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감싸쥐는 손길을 느끼며 몽롱히 잠에 취해 있는 엘론드가 슬그머니 눈을 깜빡였다. 거짓말처럼 앞에 있는 스란두일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좋은 아침이야. 엘론드."

이마에 느긋히 입맞춰오는 스란두일에게 인사하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평소와 다른 향이 전신을 지배했다. 무심코 핥아올린 입술에서 진한 초콜릿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게.."
"발렌타인 데이. 인간들의 풍습 중 하나라더군."
"들어 본 적이 있어."
"사랑하는 연인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는 날이라지?"
"그래서 자네가 벌인 일인가?"
"아무렴. 가장 먼저 주고 싶었거든."

엄지로 살살 엘론드의 얼굴을 쓰다듬던 스란두일의 눈꼬리가 깊게 휘었다. 보드라운 손길에 도탑게 녹아버린 초콜릿이 입가 여기저기에 묻어나왔다. 그 달달함에 침이 고여 자꾸 핥게 되는 혀끝을 조신하게 내리누른 스란두일의 입술이 달게 감겨왔다. 조그마한 조각이 슬그머니 입 속으로 밀어 넣어졌고 설왕설래로 녹아내린 달콤함에 엘론드는 가벼운 현기증까지 느끼고 있었다.

사라져 버린 초콜릿, 주변을 가득 채워버린 향에 키득키득 웃으면서도 스란두일은 엘론드에게서 떨어지려 하질 않았다. 몇 번이고 끊임없이 입맞추고 숨을 나눴다. 아침의 흐트러진 모습조차 그에게는 꿈같은 모습이었다. 새벽녘의 희미한 별빛에 얼굴을 확인하고 나선 것이 얼마나 오래 된 일이었을까. 아침 인사를 해 본 것도 처음이었고 새가 지저귀는 이른 시간에 한 침대에서 그가 눈을 뜰 때 까지 있어 본 일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한 일이었다. 마음을 먹는 것은 어려웠고 남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는 것은 조금 더 어려웠지만 스란두일은 현재에 조금 더 충실하며 살기로 결정했다. 작은 이벤트였지만 마음에 들어 해 주길. 달콤함은 아침의 저혈압에도 좋은 약이 될 터였다. 쪽쪽. 소리를 내면서 잘게 쪼아올린 부딧힘을 마지막으로 스란두일은 엘론드가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도록 조금 떨어져 그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해 주었다.

"아침에 보니까 또 새로워."
"그러게. 더 사랑해야할 것 같고 더 예뻐해야 할 것 같아."
"입에 바른 소리는 제일이지 아주."
"입에 발린건 소리가 아니라 초콜릿이지. 괜찮았어?"
"나쁘진 않았어."

희미하게 웃으며 스란두일의 품을 파고든 엘론드가 슬그머니 잠투정을 시작했다. 깜빡깜빡 눈꺼플을 감고 숫제 더 잠이라도 청하려는 듯, 자리를 잡는 모습에 스란두일은 저도 모르게 이불을 덮어 아이를 재우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었다.

"안 돼, 덮으면."
"왜? 더 자. 아직 이른시간이야."
"조금 있으면 시녀들이 들어올거야."
"리븐델의 시녀들은 참으로 딱딱하기도 하지."
"할 일을 하는 것 뿐인걸."
"조금은 여유로워도 좋을텐데. 로드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억지야 그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아니.. 하루 정도는 괜찮지 싶기도 해."

슬쩍 얼굴조차 보이지 않게 파묻은 엘론드를 토닥토닥하던 스란두일이 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대로 이불을 덮어버렸다. 웃음소리가 차마 새어나가지 못한 이불이 조금씩 들썩였지만 순식간에 움직임은 멎었다. 귀를 기울여야 할 정도로 작은 소리들이 서로의 사이에서 오가고 있었다.

"아침부터 초콜릿을 먹은건 오늘이 처음이야."
"나도 아침부터 누구에게 줘 본건 처음이야."
"질 수 없으니까 자네의 첫 밤은 내게 줘."
"오늘 밤을 기대해도 좋은건가?"
"오늘 밤일지는 알 수 없지."
"상관없어. 중요한 건 초콜릿보다 자네가 준다는 걸 테니까."
"하여튼 입발린 소린."
"쉿. 방해꾼이 가까이 왔어."

웅성거리는 소리가 문 앞을 사로잡았다. 삽시간에 고요해진 이불 속에 시녀들이 평소와 달리 열리지 않은 문에 우왕좌왕하며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상의하기 시작했다. 똑똑. 육중한 느티나무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불 속 숨 죽인 요정 둘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한참을 부산스레 움직이던 문 밖의 불청객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곧 움직임을 멈췄다. 조금 더 자. 재워줄게. 토닥이는 손길을 느끼며 엘론드가 웃음지었다. 일어났다가 다시 잠드는 아침이라.
혼자였다면 아마 상상도 하지 못했을 굉장한 일이라 생각하며 스란두일의 손을 부여잡은 채 엘론드는 눈을 감았다.
이불 속에는 여전히 달콤한 향내가 감돌고 있었고 오랫만에 둘은 함께였다. 잠깐 일 테지만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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