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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17 스란엘스란. 썰. 처음. 2
- 2013.05.15 스란안나. 함정.
- 2013.05.15 스란엘. 사흘째의 밤. 2
- 2013.05.14 안나스란. 구속 1
- 2013.05.13 스란안나. 노예상인과 왕자 3 2
- 2013.05.12 켈리안나. 유혹.
- 2013.05.11 스란안나. 노예상인과 왕자 2
- 2013.05.10 스란안나. 노예상인과 왕자 1
글
스란엘. 140자 연성+a 화관.
철마다 바뀌는 왕의 관은 늘 주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좋은가지를 골라 크고작은 열매들로 장식한 관이 머리위에 얹어질때면, 똑같은 관 하나는 그의 손에 들려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주인을 기다리며 소중하게 만들어진 왕관은 오늘로 꼭 일천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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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방 안을 채우실 작정이십니까?"
"그대가 쓸데없는 질문을 할 때도 있군."
방금 막 완성한 관을 벽에 고정시킨 걸쇠에 걸어둔 채, 중심을 맞추려 이리저리 기울여보던 스란두일은 이내 손을 털고 물러섰다. 이전의 것과는 다르게 상큼한 붉은 색의 열매가 돋보였다. 따스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왕은 그제서야 곁에 있던 집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던 모습 사이로 아주 조금의 부드러움이 새어나오는 것을 눈치챈 갈리온이 못볼 것을 보았다는 눈으로 혀를 끌끌 차올렸다.
"그런 바보같은 표정을 하실 거라면 절 쳐다보지 마십시오."
"그래도 명색이 이나라의 왕인데 언사가 너무 심한것 아닌가?"
"이정도면 괜찮지요. 선왕이셨다면 좀더 거칠게 말씀하셨을 겁니다."
"내가 뭘 했다고.."
"그렇게 늙은 집사를 잡아먹을 것 처럼 바라보시는 분이 하시는 행동 치고는 참으로 소심하지 않습니까?"
"사내의 연정은 집사를 보는 것보다 훨씬 다정한 것이니까 말일세."
"쓸데없는 변명일랑은 집어 치우시고요. 차라리 자빠뜨리지 그러십니까."
"자네의 그 발언은 수많은 놀도르를 순식간에 적으로 만들 수도 있는 발언이야. 알고있나?"
"그 놀도르의 수장을 신다르로 만들면 해결 될 문제이지요."
늙은이의 말장난엔 못 당한다니까.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스란두일은 공들여 문양을 넣은 찬장의 문을 닫았다. 진심을 말해버린 입술에 혹하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자면 참으로 수많은 난관이 뒤따르는 법이었다. 제멋대로 손목을 잡아 끌어당겨 입을 맞추고 반항하는 몸을 묶어 강제로 취하면 이 열기가 사그러들 것이라고 되뇌었던 적이 과연 한번도 없었을까.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과 현실의 간극에서 고민하는것은 고작 몇 년으로 충분했다. 치기어린 감정에 충실한 인생을 보내기에 엘프의 인생은 너무나도 길었으니까.
"영양가 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방에 숨겨놓은 술이나 가져와봐."
"좋은 술은 왕의 창고에 그득이 쌓여있건만 어찌하여 불쌍한 늙은이의 조그마한 기쁨을 탈탈 털어가려 안달이십니까?"
"나의 창고에는 쓰레기만 가득하고 좋은 술은 그대의 방으로 따로 들어간다지. 그걸 모르는 머크우드의 엘프도 있던가?"
"하여간 말도 되지않는 누명을 씌우신다니까 .. 정말 서러워서 못살겠습니다. 늙으면 어서 서역으로 떠나버려야지.."
"떠나게 되면 이별의 선물로 큰 오크통으로 한개 실어주지. 그러니까 어서 가져와봐."
"두 통으로 해주십시오. 가는길이 너무 지루해서 그 전에 술이 떨어지면 곤란하니 말입니다."
"생각해보지."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를 보이는 스란두일을 쳐다보던 갈리온은 못마땅한 얼굴로 잔뜩 굽힌 허리를 두드려댔다. 날씨가 궂으려는지 허리가 아프다는 둥, 엊그제 좋은 토끼고기가 들어온 것 같은데 이 놈팽이들이 어디다 밖아두었을지 찾으러 가봐야겠다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방을 나서는 집사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왕은 문이 닫히고서야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닫아둔 찬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머리위에 얹은 관은 한없이 가벼웠지만 찬장 안에 걸려있는 관은 한없이 무거워보였다. 똑같은 한 쌍의 관이었음에도 그래보였다. 지고있는 의미가 달라서였을까.. 뭐 아무래도 괜찮았다. 당분간 관의 주인은 오지 못할 것 같으니 이곳에 잠시 놓아두면 된다 생각했다. 먼 훗날 주인이 도착해 무겁다 투정하면 새털같이 가벼운 관으로 새로 만들면 되는 터였다.
물끄럼히 바라보던 시선을 거둔 채, 스란두일은 방을 나섰다. 불러놓고 저보다 늦게 도착하면 늙은 집사는 또 중얼중얼 잔소리를 늘어놓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늘 밤은 그 잔소리를 벗삼아 술에 취하고 싶은 기분이라고 생각하며 답지않게 노랫소리를 흥얼거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노랫소리가 끊겼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 적막이 감돌았다. 모든것이 죽어 곱게 말라있는 공간에서 방금 걸어둔 화관만이 싱그럽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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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하게 와닿은 맨살의 감촉에 안나타르는 황홀한 듯 웃어댔다. 하지만 웃음이 오래가진 못했다. 왈칵 올라오는 비릿한 체액이 바닥으로 뿌려졌다. 제 입에서 떨어지는 피웅덩이를 보고도 그는 웃었다. 아니 즐거워했다.
"미친새끼."
"큭...큭크큭..흣.."
"말해. 엘론드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하아..왜. 왜 그분을..크큭.. 입에 담으십니까?"
참으로 이상하다는 듯 안나타르는 고개를 올려 스란두일을 쳐다보았다. 웃으며. 입가에는 피범벅이 된 채로. 그저 웃었다. 정말 말로 해서는 안될것 같다는 생각에 스란두일의 표정이 한껏 험해졌다. 거칠게 다뤄 찢어진 상의덕에 잡을 곳이 없어진 스란두일은 두 손에 온전히 힘을 넣어 안나타르의 목을 감싸쥐었다. 한껏 가늘어진 눈가. 벌벌 떨리는 입술. 울컥울컥 나오는 피가 주위에 지저분하게 퍼졌다. 숨이 가빠 헐떡이는 순간에서도 안나타르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진정 제멋대로 굴며 끝까지 하고픈 말을 지껄였다.
"정인..큭..이..라도. 되십니까? 크큭. 흑..흡..그는 단지..길 갈..라드..의. 가솔..일 뿐..히익!!!"
"닥쳐라. 네 입에 담을만한 이가 아니다."
목을 강하게 조여오는 압박감에 안나타르의 눈이 크게 떠지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가의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이런 미친 놈은 내버려두고 엘론드부터 찾아야 했다. 해명해야 했다. 팔에 온 힘을 실어 안나타르를 내팽개쳤다. 바닥에 고꾸라진 채 밭은 기침을 내뱉는 안나타르를 내버려 둔 채, 스란두일은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미친듯이 뛰던 심장이 겨우 진정됐다. 강하게도 묶여있지도 않은 손목의 끈을 흔들어 빼낸 뒤, 안나타르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입가를 문질러 닦았다. 손 끝에 피가 가득 묻어났다. 즐거웠다. 그래, 찾아낼 수 있을까. 너 따위가. 이 안나타르를 모욕한 대가는 작지 않을텐데 말이지.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울렸다. 미친놈처럼 보여도 상관없었다. 기쁘고 통쾌하고 속이 다 후련했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소원을 깨뜨렸다. 사랑? 정인? 다 소용없는 말이었다. 한낯 감정에 호소하고 밀어를 속삭인다 해서 굳건한 것은 아니었다. 작은 말의 불씨로 갈라놓을 수 있었고 혼란에 빠뜨릴수도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용맹스럽고 위엄있는 어둠숲의 왕자의 하룻밤 정을 받았던 이는 그가 그리도 원했던 엘론드가 아닌 안나타르. 바로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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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스란엘. 사흘째의 밤.
벌써 사흘째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설원이 바깥으로 펼쳐졌다. 멍하니 창가에 기대 밖을 내다보았다. 그새 온도는 더욱 내려가 창문에 김이 하얗게 서렸다. 가볍게 양쪽으로 목을 두어번 꺾어 소리를 낸 뒤 엘론드는 부엌으로 돌아갔다. 아까 내린 커피가 딱 좋은 향을 내뿜고 있었다. 머그에 가득 따른 후 침실로 돌아가 흐트러진 침대위에 가만히 앉아 홀짝이며 헛웃음을 지었다. 웃기지도 않은 신혼놀이였다. 학교에서 도망치듯 회피했던 자신을 따라와 가둔격이 아닌가. 어쩌면 납치라고 해도 좋을만큼 이 상황은 기묘했다. 그러나 더욱 이해가 안가는 것은 자신이었다. 능히 잡히지 않을수도, 이 상황에서 도망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조용히. 이곳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탁자에 컵을 올려두고 드러누워버렸다. 눈을 감자 소리들이 세상을 지배했다. 포슬하게 눈이 내리는 소리. 거실의 시계초침이 톡 톡 움직이는 소리. 나뭇결이 추위에 수축하며 다각다각 마르는 소리. 그리고 저 먼 곳 건너편의 욕실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세계가 닫히는 듯한 무겁고도 고요한 적막. 그 모든것들이 세상을 지배했다.
- 너무 무방비하게 자고 있는 거 아닌가?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눈꺼플이 떠졌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막 사워하고 나온 지긋지긋한 친우의 얼굴이었다. 젖어 앞으로 내려온 머리칼이 자꾸 흘러내리는지 손으로 연신 넘겨댄다. 살짝 찌푸리며 가볍게 밀어제쳤지만 외려 그는 나를 끌어당겨 품속으로 깊게 묻어버렸다.
- 머리라도 말리고 와. 젖는거 싫어.
- 그 김에 샤워라도 하는게 어때. 씻겨줄 용의도 있어.
- 사양하지. 오전에 했거든.
기어코 밀어낸 뒤 다시 일어났다. 그렇다고 갈곳도 할일도 없었다. 멍하니 그렇게 앉아있자 스란두일이 따라 일어나 목덜미에 가볍게 키스했다. 움찔 하며 몸을 떨어내자 뒤에서 웃는소리가 귓가로 울린다. 어색하다. 어색하면서 안심이 됐다. 우리가 이렇게 가까이 있어본 적이 있었던가. 생경하면서도 싫지않은 감각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은 이미 사흘을 그와 함께 보내지 않았는가. 이제와서 생각하기는 너무 늦은 주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엘론드는 슬그머니 다시 눈을 감았다. 못된손이 올라와 드문드문 잠긴 셔츠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따라올라와 손을 제지하려고 잡았지만 어느샌가 양손 모두 그의 손아귀에 잡혀있었다. 눈을 뜨고 그를 노려봤지만 그것을 무시하기라도 하는 듯, 평소 볼수없는 웃고있는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조여오는 손목과는 다른 맥이빠지게 선한 얼굴로 미소지으며 이마에 눈에 코에 키스한다. 부자연스럽게 꺽인 목과 잡힌 손목이 슬슬 아파와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에서 힘을 빼고 그에게 완연히 기대자 다시금 웃는소리가 들리며 몸이 뒤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옆으로 비껴누워 고개를 돌리면 짙은 호수같은 두 눈이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 도망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가는걸 추천할텐데.
-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 흠. 진심일까 아닐까. 자네는 어떤가. 진심인가 아닌가?
- 진심이라..
잠시 멍하니 시선 옆을 비껴 허공을 응시하자 귀신같이 알아챈 스란두일이 손을 올려 얼굴을 고정 시킨 뒤 입술을 마주댔다. 부드럽게 노크하듯 톡 톡 두들기고 입안쪽을 조심스럽게 침범했다.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진득하고 느릿하게 안을 헤집고 다니다 겨우 떨어져서는 다시 시선을 마주쳤다. 두개의 호수속에 누군가 들어오기라도 한 듯 고요한 파문이 일고있었다. 파문의 주인공이기라도 한 듯, 그 속에 내가 비춰졌다. 그를 멍하니 응시하자 스란두일은 관자놀이와 귓바퀴를 부드럽게 쓸어내며 다시한번 이마에 가볍게 입맞췄다.
- 상관없어. 진심이든 아니든 네가 지금 여기에 있는것이 더 중요해. 그걸로 됐어.
- 스란두일, 그러니까...
- 아무말도 하지마. 함께 있을 때는 그걸로 된거야. 엘론드 페레딜.
수학공식이라도 되는 양 제멋대로 정의내리는 스란두일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함께 있을 때는 그걸로 된거야. 마치 마법같다고 생각했다. 고작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놓였다. 평안해졌다. 손을 올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스란두일의 머리를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호수같은 눈이 감기고 입술이 열렸다. 세계는 고요했고 그곳에는 스란두일과 나. 두 사람밖에 없었다. 그걸로 이유는 충분했다. 나역시 눈을 감았고 그 순간 세계는 움직임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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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란안나. 노예상인과 왕자 3
밤의 시작과 함께 안채에 발을 들인것만 같았는데 벌써 엘베레스의 별이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안나타르는 놓아버리고 싶은 정신을 그러모아 힘겹게 눈꺼플을 들어올렸다. 불확실한 촛점이 겨우 맞춰져 시야가 확보되자마자 고개를 돌려 제 곁에 누워 잠든 이를 바라보았다. 정말 뻔뻔스럽게도 제 곁을 차지하고 자신을 쿠션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어둠 숲의 왕자는 세상 모를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온 몸이 꽉 묶인 듯 껴안긴 탓에 벗어날 방도가 보이질 않았다. 작게 혀를 차내며 팔을 밀어 움직여 보려했지만 하반신에서 올라오는 알싸한 고통에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 하여튼 어린게 무식하게 힘만 세서. 속으로 있는 욕 없는 욕을 내 뱉으며 안나타르는 잠시 온몸의 긴장을 풀었다. 간만의 노동을 끝낸 몸은 피로를 견디지 못했다. 하필 며칠 일이 몰려 무리를 했던 차에 쌓인 피로라 쉬고싶은 욕망이 살금살금 올라왔다. 하지만 씻고싶은 욕망이 더 강했다. 누구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이 땀과 체액으로 범벅이 되어버린 몸은 열기가 식어갈수록 불쾌한 기운을 더해가고 있었다.
잠깐의 휴식을 가진 뒤 안나타르는 고개를 살짝 들어올려 안쪽의 어딘가를 조용히 응시했다. 고급스럽게 걸쳐진 휘장이 미세하게 움직이는가 했더니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방 안으로 소리없이 스며들었다.
"씻을 물을 준비해라. 그리고 시트를 좀 갈아야겠다."
"네 주인님."
"조금 있다가 물이 데워지면 날 부축해라. 소리가 나지 않는 녀석으로 데려와."
고개를 짧게 숙여보인 사내가 다시 방 밖으로 사라졌다. 돌아올 시간을 가늠해보며 다시 긴장을 풀고 눈을 감았다.
정말 오랫만이었다. 모르도르의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손님을 체계적으로 관리한 후 자신은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고 생각했다. 시대가 변화하고 발라들 또한 바쁜것이 사실이었다. 크고작은 세력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분화하고 합쳐지는 역사는 실로 방대한 것이었다. 높으신 분들은 머리 쓰기에 골몰했고 모르도르는 자연스럽게 핀트를 벗어나 한가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는데 스란두일은 말하자면 평온한 호수에 갑자기 던져진 작은 조약돌 이었다. 아무도 날아오는걸 신경쓰지 않았고 맞을수도, 맞지 않을수도 있는 그런 작은 돌이었지만 맞으면 제대로 아플것 같은 마치 극약과도 같은 조약돌이었다. 결국 맞아버렸다는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변변치 않은 이라면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처리해 버리려고 했는데.. 신다르의 개망나니라는 별명은 정말 거짓이 아니었다. 몸을 합치며 슬쩍 힘을 빼어 안달내는 찰나는 있었지만 스란두일은 본래 부드러운 스타일은 아닌터라 밤새 힘으로 강하게 몰아붙여왔다. 교태를 부리면 그에 상응하는 것으로 보답했고 그 이상이면 또 그 이상을 안겨줬다. 기이하게도 그 합이 맞아떨어져 보기드물게 진심으로 흥분해버렸다. 그런 자신이 우스웠다. 연기와 조련에 능숙한 터라 본심을 굳이 보이지 않아도 이제까지는 괜찮았는데..
어쨌거나 결론은 간단했다. 속궁합은 최고였다. 멜코르님 이후로 쉽게 만족해보지 못했던 몸의 기쁨이 느껴졌다. 오르가즘에서 느낄 수 있는 한계치가 어디인지 시험해 본 기분이었다. 검은숲의 왕자가 아닌 그저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면 눈을 뽑고 팔다리를 부러트린 채 자신의 전용 노예로 사용하고 싶었을 정도였으니 더이상의 평가를 내릴 필요는 없었다. 남은 문제는 하나. 어떤것을 대가로 받고 옭아매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새벽의 한기가 이불틈에 스몄는지 왕자가 제 품 안으로 파고드는 감촉에 다시 반짝, 눈이 떠졌다. 너는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 어떤것을 주고 내 발밑에 엎드릴테냐. 무엇이 가장 너에게 있어 값지고 사랑스러우냐. 사랑과 애욕이 담긴 시선으로 곱게 감긴 눈가를 한참 쳐다보았다. 무엇이라도 대답해주길 원했다. 들을 수 없는 머릿속 상념이었지만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왕자라면.
그때 거짓말처럼 스란두일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엘론드.."
온몸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동그랗게 뜨인 눈매가 가늘해지고 입술 끝이 점점 위로 올라갔다.
그자였느냐. 너를 옭아맬 수 있는 것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밖으로 터졌다. 계속되는 웃음에 몸이 떨려오자 스란두일이 다시 몸을 뒤척이며 꼭 안았던 몸을 그제서야 놓아주었다. 구속된 것이 모두 풀렸음에도 안나타르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시종이 와 그를 안아올릴 때까지 그저 미친놈처럼 계속 웃었다.
더러움을 남김없이 씻어낸 뒤 다시 방안으로 돌아온 안나타르는 아직 덜 마른 제 머리를 느슨하게 땋아내린 뒤 이불을 열어 스란두일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선선한 느낌에 다시 스란두일의 팔이 허리에 감겨왔다. 온기를 그대로 느끼며 밀착해 코끝이 닿을 거리가 되어서야 안나타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충분한 대가를 받았으니 꽃은 아름답게 피어야겠지요. 예하."
창문틈으로 새어들어오는 찬란한 빛 속에 붉은 색의 눈이 반짝 빛났다 사라졌다. 조용한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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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스란안나. 노예상인과 왕자 1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도무지 빛이라곤 보이지 않는 곳. 모르는 이가 보고 듣기에는 어둠의 피조물이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고 뜨거운 용암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곳이라 근처에만 가도 저주 받아버린다는 소문에 황폐해져 버린 검은 산. 가끔 정체모를 비명소리가 들려와 양치기들마저 공포에 몰아넣는 무서운 곳. 모두 이곳을 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무서운 소문에도 특별한 것을 원하는 손님들은 자신의 정체를 로브 안에 감추어버린 채 은밀하게 그곳을 방문했다.
어두운 동굴입구를 지나 안쪽 넓은 홀에 도착하면 밖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마치 아름답게 날아오른 나비처럼 화려하게 수놓아진 불빛들이 별처럼 빛났고, 저 멀리 황금 숲이라 불리우는 로스로리엔의 끝자락처럼 끊임없는 노랫소리가 이어지는 곳. 어디서도 맡아본 적 없는 아련한 향내가 코끝을 마비시키고, 헐떡이는 숨소리와 뜨거운 온기가 방문하는 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훝어내는 곳, 그리고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따스함 중 가장 뜨거운 온기가 가득 차있는 곳. 알려진 듯, 알려지지 않은 이곳은 저주받았다 여겨지는 암흑의 땅. 모르도르의 진짜 모습이었다.
"그 망나니가 또 왔단말이지."
서재에서 장부를 정리하고 있던 안나타르는 미간을 지그시 찌푸렸다. 불쾌한 기분이라도 읽은 양, 앞에 서있던 우르크하이가 어쩔줄을 몰라하며 주절주절 말을 꺼냈다. 갑자기 들이닥쳐서 새까만 머리칼의 엘프를 내어놓으라 호통을 쳐 원하는 대로 넣어 주었는데 여기저기 꼬투리를 잡으며 계속 다른 아이를 들이라며 난동을 피우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좆질하러 왔으면 얌전히 고개 처박고 허리나 놀릴 일이지 어디서 취향 운운하며 난동을 피우나. 발록같이 뛰노는 망나니놈이. 잠깐 허공을 바라보며 어금니를 악물던 안나타르는 깃펜을 도로 펜대에 올려놓은 채, 장부를 덮고 여전히 앞에서 쩔쩔매는 우르크하이에게 명령했다.
"노예들을 다 물리고 안채로 모셔라. 곧 가도록 하지."
"예. 주인님."
딸깍,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안나타르는 느슨하게 흐트러진 머리끈을 풀어헤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걸치고 있던 숄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집어 의자에 걸쳐놓으며 옷장으로 향해 짙은 색 겉옷을 꺼낸 안나타르는 붉은 색 띠를 두르고 옷매무새를 바로잡아 의복을 정갈히 했다. 벌써 몇 번 째였다. 어둠숲의 망나니가 심심하면 찾아와 난동을 부리는 것은. 하지만 기분이 묘했다. 오늘은 어쩐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무표정하게 노려보던 안나타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넘어가지 않으면 걷어차 쓰러트리면 된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야. 큭큭 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른아른하게 흔들리는 불빛에 그림자가 제 키를 늘리며 뒤를 좆았다.
"예하, 참으로 오랫만이십니다."
로브로 얼굴을 가리지도 않은 채, 자신의 방 인듯, 자연스럽게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엘프에게 안나타르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숙였다. 어둠 숲의 왕자. 신다르의 개망나니. 스란두일이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벽안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올곧게 내리꽂혔지만 아무것도 모른단 얼굴로 안나타르는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그동안 취향이 변하시기라도 했나봅니다. 들여보낸 아이들을 모두 내치신 걸 보면 말입니다."
"글쎄. 내가 오지 않은 동안 이곳의 물이 흐려진 건 아닐까?"
"그럴리가요. 이곳은 예하말고도 많은 분이 찾아주시고 계신 곳입니다. 그만큼 새로운 아이들도 많은 곳이지요."
"숫자가 많으면 무엇할까. 머리 빈 천치들이 가득인것을. 실은 자네가 마법을 부려 겉모양만 멀쩡해 보이게 만든 오크나 우르크하이들이 대부분인게 아닌지 모르겠군. 말도 안통하는 머저리들 말이야."
빈정빈정 거리며 손을 뻗어 과일 바구니 속의 포도 한 알을 따 제 입으로 쏙 넣는 스란두일을 안나타르는 여전히 미소지으면서 바라보았다. 우르크하이는 말을 할줄 안단다. 이 멍청아. 무어라 반박해야 저 곱상한 얼굴이 일그러질까를 고민하는 도중 스란두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새까만 머리의 엘프를 찾는다. 신다르든 놀도르든 상관없어. 키는.. 아, 그대 정도면 괜찮겠군. 몸매도...그대 정도가 좋겠어. 얼굴은 예쁘장하게 생기고 튕기는 맛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까지 바라면 무리려나. 이 조그만 촌구석에서 말이야."
키들키들 웃으며 노골적으로 악의가 담긴 말투에 안나타르의 입매가 살짝 굳었다. 하지만 이런 말장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안나타르는 좀더 환하게 웃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튕기는 맛이 있는 엘프라..마침 새로 들어온 아이가 두엇 있는데 선을 보여보지요. 아직 교육이 덜 되어 손님을 받는 법을 모르지만 예하의 입맛에는 맞으실 수도 있을테니 말입니다."
"이곳에 그렇게 정신이 멀쩡한 엘프도 있었나? 아까는 약에 취하고 침을 흘리는 쓰레기들 밖에 없었는데 말이야."
"물론 있지요. 저도 그렇지만 예하가 약에 취하고 침을 흘리고 계신 쓰레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 술에 취하고 색에 취해 계신 것 같긴 합니다만."
"흘려들으면 내게 쓰레기라고 말하는 것 같군. 농담이라고 한 말 이었으면 성공이야. 생각보다 재미 있었어."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말과는 다르게 싸늘한 눈빛이 오갔다. 한참을 노려보던 스란두일이 곧 웃음을 터트렸다. 다시 미끄러진 손가락이 와인잔으로 향했다. 벌컥벌컥 소리내어 들이키는 것 치곤 우아함이 흘러나왔다. 신다르답게 곧고 장대한 기골. 제 아비를 닮아 은색이 섞여 빛나는 금발. 뚜렷한 이목구비와 짙은 바다를 담고 일렁이는 눈동자. 언뜻 지나다 마주치면 꼭 한번이라도 돌아볼 정도의 미남이었으니 그런 고귀함을 품고 있는 것도 어쩜 당연했다. 그러나 그 아름답고 우아한 분위기는 그가 자신의 노예가 아닌 이상 쓸모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입만 열면 간교한 혀를 놀려 남의 속을 긁어놓고 조롱하기 일쑤였으니 안나타르로선 아쉬움이 더해지는 일이 되었다. 일루바타르는 정말 쓸모없는 것에 쓸모없는 축복을 내리셨구나. 저 외모와 분위기를 나누어 내 노예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셨다면 자신의 모르도르는 조금 더 번성할 수 있었을텐데.. 아주 조금 씁쓸함을 느끼며 안나타르는 그저 침묵했다. 일개 손님일지언정 함부로 대하는 선의 간극을 조절해야 했다. 어쨌거나 그는 '이 곳'에 들른 손님이기 이전에 어둠 숲의 왕자였으니까.
"그럼 잠시 쉬고 계십시오. 아이들을 데려오겠습니다."
"알아서 하도록 해."
잔에 와인병을 기울여 술을 따라낸 스란두일을 뒤로한 채, 안나타르는 문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머릿속으론 새로 온 아이들 중 흑발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보며 굳게 닫힌 문에 손을 대고 밀어제치려고 할 무렵.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는 어떤가?"
"..무엇을 말입니까?"
"무엇일까...?"
"예하?"
돌아선 안나타르의 코앞에 어느샌가 스란두일이 다가와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의도치않게 좁은 틈에 갖혀버린 안나타르는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손을 올려 저지하는 제스쳐를 취해보아도 스란두일은 보지 못한 척 시치미를 떼며 시선을 그저 마주쳐왔다. 한걸음. 뒤로 반걸음. 한걸음. 뒤로 반걸음. 어느새 벽에 맞닿은 등에 오싹한 냉기가 스쳤다. 오늘은 정말 예감이 좋지 않더라니. 속으로 한숨을 내쉰 안나타르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스란두일이 조금 더 빨랐다. 어정쩡하게 들린 안나타르의 손목을 잡아 벽으로 밀친 채, 다른 손으로 단단히 매어져 있는 그의 허리띠를 잡아당겨 풀어냈다.
"어떤가. 내게 하룻밤 웃음을 팔아보지 않겠는가."
"죄송합니다만 예하, 저는 노예가 아닙니다."
"항간에 재미있는 소문이 돌더군. 모르도르의 꽃 안나타르는 귀하신 분께만 그 다리를 벌린다고 말이야."
"근거없는 소문 일 뿐 입니다."
대체 어떤 개새끼가 그런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건지 발견하기만 하면 가운뎃다리를 부러뜨려주겠노라고 생각하며 안나타르는 잡혀있는 손목을 슬쩍 비틀었다. 꽉 잡고있는 스란두일이 좀체 비킬 생각을 하지 않아 오크를 불러 망신을 줄까 생각하던 안나타르의 몸에 스란두일의 손가락이 닿아 점점 위를 향해 올라왔다. 예하. 장난은 그만하십시오. 점점 웃음기가 사라진 목소리가 귓가에 전달되었음에도 스란두일은 움직이는 손가락이나 꽉 잡은 손목의 힘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버릇없는 그의 손가락은 어금니를 꽉 깨물어 미세하게 떨리는 안나타르의 얼굴까지 닿고나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보드라운 볼을 만지작거리며 움직이다가 고개를 숙여 제 몸을 위협당한 긴장에 굳은 안나타르의 턱끝에 가볍게 입맞춘 스란두일이 눈을 치켜뜨고 시선을 맞췄다. 내려다보는 붉은 색의 용암과 올려다보는 푸른색의 바다가 맞부딧히며 섞였다.
"황금숲의 요정은 모르는 것이 없더군."
비틀린 입술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동시에 안나타르의 입가도 얇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이런. 굳이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 권력을 가진 족속들은 늘 이래왔다. 몇 천년 동안 서로 위엄있는 척 헛기침을 하며 뒤로는 은밀한 취미를 지닌 이들끼리 음험한 정보를 공유하곤 했다. 모르도르의 꽃 안나타르. 모르는 이들이 보기에 저 이름의 주인은 그저 호색한 취미를 가진 노예상인이라 하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온갖 정보의 근원. 어둠속의 거대한 힘을 움직이는 지배자. 필요할때는 스스로 옷을 벗어던지고 상대를 농락해 피 한방울마저 뽑아내는 검은 꽃. 암암리에 퍼진 소문에 일부러 권력자들이 찾아와 정보나 그에 상응하는것을 내밀며 그를 욕보일 기회를 갖길 원했다. 일일히 받아주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그런 케이스가 없진 않았다. 고작 하룻밤 몸을 굴려 받을수 있는 대가 이상을 받아낼 수 있을 때, 그 때 뿐이었다. 이곳은 모르도르. 환락과 쾌락이 가득한 도시. 그 안에서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상 적법한 대가를 치룬다면 제 몸뚱아리 또한 거래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안나타르는 눈앞에 웃고있는 먹잇감을 어찌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먹어도 되는 달콤한 먹이인가, 아니라면 썩어 버릴 쓰레기인가. 그러고보면 높으신 분들이 오신지 꽤 되었다. 발라들의 입을 통해 이녀석의 귀로 들어갔을 테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룰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저 치기어린 유희의 상대로 나를 보고 있는 것인가. 가늠하는 안나타르에게 스란두일은 그저 황홀한 웃음을 지으며 세게 잡았던 손목을 놓고 슬쩍 쓸어내렸다. 그렇게 고민을 해야 할 정도로 스스로의 몸매에 자신이 없는건가? 비웃음 섞인 시선을 앞에 두고 잠시 멈칫한 안나타르는 곧 고민을 끝마쳤다는 듯, 아까와는 다른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자피 순순히 가지 않을 녀석이다. 지위가 있으니 제대로 막을 방도도 없고. 어둠 숲에는 보석이 유명하다고 했었나. 정보가 아니면 재물을 뜯어내면 그만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흥미를 돋궜다. 가끔은 이런 기분전환도 나쁘진 않을것 같다고 생각하며 안나타르는 잡히지 않은 반대쪽 손을들어 스란두일의 허리를 감아 자신에게 당겼다. 갑자기 180도 바뀐 분위기에 스란두일이 조금 놀란 듯 했지만 금세 안나타르의 허리를 감아 자신의 몸에 단단히 붙이고 입술을 내리 누르려 고개를 올렸다.
"무엇을."
막 겹치려던 입술이 멈췄다.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제게."
새까만 꽃의 봉우리가 열리듯 붉은 입술이 낼름거렸다. 꽤나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그것을 잠시 바라보던 스란두일 역시 입술을 열였다.
"내가 만족한다면 오늘 매상의 세 배쯤 어떠하냐."
"저를 가지시기에 턱없이 부족한 대가가 아닙니까."
"그대가 그리도 비싼가?"
"부족합니다. 저는 그 정도 싸구려가 아닙니다. 예하께서 가지고 계신 것 중 가장 크고 귀한것을 주십시오."
"무엇을 주면 좋을까. 그래, 만도스의 전당을 구경해보는건 어떻겠느냐."
"고작 예하의 것으로 제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대가 내것을 받아낼 수 있을까 걱정인데 그대는 나를 걱정하는군.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 할 것 같은데 어떤가?"
나른한 눈동자에 힘이 담겼다. 잡아먹을 듯, 물 밀듯 몰아치는 파도에 뜨거운 불길은 숨죽이며 자신의 몸을 웅크렸다. 이대로 당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날개를 펴 저것을 말려버리리라. 웃으며 혀 끝을 떠난 단어가 허공을 가로지르자마자 겹쳐진 입술에선 떠나지 못한 신음소리가 맴돌았다. 파고든 손길과 거친 숨소리. 바닥으로 떨어지는 옷가지가 밤의 시작을 알렸다.
>>노예상인 안나와 고객 스란이요!!!! ㅋㅋㅋ 스란이 맘에드는 상품이 없었든 안나가 그날 심심했었든 뭔가 둘의 야릇한 분위기가 보고싶어요... 라는 리퀘: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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