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론드와 수하들은 분주하게 움직였어. 처음 보는 증상이야. 어떤 계기로 이렇게 됐는진 알 수 없지만 큰일이 난게 분명해. 진맥을 한다, 약초를 구한다 노력했지만 남들 모르게 움직인다는게 쉽지 않았어. 수상한 움직임에 북쪽 숲의 신하들도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걸 눈치챘어.
그날 왕께서 누군가와 동침하셨다는걸 신하들은 알고 있었어. 왕가의 핏줄은 대대로 손이 귀해 왕의 후사는 언제나 북쪽 숲의 가장 큰 관심사야. 다행히 스란두일은 선대 왕들과는 달리 즉위 초반에 얻은 아들이 하나 있었어. 하지만 왕자 하나론 안심할 수 없었기에 신하들은 되도록 왕을 홀로두지 않으려 했어. 스란두일은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쉽게 여성체와 접촉하고 될 수 있는대로 동침했지. 그게 온전히 기록이 되고 관리되어 왔지만 그날은 왕의 후원에서 나선 이가 아무도 없었어. 분명 동침한게 맞는데 그게 누군질 몰라. 혹여 후원에 있던 여인이 아닌 다른이라 하더라도 급히 입궁시키고 관리하면 될 일이었지만 본인이 나오질 않으니 알 도리가 없어. 심지어 사라져버렸지. 신하들은 백방으로 수소문했어. 그러다가 문득 손님으로 있던 엘론드의 무리에서 수상한 행동이 포착되었다는 연락이 들어왔어. 그들은 조심스럽게 접근을 했지. 아직 각성도 하지 않은 어린 아이의 잔병치레라며 엘론드쪽에선 둘러댔지만 시기나 여타 다른것들이 의심스러웠어. 그랬기에 신하들은 호의를 빙자해 그들의 의원을 보내 진찰하게 했어. 누구인지 어떤 상황인지 확인을 해야했지. 혹여 귀한 왕의 씨가 어디론가 흘러가지 않았을까 그들은 노심초사했어. 애써 조심스레 거절하려는 엘론드의 난처함을 손님을 불편하게 모실 수 없다는 웃음으로 무마시킨 채 신하들은 린디르의 방까지 쳐들어왔어.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린디르를 발견했어.

당장 난리가 났어. 이 아이가 여성체인지 남성체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어. 일단 왕의 승은을 입은 자들은 무조건 궁으로 들어와야했고 죽지 않으면 궁 밖을 나설 수 없었어. 신하들은 그런 왕실의 법도를 들먹이며 린디르를 데려가겠다고 선언했지. 린디르는 아직 완전히 각성을 하지 않은 상태라 몸이 좋질 않았는데 억지로 일으켜지고 이리저리 흔들렸어. 엘론드는 크게 화를 내며 무슨 짓이냐 소리쳤지만 이곳은 북쪽숲의 왕궁이었지 자신들의 공간이 아니었어. 그나마 예우를 해준답시고 신하들은 아이가 온전히 각성을 할 때까지는 그대들의 품 안에서 감시하겠다고 말 한마디 남기곤 쌩하니 나가버렸어. 스란두일조차 있지 않은 빈 궁전에서 이방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 그리고 그제서야 엘론드와 그 가신들은 린디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 수 있었어.

며칠간 이어지던 각성이 끝난 뒤, 린디르는 성체의 모습을 그럭저럭 갖춰나갔어. 엘론드 쪽 가문에서 나오는 짙은 푸른 빛은 아니었지만 어릴때보다 조금 단단해진 몸과 꼬리는 완벽한 남성체의 모습을 갖췄어. 하지만 엘론드는 알고 있었어. 잡히는 맥과 여타 다른것들은 또 완벽히 여성체였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막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된 린디르가 충격을 받을까봐 말하진 못했지만 엘론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었어. 그랬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야. 신하들은 정중하게 사람을 보내 말을 전했어. 왕의 승은을 입은 이상 린디르는 거처를 옮겨야 한다고. 내일 데리러 오겠다고.
가까스로 잊을 뻔 했던 일들이 악몽처럼 되살아났어. 그제서야 린디르는 자신을 범했던 이가 왕이라는걸 깨달았지. 몰랐던게 당연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지만 일이 이렇게 돌아갈 줄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강하게 반항했을텐데.. 스스로를 자책하며 덜덜 떨고있는 아이를 보며 엘론드는 그저 안쓰럽게 쳐다보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지.
결국 린디르는 왕의 여인들이 살고있는 후원으로 자리를 옮겼어. 남성체가 이곳에 기거하는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라 그들은 여인들의 거처와 분리해 새로운 장소를 꾸미느라 분주했어. 다소 약해보이는 몸을 고려해 약을 잘 챙겨주겠다며 엘론드네와 이별시킨 신하들은 금남의 구역이라며 좀더 머물려는 엘론드와 가신들을 물리쳤어. 한동안 그렇게 옥신각신 하던 엘론드는 밀린 중한 일들이 닥쳐오자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떼야했지. 그리도 허무하게 린디르는 엘론드의 무리와 이별하고 말았어.

후원은 조용한 동네야. 더군다나 여인들이 있는 곳과 분리된 이곳에는 정말 아무도 돌아다니질 않았어. 매 끼니마다 식사를 챙겨주는 이만 오갈 뿐이었지. 이런저런 감정에 사무쳐 하루종일 눈물을 달고 지내봤지만 보는이 하나 없으니 아무런 효과가 없었어. 마음만 피폐해졌을 뿐이야. 하지만 슬픔이 그리 오래가지만은 않았어. 곧 기운을 차리고 자신이 오갈 수 있는 곳들을 돌아다녔어. 어서 기운을 내고 왕이 돌아오면 이야기 해 볼거야. 그날밤은 실수였다고. 자신을 리븐델로 돌려보내달라고. 그 방법 밖에는 자신이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 그리고 당연히 왕도 받아줄거야. 자기는 남성체잖아. 섣부른 희망을 가지며 린디르는 몸을 회복시켰어.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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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비님이 문득 그리신 스란두일과 린디르 인어버젼 그림을 보고 확 와닿는 썰이 생각나서<<
허락을 받고 살짝 풀어봅니다!
원래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지지부진하게 길어질 것 같아서 흐음..썰과 연성을 반반 섞어서 풀어보는걸로!

 

배경은 바닷속 인어들의 이야기. 스란두일은 북쪽 숲의 왕이고 린디르는 아직 각성도 하지 않은 어린 인어라는 설정. 인어라는 종족은 알에서 깨어나는데 태어날 때는 모두 무성으로 태어남. 성인식 이후에나 각성을 하면서 남녀 성별이 정해지는 그런 생물임.

린디르는 본래 이곳에 살던 인어가 아니었음. 그가 살던 곳은 엘론드가 다스리는 영지였고 아직 발현조차 하지 않은 어린 인어는 본디 각성할 때까지는 영지를 나오지 못하도록 되어있으나 어쩌다보니 엘론드의 행렬에 끼어들어옴. 엘론드는 차례차례 각 왕들의 영지를 순방하며 의견을 모으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린 린디르의 눈에는 그저 이곳 저곳을 구경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음. 그렇게 여러군데를 거쳤고 가장 마지막으로 북쪽의 숲이라 불리우는 산호 군락의 영지만이 남은 여정이었음.
무사히 북쪽숲의 영지에 당도했지만 왕은 없었어. 스란두일은 늘 변방을 돌며 영지를 수호했음. 최근 영지를 노리는 적들이 여기저기서 출몰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궁 내 분위기도 흉흉했음.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엘론드는 왕이 환궁할때까지 북쪽 숲에 머무르기로 했음. 그 덕에 린디르도 궁 안에 머물게 됨.

 

스란두일이 궁에 당도한 것은 아주 늦은 밤이었다. 언제나 갑작스레 사라지고 나타났던 왕의 귀환에 깨어있던 이들은 그리 놀라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움직였다. 그 덕에 손님들에게는 소식조차 전해지지 않았다. 혹여라도 전해졌었다면 지금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몰랐다.

린디르는 자신이 왜 이곳에 끌려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밤의 고요함을 즐기러 산책을 나왔을 뿐 이었다. 한참을 조용히 노닐고 있었는데 근래에 보지 못한 키가 큰 인어가 자신을 불렀다. 부름에 돌아서고 눈이 마주쳤다. 그것이 다였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인어는 그대로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어디론가 향했고, 당도한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누구...세요..?"
"....."

정말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인어의 미간이 크게 찌푸려졌다. 한참이나 린디르를 바라보던 인어는 그대로 성큼 다가왔다. 얼결에 뒤로 물러선 린디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는 무표정한 얼굴에 슬쩍 비릿한 미소를 띄웠다.

"관심을 끌려고 의도했다면 성공한 것 같군. 적어도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방법이야."

날카로운 눈매가 조금 가늘어졌다. 라고 생각이 들자마자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살짝 술기운이 배인 입술. 조금 차갑지만 말랑한 그것이 제 입술에 닿은 것을 끝으로 린디르의 기억이 하얗게 날아갔다.

 

 

결과적으로 린디르는 그날 밤 스란두일에게 반 강제적으로 당했음. 막연하게 튕기는 줄 알고 있었던 스란두일은 종내엔 짜증을 내며 거칠게 다뤘음. 스란두일이 매번 이랬던 것은 아님. 하지만 스란두일이 궁으로 돌아온 이상 왕을 위해 지켜져야 할 법도가 있었음. 린디르가 몰랐던 것 뿐이었지만 사실 린디르가 산책하고 있던 공간은 왕의 여인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곳이었음. 매우 안타깝게도 손님이 머물던 장소와 인접한 곳이고, 또한 알고 있는 모두가 의식하며 피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그 흔한 푯말 하나도 세워져 있지 않았음. 그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왕의 승은을 입은 자들이었고 또한 입을 자들이었음. 언제든지 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이었으니 스란두일이 착각한 것도 당연했음. 게다가 스란두일은 손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오는 길이었고 새벽부터 일어나기 위해 당장 피로를 풀고 숙면을 취하려 부러 술을 마신 상태였음. 그것이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다가와버렸음. 평소라면 꼬리색과 모습을 보고 각성조차 하지 않은 어린 아이라는 걸 알아챌 일이었는데 초반의 너무 멍뎅한 대처 + 술취함의 시너지로 깨닫지도 못하고 넘어갔음. 물론 하던 중간에 무언가 평소와는 다르다 라는것을 깨달았지만 그것을 따져보기엔 너무나도 피곤 + 일단 급함. 이라는 느낌. 어쨌거나 둘은 밤을 함께 보냈음.

제 욕망만 채우고 잠들어버린 스란두일의 곁에서 죽은 듯 떨고있던 린디르가 멍뎅한 정신을 겨우 다잡았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 뭔가.. 당한 것 같은데 이게 정확히 뭔지 설명조차 힘들어. 일단 몸이 너무 아팠음. 기절도 몇번 했던것 같은데 고통스런 몸부림에 얼마 가지 않아 정신이 들었음. 모든것을 끝내고 난 뒤에 잠든 스란두일의 품 안에서 겨우겨우 용기를 내 빠져나왔어. 아래가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아. 눈물도 나고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어. 일단 이 곳에서 도망쳐야 할 것 같다는 일념 하나로 린디르는 천천히 움직였어. 누구와 마주칠까 흠칫흠칫 놀라며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음. 그리고 기절했음.

날이 밝고 아침이 찾아왔어. 스란두일은 일찍 잠에서 깼지.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까 혼자야. 침대시트도 피바다가 되어있고 분명 어젯밤에 누군가와 동침한 것 같은데 아무도 없어. 이상한 일이네. 라고 생각하며 어젯밤 자신이 안은 인어의 얼굴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그저 조금 슬픈 눈매? 그것밖에 기억이 나질 않아. 어자피 자신의 궁 안에 있던 여인 중 하나였겠지. 가볍게 생각하며 몸을 추슬러.
린디르는 아침이 와도 일어나질 못했어. 린디르를 보살피던 인어는 그저 아이가 환경이 바뀌어 앓는가보다 싶어 이불을 덮어주며 쉬게 놔뒀지. 그래서 엘론드에게도 그렇게 보고를 올렸어. 엘론드는 가장 나이어린 린디르가 아프다는 이야기에 걱정을 하긴 했지만 일단 왕을 만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어. 회의 이후에 들려보기로 하고 그는 일단 왕에게로 향했어.

회담은 지지부진하게 길어졌어. 간혹 닫힌 문 속에서 큰 고성이 오가기도 했어. 쉽게 모아지지 않을 의견의 충돌에 두 인어는 매우 피곤해 했어. 진득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취합하려 했지만 정말이지 대립되는 입장에서의 합의는 요원해 보였지. 그러는 동안 린디르는 종종 정신을 놓을 정도로 크게 앓았어. 엘론드도 너무나 바빴고 상황이 좋질 못했어.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지났고 겨우 큰 틀에서의 합의점을 찾은 엘론드와 스란두일은 이곳에서 일단 만족하기로 했어. 스란두일이 수호하는 영지 변방에서 또 마찰이 일어났기 때문에 더 설득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지. 스란두일은 배웅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그날 밤 다시 변방으로 향했어.
엘론드는 자신의 영지로 돌아갈 준비를 했어. 좀더 쉬고 가라는 신하들의 권유에도 그만 되었다며 일찍 돌아가길 원했어. 자신도 피곤했으니 긴 여정을 어서 마치고 싶었던거지. 그제서야 한숨 돌린 엘론드의 머릿속에 린디르가 생각났어. 아직 어린 인어인데 여정이 고되기라도 했던가 싶어 짠해졌어. 그래서 시간이 조금 늦었지만 린디르의 방으로 향했지.

린디르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상태였어. 불완전한 어린 몸에 가해진 충격이 너무나도 컸기에 몸은 때 이른 각성을 시작해버렸어. 계속 보살폈던 인어조차 그 미세한 변화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무관심 속에서 린디르는 알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쳤어. 엘론드가 와서 진맥하기 전까진 아무도 어린 인어의 각성 사실을 알지 못했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와 미묘하게 달라진 모습에 엘론드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어. 가까스로 잠이 들었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늘어진 린디르의 손을 잡고 맥을 짚었어. 그리고 놀란 눈을 크게 떴지. 덮인 이불을 들추어 꼬리색을 확인했어. 투명한 은빛이 감돌고 있어야 할 꼬리가 새파랗게 물들어 있었어.
엘론드는 린디르를 흔들어 깨웠어. 가늘게 떠진 눈에 엘론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었어. 하지만 린디르는 대답할 수가 없었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엘론드는 한숨을 쉬며 이곳 저곳을 진찰했어. 종종 빠르게 각성하는 인어들이 있었어. 백에 한둘은 그럴 법한 일이었고 엘론드는 그것이 단순히 어린 몸에 누적된 여독이 영향을 끼쳤나 보다. 라고 편안하게 생각했어. 그러다 이상한 점을 깨달았어. 분명 때 이른 변화이기는 하나 꼬리색과 각성 발현들을 보면 린디르는 남성체로 각성하고 있었어. 그런데 잡히는 맥은 여성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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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도 신비로운 곳, 천연의 요새이자 상처받은 이들에게 열려있는 쉼터. 이곳의 이름이 임라드리스라 명명된 이후 가장 아름답게 정비되고 가꿔진 좋은 시기에 군주의 자리에서 모든 것들을 돌보던 엘론드 페레딜은 리븐델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의미로 많은 초대장을 작성했다. 귀한 종이에 꼼꼼하게 쓰인 서신을 받은 손님들은 임라드리스라 명명된 안식의 땅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첫 손님들을 맞이하려 열린 화려한 연회에서 이제는 군주라 추앙받아도 좋을 이의 환대를 받으며 도착한 귀한 이들이 양껏 먹고 마시며 서로간의 우애를 나누었다. 곧 자리가 무르익자 하나 둘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이들은 삼삼오오 짝을지어 어울리기 시작했다. 은밀한 시간들이 시작될 것임을 눈치챈 시종들은 환히 밝혔던 촛대를 조정하고 몸을 숨겼다. 얼마나 오랜 기간동안 만나지 못한 이들이 어울리는 자리인 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한분 한분 직접 모시고 연회를 주최하던 엘론드도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 임라드리스의 엘프들만이 웃음을 띄우고 아직 남아있는 손님들을 서포트하기에 바빴다.

 

가슴이 뛰었다. 본래대로라면 연회의 정리를 도우려 넓은 홀로 향했어야 했을 걸음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진정할 수 없었다. 은밀하게 움직인 린디르는 숨을 죽인 채, 나무뒤로 몸을 숨겼다. 슬쩍 열린 창문 틈으로 언제나처럼 익숙한 주군의 모습이 비쳤다. 하지만 평소의 과묵한 모습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같이 천진해보여 린디르를 당황스럽게 했다.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눈 앞이 캄캄해졌다.

젊다기에는 애매한 나이의 주군은 아직도 홀로서기를 하고 있었다. 뜬구름처럼 소문이 떠돌았다. 은밀한 연인이 있다던지 혹은 이미 미래를 약속해 곧 혼인을 할 때를 노리고 있다는 그런 류의 소문이었다. 하지만 개중 현실적인 소문은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리븐델로 건너오고 나서의 주군은 정말 엘프의 하루 삶을 인간처럼 써도 모자를 정도로 바쁘고 고된시간을 보냈던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든 준비를 마치고 열린 이 연회에서 만큼은 무언가 실마리가 나오지 않을까. 라는 새로운 소문에 임라드리스는 조용히 들떠있었다.
그리고 어린 엘프는 소문이 사실일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의 주군이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조금의 배신감과 체념이 온 몸을 잠식했다. 그랬다. 어린 엘프는 남 모르게 맘속 한 구석에 주군을 담아두고 있었다.

곧 성인식을 맞는 어린 엘프는 부끄러움을 뒤로한 채, 주군의 앞에 무릎을 꿇으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희망조차 남질 않았다. 충격에 놀란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그럼에도 고정된 시선은 흩어질 줄 몰랐다. 저렇게 환한 웃음을 얼굴에 띄운 주군의 모습은 처음 보는 터였다.

누구십니까. 나의 주군의 마음을 차지하신 분은..

혹여 비명을 지를까 싶어 틀어막은 손가락 위로 눈물이 넘쳐 흘렀다. 훌쩍이지 않으려 애써봤지만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그 모습을 뵙고싶었다. 흐려지는 시야를 흔들어 눈물을 닦고 주군의 모습을 주시했다. 언제나처럼 상냥하고 온화한 모습이 아니었다. 수줍어하고, 살갑게 웃으며 누군가를 올려다보는 모습이었다. 슬픔에 젖어버린 몸은 둔해졌다. 그저 올곧게 시선만 그의 주군께로 향하고 있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리지 않길 바라며 모든 신경을 주군에게만 쓰고 있었다. 덕분에 어린 엘프는 뒤쪽에서 은밀히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만남이군. 그대는 혹 초대받지 못한 손님일까?"

달콤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아무도 없어야 할 곳에서 들린 목소리에 당황한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차마 움직여 확인하지 못한 어깨에 따스함이 감겼다. 충분히 반항할 수 있었음에도 린디르는 자신의 어깨에 얹혀진 손이 의도하는 대로 움직여 얼굴을 보이고 말았다. 꾹 감은 눈에 당황한 듯, 눈물이 맺혔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후회를 해보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보였다.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알 수 없는 점이 자신을 더욱 당황케했다. 당연하게도 이곳에 온 손님들은 모두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분들이었다. 
악햔 한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가운 손가락이 얼굴로 향하자 움찔거리며 눈을 떠 버렸다. 검은 동공에 맺힌 것은 어둠을 살라먹을 듯 빛이나는 황금의 머리칼과 그것을 감싸고 있는 화려한 나무관이었다. 그린우드에서만 자란다는 귀한 꽃. 황금색으로 빛나는 열매. 손님이 누구인지 알게된 린디르의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본능적으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몸보다 허리를 잡아챈 손이 빨랐다. 갑자기 타인의 품에 안기는 꼴이 된 어린 엘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곧 놀란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작게 딸꾹질을 시작한 린디르가 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모든것을 그저 지켜보던 스란두일은 잠시 고개를 들어 린디르의 시선이 향했던 곳으로 눈길을 보냈다. 평생의 친우가 그곳에서 웃고 있었다. 맞은 편의 상대는 린돈의 왕이로군. 혀를 차올리며 품속에 들어앉은 작은 새를 스란두일은 포근히 감싸안았다. 크지 않은 키와 땋지 않은 머리로 보아하니 성인식조차 치루지 않은 어린 아이였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어린 엘프의 마음속에 그늘을 만드는 이는 어느쪽일까."

안긴 이가 또다시 몸을 떨어냈다. 마치 아이를 돌보는 보모가 된 것 같은 모양새군. 한숨을 쉬어내며 품안을 헤쳐 그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눈물 범벅이 된 얼굴에 새까만 눈동자만이 반짝였다. 묘하게 구미가 당기는 분위기네. 잠깐의 호기심이 왕자를 사로잡았다. 버림받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작은 동물들은 조그마한 온기에 쉽게 마음을 빼앗길지도 몰랐다. 허리를 굽혀 시선을 맞춘 스란두일이 녹아들 듯 웃어보였다.

"나라면 매일 웃게 만들텐데."

커진 동공에 다시 혼란이 느껴졌다. 살그머니 올린 손이 흐트러진 머릿결을 정리하고 볼을 감싸쥐었다. 단번에 빨개진 얼굴에 신선함이 느껴졌다. 어려. 작아. 여려. 조금은 순종적인데. 상냥한 모습으로 이마에 입맞췄다. 움찔,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천천히 손을 올려잡아 눈을 맞췄다.

"어떠하냐, 나와 함께 정원을 거닐지 않겠느냐. 어쩐지 오늘은 혼자있고 싶지 않은데."

아주 작은 유혹에 갈팡질팡하는 모습에 어두운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고민을 하는 것 같아 슬쩍 산책을 멀리나와 방이 어디인지 알 수 없어 곤란하다는 말을 덧붙였더니 결정은 오히려 쉬워진 모양이었다. 눈물을 털고 매무새를 가다듬는 모습을 가늘게 눈뜨고 바라본 스란두일의 시선이 아주 잠시 친우의 방으로 향했다. 어느새 불꺼진 창문 틈새로 아주 작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픽 웃으며 아이가 듣지 못하게 다가가 얼굴을 감싸안았다. 뾰족 솟아오른 끝을 엄지손가락으로 몇번이고 쓸었더니 그대로 화끈 달아올랐다. 당황하며 버둥대는 아이를 즐거이 바라보며 한쪽 품에 껴안은 채, 자리를 옮겼다. 그대의 덕에 모처럼 좋은 밤을 보낼지도 모르겠군. 들리지않는 감사의 인사를 친우에게 남기며 스란두일은 어린 엘프에게 이름을 물었다.

"린디르..입니다."
"예쁜 이름이구나."

칭찬을 받는 것이 서툴은 아이같이 시선이 발끝으로 향했다. 무심코 결좋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스란두일은 다시 미소지었다. 달이 유난히도 밝은 임라드리스에서의 첫날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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