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아도 들리는 것은 철컥이는 군장들의 소리밖에 없었다. 선두에서 말을 타고 꼿꼿이 등을 세우는 자신의 왕을 주시하며 스란두일은 투구를 고쳐올렸다. 작은 소모전들을 치루고 인간의 군대와 조우하러 가는 길목이었다. 적은 수의 오르크패거리들과 몸풀기를 한 나 어린 엘프들은 작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있었다. 무언가를 했다는 자부심, 직접 칼을 들고 활을 쏘아올려 승리에 영향을 주었다는 뿌듯함. 그것은 전쟁을 고깝게 봐 왔던 자신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럴때마다 그의 아버지는 조곤히 속삭이곤 했다. 병사들이 기분 좋아하는 것을 막지 말아라. 사기는 곧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하지만 너는 아니된다. 너에게는 병사들과 판세를 휘어잡을 전술과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해야하는 두뇌가 필요하다. 작은 승리에 도취되지 말고 큰 흐름을 보아라. 그것이 네게 도움이 될 것이다.
모두가 맞는 말 이었다. 하지만 스란두일은 피곤을 느꼈다. 아버지가 하는 말씀은 왕으로서 완벽한 것이었다. 하지만 신다르의 왕가가 고작 인간을 도우러 나서는 전쟁이라는 점은 정말이지 참기 힘든 수치라고 생각했다. 일루바타르의 자손인 엘프와 그 엘프중에서도 고귀하기로 치면 손에 꼽을 정도인 신다르의 힘은 소중한 것일진대 고작 인간. 그리고 빌어먹을 놀도르. 그런 것들을 위해 동맹군을 결성하고 머리맞대고 회의를 해야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 참이었다.

물론 그린우드의 왕은 오로페르. 나의 아버지이시니 그린우드의 백성들은 왕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 그건 나조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남들보다 한꺼풀 더 왕가의 위엄을 보여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지고나니 무엇이든 고깝게 보이기 마련이었다. 얼른 끝내고 돌아가 자신의 궁에서 쉬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문득 떠오르는 얼굴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말도안돼.
어찌하여 그아이의 얼굴이 떠오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작게 고개를 젓고 마음을 비웠다. 그 아이는 그저 대용품이고 한낯 이용가치있는 '친구' 일 뿐이었다. 더이상 빠져들어선 곤란했다. 그건 맘속에 품고있는 이에게도 못 할 짓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갑옷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 아이가 만들어 준 것은 최고로 가볍고 편안한 것이었지만 마음의 무게가 담긴 것 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한번 거래를 받아들인 이상, 이것을 받은 것은 정말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 그저 친구로서, 연인인 척 하는 자의 의지로 내게 온 것이었으니 그 정도는 감내해야했다.
쓸데없는 생각일랑 집어치운 채, 스란두일은 그저 앞을 향했다. 저 멀리 인간들의 군대가 보였고 놀도르의 진영이 다가왔다. 엘론드가 저기에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 가슴이 뛰었다. 놀도르의 군대와 인간들이 만들었다는 군대는 별 볼일 없어보였지만 오직 그는 예외였다.
그저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못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됐다. 스란두일은 미끄러지는 말고삐를 다시 거세게 움켜쥐었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최전방은 이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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