지만 힘있는 목소리는 어느새 물기가 배어있었어. 팔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을보면서 할디르가 당황해 몸을 일으켜. 손을 잡아 끌려는데 레골라스가 반항해. 아니.아니요! 전...전 괜찮아요. 저때문..저때문에 마스터가 다치는게 싫어요.. 제발..제가 잘못했어요...  손목을 낚아채려다 할디르는 그모습을 보고 우뚝 멈춰버려. 왕자는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어. 혹시나 피해가 갈까봐. 죄스런 마음이 더해져 짐이되었어. 천천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침대 곁에 무릎꿇은 할디르는 왕자가 진정할때까지 기다렸어. 한참을 기다리다 소리조차 들리지 않자 어느새 눈물을 그친 레골라스가 손가락 틈새로 빼꼼이 눈을 떠. 그렇지만 자신의 앞에서 가면을 벗은 채, 올려다보고 있는 할디르를 보고 다시 눈을 꾹 감아. 이제서야 진정이 된것 같아 할디르는 가만가만 말을해. 왕자. 제가 혹 싫으십니까? 갑자기 던져진 질문에 레골라스의 고개가 흔들렸어. 그러면 혹 절 좋아하십니까? 이어진 질문에 화들짝 놀래. 이건... 아무런 반응이 없자 할디르는 쓰게 웃었지만 모든걸 다 내려놓는 심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어. 이래서 일을 시작했고 늘 누군가를 차갑게 대했습니다. 채찍을 휘두르는 것이 그저 하나의 취미처럼 자리잡았죠. 그런데.. 눈에 밟히는 이가 있었습니다.  귀를 막고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바들바들 안간힘을 쓰고있던 레골라스가 눈에 보이게 화들짝 놀래.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할디르는 말을 이었지. 이렇게 방심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래서 마음을 꺠닫는 순간 도망쳤습니다. 전 비겁자죠. 마음이 흔들리는것은 참으면 될거라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어요.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이 지나도.. 흔들리는 마음에는 풍랑이 일었습니다.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져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딱 한번만 미친척하고 작별인사를 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밤. 저는..  제 추한 몰골을 들켰습니다.. 모든것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죠. 나는.. 그냥. 왕자를 모욕한 죄를 덮어쓰면 되겠구나. 이것이 그에게 속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를 위해서도 저를 위해서도 나은 결론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이곳에 있습니다. 누군가가 절 감싸줬기 때문입니다. 필사적으로 그는 절 숨기고 모른척 했습니다. 그 귀한 마음을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전...그 마음을 받들 수 없습니다. 저는..처음부터 왕자를 속였으니까요. 제가 나설 자리는 없습니다. 왕자. 그동안 감싸주셨던 마음. 베풀어주신 은혜. 모두 끌어안고 가겠습니다. 제가 해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저 조용히 사라지겠습니다. 그것은 왕자를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말을 마친 할디르는 등을 곧게 편채로 아직 눈감고있는 레골라스를 바라보았다. 몸을 조금 일으켜 눈을 가리고 있는 손등에 손을 포갰다. 처음으로 맞잡은 손이었다. 한참을 포개어 온기를 느끼던 할디르가 손을 거둔 채 일어섰다. 디 행복하시길. 나마리에. 할디르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바르게 서 고개를 숙였다 들린 눈물에 살짝 안타까움. 불안정함이 넘쳐흘렀다. 천천히 방향을 틀어 완벽히 왕자를 등지고 할디르는 걸었다. 한걸음. 두걸음. 세걸음. 네걸음. 다섯걸음째 걸음을 옮기려 움직였을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서세요. 할디르. 아까까지 떨리던 목소리는 어디로 가고 공식 석상에서 만났던 왕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스라치게 굳는 등줄기의 긴장을 풀어내고 할디르는 멈췄다.

명령입니다. 나를 보세요. 할디르가 고개를 살짝 내리 깔고 몸을 돌렸다. 이제는 내 손안에서 울며 애원하던 엘프가 아니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건 머크우드의 왕자. 자신과는 신분이 완연히 다른 구름속의 존재.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명을 받드는 자세로 그의 하명을 기다렸다. 그가 죽으라면 죽고. 왕가를 능멸했다 죄를 물으면 합당한 대가를 치룰 생각이었다.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의 손에 이렇게 아픈 칼자루를 쥐어주고 싶지 않았는데.. 침대 위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맨발, 잠옷차림의 레골라스의 움직임이 단편적으로 시야에 들어왔다. 상처투성이의 발. 필시 자신을 만나러 나온다고 평민의 신을 신어서였을거다. 왕가에는 고운 비단 신 밖에 없으니... 그 발길이 에둘러 어딘가로 향했다. 화려한 태피스트리가 진열된 곳에는 장식장이 있었다. 그 위에서 레골라스는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날붙이의 냄새가 났다. 칼이었다.
맨발의 왕자는 자신에게 향했다. 할디르는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다. 왕자. 그대의 손에 결국..피를.. 하지만 모습은 결연했다. 모든 죄는 자신에게 있었다. 왕자가 이런 결말을 원한다면 그정도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코앞까지 다가선 상처투성이의 발이 오롯이 시야에 담겼다. 마지막 일 줄 알았다면 그대의 얼굴이라도 한 번 제대로 눈에 담았으면 좋았을텐데.. 의미없는 웃음을 지으며 할디르는 왕자의 명을 기다렸다. 이제는 한 발자국만이 남았다.
그순간 할디르는 자신의 어깨에 떨어진 무딘 칼날을 깨달았다. 반사적으로 놀라 고개를 들어 마주친 푸른 눈동자에는 힘이 있었다. 일국의 왕자. 머크우드의 차기 군주. 오만하고 강인한 모습의 레골라스는 일개 사신의 지위에 있는 자에게 기사의 작위를 내렸다. 그대. 할디르. 지금부터 나의 기사가 되겠는가. 서약은 엉망이었다. 충성서약 후 하는 의식은 이미 치뤄진 후였다. 놀라 혼란에 가득찬 눈동자가 결연한 왕자를 쳐다보았다. 참으로 오랫만에 마주친 시선이었다. 왕자. 저는../묻는 말에만 답하라. 나는 그대에게 지금 나의 기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대. 나의 기사가 되겠는가./ 왕자!!!!/ 대답해!!! 그것만. 나를.. 나를 몰아가지마.. 그러니 대답해. 할디르.
내 마음을 거품으로 만들지 마. 내가 장난이었다고 생각해? 그 수많은 밤을 당신과 함께 보냈어. 그게 하룻밤의 꿈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 당신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야. 나는. 그럴수 없어. 그러니 선택해. 그대가 나를 왕자로 대한다면 나도 그대를 사신으로 대할거야. 그대의 선택에 달렸어. 이나라의 왕자는 스스로가 원하고 내가 선언한다면 타국민이라도 언제든지 받아드릴 수 있어. 그게 왕실의 법이다. 나는 그 법대로 행할 뿐이야. 그대가 만약 거절한다면.. 그래. 거절. 그런다면 나는 왕자의 지위에 걸맞게 그대를 대할거야. 그대에게 왕가를 모욕했다는 내란죄를 덮어줄까. 로스로리엔에서도 그 혐의만큼은 부인하지 못할걸. 그럼 나는 그대를 가지게되겠지. 어떤식으로든. 하지만 기회를 주는거야. 나는. 그대가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면. 일말의 연민을 느끼고 있다면.. 그대는 서약을 해야해. 그건 나의 뜻이자. 왕자의 뜻이니까.  이제 선택해. 그대. 할디르. 나의 기사가 되겠는가.
왕자는 누구보다 당당했어. 그건 늘 보던 모습이 아니었지. 한번도 레골라스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려 들지 않았어. 낮이고 밤이고 마찬가지였어. 하지만 할디르는 깨달았어.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야. 이 치기어린 왕자는 거절해도 자신의 곁에 묶어두기위해 허튼 수를 쓸거야. 빠르게 회전하는 머릿속에서도 천천히 웃음이 비어져나왔어. 죄인이 앞에서 사함을 받았어. 나는...내가 한 짓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인데.. 레골라스는.. 왕자는.. 할디르는 바라보았던 고개를 살짝 내렸어. 고민하는 눈치에 레골라스의 눈빛이 일렁였어. 안간힘을 다해 서 있는거야. 나는 이렇게 모든걸 내려놓았는데 넌.. 당신은 왜 아무것도 보이질 않지? 괴로운 마음은 잊고있던 상처로 번졌어. 후들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었지만 시선을 내리깐 할디르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지. 할디르가 작게 숨을 골랐어. 어깨에 놓인 칼이 덩달아 떨렸어. 팽팽한 긴장 속에 할디르의 입술이 열렸어. 내가. 그렇게. 널. 가르쳤나.?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목소리. 그러나 익숙한 목소리. 팬텀이었어. 그 순간 레골라스는 들고있던 칼을 떨어뜨리고 무너졌어. 아니 안았어. 무릎꿇고 자신의 발밑에 복종하고 있던 할디르에게 뛰어들었어. 천천히 고개를 든 모습엔 평소의 가면속에 숨겨진 눈빛이 담겼어. 하지만 행동은 따스했어. 팬텀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아니 오히려 발로 차버렸을텐데.. 할디르는 두 팔을 벌려 무너지는 레골라스를 껴안았어. 눈물 범벅이 되버린 레골라스가 울음을 터트렸어. 마스터..
천천히 감싸안던 할디르는 레골라스의 상처에 닿지 않게 주의하며 뒷머리를 쓰다듬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아. 멋적어진 모습으로 천천히 귓가에 속삭여줘. 머크우드의 레골라스. 그대에게 종속의 맹세를 바치는 것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덜덜 떨리던 고개가 들려. 코앞에서 마주한 시선은 아까보다 사랑스러워. 자꾸 가득차오르는 눈물을 흩어버리고 레골라스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의미.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뀐 눈빛에 저도모르게 오싹 레골라스는 몸을 떨었어. 나는 아직 그대의 종속의 맹세를 듣지 못했는데. 레골라스. 조금씩 흥분으로 떨리는 레골라스의 눈빛이 덩달아 흔들렸어.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눈치를 봐. 그 모습또한 사랑스러워. 하지만 할디르는 침착했어.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려.
이윽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깨달아. 평소에는 발등이나 손 위에 했어. 그건 평범한 플레이의 시작이었지. 나는 당신께 내 모든것을 맏기겠습니다. 종속의 의미. 구속의 시작. 하지만 이제 그곳에 키스할 일은 없을거야. 완벽한 종속의 도장만 찍으면 되니까. 떨리는 입술이 다가와. 도톰하게 다물어진 입술로 겹쳐져. 천천히 열리는 안쪽에 조심스럽게 침범한 혀가 움직여. 오로지 그만을 위해. 그가 가르쳐준 방식대로. 그에게만 할 수 있는 종속의 맹세. 레골라스는 맹세했어. 레골라스의 리드를 한참이나 즐기고 있던 할디르는 천천히 숨이 가빠질 순간에 가볍게 밀쳐내. 순식간에 위축되어 눈치를 보는 레골라스가 숨을 고르기도 전에 제대로 뒷목과 허리를 감싸안아. 그리고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속삭여. 입술에 한 건. 네가 처음이야. 나는 이제 너를 놓을 수 없어. 그러니 도망갈 생각은 말아. 아주 잠깐, 할디르의 입꼬리가 올라갔어. 처음 보는 웃음과 믿을 수 없는 말들에 레골라스의 눈이 커졌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어.
달달하게 이어졌던 키스는 순식간에 바뀌었어. 물어뜯을듯한. 욕망이 가득담긴 입맞춤이야. 한번도 이렇게 저돌적으로 탐한 적 없었던 할디르였어. 가빠지는 호흡에 눈물이 났어. 어떻게 해. 진짜. 진심으로. 너무... 좋아.
한참동안이나 이어졌던 키스가 끝나고 레골라스는 얼굴을 수습하려 애썼어. 눈물이 지저분하게 흐르고 부르튼 입술은 새빨개져있었어. 하지만 할디르는 입을 떼지 않았어. 눈가로 혀를 내어 눈물을 훔치고. 얼굴 곳곳에 베이비키스를 퍼부었어. 얼굴 곳곳에 입맞춘 후 할디르는 얼굴을 마주봤어. 이제 조금은 정리된 얼굴로 부끄러운 듯 이곳 저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모습에 조금 웃으며 할디르는 그의 얼굴을 감싸안고 자신을 쳐다보게 했어. 레골라스. 사랑한다.    절대 담기지 않을거라 여겼던 마음을 담은 말들이 귓가에 계속 울려퍼졌어.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레골라스의 모습을 바라보며 할디르는 아주 조금 편해진 모습으로 웃었어. 네게 강요하는게 아니야. 저. 말해보고 싶었어. 입 밖으로. 내 마음을. 천천히 웃어보이며 할디르는 당혹해 할 레골라스를 위해 다시 끌어당겨 안았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좋아. 괜찮아. 나는. 그저 네 곁에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다 괜찮아.
그러던 순간 레골라스가 몸부림을 쳐 밀어냈어. 웃으며 쳐다본 레골라스의 입가가 굳게 닫혀있었어. 부담이었구나.. 순식간에 죄책감에 다시 사로잡혔어. 하지만 그런 기분을 느끼기 전에 레골라스가 더 빨리 입을 열었지. 어린애 취급하지 말아요. 할디르. 내 대답은 왜 듣지 않아요? 나는 당신의 주인이에요. 나도 말할수 있고 생각할 수 있어요. 앞으로 그런 모습은..좀 삼가해주면 좋겠어요. 당신 주인으로서 명령이에요. 당당하게 말하고있지만 목소리엔 뒤섞여 불안해진 감정이 튀어나왔다. 가만히 바라보는 눈 앞에서 레골라스는 한참이고 말을 골랐다. 그러다 겨우. 내뱉었다. 나도.. 당신이 좋아요. 할디르. 사랑해요. 내뱉고 부끄러웠는지 레골라스가 잠깐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반응이 없자 다시 고개를 돌렸다. 멍청히 자신을 바라만 보고있는 할디르를 보며 레골라스는 조금 화가난 모습을 보였다. 할디르. 불린 이름에 화들짝 놀란 할디르가 멍해진 시선을 고쳐잡으며 레골라스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날 좋아하는건 되고 나는 안되요?/ 아니..아니에요./ 싫어요?/ 아니에요! / 그럼 좋아요?/ 돌직구로 날아온 물음에 할디르의 얼굴에 답지않게 화색이 돌았다. 좋아요? 다시한번 더해진 물음에 입이 마르는지 몇번 입술을 축인 할디르가 겨우 대답했다. 네. 좋아요. 좋아요. 정말로 좋아요. 레골라스. 아무것도 꾸밈없는 모습으로 그저 울듯 웃어보이는 모습에 레골라스의 표정또한 겨우 풀어졌다. 아까와는 다른 기류가 둘 사이에 흘렀다. 머뭇대며 웃어보이는 모습에 웃음이나왔다. 하지만 레골라스는 꾹 참고 말을 이었다. 안아줘요. 할디르. 얄궂게도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레골라스는 이제 걱정하지 않았다. 전해졌을거야. 분명. 푸른 눈동자가 올곧게 바라보았다. 시야에 들어온것은 방금 막 연인이 된 엘프. 나의 주인. 나의 마스터. 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있었다. 시선을 맞춘 채, 웃어보이며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Yes. your highness. 시야가 가려지고 따스한 기운이 몸을 감싸안았다. 느낄수 있는것은 단 하나.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거란 믿음. 그 하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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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의 밤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궁에 당도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왕을 배알하고 나온 그 짧은 시간동안 밖은 온통 캄캄해져 있었다. 숙소를 안내하는 엘프의 도움을 받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 할디르는 자신이 나고 자랐던 곳과는 전혀 다른 숲의 모습에 조금은 흥미로워했다.
이방인을 위한 숙소는 생각보다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머크우드의 특성상 왕실의 중요한 곳들은 깊숙한 지하에 숨겨져 있었고, 혹여나 자리할 수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이렇게 구분해놓았다고는 했지만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이미 숲에 진입하면서부터 모든 무기들을 내려놓아야 할 정도였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암기정도만 몸에 숨기고 들어온 할디르의 눈에도 머크우드의 대우는 유별났다. 그저 지나던 방문자도 아니고 사신의 임무를 띄고 온 자에게까지 엄격하게 적용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터였다.

혼자가 된 후에야 겨우 긴장되었던 숨을 고르게 내쉬고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수발을 드는 이가 식사를 하시겠느냐 물어왔지만 내키지 않아 물리고 났더니 긴장이 풀리고서야 식욕이 돌아왔다. 어자피 넉넉히 챙겨온 램바스가 있으니 괜찮겠지란 안일한 생각으로 그는 가벼운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확 트여진 창에서는 달빛이 따스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의 생활은 익숙했지만 또한 이토록 높은 곳에 의도적으로 지어진 곳은 처음인지라 풍경은 여전히 색달랐다. 창밖에 보이는 것은 그저 푸른 숲의 거대한 모습일 뿐. 로스로리엔에서처럼 작은 새싹이나 아름다운 꽃들은 찾아볼 수 조차 없는 삭막함이 감돌았다. 그제서야 할디르는 머크우드 라는 지명의 뜻을 가슴속에 아로새겼다. 어둠이 훝고 지나간 공간은 손댈 수 없이 공포와 절망에 짓눌려있는 것 처럼 보였다.
로스로리엔의 왕과 여왕께서는 이런 모습들을 걱정하고 계셨다. 자신들이 수호하고 있는 영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머크우드의 전례를 주시하고 있으셨고 또한 염려하고 계셨다. 언제 어디에서 악의 세력들이 마수를 뻗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두개의 세력이 연합해 방도를 찾아야 하지 않겠냐며 화친을 제의하시려 했지만 생각보다 녹록치 않은 상황이었다. 워낙 감정의 골이 깊었던 사이였다. 아직도 불신이 두 세력 사이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것이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왕의 미간은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어자피 쉬이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깃을 적셔가는 것처럼 조금씩 교류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마음을 여는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웃어보이시던 주군의 말씀을 상기하며 할디르는 마음을 편하게 가지기로 했다. 모처럼의 근무에서 벗어난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에 지쳐있던 몸과 마음은 생각을 편히 고치자마자 긴장을 서서히 풀어냈다. 적어도 사신의 깃발을 가져온 이에게 문전박대를 하고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곳 같았다.

잠깐 긴장의 끈을 늦춘 사이 아주 미세한 인기척이 들려왔다. 감기려던 눈이 번쩍 뜨인 채, 방의 입구로 다가가 천천히 등을 벽으로 붙였다. 이곳에 다른 손님이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하였으니 이곳으로 오는것이 분명했다. 식사도 거른다고 했으니 더이상 볼 일이 없을텐데.. 역시 아직까지도 불신이 자리하고 있는것인가 생각하며 할디르는 허리춤에 숨겨두었던 암기를 꺼내고 준비했다.
발걸음이 점점 이곳으로 다가왔다. 잠시 멈칫하며 시간을 지체하는 행동에 먼저 달려들어야 할지 아닐지를 고민하던 것도 잠시, 거짓말처럼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실례합니다. 왕께서 내리신 것이 있어 늦은 시간임에도 이리 들렀습니다. 주무시던 중이 아니시라면 잠시 괜찮을까요?"

무엇을 보내신다는 말씀은 따로 없으셨지만 상대의 말투는 꽤나 온화하고 침착했다. 침입자로서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에 할디르는 겨누었던 암기를 다시 숨기고 조금 시간을 지체했다가 문을 열었다. 바로 코 앞에 서있던 엘프가 빙긋 웃어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들의 만남에 별이 빛나는군요. 스란두일의 아들 레골라스라고 합니다. 로스로리엔의 할디르. 이시지요?"

웃어보이는 모습이 햇살처럼 환했다. 자신의 이름까지 말할 줄 몰랐던 할디르가 조금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제 소개를 할 수 있는 영광을 졸지에 빼앗겼군요. 그렇지만 다시한번 스스로 하지요. 로스로리엔의 할디르입니다. 그대가 머크우드의 왕자님이십니까."
"왕자라고 하기엔 조금 쑥스럽네요. 그냥 레골라스라고 불러주시면 좋겠어요. 괜찮으시다면 잠시 방 안으로 들어가도 좋을까요?"

선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에 들린 바구니를 슬쩍 들어보였다. 간단한 식사거리와 함께 들어있는 포도주 병을 확인하고 난 후에서야 할디르의 표정에도 미소가 돌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날붙이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직 경계를 푼 것은 아니었지만.
손님이 들어올 수 있게 슬쩍 자리를 비키자 당연하다는 듯, 그는 안쪽의 테이블로 향해 이것저것을 꺼내놓았다. 달빛이 가장 잘 드는 자리에서 등을 지고 열중하는 모습에서 언뜻 왕의 얼굴이 보였다. 천천히 다가서자 막 준비를 마친 손을 뻗어 자리를 권했다. 졸지에 마주보고 앉게 된 자리에서 천천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따갑네요."
"실례했습니다. 남을 관찰하는것은 제 일중 하나라서.."
"아니에요. 기분이 상했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기분 좋은 웃음을 보일 줄 알았다. 천천히 웃으며 왕께서 그리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계시진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는 포도주의 병을 뜯고 가져온 잔을 채웠다. 막 반쯤 차오른 잔을 건네받고 조금 고민하던 새에 조금 도톰한 입술이 다시 열렸다.

"손님을 대접하는 일은 머크우드에서도 중히 여기는 사항입니다. 왕께서는 정무에 바쁘시어 쉬이 이런 자리를 마련하실 수 없는 터라 이곳에서는 제가 맡고 있습니다."

물론 선뜻 믿기는 어려우실테지만요.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웃어보인 그가 먼저 잔을 들어 술을 넘겼다. 한 잔을 완벽하게 비우고 난 뒤에서야 다시금 잔을 채우며 건배를 청했다.

"조촐해서 마음에 안드실 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비로소 의심의 눈초리는 거두어졌다. 꼿꼿하게 앉았던 할디르는 그제서야 자세가 조금 풀어짐을 느꼈다. 그가 하는대로 잔을 들어 가볍게 부딧혔다. 맑은 크리스탈의 파열음이 공간을 채워나갔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레골라스. 호의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받아주셔서 영광입니다."

목을타고 넘어간 술의 온도가 비어있는 안쪽을 생각보다 후끈하게 데우고 넘어가는 것을 느끼며 할디르는 조금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보며 레골라스가 웃어버렸다.

"제가 실수를 했군요. 조금 덜 독한 술을 가져오는건데.."
"아니, 못 마시는 편은 아닙니다. 그저 조금 놀라서."
"실은 어둠이 내린 숲에서는 악몽을 꾸지 않으려 독한 술을 마시지요."
"그대도 악몽을 꿉니까?"
"그건 비밀입니다."

묘하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재주를 지녔다고 생각하며 할디르는 그가 권해준 음식들을 천천히 들었다. 두런두런 꺼내는 이야기들은 끊길 새가 없이 시간을 가득 채웠고 어느새 자신조차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지않은 체류기간동안이나마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상대가 생긴 것 같아 마음 한곳이 편안해졌다. 혹 그를 통해서라면 주군의 뜻을 전하기에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라는 계산 또한 숨어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머크우드의 왕자이자 왕에게 가장 근접한 이였으니까.
천천히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니 엘베레스의 별이 하늘 저 건너편으로 넘어갈 시간까지 당도했다. 그러나 좀처럼 지치지 않는 모습으로 자신을 상대하는 레골라스를 보며 할디르는 조금 놀라움을 느꼈다. 아까 보였던 모습이 거짓이 아니었던 걸까. 상대의 기척을 예민하게 느끼며 레골라스는 다시 잔을 채우며 할디르를 바라보았다.

"왜 취하지 않나 궁금하십니까?"
".. 생각보다 예민한 편이네요."
"이곳에 있다보면 자연스러운 모습이지요. 어느 누구도 사실 믿을만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어둠은 생각보다 많은것을 변화시키나 봅니다."
"변화. 변화라. 변화라기보단 생존을 위한 본능이라고 해두죠. 동물이든 엘프든 인간이든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하는 신의 피조물이 아닙니까."
"심각한 곳으로 끌고 갈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심각한 곳으로 이끌었군요. 사실 전 술이 꽤 세서요."

유쾌한 모습으로 웃어보이며 테이블 위에 놓여진 할디르의 잔에 손을 뻗어 홀로 건배를 하고 잔을비운 레골라스는 장난끼 가득한 눈빛으로 할디르를 쳐다보았다.

"안 믿겨지십니까?"
"...조금은 놀랍네요."
"혹 그대가 독한술도 괜찮다 하시면 나중에 내기를 하는것도 좋겠네요. 머크우드의 좋은 술은 왕의 창고에 다 모여있으니까요."
"그 정도입니까?"
"그래봤자 아버지는 한번도, 아니 왕께는 한번도 이겨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수정해야겠군요."
"혹 술은 입에도 못 대는 줄 알고계셨습니까?"
"아니, 말술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툭 내던져진 말끝에 레골라스의 웃음이 걸렸다. 무엇이 이상한 지 알지 못한 할디르는 그저 레골라스의 웃음이 멈출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한참을 웃다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눈치챘는지 레골라스는 겨우 평정을 되찾았다.

"아. 사실 이제껏 대놓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처음이라서요."
"...제가 혹 말실수를 한거라면 죄송합니다. 나쁜 뜻은.."
"아니에요. 아니에요. 전혀요."

도리어 웃어보이며 눈을 맞춰오는 모습엔 자격이나 지위의 면모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토록 친근하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눠본 것은 실로 오랫만이라며 신경쓰지 말라는 모습은 소탈하기까지 했다. 겨우 긴장이 풀어진 모습을 눈치챘는지 레골라스는 몇번 더 소리내어 웃다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괜찮다면 우리 친구하는게 어때요?"
"친구요..?"
"네. 친구요.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은데 할디르는 어때요? 저 괜찮지 않나요?"

잠시 내밀어진 손과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지만 특유의 자신만만함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머크우드의 엘프들은 다 이렇게 호전적인건가. 조금 고민하던 머릿속은 깔끔히 지워버린 채, 할디르는 이내 내밀어진 손을 움켜잡았다.

"다시한번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레골라스."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동시에 웃어버렸다. 꾹 잡혔다가 금방 비어버린 손에는 다시 잔이 들렸고 그것들은 인사하듯 부딧혔다. 맑은 소리가 들려오는 밤공기 속에서 조금의 따스함이 배어나왔다. 며칠의 여정이 심심하지만은 않겠다고 생각하며 할디르는 입술을 축였다. 독한 술들이 조금은 달콤하게 감겨들었다. 머크우드에서의 첫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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