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길엘. 비오는 날의 따스함.
쏴아아아아아아--
며칠사이에 구물구물거리던 날씨는 결국 시원스레 빗줄기를 쏟아 내고야 말았다.
꽤나 거세게 내리는 것을 보니 검은구름을 잔뜩 몰고온 듯 보였다.
"이번 비는 좀 오래가겠는데요?"
막 결재를 끝마친 서류들을 모아 정리하며 엘론드가 말을 건넸다.
"아아. 그렇군.."
다소 피곤한 눈으로 막 펜을 내려놓은 길 갈라드는 앞에 놓인 찻잔을 쳐다보다가 단번에 마셔버리고는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엘론드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이제 그만 주무세요. 내일 아침에도 일찍 회의가 있으시잖아요."
그 말에 감았던 눈을 힘겹게 뜨곤 살짝 웃어보였다.
"그러도록 할까.."
하품을 하면서도 길갈라드는 침실로 향하는 법 없이 비척비척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가서 한 곳을 멍하니 응시했다.
"대왕?"
"......."
"에레이니온. 뭐하세요?"
"응?.. 아...아니야..아무것도."
"뭐에요.."
다소 당황한 듯 하던 얼굴은 다시 예의 부드러운 얼굴로 돌아와 조용조용히 말을 꺼낸다.
"엘론드. 오늘은 내 방으로 와서 자거라."
"네?
"비가 오잖아."
".....네."
"옷갈아입고 와. 난 먼저 들어가마."
"알겠어요."
빙글 웃어보이곤 기지개를 켜며 침실로 들어가는 길갈라드의 모습을 바라보며 엘론드는 한숨을 쉬었다.
조용히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단 한줌의 햇볕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한 면을 차지한 넓은 유리창은 두꺼운 린넨 커텐으로 덮여져 있었고, 그때문에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침대 위에는 그의 왕이 널부러져서 잠들어 있었다.
어쩌면 저렇게 매번 같은 자세로 쓰러질 수가 있을까. 조금 큭큭 거리며 웃던 엘론드는 얼른 미소를 지우고 제대로 이불을 덮어올렸다.
"뭐..같이 자자고 해놓으시고.."
그의 옆으로 들어가 눕고 막 눈을 감으려는 순간,
갑자기 밀려오는 따스한 온기에 길갈라드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떠졌다.
"벌써왔어?"
"그럼요."
"그래그래.. 그럼 자자."
그리고는 자신의 팔속으로 엘론드를 가두어 버렸다.
"...숨막혀요."
"어쩔 수 없어. 그냥 자."
"...비올때마다 외로움 탄다는건 핑계죠?"
"그럴리가. 정말로 외로운걸..."
"아무래도 핑계같아요."
"이런이런, 핑계라니 말도 안된단다. 더 놀아주고 싶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 이걸로 참아줘?"
살짝 이마에 키스하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것만으로도 부끄러웠는지 엘론드는 머리를 폭 숙여서 제 얼굴을 숨겼다.
곧 익숙하다는 듯 길갈라드의 허리에 작은 손이 감겨왔다.
길갈라드 역시 엘론드의 어깨를 안고 잠을 청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의외로 강했던 천둥소리에 길갈라드의 눈이 절로 떠졌다.
아니, 강한건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옷깃을 잡고 바르르 떨고있는 손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더 심해지고 있는 듯 했다.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저 눈을 꼭 감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있는 엘론드를 보면서 안쓰러운 듯한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던 길갈라드는 엘론드의 귀를 잡고 꼭 막아주었다.
얼마나 오래된 잠버릇일까..
사실,엘론드는 천둥치는 소리만 들으면 발작했다.
자신은 모르고 있는 일이다. 아마 엘로스는 알고 있었겠지만..
깨있을 때 듣는것은 상관없지만, 자신이 자고있을 때 천둥소리가 들리면 이렇게 발작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았다.
저 과거의 어느날을 혹 떠올리는 걸까...
어떻게 해도 나아지지 않는 것을 덜어주기위해 길갈라드가 할 수 있는건 단지 귀를 막아주는 것 밖에는 없었다.
자신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걱정을 끼칠 수는 없으니까.
아아, 아가야. 비올때 외로움을 타는건 너이지 않니..
또 한번, 작은 천둥이 울고갔다.
그에 따라 움찔거리는 작은 몸이 너무 안쓰러워서 이불에 파묻고 자신의 몸으로 끌어당겼다.
소리가 잘 안들리는 모양인지, 떨림이 점차 잦아져간다.
이제는 숨소리마저 고르게 돌아왔다.
깨어나기 전까지는 조금 심했던 모양이지만, 서서히 멀어져가는 천둥소리를 미세하게 들으면서 다시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적어도 나와 있을 때는 괴로워하지 말아줘.
언제나 웃는 모습만 보여줫으면 좋겠다.
나의 아가야.
너는 자는 모습이 정말로 예쁘니까 말이야.
* 06년도 글 패러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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