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라레골. 무제./ 할디레골. 무제.
정신없이 안을 헤집는 입술을 받아내던 아라곤이 손을 들어 레골라스의 망토를 벗겨냈다. 소슬한 바깥바람이 피부를 타고 전해지자 요정의 몸에도 조금 싸늘했는지 움찔거리며 멈춰섰다. 그러나 레골라스는 쉬이 멈추지 않았다. 거추장스럽게 걸리는 옷을 스스로 벗어 던져버린 뒤 다시 아라곤의 목덜미에 팔을 감아올리고선 입술을 약하게 물었다. 계속 채근하며 파고드는 레골라스를 진정시키려고 몇번이나 그를 가로막았지만 열오른 요정의 행동은 쉬이 막을수는 없었다. 조급하게 달려드는 요정에게 고삐를 씌우기 위해 아라곤은 한참 고민하다가 반쯤 드러난 레골라스의 엉덩이를 찰싹, 소리가 나도록 가볍게 때렸다.
"이런 취미가 있을 줄은...몰랐는데?"
반사적으로 떨어지고서야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은 레골라스가 요사스러운 눈빛으로 슬쩍 붉어진 입술을 핥으며 자신을 바라보자 당장이라도 쓰러뜨려 끌어안고 싶었지만 아라곤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밀쳐진 몸을 일으켜 스스로 벗어내린 망토와 레골라스의 망토를 정리해 돌이 없는 풀밭을 찾아 그 위에 겹쳐 깔았다. 이슬이 촉촉하게 젖은 새벽의 숲이었기 때문이었다.
"뭐해. 안 올거야?"
망토위에 올라 주저앉은 채 목덜미의 매듭을 풀며 고개를 까딱이는 아라곤의 모습을 보던 레골라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의 왕은 배려심이 깊기도 하지. 밀어 넘어뜨린 아라곤 위에 올라타 바라보던 요정은 천천히 손을 들어 그의 얼굴부터 쓸어내렸다. 몇 번을 보아도 사랑스러웠고 생경했다. 털끝만큼도 따라오지 못 할 정도로 어린 주제에. 불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주제에 이렇게 매번 혼을 쏙 빼어 놓는다고 생각했다. 다시금 마주한 입술을 부드럽게 문지르다가 다시 혀를 얽어 귀한 과실을 맛본다. 허리를 감고 바지 사이로 침입하는 따스한 손이 기분 좋았다. 추위는 이미 느껴지지 않았다. 더운 공기가 이곳을 금세 데워버릴 터였다.
할디레골
처음엔 반쯤 장난이었다. 그저 숲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은발의 가디언. 로리엔의 가신. 그 무너지지않는 오만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왕자인 나를 보며 변하지 않는 표정이 흥미로웠다. 그대는 어떤 식으로 놀라지? 어떤 모습으로 무너질까? 한번 가진 흥미는 꼬리를 물었고 시간이 갈수록 그저 그를 관찰하고 뒤를 좇는것 자체가 즐거워졌다. 사소한 시비로 번거롭게 만드는 것 부터 공들인 장난까지 보여온 지 이제 한 달. 여전히 무표정인 그가 조금은 못마땅했다.
이 방법은 좀 많이 유치한가?참으로 간만에 정면으로 마주한 할디르는 여느때처럼 무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그 인사를 태연히 받고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코앞까지 다가가 눈을 마주하는데도 짙은 회색의 눈동자는 피하는 법이라곤 없었다. 정말이지 끈질긴데."이건 그대가 자초한 일이야."조금 더 다가선 발자국과 동시에 입술이 그 얼굴에 닿았다. 열린 틈새로 자연스레 살덩이가 감질나게 얽혔다. 여전히 당혹감이라곤 보이지 않는 눈동자는 고요하기 짝이없었다. 손가락에 감긴 부드러운 머릿결을 움켜쥐면서 벽으로 밀어붙인 나는 아예 대놓고 그 입술을 탐했다.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숲의 이방인이여.허리 부근으로 감긴 팔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는것을 느끼며 나는 웃었다. 그리고 마음껏 그를 농락했다. 겹쳐진 입술에선 알싸한 박하향이 감돌고 있었다.
글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마글로르.'
마에드로스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내내 울렸다. 곤히 자고 있는 쌍둥이를 바라보며 마글로르는 착잡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이들을 버려야 한다고 나직이 내뱉는 형님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항의해 보았지만 사실은 그 역시 그래야하지 않을까 예감하고 있었다. 물자는 점점 부족해졌고 부상자는 늘어갔다. 상황은 긍정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단지 알면서도 순진하게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이제 헤어져야 한단다. 에아렌딜과 엘윙의 아이들아.
하염없이 아이들의 머리를 번갈아 쓰다듬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손길에 조금씩 상냥하게 반응해오는 아이들의 모습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슬프고도 우스웠다. 언제 이렇게 마음속에 들어와 버린걸까. 이렇게 가까워서는 안 될 사이었는데. 멍하니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흐트러진 이불을 추켜 올려 주었다. 그리고 그 손길에 닿았는지 엘로스의 눈이 반짝 하고 떠졌다.
"왜 주무시지 않으세요."
"이제 자야지."
깜빡이며 바라보는 눈동자엔 의문이 가득 담겼다. 평소라면 보이지 않을 행동들과 표정을 보이는 마글로르가 이질적이어서였을까. 늘 하던대로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온 마글로르는 부러 아이의 코끝까지 이불을 추켜올렸고 성마른 손으로 가슴께를 두어번 두드려 주었다.
"밤이 깊었다. 어서 눈을 붙이렴."
"아저씨도요."
"그래."
대답을 하고나서도 떠진 눈을 보는것이 어쩐지 괴로웠다. 보호해달라고 버리지 말아달라고 온 몸으로 외치고 있는 듯 했다. 가만히 인내하며 기다리던 마글로르는 참다못해 아이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 눈을 가려버리며 자라고 이야기를 할 생각으로. 그러나 닿은것은 가냘프게 떨리는 눈꺼플이 아닌 조막만한 손이었다.
아이는 마글로르의 손을 잡은 채 자신의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러나 마글로르는 당연히 끌려가지 않았고 반대로 엘로스의 몸이 일어나 앉았다. 어자피 그걸 노렸다는 듯 아이는 일으켜진 몸을 바로하고 마글로르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이마에 조금은 까칠한 입술이 꾸욱 눌렸다 떨어졌다. 눈 앞의 아이는 수줍은 듯 쑥쓰러이 웃었다.
"어릴때 아버지가 이렇게 해주시면 좋은 꿈을 꿨어요."
"..그랬구나."
"악몽을 꿀 것 같은 표정이라서.."
"..그래."
"죄송해요.. 멋대로."
혼자 시무룩해진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마글로르는 실없이 웃었다. 마구잡이로 헝클어뜨린 머리카락이 손 끝에서 흩어졌다. 금새 또 밝아진 아이를 다시 한번 자리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진짜로 자렴."
샐쭉해진 눈매가 사랑스러웠다. 금새 꾸욱 감긴 눈에 내려앉은 새카만 속눈썹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마글로르는 곤히 잠든 아이의 숨소리를 듣고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상냥한 아이. 자신을 걱정하며 도닥여주는 착한 마음씨. 감상에 젖어있던 머리가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나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착하고 귀여워도 우리는 헤어져야 해. 나는 또다시 아이들을 버려야 해.
"...악몽을 꾸는게 아니야. 현실이 악몽보다 더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지."
쓰게 웃어보인 시선이 이제는 불이 꺼진 천막 안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숨소리는 희미하고 고르게 퍼져 잔잔한 파도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이제 저걸 듣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군.
마글로르는 아예 천막 입구에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스산한 바람이 다시 소리를 내며 흩어졌고 그 틈새로 여전히 들려오는 숨소리에 어쩐지 울컥했다. 아이들은 이곳에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 사이 우리에게는 놀랍게도 우정이 생겼다. 하지만 또다시 헤어진다면 아무 의미 없는 일들일테지.
아이들이나 타인이 보기에는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글로르는 혼자서라도 기억하고 싶었다. 잊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너희와 끝까지 함께 하고 싶었어.
뒤늦게 내뱉는 졸렬한 변명이었다.
+ 엘로스마글로르였는데....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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