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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로 향하던 마에드로스의 발길이 돌려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평소라면 절대 열릴 시간이 아닌 침실의 문이 열려 있었다. 황급히 들어선 방 안에는 물건이 움직인 흔적은 없었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석상같은 것이 하나 있던 것만 빼면 말이다.

"왕자전하를 뵙습니다."

급히 달려온 시녀 하나가 문 밖에서 고개를 조아렸고 마에드로스는 들고있던 책을 탁자 위에 던져놓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침실의 문이 열려있길래 놀라 확인하려 막 달려온 참입니다. 이리로 오신줄은 몰랐습니다."
"별일 아니다. 잠들기 전에 읽을 책을 두러 들른 참이니 신경쓸 것 없다."
"알겠습니다. 물러가겠습니다."

조심히 문을 닫고 사라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마에드로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창가로 다가섰다. 조금씩 미동하는 석상은 어느순간 위태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제 숨 쉬어도 돼."

휘유우우우 길고도 가는 숨소리가 들려왔고 마에드로스는 닫힌 커튼을 한번 더 확인한 뒤 근엄한 얼굴로 돌아섰다.

"작은 새앙쥐처럼 남몰래 담을 타고 넘어오라고 일층에 침실을 둔 건 아니었는데."
"오늘은 문으로 왔어요!"
"친애하는 사촌 동생이 당도했다는 보고는 듣지 못했는데?"
"그건..."

불안한 빛을 담은 청색의 눈동자가 빠르게 깜빡였다. 어찌됐든 답은 하나였다.

"이렇게 몰래 찾아오는 것을 숙부께서 용인하셨을 리는 없고."
"헤헤. 형님이 보고 싶어서요."
"보고싶다면 서신을 넣어 약속을 잡으면 될 일이었다."
"숙부님께서 허락해 주실 리 없잖아요. 잘 아시면서."

금세 삐죽 나온 입술이 종알거리기를 멈췄다. 오늘은 걸어다니는 조각상으로 변장을 할 요량이었던 건지 온 몸을 둘둘 감은 이불과 팔 안을 가득 채운 쿠션 덕에 핀곤의 꼴은 꽤나 우스웠다. 머리만 금빛이었다면 아마도 시종들은 작아진 켈레고름이 나타났다고 소란을 떨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터벅터벅 다가가 쿠션과 이불을 둘둘 헤쳐 들어올리자 몇 번 꾸물꾸물하던 소년은 고치에서 나비가 깨어나듯 털썩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조금씩 뻗기 시작하는 팔과 다리가 이전보다 제법 여물게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용건은?"
"말씀 드렸잖아요. 형님이 보고싶어서."
"날 좋아해 주는건 고맙지만 이렇게 자꾸 찾아오면 투르곤이 섭섭해하지 않겠니?
"걔가 왜요?"
"좋아하는 형님이 자꾸 없어져서겠지?"
"절요? 투르곤은 저 별로 안 좋아할텐데? 그리고 저도 별로에요."

툭툭 일어나 구겨진 옷을 털어내며 고개를 까닥이자 흔들리는 새카만 머리칼에 금빛이 반짝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들보단 형님이 더 좋아요."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보단 다 자란 동생들이 더 좋구나."
"정말 이러시기에요?"
"이러기다."

분한 듯 치켜뜬 눈으로 바라보다 금새 축 쳐진 아이의 모습은 정말 주기적으로 보는 광경 중 하나였다. 어쩜 이리 지치지도 않을까. 매번 훈계를 듣는데도 까먹었다는 듯 금세 쪼르르 달려오는 모습은 마치 잘 훈련된 애완동물 같았다. 꼬리를 흔들고 달려오는 강아지? 늑대? 늑대 새끼쯤 되겠군.
막무가내로 불만을 표시하며 움직이지 않는 아이를 향해 한숨을 쉬며 마에드로스는 살그머니 시선을 맞추고 손을 펼쳤다. 이 시간에 침실에 오래 있는 것은 꽤 부자연스러운 일이었기에 서재로 자리를 옮기기 위함이었다. 늘 그랬듯 쪼르르 달려와 안길 줄 알았던 핀곤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살금살금 눈치를 보며 움직이질 않았다.

"화가 난거니?"
"...그건 아니에요."
"그럼?"
"걸어서 갈거에요."

꼬맹이라 그래서 어지간히 삐졌나 보다 생각하며 마에드로스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막상 움직임을 보이자 어쩔줄 모르는 모습에 웃음이 났지만 근엄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달내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여 몇 걸음 걷던 마에드로스는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다.

"손은?"
"잡을래요!"

투다다다 뛰어와 폭싹 잡힌 손 끝이 따끈따끈했다. 애는 애지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일이니?"
"이전에 가르쳐 주신 동작 보여드리려구요!"
"벌써?"

한껏 우쭐해진 모습으로 과자를 한 입에 털어넣은 핀곤이 허리춤에 차인 나무목검을 빼 들었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향한 뒤 자세를 가다듬은 채 마에드로스를 바라보았다.
끄떡. 고개가 움직이자 얍! 하는 작은 기합소리와 함께 핀데카노가 움직였다.

어쩌다 몇 번 연무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짝이는 눈빛이 귀여워 장난삼아 이것 저것 알려주었을 뿐인데 생각보다 흡수력이 빨랐다. 그러나 전문 선생이 붙기도 전에 과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닌지라 이리저리 미적대고 있었는데 멋있는 걸 해보고 싶다는 말에 생각난 것이 검무였다. 활동 반경이 크고 단순하지만 움직임이 많아 성장기에 도움이 되겠지 싶어 가르쳐준 것을 핀곤은 빠른속도로 익히고 있었다.
한 발을 딛고 휘두른 목검이 크게 한바퀴 반을 돌다 날렵하게 섰다. 겨누어진 칼날과 눈빛이 매섭게 마에드로스를 향하고 있었다. 두번 반. 보폭을 크게 벌려 도움닫기 후 바닥으로 한번에 내리꽂은 칼과 몸이 중심을 아슬하게 잡으며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아이의 몸으로 실리는 힘이 조금은 부족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칼과 그 칼에 의지한 몸이 반응이 있기만을 기다리며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는 것을 눈치챈 마에드로스는 흐트러졌던 자세를 풀고 바르게 앉아 박수를 쳤다. 한껏 밝아진 얼굴이 마에드로스를 마주했다.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한 핀곤이 달려와 마에의 품에 안겼다.

"잘했어요?"
"꽤 많이 늘었구나."
"맨날 칭찬은 안해주시고."
"칭찬이잖니?"
"칭찬은 이렇게 하는거에요."

마에드로스의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둔 핀곤이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핀데카노 정말 놀랍구나. 어린애의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야. 정말 잘했다."
"어린애 솜씬데..?"
"형님!"
"농담이야 농담. 정말 잘했어. 어린아이치고 말이야?"

장난스레 넘겨보았지만 또 잘했다는 이야기만 쏙 빼 들은 모양인지 히죽거리며 웃는 모습에 마에드로스는 덩달아 웃어보였다. 주섬주섬 던져둔 목검을 챙겨온 핀곤이 자리에 앉아 남은 과자를 들었고 그런 핀곤을 위해 마에드로스는 다시 주전자에 찻물을 부었다.

"핀데카노는 검술이 좋니?"
"좋아요. 엄청."
"나중에 크면 숙부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멋진 전사가 되겠구나."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검 잡는걸 별로 안 좋아하세요."
"그래? 왜?"
"아직은 때가 아니래요. 조금 더 큰 후부터 시작해도 된다고요."

무슨 말인지 뜻을 모르는 것 처럼 핀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마에드로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숙부는 태어났을 때부터 완벽에 가까운 페아노르의 그늘에서 발버둥쳐야 했을 터였다. 아무리 어떤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 보아도 어린아이의 힘으로 다 큰 성인을 이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얼마나 빠져리게 깨달았을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나마 검술과 체력에 한해서 페아노르가 크게 흥미를 가지지 않았기에 숙부께서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임을 마에드로스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역시 자신의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숙부님 말이 맞아.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이야. 어린아이의 시절은 다신 돌아오지 않거든."
"그래도 싫어요. 하고 싶은 일이 있단 말이에요."
"하고 싶은 일?"
"네."

비어버린 찻잔을 두손으로 치켜든 핀곤의 손을 찰싹 내리친 마에드로스는 얌전히 잔을 받침 위에 올려 놓는것을 보고 나서야 주전자를 들어 찻물을 따라주었다. 목이 말랐는지 허겁지겁 마시는 모습을 보며 뜨겁지도 않냐며 한마디 툭 던지고 소파에 도로 앉은 마에드로스가 몸을 느슨하게 기울였다.

"뭔지 물어봐도 돼?"
"음... 좀 부끄러운데. 나중에 말씀드리면 안돼요?"
"그러니까 더 궁금해지는데."
"어른이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는걸요?"
"요 꼬맹이가 못하는 말이없네?"

손가락을 튕기려 달려들자 와악 하며 허겁지겁 잔을 놓고 도망치는 핀곤이 귀여워 마에드로스는 부득불 발목을 끌어잡고 한껏 간지럼을 태웠다. 항복! 항복! 외치는 소리가 지쳐 나오지 않을 정도로 괴롭힘 당한 핀곤의 눈꼬리에는 눈물까지 맺혀있었다.



"그러니까 아주 나중에 말이에요. 싸울 일이 있으면 형님과 등을 맞대고 싶어요."
"내 등을?"
"네!"

툴툴거리며 이야기 한 것 치고 놀라운 내용에 마에드로스는 차마 감정을 숨기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놀란 얼굴을 마주한 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시선이었다. 어쩐지 간지러운 느낌에 마에드로스는 곤란한듯 웃어보이며 되물었다.

"이런 말 하면 웃길지 모르지만 나는 충분히 강해."
"알아요."
"그런데?"

조금은 수줍은 얼굴로 망설이던 핀곤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언젠가 숙부께서 왕이 되실지도 모르고.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형님께서 상급왕의 자리에 오를지도 모르잖아요."
"과연 그런 날이 올까?"
"혹시 모르죠. 할아버님께서 왕이 귀찮아지셨다던지 하면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유모가 말했어요."
"매우 가능성이 적은 이야긴데?"
"어쨌든요."
"그래. 내가 왕이 된다고 치고. 그래서?"
"만약 그렇게 되면 그땐 저도 어른일거잖아요. 그래서 형님이 왕위에 오르셨을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형님을 지켜드리는 호위기사가 되고 싶어요."

희망과 신념이 가득한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가득 채웠다. 동그랗게 떠진 눈. 멍하니 확신에 찬 아이를 바라보며 마에드로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어. 아니.."
"...?"

갸웃거리며 바라보는 핀곤의 시선을 도무지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도 없는 꿈을 가진채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걸 발견해서일까. 마에드로스는 한대 맞은 것 처럼 멍해진 머리속을 정리하려 애쓰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왜 하필 나인지 물어도 되겠니?"
"그야.. 멋있으니까요."
"멋있다고?"
"힘도 세고 검술에도 능하시고 머리도 좋으시잖아요. 다른 형님들도 뛰어나시지만 그중에 가장 멋진걸요. 그리고 제일 용감하니까요. 저는 아직 어린애지만 자라서 꼭 형님처럼 되고 싶어요. 반짝반짝 빛나고 당당한 어른이요. 그리고 솔직히 형님한테만 말씀드리는거지만.. 아버지보다 형님이 더 강해보여요."

반짝반짝. 몇 번이고 곱씹으며 말 뜻을 이해한 마에드로스의 얼굴에 그제서야 핏기가 돌았다. 핀골핀님보다 강하다니. 큰일날 소리를. 진지하게 주의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기쁨이 커서 마에드로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아이는 나를 허투로 보고 있지 않았구나. 언제나 진심으로 봐주고 있었구나.

"..고맙다."
"네?"
"고맙다고."
"혹시 화가 나신건.."
"아니야. 정말로 고마워."

엉겁결에 덥썩 잡힌 작은 손 안에서 쿠키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자신을 선망하며 목표라 말해주는 이가 있었던가. 설사 빈말이어도 상관없었다. 크고 완벽한 페아노르의 그늘에서 조금씩 목표와 확신을 잃고 있던 자신에게는 가장 필요했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랐는지 당황한건지 핀곤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마에드로스는 그런 핀곤의 앞에서 더없이 진지한 모습으로 맹세했다.

"그럴 일이 일어나서도 안되지만, 혹시나 내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네가 꼭 내 등 뒤에 있었으면 좋겠다."
"저.. 저 열심히 할게요!"
"그리고 네 등 뒤에도 내가 있을거야. 네가 성장하는 만큼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될게. 이건 발라의 이름으로 맹세할거야."
"저두요! 저도 맹세할래요! 형님의 뒤에는 꼭 제가 있을거에요! 정말 열심히 할게요!"

부끄러움과 벅참이 공존하는 빛나는 얼굴이 마에드로스의 가슴에 박혔다. 한참동안이나 맞잡은 손을 사이에 둔 채 둘은 티없이 웃어보였다. 나이와 불편한 관계 따윈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생의 가장 든든한 아군이자 동반자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러려면 일단 실력을 키워야겠지?"
"그럼요! 저 연습 더 열심히 할거에요!"
"숙부님께 이야기를 해 두마. 내 부탁이라면 거절하지 못하실거야."
"저.. 정식으로 형님께 배울 수 있는거에요?"
"왜 겁나니?"
"아뇨! 아뇨! 정말이죠? 정말 배울 수 있는거죠?"

당장이라도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에 마에드로스의 얼굴에도 슬쩍 편안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러나 조심히 손을 놓아준 뒤에서야 짖궂은 얼굴로 핀곤을 바라보았다.

"내일부터는 각오해야 할거야."
"옙! 형님!"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한쪽 무릎을 번개같이 꿇은 핀곤이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마에드로스를 바라보았다. 다리를 반대로 올렸단다 핀데카노. 한마디를 듣고 부랴부랴 자세를 바꾸며 처음이라 그렇다 변명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마에드로스는 피식거렸고 덩달아 핀곤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이 행복에 가득차 서로를 바라보던 핀골핀의 아들 핀데카노와 페아노르의 아들 마에드로스의 운명을 묶은 첫 맹세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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